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절에 즈음하여
글 진 월 스님
(북가주 고성선원 주석,미국국제불교협회 (IBAA) 이사회 부의장)
올해 계묘년의 한국 전통식 열반절(음력 이월보름)은 3월6일입니다. 남방불교권에서는 열반절을 베삭절(음력 사월보름)에 탄생일 및 성도절과 함께 기리지만, 북방전통에서는 각각 다른 날에 기념해왔으나, 불기 즉, 불멸기원은 현재 세계적으로 통일하여 함께 쓰고 있습니다. 아무튼, 한국에서는 아직도 그 전부터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열반절을 여전히 따로 기념하고 있으므로, 산승도 그 날에 즈음하여 그 의미를 되새기며 도반들과 생각을 나누어 보고자 합
니다.
‘열반절’에서, 열반은 산스크리트 니르바나(Nirvana)의 중국식 음사로서 적멸로 의역하여 쓰기도 하는 바, 고통과 번뇌의 불이 꺼진 상태를 상징하여 고요한 해탈 청안을 가리키는데, 특히 석존의 입멸을 지칭하면서, 그 날을 표시하는 줄 압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여기서의 ‘열반’은 사실 ‘반열반 (Pari-Nirvana)’의 축약한 형태로서, 이른바 무여열반 또는 완전열반을 뜻합니다. 보통 열반 자체는 수행을 통해 번뇌로부터 해탈한 상태를 가리키므로, 정
신 심리적 또는 형이상학적인 차원으로서 수행자가 그 육신이 살아있으면서도 누릴 수 있는 영적 경지이지만, 반열반이나 무여열반은 육신이 죽음으로서 몸과 마음 모든 차원의 완전한 해탈을 이룬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석존의 경우에서는, 열반은 35세 때의 성도절에 성취하였고 반열반은 80세에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북방 대승불교전통에서는 성도절(음력 섣달초여드레)과 열반절(음 이월보름)을 따로 기려오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일반 가정에서도 가족들의 부모나 조상들이 돌아가신 기일에 제사를 차려 모시고 그분들의 업적을 기억하고 추모하면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유지를 받들어 나가겠다는 다짐을 하는 등, 혈연적 자손으로서 합당한 도리를 다하는 것이 관행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봅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특별한 정치인이나 사회적 위인들의 경우에, 거의 그들의 사망 서거일을 택하여 추모 행사를 하는 것이 상식이지요. 정신적인 종교집단에서도 해당 창시자의 사망 또는 순교한 날에 교주를 추모하고 기리는 의식을 시행해 오고 있습니다. 이는 인지상정이며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인들이 교조 붓다가 가신 날을 기억하고 추모해 옴도 예외는 아니며, 금년으로 2567년을 이어오는 전통이 되었습니다. 불교도들에게 열반절은 정신적 자손으로서 우선적으로 주목하고 추념해야할 날이며 가장 진지하고 엄숙하게 보내야할 줄 압니다.
이제 석존의 열반절 상황을 전하는 <대반열반경>을 근거하여 살펴보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려합니다.
그 팔리어 번역본인 초기불전연구원 발행의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 책에는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석존께서 벨루와가마 지역에서 안거를 지내시던 가운데 병환을 겪으시고 난 다음에 시자 아난다에게 하신 말씀인데, “아난다여, 누구든지 내가 죽고 난 후에 자신을 섬으로 삼고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며, 법을 섬으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않으면서 공부짓기를 원하는 비구들은 최고 중의 최고가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로부터 우리 불교도들은 스스로를 섬과 귀의처로 삼고, 법 즉 붓다가 가르치신 진리를 섬과 귀의처로 삼으라는 유훈을 명심하고 지켜나가야 할 줄 압니다.
험난한 생사 고통의 바다에서 떠돌며 찾던 안전히 머물 곳을 만나는 기쁨과 행복을 상상해 보면, 섬의 중요성이 짐작될 것입니다.
석존께서 꾸시나가라에서 반열반에 즈음하여 하신 말씀은: “아난다여, 그런데 아마 그대들에게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버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라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난다여, 그러나 그렇게 봐서는 안된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입니다. 이로서, 붓다의 육신은 가셨어도, 그 분의 가르침인 계율과 정법 즉, 영원한 진리의 법신은 여전하므로, 그를 스승삼고 의지한다면 수행과 생활에 별문제가 없으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설사 붓다가 살아 계신다 해도 그 가르침인 계율과 교법을 지키고 실행하지 않는다면 수행과 생활에 무슨 도움과 이익이 될 것이며 반면에, 비록 붓다가 돌아가셔서 육신은 안 계신다 하여도 그 가르침대로 따라 수행하고 실천해 산다면 붓다가 생존해 계신 때와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석존께서 반열반에 드시기 직전에 하신 마지막 말씀은,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방일하지 말고 [해야할 바를 모두]성취하라” 는 것이었습니다. 스승으로서 제자들에게 최후로 남기신 유훈이며 고구정녕으로 간곡히 당부하신 줄 압니다. 그 전에 제자들에게, 혹시 아직 무엇이든 의문이 있으면 물으라고 더 없는 기회를 주셨고 아무도 더 물을 것이 없음을 아시고는, 이제 남은 일은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는 것뿐이니, 그리하여 각자 목적을 온전히 성취하라고 격려하신 부촉입니다. 오늘날의 불교도들로서는 불교 공부를 열심히 하여 그 내용을 숙지하고 성실히 정진 수행하라는 것으로 이해하고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 일반인들도 어떤 일에 방일하여 게으르면 이룰 바 없음이 엄연한데, 하물며 종교인 불교도들이 교법 신행을 소홀히 한다면 어떤 성취가 있겠습니까? 상식으로도 인과와 업보가 분명하거늘, 세월이 무상한데 귀한 인생을 수행하지 않고 방일하여 낭패하면 되겠습니까? 어쩌다 귀한 성취의 기회를 잃고 마침내 후회하지 않으려면, 항상 정신차려 끊임없이 정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앞에서 경전의 말씀을 인용하며 복습삼아, 석존의 반열반에 즈음하여 유훈처럼 언급된 중요한 부분을 일부 살펴보았습니다. 수천 년 전 인도에서의 소식들이지만 오늘날에도 생생한 스승의 제자들에 대한 연민과 통찰지의 사자후로 들려오고 아울러, 후예 자손을 염려하는 자비의 노파심이 따스하게 느껴집니다. 이제 다가오는 열반절을 맞으며, 경전에서 보이듯이 교단의 핵심인 출가수행자들이 본인의 성취를 포함하여 승단과 교단의 발전을 위해 솔선수범 수행하기 바라며, 아울러 출가 재가를 막론하고 석존을 스승 삼는 모든 이들은 각자 그분의 유지를 정성으로 받들어서, 방일하지 않고 정진하겠다고 다짐하는 고귀한 계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나무 본사 석가모니불!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