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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현불연재물

[2022년 5,6월호] 어떻게 염불(念佛) 할까? / 법현스님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2.11.14|조회수29 목록 댓글 0

< 이달의 명상 >

 

 

 

어떻게 염불(念佛) 할까?

 

 

 

 

 

 

 

글 | 법현스님
무상법현(無相法顯);스님
- 서울 열린선원 선원장
- 일본 나가노 아즈미노시 금강사 주지
-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그래도,가끔> 지은이

 

 

 

 

 

 

‘노는 입에 염불’이라는 말이 절집에서 흘러 다닌다. 초기불교 경전에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당부하신 말씀 가운데 쓸 데 없는 말이나 어깃장 이야기, 좋지 않은 내용이나 상대를 어렵게 하는 우스갯소리(戱論)를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다. 할 일 없으면 차라리 말을 하지 말고 마음과 몸 그리고 현상을 살피라는 말이다. 그것을 위대한 침묵이라고 부른다. 출가는 했지만 깨달음을 향해서 정진하지 않고 쓸 데 없는 잡담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는 입을 이상하게 다른 쪽으로 놀리지 말고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더 낫다고 가르치신 것이다. 하지만 조금 아쉽다. 오죽하면 그러시겠느냐 싶지만 우리네 출가자들도 늘 쓸 모 있는 일만 하기는 어렵기에 염불이라도 하라고 하신 말씀이다. 염불이라도 하라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좋을까?
재가자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쉽지 않고 출가자들은 무슨 까닭에 출가했든지 그 목표는 ‘벗어남, 말음, 열반, 오도, 성불을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부처님과 가르침과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 또는 그 단체를 살피고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을 어눗사띠(annussati) 곧 수념(隨念)이라고 한다. 부처님을 따르는 붓다눗사띠, 가르침을 따르는 담마눗사띠, 스님들을 따르는 상가눗사띠가 그것이다. 여기서 따른다는 것은 지닌 덕성을 새기고 따라서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정진 하는 것을 말한다. 정진은 인도 고어인 빠알리어로 위리야(viriya)를 뜻한다. 위리야는 목표를 이루려고 애쓴다는 말이다. 불교수행의 목표는 ‘벗어남, 말음, 열반, 오도, 성불’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아직 생겨나지 않은 것은 생겨나도록 하고 이미 생겨난 것은 더 잘 자라도록 조장(助長)하는 것이다. 다만, 조장이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좋지 않은 것을 돕는 뜻으로 쓰고 있어서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한다. 붓다눗사띠는 부처님의 9가지 덕목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여레10호의 공덕을 새기면서 그와 같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담마눗사띠는 부처님 담마의 여섯 특징적인 더목을 새기며 따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상가눗사띠는 스님들 가운데 깨달아서 성스러운 스님들 또는 스님들의 모임인 승가의 덕성을 새기고 따르는 것을 말한다.
1.여래(如來;Tathagata): 이렇게 오셔서 열반(涅槃)하심  2.응공(應供;阿羅漢;Arhat):존경과 공양을 받아 마땅함 3.정변지(正遍知;正等覺者;Samyaksambuddha):올바르고 완전한 진리를 깨달음 4.명행족(明行足;Vidyacaranja-sampanna):지혜와 행동이 원만하고 일치됨 5.선서(善逝;Sugatg):윤회에서 피안의 세계로 잘 가심 6.세간해(世間解;Lokavid);세간과 출세간의 이치를 잘 아심 7.무상사(無上士;Anuttara,Pursha):번뇌를 다 끊고 최상의 경지에 이름 8.조어장부(調御丈夫;Purusa Damya Sarathi):중생,대장부까지도 잘 교화하심 9.천인사(天人師;Sasta devamanushyanam):천상과 인간의 스승 10.불•세존(佛•世尊•薄伽梵;Buddha-Bhagavat):깨달음을 얻어 존귀하심이 대승에서의 10호이며 2~10까지가 여래의 9덕성이다. 이 아홉 가지 덕성을 새기고 따르는 것을 붓다눗사띠라고 한다. 동사인 어눗사띠와 목적어를 함께 부르면 염불이 된다. 붓다눗사띠가 염불인 것이다. 어떻게 염불하는 것이 좋을까?
여러 가르침들이 있지만 중국 명나라 선승이며 철저한 지율정신과 중생 구호정신 그리고 일본불교에 큰 영향을 끼친 감산대사(憨山德淸,1546년~1623년)의 가르침을 통해 알아본다. 그는 명나라 4대 고승 가운데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의 염불절요(念佛切要) 곧 염불에서 가장 요긴한 것이라는 가르침을 참고해보자. 염불절요는 참선절요와 함께 중요한 가르침이다.
“염불수행으로 극락정토에 왕생하길 구하는 법문은 원래 생사윤회를 끝마치려는 큰 사업이다. 그래서 ‘염불은 생사윤회를 끝마친다.’고 말한다. 지금 사람들이 마음을 내는 것도, 생사윤회를 끝마치기 위하여 바야흐로 염불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단지 부처님께서 생사윤회를 끝마쳐 주실 수 있다고만 말할 뿐, 도대체 생사윤회의 뿌리를 끊어 버리지 못한다면, 결국 어느 곳을 향해 염불한단 말인가? 그리고 만약 염불하는 마음이 생사윤회의 뿌리를 끊어 버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생사윤회를 끝마칠 수 있겠는가? 그러면 도대체 어떤 게 생사윤회의 뿌리란 말인가? 옛 사람께서 말씀하시길, ‘업장이 무겁지 않으면 사바고해에 태어나지 아니하고, 애욕(애착)이 끊어지지 않으면 극락정토에 왕생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애욕의 뿌리가 생사윤회의 뿌리임을 알 수 있다. 일체 중생이 생사윤회의 고통을 받는 것은 모두 애욕의 허물(代價)일 따름이다. 그런데 이 애욕의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 보면, 금생에 비로소 생긴 것도 아니고, 과거 한두 생이나 서너 생 전 부터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는 시작도 없는 까마득한 옛날에 최초로 생사가 있는 때부터 줄곧 세세생생 끝없이 몸을 받았다가 다시 버리기를 되풀이해 온 것으로, 이 모두가 애욕 때문에 돌고 또 돌아 오늘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런데 오늘에야 바야흐로 염불 좀 하겠다고 마음을 내면서, 단지 부질없이 서방 정토에 왕생하기만을 기원하며, 애욕이 생사윤회의 뿌리라는 말조차 모른다면, 어떻게 한 순간이라도 그 뿌리를 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생사윤회의 뿌리를 모른다면, 한쪽에서는 열심히 한답시고 염불 하더라도, 임종 때에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단지 생사윤회의 뿌리가 계속 자라나게 된다. 이와 같이 염불하는 것은 생사윤회와 서로 아무 상관도 없으며, 이러한 염불은 여러분이 어떻게 하든지 간에, 임종 때까지 꾸준히 염불하더라도, 임종 때에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단지 생사 윤회하는 애욕의 뿌리일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염불에 아무런 힘도 얻지 못함을 알게 되고 부처님이 전혀 영험하지 않다고 원망해 봤자 그 때는 후회해도 늦을 것이다. 그래서 권하노니, 이제 염불하는 사람들은 먼저 애욕의 뿌리를 끊어 나가라. 지금 당장부터 눈앞에서 바로 해 보라. 집에서 염불하는 재가불자들한테는, 눈에 보이는 자녀 ' 손자 ' 재산 등 어느 것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게 없다. 그러한즉, 어느 한 가지 일이나 어느 한 순간도 생사윤회에 대한 산 교훈이 아닌 게 없다. 마치 온몸이 불구덩이 속에 떨어져 타오르는 것처럼 보통사람들은 염불하는 순간에 더 마음속에 있는 애욕의 뿌리를 한 순간도 염두에서 놓아 버린 적이 없는 줄조차 모른다. 그러한 염불은 하더라도 절실하지 못한 염불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그런 염불은 겉보기에만 염불일 따름이며, 실질상 애욕이 주된 알맹이다. 단지 입으로만 염불한다고 할 뿐, 생각으로는 애욕이 자꾸 자라나는 것이다. 가령 염불할 때 자녀들에 대한 애정이 눈앞에 나타나거든, 마음의 빛으로 스스로를 되 돌이켜 보면서, 이렇게 물어 보라.
"이 염불 소리가 과연 이 애정을 이겨낼 수 있을까? 
과연 이 애정을 끊어 버릴 수 있을까? 
만약 이 애정을 끊어 버리지 못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생사윤회를 끝마칠 수 있을까? "
애정의 인연은 대부분 아주 익숙하고 친한데, 우리의 염불 공부는 이제 마음을 내어 몹시 낯설고 어설프며 또 절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 힘을 얻을 수가 없다. 지금 눈앞에 있는 애정의 경계가 나의 마음을 흔들어 대며 주인 노릇을 할 수 없어야만, 임종 때에도 그러한 애욕이 끝내 우리의 극락왕생을 방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당부하노니, 염불하는 사람들은 제일 먼저 생사윤회 때문에 염불한다는 마음이 간절해야 되고, 생사윤회를 끊겠다는 마음이 간절해야 한다. 그래서 생사윤회의 뿌리를 생각생각(一念一念)마다 싹둑싹둑 잘라간다면, 이 한 순간 한 순간의 염불이 바로 생사윤회를 끝마치는 때가 온다. 어찌 꼭 섣달 그믐날이 되길 기다려서 바야흐로 생사윤회를 끝마친단 말인가? 그러면 이미 때가 늦고도 아주 늦을 것이다. 그래서 흔히들 "눈앞에 모두 생사윤회의 일들이니, 눈앞에서 생사윤회를 깨끗이 끝마치세."라고 하지 않는가? 
이렇듯이 생각 생각마다 진실하고 간절하게 염불하여, 한 칼 한 칼마다 섬득이는 피를 보자. 이렇게 마음을 써서 염불을 하는데도 만약 생사윤회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으면, 모든 부처님들이 거짓말 죄의 구덩이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재가불자나 출가스님을 막론하고, 단지 생사윤회의 마음만 제대로 안다면, 그게 바로 생사윤회를 벗어나는 시절이 온다. 
어찌 그밖에 달리 특별하고 미묘한 법문이 있겠는가?“
감산덕청선사의 가르침이 염불하는 간절한 마음을 자세히 지도하고 있으니 다른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이다. 염불과 참선이 다르지 않음을 이미 알았지만 한 마디 덧붙인다면 태고보우선사(太古普愚,1301~1380)께서 하신 말씀이 ‘눈썹 새 흰 털(眉間白毫)이리라. ’염불하는 이가 누구인가? 그 주인공을 찾아 새기면 바로 염불이 참선‘이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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