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의 명상 >
49재를 지내는
까닭과 자세
글 | 법현스님
무상법현(無相法顯);스님
- 서울 열린선원 선원장
- 일본 나가노 아즈미노시 금강사 주지
-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그래도,가끔> 지은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역사는 약 50억 년이라고 한다. 50억 년 전 지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우주 공간에 태어났을까?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나 천주교에서는 바이블의 기록에 따라 여호와 하나님(god)이 만들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보통 사람의 인식과 증거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으므로 초기 불교 경전에는 잘 보이지 않으나 후대의 논서(論書)에는 자연법이(自然法爾)의 법칙을 따라 홀연히 생겨난다고 말한다. 현대의 종교가 되어버린 자연과학에서는 수소(水素)와 헬륨의 혼합기체 덩어리인 태양의 내부 구조적 모순에 의한 폭발시 떨어져 나온 기체 덩어리가 우주 공간의 수증기 등 부유물(浮遊物)을 빨아들여 식으면서 굳은 것이라고 한다. 어느 설을 따르든지 처음엔 사람 등 생물이 없었다는 것을 다 긍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50억년이 지난 지금 지구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가. 우선 2022년 8월말 현재, 전 세계 인구는 77억을 헤아리고 있으며, 수 없이 많은 식물과 동물 그리고 건물과 구조물 등이 생겨났음이 그 변화의 모습이다. 사람의 평균 몸무게를 50kg이라고 가정했을 때 처음보다
50x77억=3,850억 kg이 늘어났다는 이야기이며, 다른 식물과 동물, 건물 등의 무게를 생각하면 헤아리기 힘든 천문학적인 양의 무게가 늘어났음을 짐작하게 된다. 그러면, 그 많은 것들이 존재하게 된 지금 지구의 무게와 맨 처음 지구의 무게 사이엔 어떤 변화가 있을까? 늘었을까? 줄었을까? 늘어났다면 과연 얼마나 늘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 한다면 지구의 무게에는 변화가 없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무게가 같다는 이야기이다. 지구 안에 천문학적인 숫자의 존재들이 천문학적인 무게를 가지고 새롭게 존재하고 있는데도 지구의 무게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지구 안에서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구에서 나서 죽는다는 것이다. 원소로 출발해 다시 원소가 되는 과정을 흔히 생태계의 순환(循環)라고 부르며, 순환을 불교에서 윤회(輪廻)고 하는데 순환이든 윤회든 돌고 돈다는 의미 외에 다른 것은 아니다. 사람의 존재형태는 태어나는 순간 생유(生有),살아있는 존재인 본유(本有),죽음의 순간인 사유(死有),죽은 뒤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의 존재인 중유(中有=中陰身)의 네 가지로 나눈다. 이 중에서 중유의 상태를 중음신 이라고 하며, 흔히 귀신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바로 중유이다. 이 중유의 상태에서 보통 7일 단위로 새로운 삶의 형태로 태어나게 되는데 늦어도 49일째 되는 날에는 모두 다 새 몸을 받게 되므로 49재를 지내 불보살님의 위신력을 빌어서, 이왕 태어날 존재이면, 괴로움이 적고 즐거움이 많은 존재의 세상에 태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즐거움이 극에 달하고 괴로움이 없는 이상향인 극락세게에 태어나도록 하기 위해 49재를 지내는 것이다. 단 49재는 49일 동안 지내는 제사이며, 여러 가지 여건상 49일 재에만 지내는 제사가 아닌 것이다.
"세상에 있으면서 1 백 년이나 악을 행한 사람이라도 임종 시에 염불을 하면 죽은 후에 천상에 태어난다고 했는데 나는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인도를 침략한 미란다 왕은 당시의 유명한 수행자 나가세나 스님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 의문은 불자인 우리들도 한번쯤 품어 봤음직한 것이다. 임종 시에 본인 스스로 염불을 하는 경우는 그래도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임종 후에 남이 해주는 염불도 그만한 공덕이 있는 것인가? 더구나 염불의 내용도 모르는 채, 뜻도 모르는 채 막연히 입으로만 읊어 준다고 무슨 도움이 되는 것 일까? 나가세나 스님은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왕이시여! 조약돌 한 개도 물 위에 올려놓으면 가라앉습니다. 그러나 1 백 개의 돌이라도 배 위에 올려놓으면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뜹니다. 염불의 수행은 바로 1 백 개의 돌을 뜨게 하는 배와 같습니다."
염불의 공덕으로 극락왕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치 '한 개조차 가라앉는 돌을 1 백 개라도 뜨게 하는 배' 와 같은 공덕이 있는 것이 염불이어서 죽은 후 천도도 가능한 것임을 웅변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미란다왕문경>에 실려 있다. 죽은 후 사십구재를 지내는 것도 바로 이런 공덕 때문이다. 그러면 사십구재를 보다 의미 있고 정성스럽게 지내려면 어떤 마음을 갖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첫째, 윤회를 믿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어리석은 범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 반드시 되살이 즉, 윤회하게 된다. 그 결과 윤회는 과학이요 진리라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믿어야 할 차례다. 그리고 윤회를 믿는 것은, 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이 가는 세계를 안다는 의미이지 윤회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윤회의 수레바퀴를 반드시 뛰어 넘되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또는 세 번에라도 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영가에게 법문과 가지(可持) 주력(呪力)을 들려주는 것이다. 둘째, 지극 정성으로 해야 한다. 어떤 일인들 정성을 쏟지 않아도 될 일이 있으랴만 존재의 의미를 바꾸는 천도(薦度)야말로 가장 지극히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영가의 유족이 사십구재까지 정성을 들여서 해야할 일을 우선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늘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한다. 2) <담장밖경>,<화살경>,<지장경>,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금강경> ,<법구경> 등의 경전을 독송하고, 차안에서도 독송 테이프를 들으며 장엄염불이라도 열심히 듣고 독송한다. 3) 현대인들이 잘 가는 노래방, 나이트클럽, 도박장 등의 출입을 금하고, 포커나 고스톱 같은 도박을 삼간다. 직장 회식 등 부득이한 경우에도 분위기만 만들어주고 빠지도록 한다. 4) 영가의 극락왕생과 자신의 수행 의지에 대한 내용의 발원문을 적어서 하루에 한 번씩 읽고 사십구재에 부처님 전에 올렸다가 회향(봉송)의식 때 태운다. 셋째,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 우리불자들은 어느 틈엔가 생활과 유리된 신행(信行)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법당에서도 상단의 불보살님께는 오체투지례를 올리면서도 영단의 조상님께는 유교식으로 절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자신을 대신해서 스님이 좋은 곳에 보내주느 것이 아니라 본인이 좋은 곳에 가는 것을 스님이 이끌어주고 도와주는 것이라는 것을 잊고 있다. 자신의 기도나 수행을 스님이 대신 해줄 수는 없다. 오늘날 불자들의 의식은 힌두교, 브라흐만, 기독교 성직자들이 그들의 신에게 영생을 구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지장재나 각종 재일 법회 및 49재 등 천도재에 스님은 열심히 땀을 흘리며 염불하지만 신도들은 겨우 자기 이름과 주소가 나와야 절이나 하고 불전이나 놓는 신행을 하고 있는 데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스님께 의식집을 구해서 직접 의식에 동참하여야 한다. 지장경에도 천도의 효능이 망자에게 1/7이요, 생자에게 6/7이라고 하였다. 이 뜻은 바로 재를 지내는 불자들이 재의 의미와 의식 내용을 알고 직접 참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였으니, 이를 명심 또 명심 해야 한국불교가 좋아질 것이다. 넷째, 스님은 평등(平等)염불을 넘어 공(空)염불의 참뜻을 알고 실천해야 한다. 평등염불과 공염불은 중국 운서 주굉 스님의 문집 <죽창수필>에 나오는 말이다. 평등염불은 시주 금액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정성을 들이는 것을 말하고, 공염불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공짜로도 해주는 무주상의 참염불이 라는 의미이다.(공염불을 성과 없는 일이라는 뜻으로 잘 못 사용하는 예가 있으니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공염불과 관련한 일화는 다음과 같다.
어느 과부의 꿈에 죽은 남편이 나타나 애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내 평생 닦은 바가 없어서 아직도 극락세계에 태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천도재( 度齋)를 지내주구려. 돈이 없을 터인즉 동평묘(東平廟)를 찾아가면 성의를 다할 것이오.』 시키는 대로 시주 돈을 조금 마련해서 찾아갔더니 동평묘의 주인은 아낙의 시주돈은 거들뗘 보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평소 해오던 기도를 잠시 접어두고 정성껏 천도재를 지내주었다. 그날 밤 꿈에 다시 나타난 남편이 『덕분에 음계(陰界)를 벗어났다』며 고마워했다. 이 이야기는 중국 명나라때 스님인 운서 주굉(雲棲 株宏)이 지은 <죽창수필(竹窓隨筆)>에 실려 있다. 주굉은 선승(禪僧)이면서도 염불과 방생을 적극 권장한 분으로 호는 연지(蓮池)다. 이야기 끝에 덧붙이기를 『(염불하는 ) 마음이 (돈에 관계없이) 평등함에도 공덕이 이와 같거늘 하물며 그 마음이 공(空)함에랴!』라고 하였다. 여기서 평등한 마음으로 하는 염불은 평등염불(平等念佛)이다. 시주 돈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말고 평등하게 하라는 말이다 공 한 마음으로 하는 염불은 이른바 공염불(空念佛)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공짜로 해주는 염불인 것이다. 따라서 가장 바람직한 염불이 바로 공염불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해봤자 소용없는 일을 일컬어 공염불이라 쓰고 있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이제 사십구재를 지내는 불자들이 준비해야 할 것 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는 왕생발원문을 작성하는 일이다. 둘째는 재에 동참할 인원을 점검,통보하고 , 셋째는 비용을 상의해서 전달하는 일이다. 넷째는 비누, 수건, 치약, 칫솔, 영가 옷과 고무신 등을 준비해서 스님께 드리는 일이다. 다섯째는 지금까지 입은 상복을 정갈하게 입는 것이다. 여섯째는 가능하면 법요집이나 경전 등 염불시 필요한 것을 마련하는 일이다. 일곱째는 국화 등 꽃을 준비하는 일이다. 인원을 점검하여 알리는 것은 법당을 선택하고 음식 등을 준비하는데 참고하기 위해서다. 사십구재 비용을 가지고 다투는 예가 있는데 이는 매우 잘못 된 것이다. 정성을 들이는데 정해진 값이 있을 수 없다. 부처님 당시부터의 경제 관념에 따라 1/3은 차리는데,1/3은 사찰경제에, 1/3은 스님들 보시에 쓰인다고 생각해서 스스로가 최대한의 성의를 가지고 준비한 비용을 드리고 그 범위 안에서 음식, 장엄, 법보시, 스님 초청 등을 조율할 수 있도록하는 것이 좋다. 사십구재를 제대로 갖춰서 하려면 시련, 대령, 관욕, 신중작법, 불공, 퇴공, 시식, 봉송의 여덟 단계로 진행해야 하며, 증명 법사의 법문과 병법 스님의 화청 법문이 추가된다. 이때 영가의 삼업(三業)을 깨끗이 하고, 극락세계로 가는 해탈복을 입혀 드리는 의식인 관욕에 쓰일 수건, 비누, 치약,칫솔, 고무신, 영가 옷 등을 준비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차근히 준비해서 사십구재 시작 30분 전 쯤에 절에 도착해서 다기물을 올리고 촛불을 켠다. 향을 꽂고 꽃 공양을 올리고 각 단에 삼배로 참배한 후 스님의 지시를 따르면 된다. 스님들이 불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쳐서 준비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