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송광사에서 송광사 TV로
송광사 알리는 연등스님
글 전현자 (본지 한국취재기자)
기자 안녕하세요? 스님!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송광사 분원인 법련사에서 뵙게 되니 반갑습니다.
송광사TV라는 유튜브 플랫폼을 주관하고 계시는데 미주현대불교 독자분들께 소개 부탁 드립니다.
연등스님 현대는 디지털 시대입니다. 송광사 수행공동체는 기존의 아날로그 영역을 존중하면서도 새롭게 열린 디지털 영역에 접근하여 송광사의 수행문화를 이 시대의 여러 대중들과 공유하려 송광사 미디어 센터를 개설하고, 그중 하나의 부문 사업으로 송광사TV 플랫폼을 열었습니다. 송광사TV는 송광사 미디어 센터의 하위 영역입니다. 송광사 미디어 센터가 더 근본적이고, 상위개념입니다. 고려시대 송광사 제1대 국사이신 보조스님의 ‘정혜결사문’‘수심결’, 제2대 국사인 진각스님의 ‘선문염송’등과 같이 과거에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문자나 기호를 사용하여 당대 송광사의 수행과 문화를 기록하고, 정리하고, 공유하고, 전승했다면, 이제 새로운 디지털 영역이 열렸기 때문에 디지털 방식으로 송광사의 여러 유형. 무형의 문화자산과 수행전통을 기록해서, 정리하고, 공유하고, 전승하는 것입니다.
기자 절에 머무는 것의 힘을 ‘송광사TV’에 기대해볼 수 있습니까?
연등스님 네. ‘송광사TV’는 송광사에 와서 머물러 수행과 기도를 직접체험하기 위해 동기를 유발하는 통
로 역할도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유튜브로 송광사를 검색해보고 ‘송광사가 갈 만하다.’ ‘갈 만하지 못하다.’를 판단합니다. 그래서 송광사TV는 송광사의 여러 유무형의 문화나 자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송광사의 수행을 가감없이 보여줌으로써 ‘송광사에 정말 가봐야겠구나.’ 라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는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전에는 송광사에 직접 올 수 있는 시간과 물리적 접근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송광사에 와서 송광사를 경험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유튜브 ‘송광사TV’ 덕분에 시공을 초월해, 심지어 외국에 살고 있어도 간접적으로나마 송광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자 절에는 훌륭한 스님이 계실 때 찾아가는 경우도 아주 많다고 생각합니다. ‘송광사’하면 그 동안 일반인들이 떠올렸던 분이 법정 스님이신데, 요즘은 ‘송광사TV’로 어떤 스님을 소개해드리고 계신지요?
연등스님 법정스님이 일반인들에게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송광사는 유구한 한국불교의 수행 전통이 중흥되고, 혁신되며 전승되는 전통 종합 수도 도량입니다. 고려시대 송광사의 제1대 국사이신 보조 지눌스님께서는 정혜결사를 통해 새롭게 송광사의 수행가풍, 그리고 더 나아가 당대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전통 불교를 혁신하고 집대성하셨습니다. 그 제자인 진각국사께서는 중국에서 펀찬된 선(禪)서적인 벽암록, 전등록 보다 더 뛰어난 선문염송을 편찬하셔서 오늘에 물려주셨습니다. 근세에는 효봉스님, 구산스님부터 현 방장이신 현봉스님에 이르기까지 한국 수행불교의 맥을 잇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가르침을 디지털적으로 다시 조명할 생각입니다.
기자 보조국께서의 깨달음 중에 2번은 경을 읽으시다 깨달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연등스님 보조 스님은 어려서 출가하셔서 경전 쪽에도 아주 밝으셨지만, 참선 수행 또한 열심히 하셔서 ‘어느 한쪽 수행만 우월하다고 고집하면 안 된다. 교선이 같이 통합되어야 하고, 근기에 따라 수행법을 택하여 수행해야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그래서 정혜결사를 결성하셨습니다. 이때 ‘정’은 참선을 의미하고, ‘혜’는 부처님의 말씀을 통해 전해진 교학적 지혜를 의미합니다. 그 두 가지가 반드시 통합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선정과 지혜, 참선과 교학을 같이 공부하고 가르치셨습니다.
기자 우리 연등 스님께서는 어떠한 이유로 출가를 하셨는지요?
연등스님 제가 대학을 다닐 때가 1980년대였습니다. 그때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암울한 정치적 사회적 억압 분위기 속에서, 저 역시 젊은 학생으로서 정말 많은 고뇌를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질풍노도의 시기였지요.
바로 옆에서 동료학생들이 시위하다 투신하고, 끌려가고, 고문당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노동 현장에 들어가 민중을 각성시켜야 한다.’ 이런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학교를 그만 두고 노동현장으로 들어가는 동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도 밤잠을 설치며 번민타가 불현듯 나와 생각이 다른 인간들과 사회에 대한 끝없는 좌절감, 증오심, 적대감, 분노심, 욕망들이 내 마음 속에 자라나 가득 채우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괴로워서 ‘다른 탈출구가 없을까?’‘ 대안이 없을까?’ ‘사회적 정의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울러 나의 마음속에 요동치는 이런 번뇌들을 같이 보살피며 아우르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전환의 시대에 기존의 사상을 가지고 해결이 안 될때 새로운 사상이 나타납니다. 아니면 기존의 사상이라도 다시 되살려 현재를 타개해나갈 새로운 비전을 얻으려 하지요. 서양사상의 급진적 이원론 사상으로 사회와 개인, 이성과 감정, 정의와 불의, 욕망과 초월 등의 이원적 대립항의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 시절, 동양사상의 전일적인, 통합적인 일원론 철학이 사회의 문제와 나의 문제를 동시에 타개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동양적 정신체계는 사유만으로는 안 되고 수신의 덕목이 반드시 들어가게 되지요. 동양 사상은 반드시 자신의 수신 혹은 수행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 되기에, 저도 그때 선배의 권유로 한국 전래의 국선도 수행을 하게 되었고, 열심히 했습니다. 동양의 수행은 직접 자신의 몸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정신과 육체의 통합 차원에서 새로운 체험을 했고, 그 수행의 직접적 체험이 저의 출가결심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출가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사회 속에 있으면서 수행자로서 사는 것이 최상이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영어 표현으로 하면 ‘In the world, But not of it.’ ‘이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그 세상 속에서 타락하지 않으며, 진흙 속의 연꽃처럼 세상에 물들지 않고 살면서 보살행을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는 명제를 시험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졸업하고 나서 1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해봤습니다. 정말 사회 속에서 살면서 수행자적으로 살 수 있는지? 그런데 그렇게 살아보니까. 제 근기, 즉 자질이 그렇게 사회생활도 하고 수행생활도 하는 건 안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혼자 되어 살고 계신 어머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어쨌든 제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까, 언제라도 출가는 할거다. 제가 이대로는 도저히 못 살겠으니까, 수행을 해야겠는데, 미뤄서는 영원히 해결 안되고, 언제라도 출가해서 수행을 하게 될 거니까, 오히려 빨리 출가해서 문제를 해결해야지 하루라도 빨리 돌아올수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동의는 안 하셨지만, 그렇게, 어느 봄날, 아직도 매서운 바람이 부는날, 어머니를 뒤로 하고 출가를 하게 됐습니다.
기자 출가의 뜻을 이루셨는지요?
연등스님 부끄럽게 아직 실현이 안 된 것 같습니다.
기자 어떤 철학자에게 질문했습니다. “What is the life’s goal?” 삶의 목표가 뭐냐고 하니까, “This is life’s goal!”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지금 이 모든 것이 다 삶의 목표인데, 삶의 목표가 어디 따로 있느냐?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연등스님 선사스님들의 선구(禪句)이긴 하지만. 영어로는 ‘This is it.’ ‘바로 이것이다.’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진리 자체는 ‘바로 이것’이고, 우리와 털끝만큼도 떨어져 있지 않은 ‘바로 이것’, ‘이때 이 자리’인데.
우리는 뭔가 다른 것이 있는 것 같아, 계속해서 무언가를 바라고, 그래서. ‘This is it’ ‘바로 이것’에서 계속 멀어져만 가고, 분리되니까 다시 ‘이것(This)’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기자 송광사TV를 시청하는 분들은 어떻게 하면 ‘This is it!’,을 실현하게 할 수 있을까요?
연등스님 저희는 송광사TV의 콘텐츠를 두 차원으로 생각했습니다. 일반 대중적인 차원과 좀 더 심도 있는 차원입니다. 그 두 가지에 우열이 있는 건 아니겠지요. 일반 대중적인 차원은 좀 더 편하게 대중들의 언어로 접근할 수 있는,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차원의 송광사 법회, 기도, 유무형 불교문화, 자연풍광 등의 차원이 있겠습니다. 그러나 조횟수는 많지 않아도, 보조스님 이래 송광사만의 수행 전통을 본격적으로 심도 있게 소개할 수 있는 법문이나 참선, 경전 강의 등 보다 심도있는 콘텐츠가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 당장은 저희 송광사TV가 시작 단계이며 경험과 장비, 그리고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우선 채널 콘텐츠를 대중적으로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송광사의 가장 중심 콘텐츠는 부처님의 지혜를 우리 삶의 지침으로 할 수 있는 부처님의 가르침, 즉 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을 전하는 것은 법문이나 경전 강의를 통해서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송광사의 역대 스승들이신 보조 스님이나 진각 스님, 효봉스님, 구산스님 등과 현 방장스님의 수행과 사상을 선양하고 대중에게 전하는 그런 콘텐츠를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송광사 미디어 센터가 시작된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송광사 현 방장 현봉 스님의 비전입니다. ‘송광사 선대 스님들의 그 불교 기록 문화를 우리 후학들이 이어야 한다’, 그것이 송광사 현 방장 스님의 숙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송광사 미디어 센터는 송광사의 수행과 불교문화를 당대의 디지털 언어로 기록하고, 공유하고, 전승하는 디지털 아카이빙(전자적 자료의 기록과 공유 그리고 전승)이 본질적 목적입니다.
기자 송광사TV를 시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연등스님 유튜브 검색창에서 ‘송광사TV’를 검색하면 됩니다. 새벽예불, 사시예불, 저녁예불을 힘들지만 매일 실시간으로 촬영 송출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존 제도권의 거대 불교 미디어 마냥 고급장비와 인력을 동원하여 잘 연출해서 예불 한편을 촬영해 그걸 반복해서 보여주면 편하겠지요. 하지만 그 영상들은 실시간이 아니므로 사람들에게 주는 현실감과 참여감의 느낌이 다를 것입니다. 그외 여러 다양한 행사와 법회도 스트리밍하며 법문의 경우는 방장 스님과 어른 스님들의 법문부터 강사 스님들의 법문까지 다양하게 송출하고 있습니다.
기자 실시간으로 영상을 통하여 같이 예불에 동참할 수도 있겠네요. 또 시차는 있겠지만 미국이나 유럽 어디에서라도 자기가 가능한 시간에 접속하여 실시간으로, 가장 최신 예불과 기도에 동참할 수 있겠네요.
연등스님 그렇습니다. 송광사에서는 한국시간으로 새벽 3시부터 도량석에 이은 새벽 예불을 시작하는데. 보통 세속에서는 일반불자가 그때 일어나서 예불 올리기는 어렵죠. 그런데 송광사TV에서 새벽 예불을 실시간 송출 방영후에는 자동적으로 유튜브에 녹화분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가령 아침 여섯 시부터 기상하여 활동을 시작하시는 분은 아침 여섯 시에 유튜브 송광사TV를 틀어보면 송광사에서 3시간 전에 했던 그날의 최신 새벽 예불이 녹화본으로 올라와 있습니다. 그러면 영상을 틀고 그날의 아침 예불을 따라 올리면 되겠지요. 미국 서부에서는 오전이고, 유럽에서는 저녁시간으로 실시간 동참하게 됩니다. 저도 미국에 있는 한국 절에서 생활해 본 경험으로
는 해외에 있는 한국 불자들이 주거 가까이에 절이 아예 없는 경우가 많고, 외국에서 정착해서 생활하지만 종교적 정서는 한국의 불교전통에 친근하기 때문에 그런 분들이 송광사의 예불 영상을 송광사TV를 통해 보시고 너무 좋고 감사하다는 반응들을 보여주십니다. 원각경에 “일심이 청정하면 국토가 청정하다.” 즉 한 마음이 청정하면 온 법계가 청정하다는 표현같이, 단 한 분이라도 송광사TV를 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고, 삶의 중심을 다잡고, 삶에서 부처님이 가르켜주신 길로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는다면 저희들로서는 정말 감사합니다.
기자 스님께서 출가하신 뜻을 송광사TV를 통해서 이미 이루고 계신 것 같은데요.
연등스님 본사인 송광사 수선사 선원에서 지내게 되어 무능력, 무자격인 제가 이렇게 ‘송광사 미디어 센터’, ‘송광사TV’를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저를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리입니다. 미래비전을 가지고 디지털 친화적이며 유능한 젊은 스님이 이 일을 조속히 이어주기를 고대할 뿐입니다.
기자 그 유명한, 불상 대신 거울 하나만 있는 송광사 선원에서 수행하신 스님은 그동안 어떤 수행을
주로 하셨나요?
연등스님 저는 처음부터 불교를 접하진 않았습니다. 어릴때 장자나 노자같은 종교적, 사상적 서적을 어깨너머로 읽었습니다. 그러다 사회와 정치의 문제와 더불어 자신의 내면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인생을 근본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개혁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감정과 욕망, 분노, 좌절, 나아가 내 자신의 마음, 삶의 목적, 삶의 본질에 대한 의문, 인간관계, 이런 것들까지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던 차에 수행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송광사로 출가해서는 행자생활을 마치고 한국 전통불교를 배우고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학창시
절 문화 인류학을 전공했는데, 사회문화 현상을 분석하는데 중요한 개념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가 속한 문화에 갇힌 수인(囚人)이다.’ 자기가 속한 특정 문화 속에 살게 되면, 그 특정 문화라는 감옥 속에 갇혀서 일정한 사고방식의 틀에 갇혀 그것을 절대진리시하고 상대적인 시각은 갖지 못한다는 말이지요. 제가 절집에 들어와서 생활해 보니 ‘이건 내가 한국불교라는 감옥 속에 갇힌 수인이 되어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반 한국인들이 문화의 수인이 되어 한국 문화에 매몰되어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는 한국 불교적 고정관념과 문화에
만 갇혀있어서는 내가 한국불교를 제대로 경험하고 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깥에 가서 봐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저는 출가 당시의 한국 불교에 만족을 못했기 때문에, 다른 수행 전통도 기웃거려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바깥의 이런 저런 다른 불교 수행 전통들을 견문하는 정도의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출발은 선불교였고 개인적으로 결국에는 선불교로 회향하는 것이 저의 수행목표였습니다. 제가 다른 불교 수행전통들을 견문하고 나서 내린 결론은 ‘대승불교가 다른 불교전통에 비하여 그 폭과 깊이에 있어서 역시 심오현묘, 광대무변하다’ 였습니다. .저는 출발도 선이었고, 회향도 선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본사인 송광사 선원에 돌아와서 참선 정진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하는 선이란 것은 단순히 옛날 조사 스님들의 어구만을 외워서 하는 그런 선이 아닙니다. 기존에 너무 당연시 여겨왔던 관념들을 혁신적으로 타파하는 것, 그것이 진짜 선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의 정신은 개별적인 화두를 타파하고 조사 어구에 투철한 것을 넘어서서 기존의 낡은 관념을 타파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지금 현재, 이때 이 자리에 필요한 것들을 해나가는 것, 혁신해나가는 것이 역시 참다운 선의 정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자 만법은 하나로 통한다는 가르침도 있지만 스님의 말씀은 선사의 선의 예찬 같습니다. 그러하신 스님은 누구십니까?
연등스님 저는 저입니다!
일시: 2022년 12월 4일
장소: 서울 법련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