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텔라의 마음공부 >
마음대로 창조하고 파괴하는
우리는 신이었다
글 | 스텔라 박
신학을 부전공한 수행자
미국인 선교사가 세운 대학을 다니다 보니, <기독교 개론>이라는 과목을 교양 필수로 들어야 했었던 나는 어쩌다가 남들은 그렇게도 재미 없어하는 그 시간에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물을 펑펑 흘리는 경험을 하게 됐을까. 그야말로 ‘은혜’를 왕창 받는 체험이었다. 감성적인지, 종교적인지 모를 가슴 열림이 그 시절의 나를 찾아왔다. 어쩔 수 없이 듣는 교양필수도 아닌데 나는 그 외에도 몇 개의 신학과 과목을 신청해 들었었고 급기야 신학을 부전공하기에 이른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신학과라고 해도 “무조건 믿~습니다.”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모세 5경이 유대 땅 인근의 바빌로니아 지역에 널리 퍼져 있던 신화와 설화들을 차용한 것임을 인정하고 들어가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검증하는 이성적 접근 방식을 택했다.
한민족의 정신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유불선에서 인류의 종교적 공통점을 이끌어내던 유동식 교수, 역사학과 기하학까지 통합한 교회사 전문 한태동 교수의 수업 시간은 지금도 그립고, 다시 듣고 싶은 명강의였다. 자그마한 체구이지만 목소리는 기차 화통 삶아 먹은 것처럼 컸던 문상희 교수의 강한 존재감도 잊혀지지 않는다. 선배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문 교수는 신학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한 학생의 뺨따귀를 세차게 내리쳤다고 하는데, 그 학생이 바로 세상 떠난 최인호 작가라나, 뭐라나, 그런 전설 같은 얘기도 전해져 온다. 절제된 표정과 목소리로 강의를 하던 교회사 전문 민경배 교수는 늘 감동적인 짤막한 기도로 수업을 시작했었다. 독일 철학자들의 분석적 사고를 전해주던 김균진 교수, 미국 클레어몬트 신학교에서 수학했던 영어 발음에 빠다 칠 가득했던 김중기 교수도 새삼 기억이 난다.
20대의 나는 지적 호기심에 눈동자를 반짝이던 학생이었다. 학교 졸업하고 30년이 넘어 다시금 연락을 하게 된 신학과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나는 강의실 맨 앞자리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고 열심히 강의를 경청하는, 조금은 재수 없어 보이는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100일 동안의 기도로 체험한 신의 마음
그렇게 신학을 부전공하면서 나는 진정으로 신을 사랑하게 되었고, 남들이 성령 체험이라고 부르는 경험도 했었다. 뭐든 하면 뽕을 빼고 마는 성격의 나는 신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매일 한 교회를 정해놓고 나가 100일간의 기도를 드렸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봤다. 결코 신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행복한 표정이 아님을 깨달은 나는 그날로부터 신을 위해 나의 얼굴에 마음챙김을 했었다. 당시 나는 100일 동안의 기도를 통해 신의 마음으로 나를 보고, 신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매일 반복적 행동으로 뇌에 새로운 시냅스가 생겼던 것 같다. ‘신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알아차림’과 유사한 효과를 내주기도 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나는 창세기부터 성경을 2차례 통독했고 아침 일찍 일어나 고요한 시간을 가졌으며, ‘예수전도단’이라는 찬양 모임도 나갔고, 대학생 선교 모임도 다니며 캠퍼스의 복음화를 위해 중보기도도 했었다. 내가 알고 있는 성경 지식을 이용해 가까운 친구를 개별 과외 시키듯 양육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선무당 사람 잡는 행동이었다.) 또한 당시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의 영혼을 위해 금식 기도도 마다하지 않으며 가족의 전도를 위해 진짜 쎈 기도를 올렸었다.
가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지금, 내 기도발이 진짜 셌던지, 우리 가족은 모두 절실한 기독교인이 되어 있다. 엄마는 권사, 두 동생은 집사, 정작 온 가족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에 매진했던 나는 매일 아침 방석 위에 앉아 부처님이 하셨던 수행을 하고 있다. 이제 엄마와 두 동생은 나를 위해 기도한다. “언니가 하루 빨리 다시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해주세요….” 하면서.
그럴 때마다 나는 가족들에게 말한다. “나 만큼만 하나님을 매 순간 기억하고 살라고 그래. 일요일 아침에만 교회에 가면 무슨 소용이야? 일주일에 요가 한 시간 하는 것 가지고는 몸이 바뀌지 안잖아? 요가 매트 위에서의 몸에 대한 인식을 삶 속에서 깨어 있는 동안 실천해야 몸이 바뀌는 것처럼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뿐이지 늘 하나님의 시각으로 나를 보고 있어. 그리고 그의 나라가 임한 천국에 살고 있단다.” 라고.
가족과 함께 하는 성경 통독 프로젝트
막내 동생은 런던, 둘째 동생은 서울, 엄마와 나는 LA… 이산가족이 따로 없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 가족 역시 대부분의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가족 단톡방이라는 것을 갖고 있다.
가족 4명 중 기독교인이 3명이다 보니 기독교인들이 주류인 우리 가족 내에서 누군가가 제안을 했다. 올 한 해 성경을 함께 통독하자고. 그리하여 매일 각자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아침 시간이면 성경 구절을 소리 내어 읽어 그 녹음 파일을 단톡방에 올린다. 처음에는 엄마와 동생이 올린 것을 그냥 보고만 있던 나는 어느날부터인지 혼자 왕따 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성경 구절 역시 인류 인식의 진화 과정을 기록해놓은 것, 아닌가. 읽어서 나쁠 건 없다. 나는 가족들과의 유대감을 높이고 싶다는 바램으로 <창세기>를 소리내어 읽어 녹음해 단톡방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의식의 역사’ 라는 시각에서 <창세기>를 다시 인식하게 된 나는 놀라움에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공을 만난 최초 인간의 고백, 창세기
<창세기>는 시내 산에서 신발을 벗고서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부터 늘 자신과 함께 있어온, 태어난 적 없고, 죽지도 않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아무 것도 되지 않을 수 있는 ‘공(空)’성을 만난 모세의 고백이었던 것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나는 히브리어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창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인 ‘바라’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혼돈의 히브리어는 ‘토후’요, 공허의 히브리어인 ‘보후’로 이 두 단어가 합쳐진 ‘토후 와보후’는 ‘형태가 없고 텅 빈’의 뜻, 즉 공을 의미한다. 공의 상태에서 인연 따라 나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창세기>는 하나님이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다고 적고 있다.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의식은 언어의 진화와 비례하여 분화되었다. ‘사과’를 ‘사과’라 부르지 않아도 그 달콤함은 변함이 없고, ‘장미’를 ‘장미’라 부르지 않아도 그 향기로움은 그대로이겠지만 우리들은 이제 언어라는 상징, 그리고 의식 속에 형성된 산냐를 가지고 사고를 한다.
<창세기>를 읽어가던 나는 모세야 말로 유대 땅에서 공의 체험을 하고 그것을 언어로 표현한 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의식 속에 사이버 세상을 창조해 가는 과정을 표현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즉 <창세기>는 신이 세상을 창조한 이야기가 아니라 의식으로 자신의 마음 속에 세상을 창조해나가는 것을 인지한 최초 인간의 기록인 것이다.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세기>에 첫째날로부터 여섯째날의 창조 작업 후 자신이 지은 것에 대해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표현이 나온다. 우리들이 공으로부터 내 삶에서 내 마음대로 창조해내는 모든 것들을 내 깊은 무의식에서는 “보기에 참 좋구나.” 하고 있는 것일 게다. 그러니
의식 차원에서는 고통스럽다고, “이 잔을 거두어 달라.”고 저항하면서도 계속해서 비슷한 사건들을 삶 속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는 내 내면 상태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라고 한다.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는 법, 그래서 부처님은 늘 여여하다. 머무는 바 없이 삶이 스쳐지나가는 존재, 타타가타이다.
내가 경험하는 세상이 모두 나의 연장선임을 깨닫고 충만함과 평안함이 가득한 천국에 거하던 나는 또 다시 나를 찾아온, 내 무의식이 만들어낸, 무의식은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라고 하는, 일련의 삶 속 사건들을 대하면서, 있는 그대로 삶의 선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저항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정확히는 그 경험들을 만나며 힘들어 하는 내 마음을 만나주고, 충분히 힘들어하는 것을 지켜봐주었다. 그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을 피하지 않고 함께 했다.
왜, 나는 아직까지도 내 삶에서 이런 사건들을 계속 창조하고 있는 걸까, 하며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나는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 계속해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다가, 세번째 부인한 후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며 예수의 예언이 기억나 울었다던 복음서 구절을 떠올렸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찌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 마태복음 26장 33-3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마태복음 26장 74-75
위급한 상황에서 정신줄을 놓고 일단은 자기가 살려 거짓말을 했던 베드로는 내가 사라질까 공포를 느끼는 가운데 가슴을 닫아버린 나의 모습이었다. 그런 순간에 들려온 닭울음 소리는 베드로로 하여금 지 꼬라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 빛이었다. 베드로 역시 예수가 “네게 천국의 열쇠를 준다”, “너는 내 수석 제자다”, 하니 “아, 이제 스승도 내 마음공부가 되었음을 인정해주시네. 내가 한 소식 하긴 했지. 이제 하산할까.”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예수의 인정으로 인해 한참 구름 위를 떠다니던 베드로는 닭울음소리로 구름의 바람이 쭉 빠지는 경험을 하며 바닥으로 내동댕이 처진다.
내 현주소를 깨워주는 닭울음소리
닭울음소리는 알아차림을 놓친 베드로, 그리고 우리 모두를 일깨워주는 죽비소리요, 선사의 ‘할’ 하는 외마디 소리였다. 내 삶에서도 닭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고통스러워서, 두려워서 피했지만 그것은 다시 돌이켜보니 은총이었다. 내 마음의 현주소를 있는 그대로 비춰주고 알려주는, 그러면서도 그에 대해 비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포용해주는…
‘시크릿’ 등 일체유심조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대충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거짓 복음을 전하는 메시지들은 정말 중요한 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며 대중들을 현혹시킨다. 맞다. 사실 우리는 뭐든 원하는 것을 마음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주의력이 모이는 곳에 에너지가 모이고, 에너지가 모이는 곳에 물질이 생성되니까. 그런데 과연 우리들의 주의력은 어디에 모여 있을까. 늘 알아차림을 유지하고 있는 줄 알지만 우리들의 의식은 우리들의 무의식을 어느 정도나 알아차리고 있는 걸까.
나는 마음공부 지진아임에 틀림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방석 위에 앉아 마음을 들여다봤는데, 알아차리지 못하던 무의식에 눌려 있던 것들이 나오고, 또 나온다. 정말 심층의식에 쌓인 상처, 두려움이 켜켜이 너무도 많다. 그래서 비록 의식은 밝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평화로운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만 무의식이 향해 있는 부정적 에너지가 삶 속에서 고스란히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니 내 삶에서 고통이라 여겨지는 것들은 있는 그대로 닭울음 소리요, 죽비소리다. 삶이 도저히 꿈 속에서 헤매고 있는 내 꼬라지를 그냥 놔둘 수 없어 개입하는 것이니까.
정말 간만에 강도 높은 삶의 경험으로 평정이 깨지고 불안초조감까지 경험하던 나는 그 불안감을 있는 그대로 만나며 내 꼬라지를 있는 그대로 여실히 깨닫는다. 그리고 가슴을 도닥이며 내게 말해준다. “괜찮아…” 라고. 그렇게 모든 것을 허용한다. 허용받는 것과 허용하는 것이 둘인가. 그렇지 않다. 오늘 내 꼬라지를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받아들여줌을 인연하여 내일의 나는 조금 더 편안해져 있고 좀 더 경계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마음대로 창조할 수 있어 마음이다. 그런데 나는 과연 진정 마음대로 창조하고 있는가. 우리 대부분은 마음대로 창조하기 보다 카르마가 창조한다. 이제껏 반복했던 업이 힘을 발휘해 자동으로 반복되며 점점 더 커가는 것이다. 즉 마음대로 살아가는 자유인이 아니라, 업에 의해 끌려다니는 노예인 것이다. 노예의 삶으로부터 해방된 참자유인 붓다에게 귀의하며, 그 업으로부터 벗어나는 마음의 매뉴얼인 담마에 귀의하며, 나와 비슷한 카르마를 가지고 개고생 하고 있는 수행공동체 상가에 귀의한다. 내 꼬라지를 내 안의 공성이 있는 그대로 허용해주는 것처럼 도반의 꼬라지도 있는 그대로 허용한다.
네가 나이다. 내가 너이다. 내가 경험하는 우주는 바로 나이다. 나는 내 우주를 창조한 신이다. 신인 내가 신인 당신에게 인사한다.
“나마스떼!”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
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