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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현불연재물

[2022년 8월호] 기러기떼 기럭기럭 / 이원익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2.12.27|조회수44 목록 댓글 0

< 부루나 칼럼 >

 

 

 

기러기떼 기럭기럭

 

 

 

 

글 | 이원익 leewonik@hotmail.com
한국 불교의 전파와 대중화에 힘을 보태려는 발원으로
태고사를 도와 왔으며 우담바라회 회원이다. 포항에서
태어나 경남고와 서울 문리대를 졸업했다. 오래 전에
회사 주재원으로 와서 LA 지역에 살며 국제운송업을
하고 있다.

 

 

 

 

아직 가을은 멀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햇살이 비치기 시작하는 우리 마을의 공원 둘레길을 걸어가는데 물가에 나와 있던 커다란 들오리인지 수많은 기러기인지가 한꺼번에 깃소리를 치며 잔디밭에서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떼지어 몇 바퀴를 낮게 돌더니 좀더 높이 떠오르며 줄을 지어 어딘가로 떠나간다. 장관이다. 아마도 물을 찾아 다른 어느 곳으로 날아가는 것이겠지. 지금도 그 새들의 놀랍던 날개짓이 가슴을 치는 것 같다.
   이렇듯 새떼의 날아오름은 우리의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1989년에 문단에 나왔으며 현재 조선대 교수로 있는 나희덕 시인은 이보다 훨씬 장관인 진짜 야생의 기러기떼를 보고는 이렇게 읊었다.

 

   기러기떼

   나희덕

   양(羊)이 큰 것을 미(美)라 하지만
   저는 새가 너무 많은 것을 슬픔이라 부르겠습니다

   철원 들판을 건너는 기러기떼는
   끝도 없이 밀려오는 잔물결 같고
   그 물결 거슬러 떠가는 나룻배들 같습니다
   바위 끝에 하염없이 앉아 있으면
   삐걱삐걱, 낡은 노를 젓는 날개소리 들립니다
   어찌 들어보면 퍼걱퍼걱, 무언가
   헛것을 퍼내는 삽질소리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퍼내도
   내 몸 속의 찬 강물 줄어들지 않습니다
   흘려보내도 흘려보내도 다시 밀려오는
   저 아스라한 새들은
   작은 밥상에 놓인 너무 많은 젓가락들 같고
   삐걱삐걱 노 젓는 날개소리는
   한 접시 위에서 젓가락들이 맞부비는 소리 같습니다
   그 서러운 젓가락들이
   한쪽 모서리가 부서진 밥상을 끌고
   오늘 저녁 어느 하늘을 지나고 있는지

   새가 너무 많은 것을 슬픔이라 부르고 나니
   새들은 자꾸 날아와 저문 하늘을 가득 채워 버렸습니다
   이제 노 젓는 소리 들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늘을 가득 덮은 기러기떼 뿐만 아니라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를 소재로 읊은 것들은 한시에도 무척 많다. 그 전형적인 것으로 당나라 때 위응물(韋應物 737~791)이 지은 시 한 수를 보자.
   장안(長安)이 고향인 위응물은 고향에서 2천 리나 떨어진 지금의 안휘성(安徽省)인 회남(淮南) 저현(滁縣)에 자사(刺史)로 부임하였다. 그는 타향살이에 지친 나머지 고향이 그리워 어느 날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누각의 서재에 올랐다. 조금이라도 높은 곳이라면 행여나 정든 고향집이 보일까 하는 심정에서다. 하지만 어두컴컴한 밤이라 보이는 것은 없고 귀만 예민해지는데 때마침 한 무리의 기러기떼가 끼룩끼룩 울며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이럴 때 시가 아니 나온다면 훌륭한 관리는 될지언정 시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성의 밤에 홀로 문득 창을 열면 그다지 멀지 않은 공항에서 방금 떠올라 서쪽으로 고개를 트는 밤비행기들은 바퀴를 접어 넣으며 몇 군데 불빛을 반짝인다. 그러다 이내 그 불빛마저 어두운 하늘 가운데로 잦아지며 사라져 가는데…, 하지만 자사도 못 되고 어쭙잖은 시인도 못 되는 나는 마침내 무엇이 되어 이승에 남으려는지를 모르겠다.


   기러기 울음을 들으며

   위응물

   고향은 아스라이 어드메뇨
   가고픈 맘 아득하누나
   가을비 내리는 회남의 밤
   높은 서재에서 기러기 울음을 듣네

   聞雁 문안

   故園渺何處 고원묘하처
   歸思方悠哉 귀사방유재
   淮南秋雨夜 회남추우야
   高齊聞雁來 고제문안래

   말이 나온 김에 북송의 시인 소동파(蘇軾,·東坡 1037∼1101)의 시 한 수만 더 살펴보기로 하자.


   인생은 기러기 발자국

   소동파

   내 삶이 다다르는 곳 어찌 생겼을까
   날던 기러기가 질척대는 눈밭을 밟듯이
   어쩌다 진흙에 발자국을 남긴다 해도 
   기러기 날아가면 어찌 그 행방을 가늠하랴
   노승은 이미 죽어 새로 탑은 섰고 
   벽은 허물어져 옛시는 찾을 길 없네
   힘들었던 지난날 아직 기억하는지 
   길은 멀고 지쳐 나귀마저 절며 울어댔었지

   人生到處知何似 인생도처지하사
   應似飛鴻踏雪泥 응사비홍답설니
   泥上偶然留指爪 이토우연류지조
   鴻飛那復計東西 홍비나복계동서
   老僧已死成新塔 노승이사성신탑
   壞壁無由見舊題 괴벽무유견구제
   往日崎嶇還記否 왕일기구환기부
   路長人困蹇驢嘶 노장인곤건려시



   이 시의 본래 제목은 ‘면지를 회상하며 자유에게 화답하다(和子由澠池懷舊)’ 이다. 이 시에도 물론 깔린 사연이 있다.
   젊은 시절 소식은 아우 소철(蘇轍, 子由)과 함께 과거시험을 보러 수도 개봉(開封)으로 갔는데 그때 면지(澠池)라는 곳을 지난 적이 있었다. 그때 두 사람은 어느 노승이 사는 곳에 묵으면서 벽에 시 한 수씩을 남겼다. 뒷날 형인 소식이 관리가 되어 부임지로 갈 때 아우인 소철은 형을 바래다 준 다음 개봉으로 돌아가 형의 거친 앞길을 염려하면서 시 한 수를 보냈다. ‘면지를 회상하며 형에게 보낸다’라는 시가 그것인데 아우는 그 시에서 ‘그 옛날 승방의 벽에 우리 함께 시를 남겼지’라며 당시의 기억을 되짚었었다. 그런데 뒷날 다시 면지에 들른 형이 아우의 시를 생각하여 화답한 것이 이 시다.
   인생살이 바쁘게 뛰어 봐야 다 부질없는 노릇이고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기러기가 우연히 눈밭에 발자국을 찍어 남기는 것이나 뭐가 다른가! 그 기러기가 떠난 후에 어느 쪽으로 날아갔는지 기러기의 방향을 따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우리를 맞아 주었던 노승은 이미 돌아가시어 부도탑만 남았고 우리가 벽에 남겼던 시도 이제 온데간데없다. 노승과의 인연도 정성 들인 시도, 산길에서의 고생도 결국은 진흙밭의 기러기 발자국 같은 것이려니 세상사가 다 그렇고 그렇지 아니한가! 아우여, 사느라 너무 아등바등 말고 털 건 훌훌 털어 버리고 남은 인생 느긋하게, 빈틈도 더러 보여 가며 털털하게 한번 살다 가자꾸나! 
   소식과 소철 형제는 본래 후세에 남긴 문필의 발자국들이 뛰어난 유명한 형제들이다. 그러니 형제랍시고 각각 돈다발을 어느 정도 쌓아 놓고 티격태격하는 것이 대수가 아니라 이 정도 수준의 시는 주고받을 정도는 돼야 정말로 형제복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기러기는 왜 기러기일까? 요즘 비하하여 부르는 동방 어느 나라의 기레기가 그 어원은 아닐 테고, 아마도 거의 틀림없이 기럭기럭 우는 기러기의 울음소리가 그 기원일 것이다. 영어로는 wild goose 라고 하는데 어쩌면 영국 기러기는 구~스, 구~스 하고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인도의 기러기는 어떻게 우는지 모르겠는데 머리에 검은 두 줄이 있어 줄기러기라고도 하며 불교 경전에도 여러 군데에 나온다. 부처님이 설법하실 때 하늘의 기러기 오백 마리가 그 말씀이 좋아 가까이서 들으려고 내려와 돌다가 사냥꾼의 그물에 걸려 다 죽었지만 도리천의 아름다운 황금 아기들로 모두 다시 태어나 부처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러 왔다는 이야기가 그 일례다.
   기러기는 전세계에 열네 종이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는 그 가운데 여섯 종이 겨울 철새로 날아온다. 이 기러기들은 여름에 북쪽 시베리아에서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기른 다음 겨울이 다가오면 줄지어 남쪽으로 날아온다. 한국 쪽으로 날아오는 것들은 쇠기러기와 큰기러기가 주를 이루는데 기럭기럭 우는 것은 사실 쇠기러기다. 이 경우 ‘쇠’는 작음을 뜻하는 접두사이므로 쇠기러기는 큰기러기보다는 작은 기러기다. 아무튼 옛날에는 이 쇠기러기를 ‘그력’이라 불렀고 이것이 그려기가 되었다가 긔려기, 기려기, 기러기로 변하면서 차츰 모든 기러기를 아울러 일컫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듯 기러기가 옛날부터 여러 시인의 시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이들이 하늘 높이 V자(기역자, 니은자로 본 한국의 동시도 있다)로 줄을 지어 날아오고 날아가기 때문이다. 맨 앞쪽에 코처럼 튀어나와 무리를 이끄는 힘 좋은 기러기를 코기러기라고 한다. 양편으로 다른 기러기들이 나란히 줄을 뻗쳐서 함께 나는 것은 옆눈짓 하며 방향 잡기가 쉽고 빗긴 앞쪽의 다른 기러기가 하는 날개짓의 상승기류를 타서 자신이 날개짓 하는 힘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설에는 이렇게 가지에 붙어 날면 에너지를 30% 가량 아낄 수 있다고 한다. 
   코기러기가 한참 날다 지치면 끼룩끼룩 울어 신호를 보내는데 그러면 다른 기러기가 자리를 바꾸어 코기러기가 되며 이렇게 여럿이 돌아가며 코기러기 역할을 하면서 머나먼 대륙과 대양을 세로지른다. 이처럼 무슨 일에든 구성원들이 자진하여 책임을 좀 번갈아 맡아 주면 좋으련만 요즘 세태는 돈 안 되고 명예 별로인데다 크든 작든 조금이라도 힘이 드는 자리는 다들 한사코 사양만 하니 무슨 단체나 조직을 막론하고 회원들이 지나친 겸양만 발휘하는 바람에 그 조직의 존속 여부마저 위태로워지기 일쑤다. 불교라고 예외일까? 어쩌면 더 심할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하늘 쳐다보고 기러기한테 좀 배워야겠다. 만날 남의 기류에만 올라타 실려 가려 하지 말고 스스로 마음 내어 코기러기 노릇도 한 번씩은 해 보자고 말이다.
   예전에 유교가 풍미하던 시절에는 이렇게 기러기가 줄지어 나는 것을 한 뱃속에서 태어난 형제들에 빗대어 안항(雁行)이라고 했다. 이때는 행(行)자를 항이라고 읽어야 한다. ‘안항이 몇이오?’ 하면 형제가 몇 명이냐는 물음이다. 항렬(行列)이란 말도 여기에서 나왔다. 그런데 너무 고리타분한 항렬 따지기도 그렇지만 요즘의 드물지 않은 세태처럼 너무 위아래도 없이 아무나 맞먹고 올라타며 대들기만 하는 것도 피곤하긴 마찬가지다. 무릇 세상일이 대개 그렇듯이 이런 일들도 양극단 말고 중간쯤이 좋은 것 같은데, 이른바 꼰대 소리 안 들으려면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살다 가는 게 상수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기러기는 아시아, 동양에만 있나? 
   한국에서 보통 말하는 그런 기러기는 주로 시베리아나 사할린, 알래스카 등지에 분포하며 철에 따라 남북으로 이동한다. 그 밖에 캐나다에 자리잡은 캐나다 기러기도 있고 인도 기러기도 있지만 유럽 쪽에는 흔치 않거나 주목을 덜 받은 것 같다. 
   그리고 오리도 일찌감치 가축이 되었는데 기러기는 사람에게 결코 사로잡히지 않고 제 갈 길로만 가버렸던가? 그건 아니다. 옛사람들이 오리 비슷한 개리라는 새나 회색 기러기를 잡아다 길러서 식용으로 개량한 것이 거위인데 평안도 말로는 게사니라고 한다. 덩치가 커서 어릴 때 외에는 거의 날지 못한다. 
   거위는 동서양에 퍼져 있는데 식용으로 주로 기르지만 낯선 사람을 보면 울며 달려들기 때문에 집 지키는 짐승으로도 기른다. 거위에게 억지로 굳기름을 많이 먹여 거위의 간을 비정상으로 키운 것을 푸아 그라(Foie Gras)라고 해서 프랑스 요리에서 별미로 치는데 이건 동물 학대가 확실하다. 하지만 개고기에는 그리도 민감한 서양사람들이 이 문제는 대충 넘어가는 것 같다.
   그런데 거위가 새 치고는 성질이 거칠지만 이보다 덩치도 더 크고 성질도 더 거칠고 사나운 것이 기러기의 사촌인 고니(swan)다. 그런데 이 고니는 야생으로 유럽에도 떼지어 많이 날아온다. 고니는 깃털이 눈부시게 흰데다가 좀 떨어져서 보면 그 모습이 아주 우아해서 흰새, 곧 백조(白鳥)로 번역되었다. 서양의 발레나 음악, 시의 소재로 많이 채택되었는데 아일랜드 출신인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65~1939)의 유명한 다음 시에도 나온다. 이전에 교과서에도 실렸던 것 같은데 좀 길지만 소개하자면;

 


   쿨 호수의 백조

   예이츠

   가을빛에 물든 나무들
   숲길은 메마른데
   시월의 저녁노을 아래
   물에 비친 고요한 하늘
   돌 사이로 넘쳐흐르는 물위에는
   떠 있는 쉰아홉 마리 백조들

   열아홉 번째 가을이 돌아왔네
   내가 처음으로 저 백조를 세어 본 지가
   그땐 내가 다 세기도 전에
   갑자기 모두 하늘로 날아올라
   터진 고리처럼 맴돌더니
   날개소리 요란히 흩어졌었지만

   저 눈부신 것들을 보고 있었는데
   이제는 내 가슴이 쓰라리네
   황혼녘에 처음으로 이 물가에 와서
   머리 위에 종 치는 듯한 날개소리 들으며
   가볍게 거닐었던 그때로부터
   모든 게 변하고 말았으니

   저들은 지치지도 않고 고요히 
   사랑하는 것들끼리
   차갑고 다정스런 물속에서 노를 젓거나
   공중으로 솟구친다
   늙지 않는 가슴으로
   어디를 헤매든 늘 열정과 패기를 안고서

   하지만 이제는 고요한 물위를
   신비롭고 아름답게 떠돌고 있네
   어느 호숫가 웅덩이 옆 골풀 속에 
   둥지를 틀어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을까
   나 어느 날 깨어나
   저들이 모두 날아가 버린 것을 알아챘을 때

 


   The Wild Swans at Coole

   William Butler Yeats

   The trees are in their autumn beauty,
   The woodland paths are dry,
   Under the October twilight the water
   Mirrors a still sky;
   Upon the brimming water among the stones
   Are nine-and-fifty swans.

   The nineteenth autumn has come upon me
   Since I first made my count;
   I saw, before I had well finished,
   All suddenly mount
   And scatter wheeling in great broken rings
   Upon their clamorous wings.

   I have looked upon those brilliant creatures,
   And now my heart is sore.
   All's changed since I, hearing at twilight,
   The first time on this shore,
   The bell-beat of their wings above my head,
   Trod with a lighter tread.

   Unwearied still, lover by lover,
   They paddle in the cold,
   Companionable streams or climb the air;
   Their hearts have not grown old;
   Passion or conquest, wander where they will,
   Attend upon them still.

   But now they drift on the still water
   Mysterious, beautiful;
   Among what rushes will they build,
   By what lake's edge or pool
   Delight men‘s eyes, when I awake some day
   To find they have flown away?


   그런데 웬만큼 눈치가 있는 분이라면 이 시는 그냥 백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거나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는 시가 아니라 쓰라린 실연의 아픔을 노래한 것임을 알 것이다. 예이츠는 스물너댓 살 때쯤 아름답고 활기찬 아일랜드의 독립운동가요 여성주의자인 모드 곤(Maud Gonne)을 보고는 그의 말마따나 ‘인생의 고뇌가 시작되었다’. 그러다 서른두 살 때 청혼을 하지만 퇴짜를 맞고 이 호숫가로 와서 백조의 비상을 본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마음을 다스리며 이 여인에 대한 집착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 후에도 여러 번 같은 퇴짜를 맞는다. 그러다가 열아홉 해가 흐른 후 모드 곤의 남편인 존 맥브라이드 소령(Major John MacBride)이 독립운동과 관련된 폭동에 얽혀 처형이 되자 이들의 딸 이졸트(Iseult)에게까지 청혼을 했지만 또 퇴짜를 맞는다. 예이츠가 쉰한 살 때다. 가히 상습 청혼범이라고 해야 할는지 모르겠지만 젊고 좋은 나이 다 지나간 그가 받은 충격은 컸다. 그래서 나온 시가 이 시인데 어쨌든 그의 시들은 그 후 재평가되면서 노벨 문학상까지 받는다.
   인생 말년에 그도 다른 여인과 결혼하여 자녀도 낳고 했지만, 아무튼 사람이 젊거나 어린 시절에 누구에겐가에 한 번 제대로 꽂히면 헤어나지 못하거나 자칫 일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게 마련인가 보다. 그런데 이러한 집착은 어디에서 왔을까? 말이 쉬워 내려놓는다지만 정말 내려놓기 어렵고 말끔히 지울 수 없는 것이 순정이요 첫사랑이 아닌가 한다. 그 바람에 문학과 예술이 풍성해진 것은 덤이지만 말이다. 아니면 그가 그때 대륙의 맞은편 끝쪽 동양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이런 작품을 남기는 대신 산사를 찾아 불가에 귀의라도 했을까?

   그나저나 아직 한여름도 지나가지 않았는데 웬 기러기 타령인가?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낯선 땅이라서 그러한가? 이미 수십 년, 몸 붙이고 정 붙이고 살았으니 낯선 땅도 아니고 오랑캐 땅은 더욱 아닐진대 가슴은 이미 지레 가을에 물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구태여 바깥 핑계를 갖다 대자면 몇 해째 사바에 머무르며 이젠 뿌리를 박으려 하는 팬데믹에다 치솟는 인플레이션, 게다가 아치러운 고국 소식하며 세계 곳곳의 잦아들지 않는 전쟁놀이 불장난 같은 것들을 길게 늘어놓을 수는 있겠다만, 저기 저리 깃발이 나부끼는 것은 스치는 바람 때문이 아니요 내 마음의 나부낌일 뿐이라고도 하지 않은가! 하지만 안팎의 이 모든 것 또한 지나가리라. 이 세상 뭇 생명이 고통에서 두루 벗어나도록 삼가 부처님의 크나크신 가호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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