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루나 칼럼 >
바늘
글 | 이원익 leewonik@hotmail.com
한국 불교의 전파와 대중화에 힘을 보태려는 발원으로
태고사를 도와 왔으며 우담바라회 회원이다. 포항에서
태어나 경남고와 서울 문리대를 졸업했다. 오래 전에
회사 주재원으로 와서 LA 지역에 살며 국제운송업을
하고 있다.
나는 본래 금수저를 물고 이 세상에 태어났다. 아버지는 재산과 지위에다가 덕망까지 갖춘 바라문으로서 나라 안에 널리 알려져 칭송 받는 이름난 분이었다. 그 아버지에 그 딸, 나는 당연히 너무 천박하지도 않으면서 지닐 것은 다 지니고 누릴 것은 다 누리는 다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며 그런 가정이 기둥뿌리를 박을 만한 품위 있고 멋진 마을의 큰 저택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듣자하니 극동의 손바닥 만한 어느 나라에서는 그 안에서도 강남이 어떻고 한남동인가가 어떻고 한다지만, 아니 제법 큰 동네인 나성에 가면 말리부가 어떻다던가 할리우드가 어디에 있다던가 하더라만 안 가 보고 안 와 봤으니 서로 알 수가 있나! 게다가 시간을 거슬러 이천 년도 훨씬 전으로 되돌아올 수도 없으니 먼 후세에 살고 있는 자네들은 지금 우리 사는 처지를 속으로 짐작만 하시더라고!
게다가 나는 탯줄 끊을 때부터 산파가 일찌감치 알아 보고 미리 혼처로 찜 쪄 놓을 만한 수정 보물 얼굴이었는데 자라날수록 급이 다른 빼어난 얼굴과 자태를 꽃피워 나갔지 않았겠나. 성형 수술인가 뭔가 하는 얼굴에 칼 대는 이야기는 아예 생기기도 한참 전이니까 나야말로 완전 순 전통 원조 오리지날 할매집 자연산 미인이지.
그리고 날짐승이든 길짐승이든 짐승이나 사람이나 끼리끼리 논다고 그런 마을에서는 당연히 그와 비슷한 수준의 여러 이웃이 있게 마련이지. 그런데 참말이지 개중의 어느 바라문의 아들은 치마만 안 둘렀지 완전히 나와 한 등급에 한 통속이더라고.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점잖고 인자한데다가 총명하지, 잘 생겼지, 체격 좋지 목소리까지 좋지. 그런 사내아이가 나 같은 미모와 인격을 몰라보면 총명도 뭐도 아니지 않겠나. 중간 과정 다 생략하고 내가 그 사람 아내 되어 아들까지 낳은 스토리는 말 안 해도 대충 짐작하시겄지? 첫아이 낳고 얼마 있다 일이 잘(?) 되려고 그랬는지 시아버지 시어머니 두 분 다 차례로 때 맞춰 잘 돌아가 주시데. 그러자 나도 얼마 터울을 두고 있다 때 맞춰 둘째를 배었지. 그런데 쉽고 스무드한 얘기는 여기까지고 지금부터는 잘 들어 보시라고.
아무리 있는 집안이라지만 한 아이 아장거리고 다른 하나는 무겁게 뱃속에 들어앉아 있으니 아무래도 친정에 가서 몸 편히 마음 편히 몸을 풀고 싶더라 이거야. 그래서 남편과 의논한 끝에 날을 잡아 식구가 함께 집을 나섰지.
그런데 말이야, 친정 가는 길이 생각보단 수월치가 않더라고. 이른 가을인데 아직 몬순은 들이치고 길은 덜 굳은 팥죽 같이 질퍽거려 그럴 바엔 기우뚱거리고 삐걱대는 마차에서 내려 내 발로 걷기로 했지. 그러다 보니 해가 기우는데다 갑자기 진통이 오는 건 뭐야? 허겁지겁 가까운 동네의 여관을 찾아 들었지. 동네에선 그 중 나은 숙소라는데도 내 눈엔 어째 중간도 안 되는 좀 허름한 곳이더군. 아래층 방을 하나 구해 자리를 깔았는데 밤이 이슥해지기도 전에 나는 아이를 낳았지. 둘째도 아들이더구만. 먼 길 걷느라 지치고 아이 낳느라, 받느라 지친 우리는 곧장 잠에 빠져들었지. 밤중에 갓난아기 울음소리에 간간히 깨어 눈을 떠 보니 남편은 그때마다 저만치서 곤히 잠들어 코를 골고 있더군.
그러다 새벽녘에 내가 오줌이 마려워 눈을 떠 보니 어스레함 속에 남편이 저만치 아까 그 자세로 웅크려 있는데 코 고는 소리가 안 나더군. 그래서 이 양반도 이제 잠고비가 지나 선잠을 자는가 하고 나 좀 일으켜 달라고 불러도 답이 없는 거 있지. 두어 번 부르다가 아차 싶어 급히 다가가 만지는데 아뿔싸! 돌덩어리처럼 딱딱하고 섬찟한 느낌이 확 끼치는 거야. 이럴 수가! 남편이 죽어 있다니! 소리치며 등불을 찾아 켜 비추고 흔들며 살피는데 자세히 볼 것도 없이 퉁퉁 불어 굳은 것이 방에 스며 들어온 독뱀에 물려 때를 놓치고 만 거야. 이런 황망하고 까무라칠 일이! 이 서슬에 큰 아이도 깨어나 찢어질 듯 우니 내가 다시 정신이 돌아오더라고. 그런데 이제 어쩔 거냐고! 죽은 사람은 죽었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별 수 있겠어? 날이 밝자 동네 사람들에게 돈 몇 푼 쥐어 주고 야트막한 언덕에 남편을 묻었지. 그리고 한 아이는 업고 갓난애는 품에 않은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 다시금 친정 동네로 향했지.
그런데 한 사람 있고 없고 한 자리가 이리 무섭도록 클 줄을 몰랐었지. 가뜩에나 길은 멀고 험하여 고되고 다리도 아픈데 마음의 길은 그보다 더 하더군. 남편 없는 자리가 너무나 크고 허무하여 텅 빈 세상 같다가 눈앞의 현실이 마치 헤어날 수 없는 지옥과 같이 헝클어져 보여 갈피를 잡지 못하겠데.
그렇게 하염없이 걷다가 보니 드디어 큰 시내인지 강인지가 앞을 가로막더군. 그런데 강줄기의 좀 먼 위쪽에 큰비가 내렸는지 물이 불어 물길이 깊고도 넓어졌는데 건너는 나룻배마저 다 사라지고 인적도 없는 거야. 아무튼 이 물을 걸어서는 못 가 빠져 죽겠고 헤엄쳐 건널 수밖에 없더라고. 그래 큰 아이는 기슭에 내려 놓으며 꼼짝 말고 기다리라 신신당부 해 놓고는 우선 갓난애만 등에 올려 끈으로 내 몸에 묶고는 강물을 가로질러 헤엄쳐 들어갔지. 해산 끝이라 맥이 빠져 죽을동 살동 겨우 물살을 따라 떠내려 가면서도 어찌어찌 하여 마침내 건너편 기슭에 닿았지. 드러난 나무뿌리를 잡고 뭍에 올라 강둑을 따라 강물을 거슬러 올라 걸어갔지. 가다가 건너편에 큰 아이가 바라보이는 곳에 멈춰서 갓난애를 나무 그늘에 내려 놓았지. 이제 힘을 추슬러 다시 저 물을 건너 큰 아이를 데려와야 될 차례야.
그런데 저 망할 놈의 아이가 울면서 앉아 있다가 엄마가 건너편에 보이자 울부짖으며 강물로 마구 걸어 들어오는 거야. 놀라서 도로 그 자리에 가 있으라고 소리쳐도 누굴 닮았는지 도무지 말을 듣지 않고 자꾸 깊은 데로 걸어 들어오는데 사람 환장하겠더군. 내가 하도 급해 첨벙 물에 뛰어들었는데 채 헤엄을 제대로 치기도 전에 아이고 맙소사! 아이는 이미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 가기 시작하는 거야. 내가 무슨 마크 스피츠나 조오련도 아닌데 빨리 흐르는 물살 속에서 어찌 그 아이를 구하겠나! 강의 중간 어름까지 헤엄쳐 따라가는데 아이는 이미 머리 꼭지마저 눈에 안 보이더군. 더군다나 내가 먼저 숨이 가빠 죽을 것 같더라니까. 방향을 틀어 내가 출발했던 기슭 쪽으로 가까스로 도로 흘러 나왔지. 허허, 하나는 이미 잃은 거고 나머지 하나는?
망연자실 속에서 이상하리만치 침착함을 되찾아 갓난애 놓아 둔 곳을 눈으로 더듬어 찾으며 허우적거리며 오는데 저건 또 뭐야? 무슨 누런 짐승이 무슨 덩어리 하나를 물고 슬금슬금 나를 되돌아보며 나무 밑을 돌아 빠져나가데. 앗차차! 저놈의 늑대인지 이리란 짐승이 내 핏덩이 아기를 그 새 거의 다 먹어치우고는 핏자국만 바닥에 남긴 채 남은 살점을 물고 꽁무니를 빼는 것이었어. 외마디 고함 소리도 그 뿐, 나는 그 자리에서 진짜로 까무라치고 말았지.
그러나 어쩌겠나! 이윽고 다시 깨어낫지만 하루 상간에 남편과 두 아이를 몽땅 잃은 나는 얼이 빠져서 몸 따로 마음 따로 무턱대고 걸음을 옮겼지. 행려병자가 따로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바로 새내기 행려병자였어. 그런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그 와중에도 아는 사람을 길에서 마주친 것 있지. 낯이 익은 한 노인을 길에서 만났는데 그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는 앞을 가로막더군. 니가 여기 웬 일이냐며 내 몰골을 한 눈에 훑는데 나는 퍼뜩 생각이 났어. 어릴 때 자주 뵌 우리 친정 아버지 친구야. 나는 그 순간 정말로 친정 아버지를 만나 것같이 설움이 북받쳐 노인이 다 된 이 바라문을 얼싸안고 매달리며 동네가 떠나가라고 울부짖었지.
한참을 목 놓아 울다 겨우 정신을 추슬러 이 노인에게 그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했지. 참을성 있게 다 들어 준 노인은 쯧쯧 혀를 차더군. 그러다 한참 만에 내가 생각난 듯 묻는 말에 마지못해 대답한 게 우리 친정 식구 소식이야. 엎친데 덮친다고나 할까 바로 며칠 전에 친정 집에 큰불이 나서 친정 부모와 동생들이 다 불에 타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야.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 오며 스르르 땅으로 자지러지면서 다시 까무라치고 말았지. 세상에 하루 아침에 이리 천애고아가 될 수가 있나.
그런데 목숨이란 참 모진 것이 이러고도 나는 살아남았어. 말하자면 나는 부모님과 식구 따라 저세상으로 곧바로 떠나지를 못한 거지. 친정의 참변 소식에 까무라쳤다가 어느 순간 다시 실낱같은 눈이 조금씩 더 벌어지며 떠졌지만 한참을 그대로 있었지. 그러다 두리번거리며 둘레를 바라보니 나는 그 바라문 할아버지의 집에 실려 와 있는 것이더라고. 아무튼 홀홀단신이 된 나를 가엾이 여겨 친자식처럼 거두어 주시는 그 할아버지 덕분에 나는 그 집에 머물며 다시 조금씩 기운을 되찾아 갔고 말이야.
이렇게 기운을 차리고 나서도 얼마를 더 그 집에 머물며 지내던 어느 날, 이웃에 살던 어느 중년의 바라문이 우연히 나를 보고는 그 형편에도 나에게 남아 있던 자색에 반했는지 대뜸 청혼을 하더라고. 나는 형편이 형편인지라 그의 제안을 무조건 물리칠 수는 없었지. 산 목숨 생으로 끊을 수는 없어 일단 살고나 보자 한 것인데 아무리 여자이지만 결단을 해야 할 때는 해야 하지를 않나. 언제 돌아가실지 모를 저 할아버지에게 언제까지나 기대고 살 수는 없겠고, 그래도 길거리에 나가 창녀나 거지가 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아서 나는 두 다리를 움직여 몸을 그 이웃집으로 옮겨 그의 아내가 되었지.
그런데 알고 보니 신랑이 된 그 바라문은 치유 불능의 술망나니였다는 스토리다. 사흘이 멀다 하고 고주망태가 되어 집으로 들어와서는 밤이 새도록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물건을 내던지며 행패를 부리다 못해 나중에는 바닥에 쓰러진 나를 올라타고 목을 조르거나 칼을 쥐고 면상을 그으려 했지 않겠어. 달빛이 교교한 어느 날 밤, 나는 또 다시 남편에게 목을 졸리다 부엌칼을 가지러 손아귀를 풀고 일어서 가는 남편의 등을 보고는 이것이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임을 직감하고는 벌떡 일어나 현관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 나왔지.
정처없이 몇 날 며칠을 헤매던 어느 새벽, 방향도 모르고 길을 걷다 보니 눈앞에 희붐하게 바라나시 강의 강물이 흐르고 있더라고. 바라나시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바라나시 강물 맞겠지 뭐. 그야 어찌됐든 물안개가 걷히는 강가의 나무밑에 쪼그리고 앉아 밝아 오는 주위를 바라보니 내가 있는 이쪽 기슭은 묘지의 끝자락이더군. 하염없이 넋을 놓고 앉아 있는데 이윽고 해가 솟자 어디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가까이 있는 어느 무덤으로 다가오데. 가까이 오는데 보니 값진 장신구를 달고 좋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었고 여러 가지 물건과 먹을 것을 잔뜩 들고 와 무덤 앞에 펼쳐 놓고는 하는 품이 제사 지내는 것 같더구만. 그런데 나는 한 마리의 굶주린 사냥개가 된 것처럼 거기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에 그만 취하여 내 몸이 내 맘 대로 안 다스려지더라고. 나도 모르게 그 사람들 있는 곳으로 다가가기 시작했지. 사람이란 일단 죽었다 살아나고 보면 배부터 고파 오기 시작하는 것이더만.
나를 꺼리어 내쫓으려는 하인을 몇 마디 말로 점잖게 말리며 어느 나이 지긋한 장자가 앞으로 나서데. 그 사람은 나를 내려다보더니 하인더러 음식을 한 접시 챙겨 주라고 했고. 나는 그 음식 접시를 받아 몇 걸음 물러나서는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선 채로 마구 입에 쑤셔 넣었지. 오랜만에 배를 채운 나는 다시 나무 밑으로 와 잠에 떨어졌는데 깨어나 본들 어디 더 갈 데가 정해진 것도 아니고, 하여 그냥 그 묘지에 머물렀지. 그 나마 가끔 음식을 갖고 무덤을 찾아 오는 사람들이 있어 조금씩 얻어 먹으며 목숨을 이어갔는데 처음에 왔던 그 장자는 며칠에 한 번씩 꼭 그 무덤을 둘러보더라고. 으례히 먹을 것을 바라며 다가가는 나를 내치지 않고 매번 얼마간의 먹을 것을 비집어 주면서 우리는 조금씩 친해졌지.
서로 낯이 익어 가면서 자연스레 알고 보니 그 장자가 찾는 그 무덤은 그가 너무나 사랑했던 자기 아내의 무덤이더군. 아무튼 그 아내를 정말 못 잊어 그랬는지 나를 대용품으로 생각해서 그랬는지 그는 나에게 음식 뿐만 아니라 옷도 주고 땟국을 벗게 하며 장신구를 주더니 어느 날 자기 아내가 되어 달라고 하데. 나는 은혜 갚는 심정으로 그 청을 받아 주었는데 그가 정말 그리 큰 부호였음은 그를 따라 으리으리한 그의 저택에 들어서면서 실감했지. 역시 사람은 눈으로 봐야 믿는다니깐. 처음 며칠 동안은 어디가 어딘지, 도대체 잠자리가 있는 내 방을 곧바로 찾아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면 내 말 믿겠어?
그러나 내 복은 거기까지더라고. 어느 날부터 남편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는 것인데 있는 돈 없는 돈 다 쓰며 의원을 불러오고 약을 써도 백방이 무효고 백약이 무소용, 아이고 하늘도 무심치 살 날이 한참 남고 쓸 돈도 엄청 남은 이 장자는 마지막 순간에 눈을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스르르 눈빛을 잃고 야속히도 저세상으로 떠나가고 말더이다.
그런데 그 고장에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풍속이 하나 있는데 이게 문자 그대로 사람 죽이데. 이 무슨 청천벽력인지, 누구든 이 마을에선 미망인은 망자와 함께 땅에 묻히도록 되어 있다는 거야. 우상이나 짐승을 대신 묻는다든지 하는 소리를 들은 적은 있으나 이럴 줄은 몰랐었지. 이곳은 정말 수구 꼴통들만 살아 남았는지 옳든 그르든 매사를 해 오던 대로, 들은 대로 본 대로 곧이곧대로였다 이 말씀 아닌가봬.
하지만 나는 금방 내 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지. 솔직히 말해 구질구질하게 더 살고 싶지도 않았고 그나마 들판에서 행려병자로 죽어 짐승에게 뜯어먹히는 것보단 백번 낫겠다 싶어 위로로 삼았지. 그리고 생각해 보면 이 장자야 말로 나의 첫남편에 버금가게 나를 정말 사랑하지 않았느냐 말이다. 그것이 채 세 해도 못 되는 짧은 동안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런 생각으로 가슴을 채우니 마음이 한결 편하데.
나는 웬만한 여염집보다도 더 튼튼하게 잘 지은 땅속 무덤의 돌방에 앉아 고즈넉이 죽음을 기다렸지. 지금이 낮인가 밤인가? 새벽인가, 저녁인가? 저 항아리에 남은 한 줌의 마른 포도를 다 집어 먹고 나면 나는 굶어서라도 앉은 채로 목숨의 마지막 불이 꺼지고 말거야. 그런데 그때 내 머리 위에서 난데 없이 뭐를 찍는 듯한 쿵쿵거리는 울림이 전해 오지 않겠어. 나의 조용하고 거룩한 임종을 방해하는 자가 그 누구냐? 사람이 유종의 미를 거두기란 이리도 어렵더란 말이냐?
그들은 전문적으로 무덤을 파헤쳐 부장품을 훔치는 호리꾼 일당이더라고. 마침내 뚫린 최초의 곡괭이 구명으로 한 줄기 햇살이 내리꽂히고 뒤따라 육중한 덮개돌이 활짝 젖혀지자 아래를 내려다보던 하늘의 얼굴들이 나를 보고는 저건 할망구가 아니네? 하고 눈을 껌뻑거리데. 부장품 만큼이나 값진 물건을 얻은 듯 나를 구덩이에서 들어 올리던 그 호리꾼들의 우두머리를 따라 나는 그들의 소굴로 갔고 곧바로 도둑 괴수의 몇 번째 아내가 되었지. 이리 되고 보니 사람 팔자 상팔자인지 개팔자인지 모르겠더군. 하지만 무덤에 그대로 버티고 있었다면 곧바로 죽임을 당했겠지? 증거인멸의 원칙이란 이 세상 모든 크고 작은 도둑들 뿐만 아니라 공금횡령하고 매관매직하는 부패한 고위공직자나 판검사들, 썩어 빠진 군경이나 정객들에게라면 금과옥조, 헌법 1조가 아닌가!
그러던 어느 아침, 벌써부터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하지 못해 훤한 대낮에는 외부노출 엄금이라는 도둑들의 헌법 2조마저 무시한 채 나는 문밖으로 나왔지. 길 건너 나무 그늘에서 바람이나 쏘이려는데 두 날개에 태극 무늬가 박힌 못 보던 큰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내 손등에 고이 앉더라고. 가만히 바라보는데 나비는 다시 날아올라 저만치 가서 또 울타리 끝에 앉는 거라. 나는 그 나비를 따라 몇 번 자리를 옮기다 마침내 가까운 숲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때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느닷없이 길을 따라 들려오고 여남은 명의 칼 찬 크샤트리야들이 내 눈앞을 거쳐 방금 내가 나온 소굴의 문앞에 이르더니 히힝거리는 말들에서 비호같이 뛰어내리더군. 그리고 오래 걸리지도 않아 우리 호리꾼 일당 모두가 줄줄이 포승줄에 묶여 끌려 나오는데, 순식간의 일망타진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나는 몸을 숨긴 채 숨죽여 그 모든 광경을 한참이나 지켜 보았지 뭐야. 묶인 그들이 멀지 않은 마을의 공터로 올가미에 묶인 복날의 개처럼 질질 끌려가 재판이고 뭐고 긴 절차도 없이 몇 가지 증거물만 눈앞에 갖다 놓인 채 한꺼번에 간단히 망나니의 칼날에 목이 댕강댕강 달아날 때까지 말이다.
이제는 어디에 기대어 목숨을 이어갈 것인가? 이때 문득 언젠가 누구에게선가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지 않겠어? 석가족의 왕자가 집을 나가 고행 끝에 부처님이 되었는데 그는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훤히 들여다보신다고라. 나는 물어 물어 기원정사라는 곳으로 찾아갔지. 크고도 아름다운 숲속에 자리한 놀라운 수행처더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오가고 있었으나 모두가 하나의 꽃이고 나무인 양 아름답고도 향기로우며 조용하고도 신비롭게 존재하고 있더군. 그리고 나는 드디어 큰 나무에 꽃이 활짝 핀 듯, 숱한 별 속의 보름달 같은 부처님의 모습을 멀리서 뵈올 수 있었으니!
부처님이 내가 서 있는 곳으로 걸어 오시데. 나는 부처님께 그 동안에 겪은 일들을 낱낱이 아뢰며 저를 가엾이 여기사 여기서 수행하는 제자가 되게 허락해 주십사고 간절히 빌었다 뿐이겠나. 내 말을 끝까지 들으신 부처님은 옆에 선 아난다에게 이르시데. 이 여인을 고타미에게 데려가 계법을 일러 주게 하라고.
나는 고타미에게서 계를 받아 비구니가 되었지. 삶이란 괴로움이란 것, 그 괴로움의 뿌리는 애착이라는 것, 그러나 다행히 애착은 없앨 수가 있으며 그 없애는 길을 부처님이 친히 일러 주셨다는 것을 배웠지.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은 실체가 없이 비어 있으며 삼라만상이 덧없다는 것도 배웠지. 나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진리의 말씀이지 두 말 하면 뭐 하겠나. 내 지나온 삶이 바로 괴로움이었으며 덧없음 그 자체가 아니었나 이 말이다.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날마다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 아라한이 되었지.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나의 과거와 미래를 볼 수가 있었지. 내가 이승에서 받은 고통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그것은 털끝 만치도 어긋남이 없는 전생의 내 업보인 것이 보이데. 나는 기구한 내 사연을 듣고 궁금해 하는 도반 비구니들에게 조용히 내 전생을 들려 주지 않았겠어.
지난 날 어느 나라에 돈 많은 부자가 하나 살고 있었다. 그런데 다 갖춘 사람은 드물다고 그에게는 재산을 물려 줄 아들이 없었다. 여러 해 공을 들이다가 안 돼서 궁여지책으로 어느 지체 낮은 집안의 딸을 작은 마누라로 들였는데 마침내 기다리던 아들을 낳았다. 그에 따라 남편의 정이 그리로 더 쏠리는 것을 큰 마누라인 나는 금세 알아챘다.
처음에는 나도 단념을 하고 이왕 태어난 아이를 귀애하며 마음 편히 먹자고 했었지만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아이가 백일이 지나고 돌이 다가오자 불안했던 마음 한 구석이 자꾸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니 온통 내 뇌리를 가득 채워 버리는 것이 아닌가! 저 아이가 자라면 결국 이 집 재산을 송두리째 상속 받을 건데 나는 대체 뭐람? 개밥의 도토리 신세? 그리고 남편의 정도 점점 더 저 모자에게 쏠릴 텐데 나이 든 남편이 죽고 나면 저들이 날 내칠 게 틀림없어. 그렇다면 나는 말년에 영락없는 홈리스가 될지도 몰라, 아이고 내 신세야!
그렇다면 이러고 마냥 있어서는 안 되지. 사람이 송장이 아닌 이상 무슨 수를 써야지 왜 이러고 앉았어? 나는 이런 깨침(?)이 온 그 순간부터 하나하나 가능한 방법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틀을 들고 심심풀이처럼 자수를 놓던 순간 퍼뜩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그 핵심은 꽃입 속의 가는 꽃술을 수놓을 때 쓰던 작은 바늘이었다. 이것으로 어떻게 소리 소문 없이 그 애를 해치워 버려?
사람이 어떤 범죄를 계획하고 실제로 저지름에 옮길 때처럼 진지하고 순수하며(?) 집중력이 강해질 때가 없을 듯싶다. 학교 공부를 그리 했다면 장학금 걱정은 안 해도 좋았을 텐데 말이다. 아무튼 이날부터 나의 계획은 더욱 치밀해졌으며 내가 예행연습한 나의 연극은 내가 봐도 너무나 완벽하고 감탄할 지경이어서 잠시 나르시스가 된 양 나의 의무(?)와 본분(?)을 잊을 뻔하기도 한 순간마저 있었다.
마침내 기다리던 아기의 돌날이 밝아 왔다. 아침부터 시작된 돌잔치가 여러 손님 맞이와, 이 품 저 품으로 옮겨 안는 축하객들의 얼름과 감탄, 품에 안긴 아기의 방그레 미소와 짜증 섞인 울음, 그리고 피곤함에 지쳐 고개가 꺾여진 아기의 잠으로 마무리가 되어갈 즈음에 나는 여러 번 연습해 본 솜씨 대로 아기를 건네받아 안고서는 마침내 실습에 돌입했다. 넓고 탁 트였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한 구석, 쉬 눈치 채지 못할 작은 사각지대였다. 나는 아기를 안고 눈에 안 보이는 그 입체의 공간에 몸을 담근 채 새끈새끈 자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내가 무슨 편작이나 허준이라고 아직 뼈가 굳지 않아 말랑말랑한 정수리의 숨구멍 한가운데를 겨냥하여 내 새끼손가락보다 짧고 가는 자수 바늘 하나를 직각으로 조용히, 그러나 지긋한 힘으로 밀어 넣었다. 아기는 잠깐 얼굴을 찡그리는가 하더니 그대로 내쳐 숨을 쉬며 조용하였다. 나는 스치듯 아기의 보드랍고 여린 머리털을 쓸어 숨구멍을 덮었다. 그러면서 그 입체의 공간을 벗어나 조금 더 아기를 안고 있으면서 깨알같이 배어 나온 정수리의 핏방울이 이내 굳자 이를 가벼이 문질러 딱지를 없애 버렸다. 그러고는 뒤늦게 축하하러 온 어느 부인에게 자연스레 아기를 넘겼다.
그 부인마저 금방 돌아가고 잔치는 마무리 되었는데 다소 어수선한 가운데 아기를 돌려받아 재우고 있던 하녀가 소스라쳐 소리쳤다. 마님, 아기가, 아기가…! 아기는 어느 결에 빳빳하게 굳어 있었고 나는 시치미를 떼며 미리 익혀 둔 과장된 놀람의 표정과 몸짓을 연출하며 아기 있는 쪽으로 허둥지둥 다가갔다.
하지만 제 어미만은 속일 수가 없었다. 눈에 핏발이 선 그 여인은 제 정신이 아닌 중에도 나를 똑바로 쏘아보며 대들었다. 당신이 우리 애기를 죽였지요!? 당신이 죽였지요!? 나는 미리 익힌 대로 곧바로 맞받아쳤다. 왜 나보고 그러오? 만약에 내가 죽였다면 다음 생에서 내 남편은 독사에 물려 죽고 내 자식은 물에 떠내려 가 죽거나 늑대에 잡아 먹힐 것이오. 나는 산 채로 묻히고 내 부모형제는 불에 타 죽을 것이오. 이래도 날 의심하겠오? 이래도 날 의심하겠오? 정신 차려요, 이 사람아!
알겠어요? 그때 그 박박 우기며 살인을 부정하던 부인이 지금의 나요. 그 죄 많은 여인이 이승에서 다행히도 부처님을 만나 아라한이 되었지만 지금도 뜨거운 바늘이 정수리로 들어와 발바닥으로 빠져나가는 고통을 날마다 겪고 있다오. 재앙과 복은 이렇듯 결코 어디로 가 버리거나 스스로 사라질 수가 없답니다. 지음과 갚음의 저울이 한 치도 서로 기울지 않는 것이 부처님의 법이라오.
현우경(賢愚經)의 미묘비구니품(微妙比丘尼品)은 이렇게 끝난다.
전생에 지은 죄가 있다면 아라한이 되어서도 이생에서 이리 고통을 받거늘 복 받아 이 생을 살면서 수행도 제대로 안 한 채 지저분한 저지름만 쌓아 온 우리는 또한 어떡하리야?
사후대책,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