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글 스텔라 박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 중략…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정말 행복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 노희경,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중
지구별에서 살아온 세월이 야곰야곰 늘어나더니 어느새 내일 모레 환갑을 앞두고 있다. 나도 한때는 스무살이었던 적이 있었다. 그 시절 나는 날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 아침이면 하얀 커튼에 내리쬐는 햇살을 얼굴에 느끼면서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꿈꿨었다. 그렇게 알콩달콩 영화처럼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삶은 내게 이런 망상이 확 깨는 경험들만을 골고루 세트로 가져다주곤 했다. 그래서 나는 비교적 일찌감치 남자라는 변수로 삶이 달라질 거라는 환상을 깰 수 있었다.
그렇다고 사랑하기를 포기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내게 있어 사랑의 의미는 점차 넓어지고 깊어졌다. 대상이 이성인지 동성인지는 그 외의 다른 조건화된 내용들과 함께 그리 중요하지 않아졌다. 그리고 그 사랑이 호모 사피엔스만으로 제한되지도 않았다. 모든 생명 있는 것과 생명 없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에게까지도 내 사랑은 확대되었다. ‘사랑’의 의미도 ‘가슴떨림’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내 앞에 있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들어주고,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토닥거려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구는, 지구 안의 바다와 공기와 물은 내가 사랑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스승이었다. 모든 것을 끌어안고 판단하지 않고 보듬어주는 사랑을 지구는 온 몸으로 내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늘어 가면서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나에 대해서도 다른 존재를 대할 때처럼 내가 만들어놓은 기준, 즉 상이 없어지니 때론 엉뚱하고 민감하고 단순하고 복잡한 나에 대해 비로소 ‘그러려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를 있게 한 것은 욕망
눈앞에 펼쳐지는 만법의 실상이 공함을 깨달으며 ‘놓아야 하느니라’ 하는 마음도 일어나지 않고 자연스레 눈앞의 현실과 하나가 되면서, 나는 왜 내가 낳고 죽는 삶을 선택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를 있게 한 것은 욕망, 즉 어리석음, 무명이었다. 무명이 행을 낳았고, 행이 차례로,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병사의 순환을 연기했던 것이다.
나를 있게 한 그 근본 원인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경험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그러나 그 욕망이 과연 태워없애야 할 번뇌인가. 번뇌 즉 보리라고 했거늘, 나는 이 욕망을 어찌 다룰 것인가.
욕망은 싹을 끊어야할, 태워 없어지게 해야 할, 죽여야 할, 싸워야 할, 사라져라 해야 할 적 또는 원수가 아니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경험을 하고 싶다는 욕망은 나를 있게 한 근본 원인이니, 나는 그 목적을 다 하면 될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다시 처녀귀신이되어 사랑하지 못한 한을 풀러 머리 산발하고 하얀 소복을 입고 누군가의 무덤에 출몰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요즘 내게 있어 정념(Mindfulness)은 바로 ‘사랑하기’를 기억하는 것이다. 매순간,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도 바로 이것이다. “나는 지금 사랑하고 있는가?”
살다 보면 내게 막 대한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순간적으로 대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잠시 잊고 나에 대한 보호막을 치려 한다. 하지만 정말 찰나 사이에 곧 깨닫는다. “스텔라, 너 지금 가슴을 닫으려 하고 있어. 너는 지금 사랑하고 있는 거니?” 그러면 곧바로 보호막이 내려놔지고 가슴이 사랑으로 탄력회복 된다. 잘 안 되면 “당신이 행복하기를, 평화롭기를.” 이라는 축복의 주문을 외운다.
투탕카멘의 무덤과 심장 무게 달기 의식
최근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기획한 투탕카멘 전시회를 다녀왔다. 전시회가 시작된 날은 2022년 11월 4일로, 영국의 고고학자인 하워드 카터가 ‘왕가의 계곡’에서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한 1922년 11월 4일로부터 꼭 100년째 되는 날이었다.
실제 유물 전시는 아니었지만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마치 이집트에 있는 투탕카멘 왕의 무덤 속으로 직접 들어가 3300년 전의 유물들을 현장에서 보는 것 같은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작년 이맘 때쯤, 반고흐의 작품도 고퀄리티의 사진으로 찍어 애니메이션의 요소를 결합해 마련했던 몰입형(Immersive) 전시회가 있었는데 비슷한 컨셉이다. 금으로 만들어진 3개의 관과, 관이 들어있는 무덤의 벽화를 고스란히 재현해놓은 공간도 있었고, VR 체험을 통해 실제보다 더 생생한 가상 현실의 세계 속에서 무덤 속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도 있었다.
투탕카멘은 기원전 1332년 9살에 이집트 왕이 된 뒤 9년 뒤인 18살에 사망했다. 도굴꾼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그의 무덤과 미이라를 보며 우리는 당시 왕족들의 매장 풍습뿐만 아니라 이집트인들의 죽음, 그리고 사후세계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영혼 불멸 사상을 갖고 있던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있어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었고 죽은 자의 몸은 죽음 이후 부활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요소였다. 그들은 부활 때 필요한 시신을 보존하고자 미이라를 제작했던 것이다. 시신에 대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천착은
군사 원정 때, 전사한 사람들의 시신을 가져오려 했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죽음은 일상과의 단절도 아니었다. 사실 죽음에 대한 이런 이해는 거의 모든 인류의 공통 분모가 아닐까, 싶다. 무덤 속에 넣어준 황금 의자, 왕관, 침대, 소파, 무기를 보면 마치 망자가 무덤 속에서 살아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의 삶에 필요한 모든 소품들을 묘 속에 넣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벽에는 그의 영혼을 보호해줄 신들이 그려져 있다.
이집트 인들의 무덤은 인간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형상화했다. 인간은 육신과 영혼의 결합체, 육체를 떠난 망자의 영혼이 잘 보존된 그의 육신에 깃들 때 다시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집트인들은 인격을 가진 영혼인 ‘바(개별적 영)’가죽은 자의 몸에서 분리되면서 매일 밤 머리는 사람, 몸은 새의 모양을 가진 존재로 현현해 무덤에서 나와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새벽녘 다시 무덤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미라 얼굴에 마스크(Death Mask)를 씌운 것은 이처럼 밤 사이에 몸에서 나와 세상을 돌아다녔던 ‘바’가 자신의 육신을 잘 찾아 돌아갈 수 있도록 하
기 위해서였다.
그런가 하면 ‘카’는 ‘사후 복귀하는 본유의 근원적 생명력’을 의미한다. 이집트인들에게 ‘카’ 없이는 생명이 존재할 수 없었고, 죽음은 ‘자신의 카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카’는 ‘바’와 구별되도록 양팔을 구부려 세운 팔의 모양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장례 과정에서
는 바로 이 ‘카’를 위한 특별한 의식이 진행된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라가 완성되면 파라오의 장례식을 시작했다. 미라는 황소가 끄는 배 위에 올려졌고, 먼지를 가라앉히기 위해 우유를 뿌리는 사람이 장례 행렬을 앞장섰다. 망자가 지하세계를 흐르는 강
을 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고 믿었기에 황소가 끄는 배 위로 미라를 옮겨 실었다.
상객들은 푸른색과 회색이 도는 장례복을 입고 황소의 뒤를 따라 무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상객들의 뒤에는 죽은 사람이 무덤에서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가구, 보석 상자, 음식 등을 든 시종들이 따라갔다.
악사와 무희들은 피라미드의 앞에서 미라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미라가 도착하면 제사장은 향불이 타오르는 가운데 미라를 똑바로 세운 후 끌로 입을 여는 개구의식을 거행한다. 이집트인들은 이 개구의식을 통해 미라가 신체적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미라의 부활을 위해 가장 중요한 개구식이 끝나면 제물을 미라 앞에 놓아준 후, 준비된 석관에 미라를 넣고 석관의 문을 닫는다. 투탕카멘의 묘에도 미라와 황금 가면이 들어 있었다. 현재 이 미이라는 투탕카멘의 무덤에 보존되어 있고 황금 가면은 이집트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전시회는 여러 방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마지막의 넓은 방에는 투탕카멘의 장례식 장면에서부터 투탕카멘의 ‘카’가 심판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암무트 여신이 투탕카멘의 심장을 정의의 저울에 얹어 무게를 다는 의식을 행한다. 정의의 저울의 한 쪽에는 죽은 자의 심장이, 다른 한 쪽에는 암무트 여신의 깃털이 놓여있다. 망자의 마음이 순수하지 않아 심장이 깃털보다 무거울 경우, 암무트는 심장을 삼키거나 불타는 호수에 던져버린다. 그러면 심판을 받는 망자는 영원한 안식을 찾지 못한다. 심장이 깃털보다 가벼우면 그 망자는 드디어 오시리스와 함께 불멸을 향한 항해를 계속할 수 있다.
하트 차크라와 사랑
심장이 깃털보다 가볍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심장이라는 장기는 왜 암에 걸리지 않을까. 사람들은 왜 사랑한다는 고백을 할 때 심장 이모티콘을 날릴까. 아유르베다 전통에서는 인간들의 심장 차크라가 균형을 잃고 닫혀있을 때, 자신의 가치에 대한 판단을
스스로가 아닌 외부에 맡긴다고 한다. 이처럼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 하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며 부조화, 불균형의 상태가 된다. 살다 보면 가슴을 쓸어내리거나, 가슴이 답답해지고 후회와 답답함에 가슴을 치고, 가슴이 아프고, 가슴이 철렁하는 경우가 있다. 현재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그런 감정을 느껴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통 우리는 이처럼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고 싶어하지 않고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러한 감정이 소통되지 않게 꼭꼭 눌러둔다. 그러면 가슴 차크라는 더욱 막힌다. 그럴 때 인간은 사랑을 소유하려 하거나 물건에 대해 지나친 욕심을 갖는 등 소유욕이 강해지고, 남들을 향해 시기 질투 부러움의 감정을 일으키며, 자기 중심적인 양상을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심장을 있는 그대로 느껴주어 하트 차크라가 뚫리고 균형을 이루면, 모든 것을 향해 사랑이 흘러가도록 허용하게 된다. 그럴 때 우리 마음은 따뜻하고 편안해지고 행복해지고 가벼워진다. 내가 행복할 때 주변 사람들과도 조화롭게 어우러지고
유대감이 충만해지며 관계가 편안해지며 평화를 이뤄낸다. 또한 사랑과 관심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표현하며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은 사랑하는 것밖에 없는 것이다. 심장의 떨림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충분히 느껴주고, 이 세상 모든 것도 있는 그대로 허용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럴 때 나와 내 우주는 무한대로 확장된다.
그런 의미에서 결국 명상 수행도 사랑하는 연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움츠려들었던 심장을 다시 원상 회복하며 마음껏 느끼도록 허용하고, 그 작은 떨림도 놓치지 않고 판단을 내려놓고 그냥 알아주고 함께 해준다. 마음 밭에 어떤 우주법계가 일어났다
사라지더라도 괜찮다. 이런 것은 안 된다고 머리 젓지 않고, 이렇게 나투는구나, 정말 마음이란 아무 것도 되지 않을 수도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구나, 라고 아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바로 아는 것이 진리이다.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몰라서 나를 묶었던 자승자박의
포승줄이 본래 공함을 아는 순간, 줄은 끊을 필요도 없이 사라진다. 대자유인이 된다. 윤회의 순환에서벗어난다. 삶과 죽음을 초월한다.
그러니 오직 사랑만이 존재한다. 사랑만이 의미가 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 사랑밖에 난 모른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내 제자인 줄 알리라.”던 예수의 말이 새삼스레 가슴에 다가온다.
그래서 세상은 사랑이 없어도 나는 그저 사랑만을 선택하기로 했다. 새삼 알프레드 수자의 시가 떠오른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상처로 가슴이 닫혔을 때, 그 상처를 있는 그대로 느껴주면 가슴에 남는 것 없이 흘러간다. 우리는 타타가타, 여래가 된다. 진정한 용서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대로 그 상처를 느껴주어 이제 남아 있지 않은 것, 그래서 우리는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가슴을 갖게 된다. 하지만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사랑 없는 가슴에 어떻게 하면 사랑을 키워갈 수 있을까. 신학자 폴 틸리히는 “사랑의 첫 번째 의무는 상대방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청하며 판단하지 않고 허용해보자. 그렇게 사랑의 싹을 키워갈 때 당신의 모든 문제는 사라질 것이다. 문제는 다양할지라도 문제의 근원은 하나, 사랑하지 않음에 있다. 사랑할 때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문제까지도 사랑하고 허용하는 가운데 독자들이 체험할 기적의 순간들을 상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