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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현불연재물

[2022년 8월호] 반복하는 것은 강화된다 | 스텔라 박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2.12.27|조회수21 목록 댓글 0

< 스텔라의 마음공부 >

 

 

 

반복하는 것은 강화된다

 

 

글 | 스텔라 박

 

 

 

 

“독수리가 하늘 높이 날기 위해서는 그 전에 몇 번이고 세찬 바
람 속에서 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독수리
라 할지라도, 다만 땅 위를 기어다녔을 것이다.”
- 피카


“모든 습관은 노력에 의해 굳어진다. 잘 걷는 습관을 기르기 위
해서는 많이 걸어야 한다. 잘 달리기 위해서는 많이 달려야 한
다. 잘 읽게 되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 지금까지 습관적으로 하
고 있던 일을 중단하려면 그 습관을 차츰차츰 쇠퇴시켜야 한다.
만약 열흘 이상 잠만 잔 사람이 걷기 시작한다면 발이 매우 약해
졌음을 알 것이다. 그러니까 그대는 어떠한 습관을 얻고자 한다
면 그것을 많이, 그리고 자주 되풀이하면 된다.”
- 에픽테토스

 

 

 

 

몸치였었던 어린 시절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1학년 때에도 ‘수우미양가’ 성적을 메겼었다. 장녀로 태어난데다가 자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던 부모님을 둔 덕에 나는 모든 것이 100점이어야 했고 모든 과목이 ‘수’이어야 했다. 

그런데… 1학년 말, 성적표를 받아들고서 나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국어 산수 사회 자연 모두 ‘수’였지만 미술과 체육이 ‘우’였던 것이다. 만약 그때 내가 미술과 체육 과목에 ‘수’를 받았더라면 내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나는 가끔 생각한다. 

그 시절의 나는 성적표를 받아들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던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마치 심장이 매직마운틴의 프리폴(Free Fall)을 탄 것처럼 수직 하강했다. 어떻게 내 성적표에 ‘우’가 있단 말이야? 삶의 경험을 있는 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만 7살 어린아이였던 나는 강력히 저항했었다. 

그런데 그 미술과 체육 ‘우’가 2학년 성적표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아직 어린 만큼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아무 것도 되지 않을 수 있는, 무한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나는 1학년 담임교사의 ‘미술, 체육 우’의 평가대로 내가 만들어지도록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 학년씩 올라갈 때마다 나는 미술과 체육 과목에 대해 포비아에 가까운 두려움을 키워갔다. 중학교 때엔 체육 교사가 어찌나 무섭던지, 체육 시간이 죽기보다 싫었다. 지금이었다면 폭행 고발 당하기 딱 좋은 그 교사는 시범 동작을 잘 따라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딱딱한 출석부로 머리를 때리는 건 다반사요, 대걸레의 막대 부분으로 엉덩이를 때리기도 했었다. 

고등학교 때의 체육 교사는 내게 무슨 미운 털이 박혔는지 나만 보면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이었다. 체육 시험을 이론으로 본다면 어떻게 해보겠었는데 실기는 아무리 해도 잘 되지 않으니 더욱 체육 시간이 싫어지고 더 안 하게 되었다. 그 결과, 내 평생 처음으로 체육 과목에 ‘가’를 받았다.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전 과목 모두 ‘수’를 받아도 시원찮을 내가 ‘가’라니. 때마침 교련도 ‘양’을 받아 나는 졸지에 ‘양가’집 규수가 되고 말았다. 

우리 때엔 고등학교 3학년 때 ‘체력장’이라는 게 있어서 학력고사 시험 결과에 체력장 점수를 더해 대학 지원서를 냈었다. 윗몸일으키기, 100미터 달리기, 팔굽혀펴기, 철봉 매달리기, 앞으로 몸 굽히기, 왕복달리기, 제자리멀리뛰기, 멀리던지기, 턱걸이, 오래달리기(1500m) 등의 종목이었다. 보통 학생들은 100미터를 14-18초 사이에 달렸는데 나의 경우는 25초나 됐었다. 철봉은 채 올라가지도 못하고 떨어졌고, 앞으로 몸을 굽혔을 때엔 손이 무릎까지도 안 닿았었다. 진짜 몸치도 이런 몸치가 없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20점 만점에 20점을 기본으로 받고 대학을 갔는데 나는 20점 만점에 11점이었다. 참고로 11점은 참가하기만 하면 받을 수 있는 점수이다. 그러니 결국 남들보다 9점을 마이너스로 받고 대학입시에 임했다는 얘기다. 

대학 때도 교양 체육 과목으로 수영을 선택했는데, 아무리 해도 맥주병 신세를 면하기가 힘들었다. 수영으로 몸매를 가꾸던 엄마는 자기가 수영을 가르쳐주겠다며 나를 자신이 다니는 실내수영장에 데리고 갔었는데, 내가 수영하는 모습을 보더니 “아니 왜 넌 뜨질 않니?” 하며 희한하다는 표정을 지었었다. 

 


두려워하던 미술과 체육에 도전하다

미국에 와서 나이 서른이 되던 해, 나는 더 이상 미술과 체육 과목에 ‘우’를 받던 오래된 나에 머물지 않겠다는 선언을 나 스스로 했다. 미술은 학교 다니면서 한두 해씩 ‘수’를 받았던 해도 있었다. 

뮤지엄에 가서 그림 보는 것을 그렇게도 좋아하면서 직접 붓을 들기는 두려워하는 나의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민화를 배웠고, 사군자 클래스를 다녔으며 라이프 드로잉 클래스도 나갔다. 그리고 LACC에서도 드로잉 클래스를 택해 커다란 포트폴리오 가방을 들고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LACC 선생님은 가끔씩 학생들에게 잘된 그림 샘플을 보여준다며 내 그림을 뽑아 보여주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그림 그리기를 두려워하던 지나간 시절이 아쉽다 못해 억울하게 느껴졌다. 두려움만 없었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화폭에 온갖 색깔로 표현해냈었을까.  

수채화와 파스텔화를 한참 그리던 시절, 침대에 누우면 천장이 온통 캔버스였다. 중앙에 꽃을 그리고, 저 구석에는 나비를 그려야지, 하며 나는 밤새 천장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곤 했었다. 

그리고 ‘우’에서 더 나아가 ‘가’까지 받았던 체육에도 도전했다. 매일 매일 빠르게 걷거나 달리기를 했고 주말이면 산으로 하이킹을 다녔다. 헬스클럽에 가서 덤벨과 바를 들고 근육운동도 한참 했었다. 당시 내 몸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거의 조각이었다. 

어린 시절 자전거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던 나는 일요일이면 DMV 주차장에 가서 머리가 깨져가며 자전거도 배웠다. 그런데 충분한 연습을 하지 못해 아직도 자전거는 다시 타고 다니기가 겁난다. 주말이면 바닷가에서 비키니에 짧은 랩스커트만 두르고서 롤러블레이드도 제법 탔었다. 체육 ‘우’ 받던 시절에는 꿈도 못 꾸던 여러 가지 몸으로 하는 운동들에 하나둘씩 도전한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스트레칭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요가 클래스에 한 번 들어갔다가 완전히 매혹됐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요가가 쫙 몸으로 다가왔던 건 아니다. 요가 선생님이 뭐라고 계속 어떻게 동작을 해야하는지를 설명하는데, 마음이 콩밭에 가있다 보면 그 설명을 놓치기 일쑤였다. “지금 뭐라고 했지?” 하며 선생님의 동작을 살펴봐도 때로 선생님이 학생들을 지도하느라 입으로만 지시를 할 때면 학생들 중에 제일 잘 해보이는 이의 동작을 훔쳐보며 따라하곤 했었다. 워낙 몸이 뻣뻣했던지라 몸을 앞으로 굽히는 전굴자세도 거의 내려가지 않아 막대기 취급을 받곤 했었다. 

 

 


몸치, 요가 선생이 되다
 
하지만 반복하는 것은 강화된다더니, 그렇게 서투르게 요가를 따라 하다가 온 몸 구석구석을 풀어주고 당겨주면서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됐다. 거기다 명상을 시작하면서 결국 마음으로 돌아가려면 몸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요가가 바로 몸으로 하는 명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절인연이 맞아 나는 인도 리시케시로 요가 지도자 교육을 떠났었다. 이곳 저곳에서 가르치는 연습을 하다가 최근에는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요가를 가르치고 있다. 클래스에서 동작 시범을 보이면 학생들은 입을 헤 벌리며 내 몸의 유연성에 감탄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난 내가 얼마나 몸치였는지, 얼마나 몸이 뻣뻣했는지를 얘기해준다. 단지 매일, 아니 매일 할 형편이 되지 않더라도 자주 반복 연습하면 몸은 그 원인 제공에 대한 결과를 정직하게 보여준다고 말해준다.  

 


근육 부자가 진짜 부자

작년 6월경부터 나는 내 운동 패턴을 완전히 바꾸었다. 그전에는 유산소 운동을 더 많이 하고 마무리로 근육운동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이제는 유산소 운동은 하지 않거나 일주일에 한 번 30분 정도만 한다. 그리고 근육 운동을 중점적으로 한다. 운동하는 시간도 20-30분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그 정도만 해줬는데도 1년이 지난 지금 내 몸은 내 평생 최고로 다듬어졌다. 한참 쳐져 덜렁거리던 팔뚝 살이 탄력있게 근육으로 바뀌었고 교통사고 이후 가늘어져 있던 허벅지도 다시 제 자리를 찾았다. 

무엇보다 평생 물렁물렁하던 내 뱃살에 단단한 복근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이다. 머핀 위의 부풀어오른 부분 같던 옆구리 살들은 어느덧 자취를 감추고 배 앞쪽에 초콜릿 조각 같은 근육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임금 왕 자, 또는 식스팩 모양의 근육이 자리를 잡을 것 같다.

희한한 것은 복근이 생기면서 베짱도 두둑해졌다는 것이다. 워낙 내 경계를 지키지 못하고 남들 말에 잘 휘둘리던 성격이었지만 이제 누가 뭐라고 해도 “그건 너의 견해, 너의 생각일 뿐”이라고 여기게 됐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나의 길을 가련다.”는 일종의 뚝심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사우나에서 내 몸을 본 친구들은 도대체 어떤 운동을 했냐며 가르쳐달라고 난리다. 요즘은 나도 내 몸의 변화를 보며 아주 흐뭇하다. 얼굴의 주름이야 날이 갈수록 늘어가지만 체형은 지속적인 근육 운동과 요가로 30대 못지 않다고 스스로 느끼며 정신 승리 중이다. 

여러 운동을 해봤지만 복근 강화에 가장 좋은 운동은 하나 짜리 바퀴가 있고, 그 바퀴의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앱 롤러 휠(Ab Roller Wheel)’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근력도 없는 상태에서 이 운동을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이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코어 근육이 있어야 한다. 다리 들어 올리기(Leg Raise), 플랭크 등의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다 보면 어느날 상체를 완전히 낮추면서 앱 롤러 휠을 끝까지 밀었다가 다시 내 앞으로 가져오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 외에 내가 하는 운동으로는 무게가 있는 막대기를 어깨에 걸치고 하는 스쿼트가 있다. 이는 나이 들수록 재산보다 귀한 허벅지 근육을 키워주는데 아주 좋은 운동이다. 또 무거운 아령을 들고 머리 위로 올려 천천히 팔을 머리 뒤로 내렸다 올리는 운동도 한다. 이 운동은 처진 팔뚝 살을 잡아준다. 

그러나 몸의 변화에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간헐적 단식과 키토 다이어트(저 탄수화물, 고 지방 다이어트)이다. 초반에는 상당히 철저하게 지켰는데 요즘은 설렁설렁 한다. 인간이 하루 3끼를 먹기 시작한 것은 인류의 진화 역사를 볼 때 상당히 최근의 일이다. 위를 비워두는 시간을 적어도 16시간 이상 유지하는 것이 간헐적 단식인데 그 긍정적 효과는 엄청나다. 

어쨌든 간헐적 단신, 키토 다이어트, 그리고 근육운동, 이렇게 삼박자가 맞아떨어질 때 우리 몸은 변화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내 몸은 이를 증명해준다. 

 


매일 매일의 반복이 변화를 가져온다 

이 모든 것이 매일 매일의 반복으로 가능했다. 나라고 매일 운동을 하고 싶을까. 오늘은 마냥 게으름을 부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운동 후의 좋은 느낌을 알기에 매일 운동을 하러 간다. 일단 가기만 하면 10분이라도 운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이라도 매일 하면서 우리 뇌는 바뀐다. 

명상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몰아서 주말에 1시간 앉는 것보다 5분씩이라도 매일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하나의 패턴이 되고, 습관이 되면서 우리 뇌가 바뀌고 몸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삶이 바뀌는 것이다. 

디오니소스의 후예와 같은 성향이 많고, 쉽게 흥분하고 쉽게 가라앉았던 나는 어느날 부터인가 조금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평정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나 역시 아직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이고 통제적이라고 생각되는 행위나 언어에 반응한다. 하지만 그것 역시 내 생각임을 알기에 충분히 내가 현재 느끼는 감정을 느껴주되 예전처럼 분노에 치를 떠는 일은 없다. 

몸치였던 내가 꾸준한 운동으로 요가 선생이 되고 지구력과 근력, 그리고 유연성을 갖게 됐다. 반복하는 것은 강화됨을 몸은 증명해준다. 마음 역시 마찬가지이다. 탐진치를 일으키면 점점 더 탐진치를 잘 일으키게 된다. 화난다고 X팔 하는 사람들은 왜 돌이 여기에 있냐며 화를 낸다. 자꾸 화를 반복했기에, 즉 연습 또는 수행을 했기에 화내는 것을 아주 잘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각자 모두가 수행자이다. 무언가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반복하는 내용이 무엇인가에 따라 우리는 붓다의 삶을 살 수도, 중생의 삶을 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무엇을 반복할 것인가. 무엇을 연습 또는 수행할 것인가. 그것은 당신이 결정할 일이다. 나는 요즘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연습한다. 내가 무엇을 한다는 것을 완전히 내려놓았을 때, 그것이 바로 진정한 명상임을 최근 반복해서 연습하며 그 행복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참 중요한 연습. “당신이 행복하기를, 평화롭기를…” 하는 바램을 전하는 메따 수행. 이것도 자주 하면 잘 하게 된다. 그러면서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좀더 친절한 마음을 갖게 된다. “당신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평화롭기를….”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
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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