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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현불연재물

[2022년 5,6월호] 시인이 되다! / 조성내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2.11.14|조회수66 목록 댓글 0

< 부루나 칼럼 >

 

 

 

시인이 되다!

 

 


글 | 조성내
(법사, 컬럼비아 의대 임상조교수)

 

 

 

2017 가을부터 시 공부 시작해서, 4년 반 만에 시인이 되었다. 내 3편의 시가 <시문학> 3월호(2022)에 실렸다. 의대 4년 공부 끝에 졸업장과 의사면허증을 받았을 때의 그 기분, 좋으면서도 좋은 것을 강렬하게 느끼지 못하고, 그냥 덤덤했던 느낌, 시인이 되었다는 통보를 들었을 때 바로 그런 기분이었다. 

 

 

 

 

 

 

 

 

 

 

 

 

 

 

 

 

 

 

 

 

 

1) 바위의 언어 
 
오랜 침묵을 삭이며 
들판의 바위는 참선한다
 
바위는 기뻐도 기뻐하지  않는다 
허기져도 슬퍼하지 않는다 
화가 난다고 나무를 뿌리채 뽑아 
집어 던지지 않는다 

폭풍이 불어도 
천둥번개가 쳐도 
항상 말이 없고 항상 흔들림이 없다 
흘러가는 타향살이 뼈속 깊이 박히는 언어를 갈고 닦으며 
비가 오면 비를 맞았고 눈이 오면 눈을 맞고 있었다 

말없는 바위의 언어를 간직했다 
버티고 견뎌온 
지난 50여 년 기죽은 채로 살아오면서 
하고 싶은 말 참으며 바위의 언어를 
속 깊이 되뇌어 왔지만 아직도 바위는 못 되었다 

그래도 안으로 안으로 
조여안은 낯선 방언은 풀려고 나왔다

 

**

 

위의 시는, 내가 미국에서 50여 년을 살면서, 영어부족 때문에 겪어야 했던 나의 고된 삶의 한 면을 서술한 시다.  
내가 어렸을 적 살았었던 광주는, 그 당시 인구가 15만-20만 명이었다. 그 당시 다른 지역에는 문화방송이라고 해서 영어방송이 있었다. 하지만, 광주에는 영어방송이 없었다. 내가 어렸을 때,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서 영어학원에 다니고 싶었다. 그런데 집에 돈이 있었는데도, 어머니는 나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 일 년 내내 졸라대다가, 결국은 영어 공부를 포기했다. 한번 포기해버리니까, 어찌된 속인지, 그 후 내가 돈이 생겼을 때는 영어학원에 가서 ‘영어를 배워야겠다.’ 하는 마음이 생겨나지 않았다. 영어 회화를 전연 할 줄도 모르면서, 영어의학책을 읽으면서 의대를 졸업했다. 그래서 읽는 것은 별 지장이 없다. 
내가 어떻게 영어회화시험에 합격했는지는 나는 전연 모른다. 하여튼 나는 합격했다. 아마 나의 운명이, 나는 미국에서 살아야 할 운명이었는지, 그 운명이 나로 하여금 영어시험에 합격하도록 도와주었던 것 같다. 미국에 와서 영어도 모르는 처지에, 내가 정신과를 하겠다고 하니까, 주위에서 비웃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었다. 하지만 이겨냈다. 별 사고 없이 정신과의사로서 활동했었다. 그리고 2013년 11월에 은퇴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영어를 몰라도 생활하는 데 있어서 아무런 고통이 없다. 영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니까, 낮이나 밤이나 마음이 푹 놓이다. 이제는 꿈에도 한국말로 하니까 잠도 잘 잔다. 

2) 늙음이 주는 선물 

봄여름에 활짝 핀 꽃들을 보라 
얼마나 멋있고 발랄하게 보이는가 
돌이켜보니, 나도 젊은 적이 있었다 
젊었을 때  젊은 줄을 몰랐다 
건강했었지만 건강한 줄을 몰랐다 
매일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보았지만 
시간이 해 따라 흘러가는 것이 보이지 않았다 

늙어지고 보니 
시간이 찍고 간  깊은 자국들 
다시 귀한 보물로 피어서 
늙음의 호사도 누릴 수 있네 

석양에도 밝은 아름다움이 있듯이 
늙음에도 좋은 선물이 
찾아보면 즐겨야 할  일들이 
새벽을 다시 발견하여 맞는 늙음의 몫은 풍성하다

**


사람은 늙어진다는 사실! 어느 누가 늙어지고 싶어 하겠는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지지 않는 것이 또한 인간의 약함이다. 몸뚱이는 내 것이니까, 몸뚱이는 내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늙어지면, 몸뚱이가 내 말을 안 들어준다. 아프지 말라고 내가 분명히 말했으면, 내 몸뚱이가, 내 말을 듣고서, 안 아파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내가 아프지 말라고 했는데도 내 몸뚱이는 내 말을 안 듣고, 자기 마음대로 아파버리고 만다! 내가 몸뚱이에게 늙지 말라고 말을 해주었는데도, 몸뚱이는 내 말을 안 듣고, 자기 맘대로 늙어버린다.
이제 다 늙어버린 이상, 늙었다고 한탄만 하면서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늙었어도, 재미있는 일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은퇴한 후, 집안에 앉아있으니, 편해서 좋다. 직장에 안 나가니, ‘이것 하라’ ‘저것 하라’ 하는 간섭이 없으니 참 좋다. 아침이면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니, 세상이 내 세상 같다. 친우들도 낮이나 밤 어느 시간이든, 내가 만나고 싶은 시간에 만나서 잡담을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또한 좋다. 나는 다행히도 건강하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번은 친구하고 걸어서 골프 친다. 아침이면 꼭 신문을 읽는다. 오후에는 책을 읽는다. 나는 <미주현대불교> 월간지에 매달 불교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먹고 사는 일은, 직장에서 주는 은퇴금하고 국가에서 주는 복지금이면 충분하다. 젊음을 잃었다고 괴로워하지 않는다. 늙었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찾아보면 늙었어도 재미있는 게 많다. 재미있게 살고 있다. 늙음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지금 85세이다. 나는 태어날 때 좋은 DNA를 가지고 태어난 모양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또한 좋은 운명을 갖고 태어나기도 했다. 지금 좋은 아내 만나서 화평하게 살고 있다. 여생을, 내가 읽고 싶은 책을 골라서 읽고 있다. 읽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아시는 분은 알 것이다. 

詩하고의 인연:
원래 나는 법대에 들어가 판사가 되고 싶어 했었다. 그런데 법대에 떨어졌다. 이게 나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다. 나는 의사가 되었다. 수많은 불쌍한 환자들을 치료했다. 환자들하고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이분들의 고통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가끔 시를 쓰고 싶었지만, 시라는 것은 수필하고 다르다. 수필은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쓰면 된다. 그런데 시는 다르다. 시에는 수필하고 다른, 은유(隱喩)라는 게 있다. 은유를 사용해서 시를 써야 하는 것이다. 또 시에 사용하는 시어(詩語)가 따로 있다. 이런 것을 몰랐기에, 시를 쓸 수가 없었다. 

은퇴를 한 후, 어느 날 조카 박도준 하고 점심을 먹게 되었다. 조카가 시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게 인연이 되어서 김정기 시(詩)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뉴욕중앙일보 문학 동아리는 봄과 가을 모임이 있다. 2017년 가을 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동아리 회원 숫자가 대략 15명이다. 만날 때마다 각자 시를 써서 가지고 온다. 차례대로 각자 자기가 써온 시를 낭독한다. 그리고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다. 이렇게 시 공부가 시작되었다. 
중요한 점은, 처음 일 년 동안은, 나는 매주 마다 시 한편을 써서 이메일로 김정기 선생님께 보낸다. 선생님은 내 시에 대해 코멘트를 하신다. 선생님이 강조하시는 점은, 시는 수필이 아니니까, 시를 설명조로 쓰지 말라 하신다. 메시지 전달에 주력하지 말고, 그 대신 느낌을 쓰라고 하신다. 이미지화에 주력하라고 하신다. 시어를 사용해서 묘사하라고 하신다. 시에서 꼭 필요하지 않는 말은, 설명이나 잔소리 같은 말들은 다 지워버리신다. 
이 년째부터는, 선생님이 너무 바쁘시기에, 이주 일에 한 편 씩 써서 보낸다. 시를 써서 보내야 하니까, 내 머리에는 시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보낸 시에 대해 선생님께서 코멘트를 해주신 것이 내가 시 공부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시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첫째는 김정기 선생님의 정성어린 지도와 편달이다. 둘째는 뉴욕중앙일보 문학 동아리들의 따뜻한 밀어주심과 격려이다. 셋째는 제가 시인이 되고 싶어 하는 저의 끈질긴 욕심일 것이다. 
시상(詩想)이 떠오르면, 나는 얼른 종이에다 적어놓는다. 그렇지 않으면, 시상은 금방 사라져버리고 만다. 한번 사라지면. 다시 그 시상을 찾아내기는 쉽지가 않다. 나는 시상이 떠오르면, 그 시상에 따라 노트지에 시를 생각나는 대로 얼른 써 놓는다. 며칠 후에, 컴퓨터에 정리해서 적어놓는다. 얼마 후에 다시 읽어본다. 고친다. 그리고 또 고친다. 여기까지는 고통이다. 시가 내 마음에 들면, 아내에게 읽어보라고 한다. 아내가 오케이 하면 나는 기분 좋아한다. 

3) 개미들의 기도

기도한다 
하늘은 내 기도 소리를 듣지 못한다 해도 
불안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개미들은 나에게 기도한다 
지나갈 때  밟지 말아 달라고 
나는 기도소리를 듣지 못한다. 
뭣 모르고 그냥 밟고 지나간다 
설령 내가 들었다고 해도 밟지 않고 지나가주었을까? 

개미들이 부엌에서 우글거린다. 
약을 뿌리고 죽인다 
살려 달라는 기도소리를 들었다고 해도 
내가 살충제를 안 뿌렸을까? 
개미가 죽는 것을 보면 

죽이고 싶지 않지만 
참담한 죽은 앞에 
가슴 뛰지 않고 죽이는 것이 
삶이 가져야 하는 모순이고 아픔이다

 


**
불교에서는 살인은 물론이고 살생(殺生)도 하지 말라고 한다. 물론 먹고 살기 위해서는 동물이나 식물을 죽여야만 한다. 하지만 쓸데없이 동식물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살생을 많이 하면 지옥에 떨어진다. 혹은 동물로 태어난다. 그런데 만약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남의 목숨을 해쳤기 때문에, 수명이 매우 짧아진다고 했다(증일아함경 제48권). 전생에 살생을 많이 하게 되면, 태어날 때 일찍 죽을 운명을 갖고 태어난다는 말이다. 개미도 태어날 때는 제 명대로 살다가 죽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개미를 죽이면, 불교에서는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해서, 그 대가를 언젠가는 꼭 치르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개미를 죽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그래도 내 집안에 우글거리는 것을 보고도 가만 놔 둘 수는 없다. 죽여야만 했다. 죽이면서도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개미를 죽이고 싶지 않지만, 내가 개미를 죽여야만 하는 나의 삶, 이런 삶이 나를 괴롭히고 있기에 위의 시를 쓰게 된 것이다.

<시문학> 신인우수작품상 심사기;
조성내의 시편들은 시어(詩語)의 밀도가 약하지만 삶의 의미가 따스하게 감지된다. 그것은 이국땅에서 50년간 살아온 삶의 저력이 만들어낸 여유로움이라고 인식된다. <바위의 언어>”에서는 “지나 50여년 기죽은 채로 살아오면서/ 하고 싶은 말 참으며 바위의 언어를 속 깊이 되뇌어” 왔다는 시인의 삶의 자세가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늙음이 주는 선물>에서는 “석양에도 밝은 아름다움이 있듯이”라는 구절을 통해 노년의 삶을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즐기려는 시인의 인생관이 환한 빛을 발하고 있다. 그것은 독자들에게 삶의 허무를 뛰어 넘는 활력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깨닫게 할 것 같다. 그래서 “새벽을 다시 발견하여 맞는 늙음의 몫은 풍성하다”는 끝 구절이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개미의 기도>에는 “참담한 죽음 앞에서/ 가슴 뛰지 않고 죽는 것”이라는 구절에서 보여주는 죽음에 대한 시인의 초월 의지가 선명한 의미를 던지고 있다. 앞으로 남은 시간 더 건강한 사유의 시를 남겨주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김규화, 심상운(글), 허형만)
 
왜 시를 쓰는가?
시를 쓴다는 것은 어떤 때는 즐거움이다. 그런가 하면 시가 안 써질 때는 괴로움이다. 여생을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는 시 같은 것을 쓰지 않고, 남들이 써놓은 시나 읽으면서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고통스럽게 시를 써가면서 여생을 살려고 하는지? 하고 자문해보았다.
 어느 사람이 “낚시꾼에게 왜 낚시를 즐기십니까?” 하고 물었다. 낚시꾼이, “차라리 저에게 인생을 왜 사느냐고 묻는 게 더 쉬운 질문이 될 것 같습니다.”하고 대답하는 것을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낚시를 좋아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낚시한다는 게 새벽에 잠도 못자면서, 바다에 나가는 것도 괴로운 일이다. 이처럼 괴로운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낚시질을 좋아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좋아서 하는 일에도, 왜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그에 대한 답변을 찾아낼 수가 없을 때가 많다.
 내가 시 공부를 하게 된 것도, 시를 씀으로 해서 나의 쓸쓸함을, 나의 외로움을, 나의 괴로움을, 나의 마음속의 허전함을 달래고 싶어서 일 것이다. 어떤 때는 나의 마음속의 즐거움을, 즐거움 그대로 표현해서 나의 즐거움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인지도 모를 일이다.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골프채 가방을 끌고 가면서, 18홀을 걸어서 골프를 친다는 것은, 공이 잘 안 맞으면 괴로움이지만, 반면에 공이 잘 맞으면 즐거움이라는 것을. 시와 함께 여생을 괴롭게 혹은 즐겁게 살아갈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너무 늙었다는 점이다. 앞으로 건강하게 살날이 얼마 남지 않는 것 같다. 하루하루가 매우 아깝다. 이 아까운 하루하루를 어떻게 하면 유용하게 보낼 수 있을까에 대한 나의 생각을, 시로 적어보았다. 이 시는 <시문학>지에 실리지 않은 것이다. 

 

시인 김정기 선생님


 
4) 오늘 하루  

내가 갖고 있는 오늘 이 하루
얼마나 값이 나갈까?
누가 내 하루를 사겠다고 한다면 얼마 받고 팔 수 있을까?
아무 누구도 하루만은 달랑 사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일년 혹은 5년 치가 모아진 하루들을 사고 싶어 할 것이다

젊었을 때는 하루가 하도 많아서 
귀중한 줄을 미처 몰랐다
늙어지고 보니
비록 단 하루만이라고 해도
오늘 이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카지노에 가서 잃어버린 100달러
써보지도 못하고 잃어버린 100달러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는 100달러
친구들 만나 술 마시며 저녁 먹는 100달러
가족을 데리고 야외로 산책 나가 사용했던 100달러
같은 100달러도 사용하기에 따라 가치가 엄청 달라지는구나
 
아침에 눈을 뜨면 생각 한다
오늘 이 하루를 
어떻게 해야 유용하게 사용할 수가 있을까? 

끝말:
아직도 젊다면, 나는 사랑과 삶에 대한 시를 쓸 것이다. 그런데 나는 늙었다. 이제는 젊음을 뒤로 한 후, 죽음 앞에서, 죽음을 보면서, 죽음을 향해서, 살아가고 있는 늙은이다. 늙었기에 나는 나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언제 찾아올 줄 모르지만, 죽음이 오면,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왔던 그 싱싱한 마음으로, 내생으로 갈 채비를 하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 늙음과 추억 그리고 내생(來生)에 대한 시 그리고 불교에 대한 글을 쓰면서 나는 여생을 마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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