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과 포교하는 사부대중 >
세계적인 재즈 보컬리스트
웅 산 김은영
글 / 전현자 (취재기자)
기자: 뵙게 되고, 인터뷰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불교와 인연이 깊은 분으로서, 삶 속에서 불교의 가치를 높이며, 알기 위한 일을 하신다면, 무엇을 하시는지요?’
웅산: 저는 사실은 법명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 자체가 제가 걸어다니는 모든 곳이, 제가 움직이는 모든 곳이 불교라는 것을 한 번쯤은 생각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포교로 하고 있는 활동들, 그리고 포교 외에 제가 라디오 DJ도 하고 있고요. 여기서 TBS방송국에서 DJ를 하고 있어요. 오늘은 다른 프로에 출연을 하러 온 것입니다만. 그래서 그런 활동이라든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저의 이름은 누가 봐도 불자인 웅산이기 때문에 누가 봐도 불교는 제 삶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세계적인 보컬리스트이신데요, 작품에 불교적 철학이나 세계관이 포함되는지요?
웅산: 제가 쓴 첫 번째 곡이 2집 앨범에 있는 ‘call me'라는 곡이예요. 당신이 외롭고 힘들 때, 나를 불러달라. 내가 당신의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줄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그런 노래 가사말이라든가, 보살의 마음으로 ’Darling, I Know you suffer, I'm here for you.' 이런 것이지요. ‘당신이 지금 고통받고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위해서 여기에 있어요.’ 라는 이야기로 곡을 만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2집 앨범의 수록곡 중에서 ‘rain bird'라는 ’비새‘라는 노래가 있어요. 비새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 새일 수도 있어요. 노래 가사를 보면, 울면서 쪼로록, 쪼로록, 쪼로록. 비오는 소리 뿌리면서. 이렇게 시작을 해요.
제가 작사, 작곡을 한 곡이고. 이미 창 밖 숲속은 도시의 아파트들처럼,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까 나는 여기서 막걸리 한 잔 목을 축이고, 소주 한 잔 마시고 날아가 봐야되겠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러니까 어쩌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는 잠깐 머물렀다 가야 하는 세상인 거니까 그런 불교적인 철학들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쓰고 보니 이미 그것은 불교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내 생각이나 철학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되어있더라고요. 굳이 ‘나는 불교철학을 써보겠어.’ 이런 것들이 의도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내 마음이 그 당시에 그런 마음이었고, 그것을 글로 쓰고, 그것을 노래로 만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자: 듀크 엘링턴은 “모든 것은 음악이다.” 라고 표현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의 음악적 정의는 무엇일까요?
웅산: 음악적 정의까지라는 것으로 말씀 드리기 보다는 저는 재즈라는 음악을 선택을 했고, 듀크 엘링턴은 사람도 그 시절에는 뮤지컬 음악을 했던 사람이예요.
그런 음악들이 조금 더 재즈로 발전이 되면서 재즈 음악의 작사, 작곡을 한다든가, 이런 작업들을 많이 하셨는데, 음악이 무엇인가를 물으셨지요?
기자: 네.
웅산: 두 가지로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악이 무엇인가?, 또는 재즈가 어떤 의미냐고 물어보신다면, 저한테는 그것이 다 수행의 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재즈라는 음악은 1890년 말에 노동요에서부터 시작이 됐었는데, 원래는 클래식 음악에서 버려진 불협화음이라는 게 있어요. 가령 ‘도’옆에 ‘레’를 같이 치면, 불협화음이니까 이렇게는 쓰지 말라고 한 음악 이론에 있어서 화성적으로 버려졌던 그 음악들을 재즈에 가지고와서 재즈의 고유성으로 “재즈는 들으면 뭔가 불협화음같은데 그런데 들어보면 멋이있는 것이 특별한 것이네” 라는 말들을 지금은 하는데요, 그때는 버려졌던 불협화음을 가지고 와서 재즈의 고유성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뭔가 끊임없이 나 스스로 일어나는, 자생하는 혹은 독립하는 이런 여러 가지 의미들이 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음악도 그렇지만, 특히 재즈가 저한테 어떤 의미냐고 물으면,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어요. 그것을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나만의 방식으로 나를 만들어주는 게 음악이고, 재즈인 거 같아요. 나를 나로 태어나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 하고 싶습니다.
가령 예를들면, 얼마 전에 어떤 스페인의 시인의 시에서 이런 구절이 있었어요. “너 자신으로 살아가라. 남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된다면, 당신은 언젠가 정복당할 것이다.” 이런 글이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저와 꼭 같은 생각을 하는 시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재즈라는 음악이 저는 그렇게 만들어줬어요. 저는 보통 사람의 잣대로 봤을 때는, 어쩌면 노래를 그렇게 잘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의 잣대로 봤을 때는 ‘저 사람의 음악은 깊이가 있다.’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고 그런데 어느 쪽으로 해석이 되든 저는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을 살아내며 행복하고 자유롭습니다.
기자: 몇곡을 들어봤는데 주로 영어로 부르시데요.
웅산: 가령 이런 것입니다. 재즈라는 음악은 스탠다드라는 게 먼저 있는데.
그래서 'what a wonderful world.', 'summer time', ‘my way' 이런 곡들은 팝재즈로 분류를 해요. 옛날부터 작곡되어져서 꾸준하게 사랑받는 곡들을 재즈 스탠다드라고 해요. 그래서 재즈 뮤지션들은 스탠다드 곡을 다시 한 번 자기만의 해석으로 부르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예요. 그 전에 불렀던 것을 똑같이 부르는 건 배신같은 거죠. 그래서 철저하게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하는 음악이 재즈 음악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고 있는 것들은 그런 재즈 스탠다드 곡들도 다시 해석한 곡들이지만, 팝곡들 예를 들어 존 카커의 unchain my heart, 이런 곡들도 제가 jazz로 jazzy하게 재해석을 하거나 하고. 또 한국의 숨겨진 가요곡들을 jazzy하게 편곡을 해서 저만의 해석으로 발표를 하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가 더 있는데, 제가 자작곡을 써서 저만의 색깔을 들려드리거나 해서 네 가지로 정리가 되네요.
기자: 그러시군요. 그럼 한국에 오래전부터 불려왔던 노래도 재즈식으로 만들어서 하나요?예를들면, 판소리나, 정악을 재즈식으로 부를 수도 있나요?
웅산: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 시도하고 있는 것들이 그런 것들이 있어요. 일단은 앨범으로는 나와있지 않지만, 미국에 계신 교포분들, 불자분들께서는 유튜브를 통해서 ‘웅산하고 토끼이야기, 혹은 웅산하고 아모르 파티, 이렇게 치시면, 거기서 어떻게 판소리를 활용하고 있는지가 나올 거예요. 제가 어떻게 국악과 재즈를 접목을 하는지 그런 것들을 보실 수 있어요.
기자: 염불도 혹시 재즈와 할 수 있나요?
웅산: 염불은 아직 시도해 본 적이 없는데 언젠가 할 수 있겠지요. 재즈라는 음악 안에서는 ‘why not?’이라는 전제가 항상 붙어요. ‘이것은 왜 안돼? 다 할 수 있잖아.’ 그래서 제가 판소리를 재즈에 접목했던 것처럼 언젠가는 염불도 굉장히 재밌는 작업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해요. 제가 지금 마음속으로 하고 싶은 작업은 있어요. 옛날에 불교신문 사장님이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정휴 스님이라는 시인 스님이 계세요. 그 스님께서 열반하시면서 하시는 것? 그것이 무엇이지요?
기자: 오도송입니다.
웅산: 네. 오도송으로 곡을 지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셔서 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 진정으로 멋진 곡을 한번 써봤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저도 생겨서 지금 고민을 하고 있는 상태예요. 그런 곡들을 할 때면, 절에 가서 마음을 정리해야 하는 시간도 필요하고, 일반 대중들을 위한 곡이라면, 집에서도 쓰고, 걸으면서도, 산에 올라가면서도 곡을 쓰고 하는데, 그런 곡들은 다른 마음 가짐이 필요하기 때문에 깊이 생각해보야야 합니다.
스님들의 오도송인데도 대중들에게도 불리워질 수 있는 좋은 가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교 행사 때 불리워질 수 있도록, 가슴속에 많이 남을 수 있는 그런 노랫말들로 필요할 것 같고 그래서 공부가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기자: 오도송으로 작곡을 하시고 노래 부르신다면, 훌륭한, 획기적인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정말 대단한 불자이십니다. 그런데 오래전에 절에서도 사셨고, 마음을 잘 닦으셨다고 들었는데 그 때는 어떠셨어요?
웅산: 저는 어렸을 때, 절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깥세상이 궁금하지 않았어요. 뭐랄까. 제가 생각해도 그냥 이런 게 인연이었나보다. 내가 거쳐 가야 하는 운명같은 연이었나보다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거기 있을 때, 세상에 대한 관심들이 있었다면, 그런 마음들이 일어났으면, 저는 진작에 나와서 친구를 만나거나 했었겠죠.
2년 가까이 ‘나는 스님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절에서 살면서 공부를 했었습니다. 그 곳의 생활은 그냥 너무 좋았어요. 바빴죠, 물론. 아침에 일어나서 일도 해야 하고, 기도도 해야 되고, 공양하고 밭에 가서 일도 하고, 사무적인 일도 도와드리기도 하고. 다시 또 일을 하고 기도하는 생활들 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저는 웃음이, 미소가 입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밤에 반야심경을 왼다거나, 관음정근을 하는 것도 마치 노래를 하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늘 했어요.
기자: 예, 그러셨군요. 수행자로써의 마음이 지금까지도 잘 유지되어오신 것 같습니다.
웅산: 어렸을 때는 부족했고. 제가 재즈 음악을 한 지 26년이 되어가고 있는데. 96년 1월부터 프로 무대에 서기 시작했으니까 꽤 됐어요.
처음 시작했을 때 제가 불교를 생각하는 그 마음. 그리고 음악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5년이 됐을 때, 10년이 됐을 때, 지금 20년이 됐을 때, 25년이 됐을 때 저의 생각은 더 무게가 있어지고 커졌는데 어렸을 때부터 큰 마음을 가지지는 못했던 거 같아요.
단지 어렸을 때는 부모님들께서 워낙에 바르게 살아오셨던 분들이기 때문에 그 분들께 해가 되는, 누가 되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다. 그런 것들이 잘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어렸을 때는 지금처럼 세상을 크게 바라보는 눈도,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시야가 좀 더 좁았고. 단지 ‘내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이 순간이 누군가를 위한 시간이 될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했지만, 그렇게 원이 크지는 않았었던 것 같아요.
기자: 대학에서 가르치신다고요, 음악을 가르치시겠습니다.
웅산: 네. 음악을 가르쳐요. 음악의 전반적인 역사, 이론, 실기 이런 것들을 다 가르쳐요. 학생들을 가르친 지는 한 20년이 됐어요.
기자: 음악 장르 중에 AI식의 음악 장르도 생겼나요?
웅산: 예를 들면, 코드를 입력하고 이런 분위기. 바람 소리가 느껴지는 분위기. 이런 것들을 입력을 하면, 거기에 맞게 그런 것들을 작업하는 게 가능하다고 들었어요. 저는 그런데 시도해보지 않았고. 오랜 시간이 지나고, 과학이 더 많이 발달하더라도, 인간의 감성, 인간의 이런 것들까지 컨트롤할 수 있다고는 안 믿고 싶어요.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것들은 역시 예술. 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이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가 예술의 경지라고 이야기를 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 부분만은 AI가 침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기자: 부처님 당시에도 천신들이 악기를 역주하거나 하는 천상의 음악이 있다고 경전에 나와 있는데, 수행하시다거나, 직감적인 것들이 떠올라서 곡을 지으신 적도 있나요?
웅산: 아, 그건 모르겠는데. 가령 저에게 의미있는 두 곡을 뽑자면, ‘Call me'라는 제가 처음 곡을 시작했을 때 쓴 곡과. 'yesterday’라는 곡이 있는데. 그 곡들은 정말 바람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쓰여졌거든요. 특히 'call me'라는 곡은 제가 운전을 하고 갈 때, ‘아, 누군가 힘들 때에 내가 위로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할 때, 그런 멜로디가 떠올랐었던 것이고.‘yesterday’는 꿈 속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그 다음날 피아노 앞에 앉아서 치고 있을 때, 저희 어머니께서 그러셨어요. 옆에서 누워계시다가, “얘, 그 곡은 니가 쓴 곡이 아닌 것 같다. 부처님께서 주신 것 같애.” 그러셨어요.
그런데 그 곡을 쓰고, 실제로 대중들한테 알려지게 된 계기가 특별했어요. 그걸로 큰 상도 많이 받고,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앨범상도 받고, 보컬상도 받고, 두 가지를 받았던. 그리고 고현정씨의 커피 광고에 쓰여지기도 하고, 드라마에 사용되기도 하면서 좀 많이 알려지게 됐는데. 사실 재즈 뮤지션들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쉽지 않아요. 정말 쉽지가 않아요. 제가 지금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관심을 받고 하는 게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케이스예요. 저는 일본에서도 활동을 하고 있는데, 일본에도 저같은 캐릭터의 재즈를 하면서 다방면에 국악도 하고, 콜라보를 하면서 클래식도 콜라보하고, 힙합도 콜라보하고 이렇게 다 하는. 그러면서 song-writing을 하고 이런 캐릭터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재즈뿐만 아니라, 다른 쪽에서도 사랑을 받는 그래서 럭키한 케이스의 아티스트고. 잠깐 언급했지만, 미국에서도 저처럼 다양하게 활동하는 그런 사람들이 없어요. 보통 재즈는 그냥 재즈만 하고 스탠다드만 부르기 때문에. 저는 어쩌면 그냥 ‘웅산’이라는 장르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인지도 몰라요.
기자: 자랑스럽습니다. 코로나때문에 예술활동이 많이 제한되어있지 않습니까. 미국에서도 공연을 하셨다고요?
웅산: 뉴욕에서 주로 하고, 맨해튼에서 주로 하고. 그 다음에 워싱턴 D.C의 아주 유명한 대학에서 공연을 한 번 한 적이 있습니다. 유럽과 동남아에서도 햇습니다.
기자: 세계적인 분이시네요.
웅산: 아직은 더 많은 곳에 가봐야 하지만 여러곳에 다녔습니다.
기자: 기회가 되면, 또 미국에 가실 수도 있겠네요?
웅산: 코비드가 아니였으면, 당연히 공연을 가는 것이었는데 취소가 됐습니다.
기자: 그러시군요. 미주현대불교는 수행과 문화 활동 하시는 분들을 초청 소개하기도 합니다. 미국오시면 우리 불자님들도 함께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웅산: Sure, that would be great. 사무실은 어디 있는 것입니까?
기자: 뉴욕입니다.
웅산: 네. 그렇군요. 불자님들과 함께한다면 영광이겠습니다.
재즈쪽에도 가장 유명하다고 해야 하나? 세계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허비 헨콕’이라는 분이 있어요. 그 분이 유네스코에서 인터내셔널 재즈 대회를 제정을 했어요. 매년 전세계적으로 4월 30일이 되면, 재즈인들의 축제가 되는 거예요. 그것을 미국의 허비 헨콕이 대장이 되어서 진행을 해요. 각 나라에서도 각자 진행도 되지만, 미국이 중심이 되어서 전세계의 아티스트들을 초대를 해서 하바나,파리 등등 일본 오사카에서도 했었어요. 매년 나라를 옮겨다니면서 그것을 하고 있는데.
그 분이 수장인데, 불교인이에요. 그 분하고 총감독이 불교인인데 결은 조금 다르지만, 남묘호랭계교를 믿는다 하니까요.
기자: ‘재즈’하면, 흑인들의 연가라거나, 흑인들의 삶의 애환을 표현했다고 하잖아요. 그리고 재즈라는 음악이 문학성도 있고요. 삶의 이야기를 노래 하기 때문에 참 특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음악이기도 하지요.
웅산: 이미 재즈는 세계적인 음악인데...
기자: 한국인으로 웅산님께서 재즈로 세계인이 되셨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웅산: 우리나라 사람이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하는 재즈는 다른 것이니까요. 그 전에는 실제로 제가 미국이나 유럽에서 활동을 할 때. 물론 무대에서 인사는 영어로 하고, 노래도 영어로 하는데. 우리 음악은 아니니까, 사실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다하지만, 조금 주눅이 들거나 그럴 때가 있었는데. 국악이라는 음악적 소스를 재즈에 활용을 하니까 이제는 아무도 못하는 걸, 나만 할 수 있는 것이고, 대한민국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니까 의미를 느낌니다. 그런데 이것을 또 그들이 좋아해요. 이것이 제일 중요하고 자랑스럽습니다.
기자: 재즈가 흑인들의 삶을 노래한 거라면, 판소리는 우리 민족의. 민초들의 삶을 노래한 것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러면 판소리를 재즈화하는 것, 구체적으로 그 장르를 따로 만드실 생각이 있으신지요?
웅산: 이미 제가 하고 있는 자체가 장르를 만든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제가 하는 걸 보고, 다른 후배님들도 소리를 배우기도 하고, 국악을 공부하기도 하겠지만, 저는 말하자면, 어느날 갑자기 이것을 시도한 게 아니라. 굉장히 오랜 세월 아주 조금씩 조금씩 익숙해지고 공부를 하면서. 국악에서의 역사적 배경이라든가, 이런 것들도 같이 정리를 해놓은 연후에 공부를 한 것이라, 소리는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저는 어쩌면 독학을 한 것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기자: 판소리도 하실 줄 아세요?
웅산: 그래서 아까 말씀드렸던, 웅산의 ‘토끼 이야기’라든가, 아모르 파티 이것을 검색해서 보시면, 어떻게 활용하는지 잘 나와요. 재즈는 머물러 있는 음악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화하는 음악이거든요. 5,6년 전부터 국악을 제대로 공부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아주 조금씩 시도를 하다가, 요즘에 좀 더 많은 부분을 편곡 해서 시도를 하고 있는데. 이미 이것이 K-Jazz라고도 얘기를 하고요, 뭔 조선 재즈라고도 하고요. 그런데 아직도 더 변화할 수 있고, 더 멋져질 수 있고, 더 알려져야 할 이유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기자: 손 모아 기다려 보겠습니다.
세계적인 재즈 보컬리스트! 당신은 누구십니까?
웅산: 저는 대한민국의 불자 재즈가수 웅산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제 이름처럼 큰 산같은 마음을 가진. 제 음악이 웅산이란 사람은 아직 작고, 아직도 부족하지만, 제가 들려드리는 음악, 그 메시지는 여러분들에게 제 이름과 같은 역할로 여러분들의 삶에 다가가고 웅산이되어 큰 쉼이 되기를 바랍니다.
인터뷰 날짜와 장소:
1월 21일 한국교통방송 TBS방송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