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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현불연재물

[2022년 8월호] 바이칼 호수의 청정성 - 자연과 인간, 그리고 휴식 / 이치란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2.12.27|조회수129 목록 댓글 0

 

< 기행문 >

 

 

 


몽골불교탐방기 (9)

바이칼 호수의 청정성
자연과 인간, 그리고 휴식

 

 

 

글 | 이치란 박사 (원 응 보검)

 

 

 

▶ 바이칼 호수의 청정한 쪽빛 물과 야생초는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인류의 원초적 삶과 생태계를 보여준다
▶ 바이칼 호수의 청정한 쪽빛 물과 야생초는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인류의 원초적 삶과 생태계를 보여준다

 

 

 

거의 30도에 육박하는 서울의 날씨, 정말 바이칼 호수가 생각나게 하는 뜨거운 날이다. 물론이 글은 바이칼 호수가가 아닌 서울의 한복판에서 정리하고 있지만, 마음과 정신은 바이칼 호수가의 한 호텔 방에서, 남빛 호수를 바라보며 상상의 날개를 폈던 메모를 바탕으로 글을 정리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는 국제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데, 그것은 우크라이나를 무자비하게 공격하여 영토를 빼앗으려는 침탈 때문이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전쟁발발의 정당성을 주장하겠지만, 야욕이 지나친 것 같다. 
 러시아를 여행하다보면, 어느 나라보다도 인종차별에 대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러시아만의 유아독존적 우월감을 갖는 그들의 태도에 접하게 된다.

 

▶ 바이칼 호수 지도와 교통망


지금은 좀 덜할지 모르지만 90년대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특히 시베리아 지역을 다니면서 쓴 바가지요금은 지금도 아찔하다. 방 하나에 무조건 일인당 100불씩 받던 그들의 얌체 같은 짓이 잊어지지가 않는다. 그런가하면 모스크바 같은 데에서는 호텔 종업원이 장사를 공공연하게 하기도 했다. 또 울란우데에서 모스크바 행 비행기를 탈 때. 항공 티켓을 잘 못 절단하여 곤욕을 치뤘던 일이 엊그제 같다. 바이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 19세기 중반 러시아 화가 바실리 이바노비치 수리코브가 그린 예르마크 티모페예비치의 시베리아 정복화


오늘날의 바이칼은 러시아령이 되어 있지만, 19세기만 해도 시베리아는 불모의 땅으로 몽골족 계통의 종족들이 살고 있었다. 비단 시베리아만이 아닌 세계 여러 곳에서의 식민지 쟁탈과 탐험이란 이름아래 저질러진 정복사는 한 두 곳이 아니다. 시베리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 시베리아 탐험가 에르마크. 


예르마크 티모페예비치(?~1585년)는 러시아의 시베리아 정복의 기초를 닦은 탐험가이다. 17세기 초기 러시아인들은 동진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부반발과 문제가 발생했지만, 탐험과 식민지화가 바로 이루어졌다. 처음엔 카자흐 기병들을 앞세운 모피와 상아의 획득이 주된 목적이었지만, 제정러시아는 시베리아 전역을 손에 넣는데 성공했고, 알라스카까지 확보했었으나 크림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는 재정에 어려움을 겪게 됐고, 때마침 당시 미국 국무 장관이었던 윌리엄 H. 슈어드가 불과 720만 달러, 즉 1제곱km당 5달러가 못 되는 헐값으로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들이는 조약을 체결시켰다. 일부 국민들은 알래스카가 슈어드의 냉장고, 슈어드의 바보짓이라며 맹비난했으나 1880년대∼1890년대 사이에 금이 발견되자 미국인의 정착이 크게 촉진되었고, 1912년 의회의 인준을 받으면서 알래스카 준주가 설치되었다.

 

▶ 미국의 49번째 주가 된 알라스카


알래스카에서 금, 은, 석유 등을 비롯한 각종 자원과 금속들이 발견되었다. 알래스카에서 채굴된 철광석만으로도 당시 기준으로 720만 달러의 몇 배나 되는 4000만 달러어치나 발견이 되었다. 알래스카에 매장된 철만 이정도인데 다른 금속 및 자원의 양을 고려한다면 알래스카 매입은 사실상 매입이 아니라 제정 러시아가 미국에게 공여한 것이 되었다. 더군다나 현재 미국은 중동, 베네수엘라에 이어 세계 석유매장량으로 3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알래스카에 엄청난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일본의 적대적인 활동 때문에 알래스카 간선도로와 더불어 방어시설도 필요했다. 알래스카는 1959년 1월 3일 미국의 49번째 주가 되었다.
 시베리아는 정치적 망명지이기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데카브리스트의 난(12월 혁명당원)으로 121명의 데카브리스트가 재판을 받았고, 5명이 처형당했으며, 31명이 감옥에 갇히고 나머지는 모두 시베리아로 유배당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는 러시아 제국의 차르 표트르 대제가 1703년 설립한 이 도시는 1713년 모스크바에서 천도하여 1918년까지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다. 1918년 수도는 다시 모스크바로 옮겨졌지만, 러시아에서는 수도 모스크바 다음으로, 유럽에서는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에서 일어난 데카브리스트 봉기


시베리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지역이 아닌, 탐험과 망명으로 러시아의 땅이 되었고, 바이칼은 러시아의 맑은 눈망울로 영혼을 적셔주는 천혜의 호수가 되었다. 누구나 이곳 바이칼에서 하룻밤만 자고나면 다 시인이 되고 자연주의자가 된다. 하지만 바이칼도 변화의 흐름을 빗겨가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90년대와 2017년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바이칼 관광 산업이 활성화되고 있었고, 몽골 사람들이 버스로 바이칼을 찾는 것이 유행처럼 이뤄지고 있었다.   몽골 사람들은 불심이 강하기 때문에 울란우데의 이볼긴스크 닷산 사원을 들려서 가는 것이 여행 코스의 정례화 된 모습이었다.

 

▶ 어느 바닷가 해안의 조약돌처럼 바이칼의 맑은 물속에서 햇살에 빛나고 있다


러시아인들 뿐 아니고 세계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바이칼 호수는 수정처럼 맑디맑다. 여름마다 오고 싶은 바이칼은 정말 먼 곳이다. 하지만 한반도와는 일직선상으로는 그렇게 먼 곳이 아니기도 하다. 기차타고 올 날을 그려본다.

 

▶ 울란우데와 바이칼 호수 중간 휴게소인 카페에서 한 몽골인과 포즈를 취하다

 

 


바이칼과 횡단열차

 입추가 지나자 더위가 한풀 꺾인 느낌이다.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다. 항상 더우면 어떻게 살겠는가. 덥다가 춥다가 그렇게 살다보면, 세월은 가고 인생도 가는 법이다. 사실, 우리가 여름에만 바이칼을 찾아서 그렇지 겨울의 바이칼은 더 멋있다고 한다. 눈 덮인 바이칼 호수를 지나면서 보는 설경은 너무 낭만적이라고나 할까. 그동안 우리는 너무 갇혀 살아왔다. 아직도 갇혀 있다. 대륙의 끝단 반도지만, 섬이나 다름없는 공간속에 갇혀 있다가 보니, 공중길이 아니면 갈 수도 없다. 빨리 육로 길이 열려서 기차타고 바이칼은 물론이고 유럽까지도 가보는 희망을 가져본다.

 

▲ 수정처럼 맑은 바이칼 호수가 해안에도 겨울이오면 눈으로 뒤 덮인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바이칼과는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7,400km나 된다. 러시아의 우랄산맥 동부의 첼랴빈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까지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이 노선을 포함해 야로슬라브스키 역부터 블라디보스토크 역까지의 9,297km 구간을 지칭하며, 또한 넓은 의미로는 몽골 횡단 철도·동청철도·바이칼-아무르 철도(제2 시베리아 횡단 철도)까지 포함해 시베리아 횡단 철도라고 부른다.

 

▲ 횡단 열차가 바이칼 호수 옆을 지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까지의 구간은 1956년부터 2001년까지는 모스크바로부터 북동쪽 방향으로 모스크바~야로슬라블~키로프~페름~예카테린부르크를 경유하는 노선을 사용하였다. 2001년부터는 그보다 남쪽의 모스크바~블라디미르~니즈니노브고로드~키로프~페름~예카테린부르크 노선을 이용한다. 로시야 호는 모스크바의 야로슬라브스키 역을 출발하여 블라디보스토크 역까지 약 7일간에 걸쳐서 주파한다. 항공기가 등장하기 전에는 일본과 유럽을 잇는 연락운송에 있어서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었다. 
  사실 우리나라가 남북으로 분단이 되어서 그렇지 통일 된 한반도라면 극동과 시베리아도 한국인의 무대가 되어서 활발하게 움직일 터인데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극동시베리아 지역의 잠재력과 남북한과 러시아의 지역협력과 경협 가능성을 모색한다면, 극동 시베리아 한반도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크겠지만, 현실은 꽉 막혀서 답답하기가 그지없다. 

 극동시베리아는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의 연료자원을 포함한 천연자원의 보고지역이다. 극동시베리아의 개발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며, 러시아가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접국과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인데, 전쟁이 발발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남북한은 극동시베리아 지역과의 지리적 인접성과 생산요소와 산업구조의 상호보완성을 갖고 있다. 남북한이 극동시베리아 지역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경협의 활성화뿐만 아니라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면서 한반도 통합의 계기를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 시베리아 횡단 열차 노선도
▲ 바이칼 호수 근처에 있는 유황노천탕


아무튼 지금은 러시아가 문을 열면서 우리에게도 기회가 와서인데,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시베리아여행이다. 시베리아 특히 바이칼을 찾게 되면서 한민족의 기원설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많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전연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 바이칼 호수 주변에는 부랴트 족이 살고 있다. 물론 몽골계이지만, 먼 조상이 우리와 같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솔롱고(고려)-부랴트족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코리-부랴트 종족은 고구려-발해-금나라에서 이곳까지 이동해 왔다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역사적으로 학술적으로 이 분야의 연구가 활발하지 않고 정사(正史)에서는 외면 받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결론이 나겠지만, 아무튼 아마추어들에게도 바이칼은 그냥 지나칠 호수가 아니며 우리 한민족과는 분명 무슨 연결고리가 있다고 느껴진다.   

 

▲ 바이칼 호수에는 등대도 있다



 시베리아는 최근 몇 세기 동안에도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었으며 오랫동안 러시아 제국의 유형지였다. 1891년에서 1916년 사이에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개통되면서 시베리아의 자원을 사용하기 위한 대규모 개발이 시작되어 시베리아는 크게 변화하게 되었다. 러시아와 소련은 시베리아에 많은 굴락(노동수용소)을 설치하여 강제 노역을 통해 시베리아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니키타 흐루쇼프가 집권한 후 모든 굴락은 해방되었다.
시베리아는 러시아 전체 영토의 77%에 달한다. 시베리아의 주요 지형으로는 중앙 시베리아 고원과 서시베리아 평원이 있다. 서시베리아 평원은 지구 전체 육지의 10%에 해당한다. 시베리아의 북부는 북극권에 이르며 남부는 중국, 몽고 등 다른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시베리아의 북부 대부분은 북극권 이북에 놓여 있어 여름이 매우 짧다. 중북부지역에서, 여름엔 백야현상이 나타나고, 겨울엔 극야현상이 나타난다.

 

▲ 바람이라도 조금 불면 바이칼은 이내 파도를 일으킨다

 

 

 

이치란 박사 (원 응 보검)


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아시아불교평화회의(ABCP 본부 몽골) 한국회장
국제불교연맹 이사(IBC 본부 인도)
동방불교대학 전 총장
한국불교신문 전 주필
현: 해동불교대학장
강원불교대학장
WFB 세계불교대학 집행이사
일붕신문 상임논설위원
매일종교신문 기고가
땅끝어룡도해수관세음보살도량
당제산 여의암 회주
다나TV 영어금강경 강의
세계불교 TV에서 ‘세계불교를 가다’ 소개
(www.haedongacade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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