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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현불연재물

[2022년 3,4월호] 원각산의 봄소식 / 인궁스님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2.06.05|조회수125 목록 댓글 0

< 이달의 법문 >

 

 

 

원각산의 봄소식

 

 

글/ 인궁스님

 

 

 

요즘은 한국 드라마나 영화가 세계인의 마음을 점령해가는 요즘, 최근에 북한을 넘나드는 코믹로맨스 드라마가 유명세를 탔습니다. 극중대사 중에 흔히 북측 표현으로 ‘일 없습니다.’라는 말이 ‘관심이 없다’, 혹은 ‘나랑 상관이 없다.’는 뜻인데 그러면서도 제 할 일은 꼬박꼬박 챙기는 모습이 재미를 더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 ‘일 없다.’라는 표현이 아주 오래전부터 절집 선종가풍에서 사용하던 법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관심 없다, 무심하다.’의 의미로는 통하게 될 텐데요, 왜 굳이 선사스님들이 ‘일 없다.’는 표현을 자주 썼을까요? 
  오늘 법회에 모인 여러분들이 있는데 각자 사시는 곳이 제각각이라 멀리서 오시기도 하고 가까이에서 오시기도 하고 차를 타고 오시는 분도 있고 버스를 타고 오시는 분도 있고 저마다 오시는 길이 다르고 거쳐서 온 곳이 다른데 여기 모여 있다는 말이지요. 지금 여기에 계시더라도 각자 나이도 다르고 이름도 다르고 하시는 일도 다르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각자의 살림살이 살아가는 모습이 천차만별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르지 않은 게 있습니다. 이 모든 다름 속에서도 각자가 차지하는 허공은 다르지 않습니다. 손을 들어도 허공이 있어 가능하고 잠자고 밥을 먹고 돌아다녀도 이 허공이 허락하기에 모든 일이 가능하고 각자가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스스로는 드러내지 않으나 일체를 수용하고 일체를 드러내는 일이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허공이 그러하듯 우리의 마음이 또한 그러한 것입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도무지 흔적이 남지 않지만 분명히 드러나 있으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체를 수용하고 운용합니다. 텅 비었으되 그대로 가득하였으며 되지 않음이 없습니다. 본래 있었으니 따로 만들어지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분명하고 역력한 것이 장부의 기백으로 충만하여 당당하며 자애롭기는 무한하다고 하겠습니다. 
  부처님의 삼매가 또한 이러하다고 하겠습니다. 고요한 바다에 온갖 사물이 다 비치고 수용하듯이 아니 비치는 것이 없이 모두 수용하고 드러냅니다. 이 삼매는 만들어지지도 않고 결코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이름 하여 해인삼매요 움직이면 화엄삼매라 중생을 나의 몸으로서 구제하는 움직임이 동시에 함께하고 있다 하겠습니다. 나의 존재 나의 생멸 나의 윤회 나의 해탈은 모두가 그 자리에서 이뤄지니 한 날 한시도 부처님의 마음을 떠난 적이 없고 부처님의 삼매를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어떤 삼매를 성취하였느니 도가 높아 신통이 자재하니 하여도 부처님의 삼매에서 보면 작은 물결에 지나지 않으며 일어난 삼매는 반드시 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조금 공부 맛을 본다고 어설프게 자기 살림살이로 삼아 아만이 공고해지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삼매, 부처님의 공덕은 특별한 존재만이 소유하는 전유물이 아니며 산중고승들만 누리는 특권도 아니며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가야만 맛을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본래 들어있으며 누구에게나 본래 갖춰져 있는 것이니 거기에 혹을 붙여 허물을 짓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법문을 듣는 그 자리가 부처님의 자리이니 어디에서 다시 부처를 구하고 부처를 만들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생하는 것은 반드시 멸할 것이요 만들어진 것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연기 자체가 공인데 어디다 그림을 그리겠습니까? 본래 이 마음에 부처님 마음이 항상 함께하시며 희노애락에 휘둘리고 탐진치 삼독에 속을 때에도 그 자리를 떠난 적이 없으며 삼악도 윤회 고를 겪는 순간순간에도 잠시도 부처님의 품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둘이 아니요 너다 나다 부처다 중생이다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나’라고 여겨온 ‘나’는 어디에도 할 일이 없었는데 일을 그르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한 두 생을 방황한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옛 조사스님들이 ‘쉬어라’라고 당부하십니다. 이미 이 마음이 부처님 마음이었다면, 이미 부처님 삼매에 들어있다면 무엇을 새로이 닦고 긁어 부스럼을 짓느냐는 것입니다. 道不用修라 ‘이 길은 애써 닦을 길이 아님’이라 이미 탁 트여 명백하기에 굳이 허물을 짓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실천법이면서 완성된 모습이 쉬어진 모습이지요. 쉬라고 하니 몰라서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놓으라고 하니 몰라서 맡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3조 승찬스님의 법문을 확인해보면,
 至道無難 唯嫌揀擇 旦莫憎愛 洞然明白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나니 이미 탁트여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간택할 것이 있을 것이며 어찌 미워하고 싫어함이 있을 수 있겠는가?

放之自然 任性合道
일체를 다 놓아서는 스스로 그러하게 하라. 본래 성품에 맡겨놓으니 그대로 길 아님이 없었네.

라는 법문에서 조사선의 선리(禪理)와 그 실천법이 명백해졌습니다. 그림으로 보면,

 



본래 깨달음의 자리를 여읜 적이 없는 이 마음은 일체중생과 삼세의 제불보살과 다르지 않으니 한 마음으로서 본각(本覺)이며 일체의 번뇌망상이 본래 그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니 나오는 그대로 믿고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전히 내려놓은 입장에서 쉬고 쉬어진 사람이면 본래무심과 합일이 되어 여일해지고 바로 자기의 본래성품에서 공능으로써 무량공덕이 발현되어 자비와 지혜가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한 일이 없으니 ‘무사無事’요 내가 한 일 없는데 일체가 진실하게 돌아가니 ‘무사진인無事眞人’ 즉 ‘일 없는 참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말합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데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짓지 말라고 하시면 어쩌라는 것입니까?’라고 반문하지요. 그러나 스스로 속고 속이는 이 전의 삶보다 본래성품의 공능이 발현되는 일상의 삶은 더욱 원만해지고 믿고 맡겨 졌기에 더 능동적이고 더 적극적이며 더욱 당당해지는 것입니다. 더욱 진실해지고 더 감사한 일로 가득해질 것이며 결국에는 스스로 확고한 믿음이 완성되게 됩니다. 

 


  그래도 속고 속이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면 스승을 늘 찾아뵙고 죽여주십시오 ! 하고 엎어지고 법을 물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등장한 것이 수행법으로서 ‘화두참구’입니다. 이는 원래 없었던 수행법이 아니라 부처님의 출가인연도 바로 의심에서 시작되었고 그 의심이 확고부동한 깨달음의 믿음으로 완성되기까지 무너지지 않는 원력  혹은 공능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이 의심이 회두참구에서는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문자선, 의리선, 구두선으로 치달리던 송대의 선풍을 일신하였고 근 현대에 이르러서는 독보적인 수행방편으로 전수되고 있습니다. 
  그 기본구조는 스승의 질문에 대해 답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표층의식의 의식작용으로 의심이 일어납니다. 이를 내면으로 끌어들여 간절한 심정으로 뭉치게 되면 의정이 형성되고 더욱 열망이 깊어지면 의단이 형성되어 마치 바위벽처럼 무의식의 장벽이 가로막게 됩니다. 이때 일생일대의 용맹심으로 치고 들어갔을 때 이전의 중생살이를 졸업하는 소식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타의 수행은 기본적으로 현재의식을 수행주체로 삼지만, 조사선의 선리(禪理)에 기반을 둔 화두참구는 제법실상, 본래면목, 본 성품으로서 부처님의 마음을 배경으로 혹은 그 뿌리로 삼아 얻을 것도 없고 취할 것도 없이 오로지 간절한 의심으로만 들어가면서 무의식의 장벽이 열리게 하는 사연입니다. 본래무심인데 강렬한 무심의 환경을 방편으로 형성하니 처음부터 내가 한 게 남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무심이요 중간도 무심이요 끝에도 절대무심이지만 그 자리에서 무한한 자유와 묘용을 감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월은 흘러 흘러 검은 머리 하예지고 젊어서 그 잘난 모습 어디에 두고 흙냄새 가까워짐을 보십니까? 저 축생의 걸음과 무엇이 달라서 금생이 영원하리라 보십니까? 이 몸둥이 성할 때 어서어서 공부하길 간절히 권합니다. 일 없는 저 노인네 오르고 내리길 자유자재한데, 이 내 몸은 하루에 열두 때에 늘 속고 속이며 살고 있으니 참으로 어리석지 않습니까? 열심히 공부해서 금생에 영광스럽게 졸업하고 큰 공부를 후손에게 당당히 물려주시길 바랍니다. 

 



  뉴욕원각사에 봄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일 없는 사람’들이 모여 큰 공부인연 함께하고 있으니, 뜻 있는 공부인들이 구름처럼 모여 따뜻한 봄소식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뉴욕원각사 선원장 인궁

 


              ■선원장 인궁스님 약력■


<수행이력>
장성 백양사 서옹선사 문하 출가
송광사,동화사 전통강원에서 삼장 연찬
원허지운 강백의 <원각경,기신론,화엄경> 사사
진제, 대원, 무여, 근일선사 회상에서 실참수행 

<학문수학>
고려대 물리학과 졸업
동국대대학원 선학전공 석박사과정 이수 

<전법활동>
나주 문성암 주지 및 선원장 참선지도
서울 법련사 불일국제선원장 참선지도
강남 주요사찰 불교대학 강의
(금강경,법화경,신심명,선사상사 등)
BBS불교방송 <선과 법화경> ,특별TV법회 강설

<논문저서>
논문: “조사선에서의 信의 構造와 實現”
편저: 『佛祖一心錄』
현, 뉴욕원각사 선원장. 
    일요법문, 참선지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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