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심을 깨치는 글 >
[현안 스님의 아메리칸 육바라밀] - 제 4 편
정진바라밀 Patience Paramita |
글 | 현안賢安 (XianAn)
보살도의 육바라밀은 보시giving, 지계precepts, 인욕patience, 정진vigor, 선정dhyana samadhi, 반야prajna의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특정 순서는 랜덤으로 정해진게 아니라 진전을 위한 단계적인 순서입니다. 저는 이번 호에서 육바라밀의 네번째인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에 대해서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화 상인께서 “정진(精進)이란 지속적으로 진전하고 절대 퇴보하지 않는 것”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법화경 강설(불광출판사)을 보면 극단적인 정진의 예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을 들었습니다. 약왕보살님은 몸을 면으로 감싸고 향유로 가득 채운 후, 부처님들 앞에서 자신의 몸을 공양하기 위해 태웠습니다. 아마도 이걸 읽으면 “그가 왜 그랬지?”라고 물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부처님들의 선함이 너무도 숭고하고 심오하며 위대하여, 이걸 되갚을 길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약왕보살님은 부처님께 자신의 몸, 마음, 본성과 목숨으로 공양했습니다.
제 스승님인 영화 선사는 정진바라밀은 인욕바라밀과 함께 해야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위한 인욕을 하려면, 아무것이나 인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진전을 위한 인내를 해야합니다. 달리 말해서 한곳에 머물기 위해서 인내해서는 안됩니다. 진전을 위한 인내를 해야만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인욕바라밀을 수행하는데, 정진바라밀은 하지 않으면, 진전할 수가 없습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 때문입니다. 인욕바라밀이 매우 중요하지만 방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진바라밀이 확실하게 옳은 방향으로 진전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런 이유로 정진바라밀은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잘못된 수행법으로 시작했다면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수행으로 멀리까지 갈 수 없습니다. 고작 이선(二禪)이나 팔정(八定)에 도달한 후 더는 가지 못합니다. 그곳에 정체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며, 그러면 그 다음 세대 즉 그의 학생들도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진바라밀은 우리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만일 스승 없이 수행한다면, 우리가 가고 있는 방향이 옳은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스승이 없다면 우리가 잘못된 노력을 하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 경우 우리가 바른 방향을 향해서 가고 있는지, 진전하고 있는지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정진은 네 가지 요소로 되어있는데(사정근, 四正勤), 첫째: 아직 생기지 않은 선근을 생기게 하고 (미생선령생, 未生善令生) , 둘째: 이미 생긴 선근을 증장(기생선령증장, 己生善令增長)시키도록 정진한다.셋째: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은 생기지 않게(미생악령불생, 未生惡令不生)하고, 넷째: 이미 생긴 악은 소멸(기생악령영단, 己生惡令永斷)시키기 위해 정진한다.
이처럼 정진은 우리가 가야할 방향에 대한 감을 줍니다. 악을 멈추고 선을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정진하고 있는지 여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는 게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면, 그땐 지계바라밀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계율은 우리에게 아상이 무엇인지, 선이 무엇인지 정의해줍니다. 예를 들어 출가자가 계율을 어기면 명백히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건 잘못된 방향이니 그쪽으로 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정진입니다.
선법(禪法, 참선하는 법)도 정진법(精進法)입니다. 선칠 수행(집중적으로 참선하는 용맹정진)도 정진법입니다. 왜냐하면 피곤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피곤하면 휴식을 취합니다. 하지만 선칠 수행은 피곤해도 쉬지 않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정진바라밀이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선칠 수행하는 동안 잠자러 방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냥 법당에서 잠을 잡니다. 그렇게 하라고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지는 않지만 그런 전통이 있습니다. 소승에서는 이런 걸 마인드풀니스(마음 챙김)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정진이라고 합니다. 법당에서 참선하고, 법문을 듣고, 밤에 잠시 휴식도 취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가 잘 쉬어야한다는 걱정을 멈추기 위해서 입니다. 선칠 동안만이라도 피곤에 대한 걱정을 멈추고, 기절할 때까지 명상합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불평을 멈추고, 자기 자신일만 신경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선(禪)에만 집중합니다. 다른 어떤 것도 걱정하지 않고, 소리도, 잡음도, 피로에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법당에 들어와서 노래하고, 춤추고, 울고, 소리를 질러도 신경쓰지 않는 겁니다. 그게 참된 수행자입니다.
현안(賢安, XianAn)스님은
영화 선사(永化 禪師, Master YongHua)를 만나 참선을 접한 후 정진해왔으며, 2015년부터는 ‘공원에서의 참선(Chan Meditation in the Park)’이라는 모임을 캘리포니아 남부지역 중심으로 이끌었다. 그와 동시에 전 세계를 다니며 많은 이에게 참선법을 소개해왔다.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사업을 정리하고 미국 위산사(潙山寺, Wei Mountain Temple)에서 영화 선사를 은사로 출가했다. 2020년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분당 보라선원(寶螺禪院, Jeweled Conch Seon Center)의 개원을 도우며, 정진 중이다. 불광미디어 홈페이지 연재를 비롯해 미주현대불교, 브런치 등에서 활발히 집필하며, 청주 BBS불교방송 라디오 ‘4시의 불교산책’에서도 활동 중이다.
국내 저서로 『보물산에 갔다 빈손으로 오다』(2021, 어의운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