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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현불연재물

[미주현대불교 2023. 3월호] 스텔라의 마음공부-스텔라박

작성자무량수|작성시간23.05.17|조회수93 목록 댓글 1

 

 

당신의 19호실은 어디일까
두려움을 넘어 나를 만나는 현존의 공간

 

<19호실로 가다>의 책 표지

 스텔라 박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19호실이 있다.
아무리 가까워도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그런 방,
아무리 편해져도 초대할 수 없는 그런방이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To Room Nineteen)> 중


 

드라마에서 소개받은 단편소설

 

넷플릭스에 뭐 볼만한 드라마가 있나, 이것 저것을 클릭하다가 예쁜 고양이 썸네일이 있는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발견했다. 순전히 고양이가 예뻐서 선택한 드라마였는데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잡은 격으로 수채화처럼 맑고 예쁜 스토리를 만났고, 무엇보다 주인공들로부터 굵직한 감동을 주는 책 한권을 소개받았다.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윤지호(정소민 분)와 그녀의 고등학교 시절 단짝 친구인 호랑, 수지 등 세 여자의 서로 다른 삶과 사랑을 보여준다. ‘사랑’을 꿈꾸던 지호는 방송 보조 작가로 일하고 있다. 결혼을 꿈꾸던 호랑은 공대를 졸업한 프로그래머 남친과 티격태격하며 결혼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전진하려한다. 성공적인 커리어 우먼을 꿈꾸던 수지는 대기업 대리로 일하면서 이런 꼴 저런 꼴을 다 이겨내고 있다. 젊은 세대들의 직업, 연애, 결혼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던 드라마였는데 내가 철딱서니가 없어서였을까. 나는 드라마 주인공들과 나의 사고 체계에서 별 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여 주인공인 윤지호는 방송 보조작가로 일하다가 머물 곳이 없어져 고양이 집사 업무를 담당하는 대신 렌트비가 저렴한 집의 룸메이트로 들어간다. 집주인인 남세희(이민기 분)는 오래전 상처로 가슴을 닫고 사는 남자이지만 둘 사이에는 서서히 사랑이 싹튼다. 서로의 마음을 열어갈 무렵, 지호는 세희에게 <19호실로 가다(To Room Nineteen)>라는 소설을 소개하고, 그 책에서 나오는 구절을 들려준다.

 

지호 : “한 부부가 있는데요. 완벽한 부부예요. 남들이 보기에도 부족함 없고 자신들도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다복하고 화목한 가정이요. 그런데 아내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어해요.
그래서 남편이 2층에 아내의 방을 만들어줘요. ‘어머니의 방’ 이라고 이름 붙여서. 그런데 어느새 그 방에도 아이들이 드나들게 되고 가족들도 출입하면서 그 방 역시 또 하나의 거실이 되어버려요.”

 

<19호실로 가다>를 소개한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중 한 장면

 

 

세희 : “그래서 그 아내는 어떻게 하나요?”
지호 : “그래서 그 아내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싸구려 호텔에 가족들 몰래 방을 하나 구해요. 그리고 가끔 몇 시간씩 그 방에 혼자 머물러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방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끼면서.”
세희 : “그 방은 완벽하게 혼자인 자신만의 공간이니까요. 결혼을 한다는 건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이 없어진다는 거니까, 타인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죠, 충분히. 좋은 얘기네요.”

 

 

구차한 년보다는 미친 년이 낫다


<19호실로 가다> 라는 소설에서 여주인공 수전은 결국 몰래 얻은 자신의 방을 남편에게 들키는데 자신의 심리를 남편에게 이해시킬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남편에게 자신이 외도를 하고 있다고 거짓말하는 편을 택한다. 아마도 지호는 <19호실로 가다>를 친구들에게도 소개했던 것 같다. 지호는 친구 수지에게 여자주인공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여성으로서 하지도 않은 외도를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할만큼 그 방을 들키지 않는 게 중요했던 걸까. 하지만 친구 수지는 이에 대해 지호와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

 

수지 : “난 이해되는데? 그 방은 남들이 아는 순간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방이니까. (수지가 책 내용을 그대로 읽는다) ‘지난 1년간 난 매우 지저분한 한 호텔 방에서 낮시간을 모두 보내왔어요. 그곳에 있으면 행복해요. 난 사실 그곳 없이는 존재하지 않아요.’
자신이 그렇게 말할 때 남편이 얼마나 무서워할까, 그녀는 깨달았다’… 그러니까 그냥, 이해받지 못하는 걸 설명하는 것보다 미친 년 되는 게 더 쉬우니까. 사실 세상은 그게 더 편할 때가 많아. 구차한 년보다 미친 년이 낫지.”

 

나 역시 그런 느낌을 가질 때가 있었다. “나는 이렇게 느껴서 그렇게 한 거야.” 라고 말한다. 그런데 말을 하면서도 내 말이 상대에게 착착 감겨 녹아드는 것이 아니라, 얼굴에 잘 안 먹는 로션처럼 겉도는 게 느껴진다. 그럴 때는 말을 하다가도 다시 그 말을 삼키고 싶어진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얼마나 말하지 않고도 모든 것이 이해되는, 용납되는, 허용되는 관계를 원하는가. 남에게서 그 힘든 것을 원하던 나는 애저녁에 그런 희망을 접었다. 그리고 생각해봤다.
도대체 나를 남으로부터 이해받아야 하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내가 이해해주면 안 되나. 그래서 나는 차라리 그 편을 택했다. 그래서 남들이 나를 미친 년이라 여겨도 웃을 수 있게 됐다.
드라마 대사로 <19호실로 가다>의 책 내용이 결말까지 모두 드러났지만 왠지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 나는 책을 구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예사롭지 않은 작품에 완전히 매혹됐다.

 

 

최고령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

 

<19호실로 가다> 라는 놀라운 작품을 쓴 이는 최고령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이다. 시인 이기철은 '첫 줄이 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다'는 시를 썼었다. 도리스 레싱은 첫 줄로 독자들을 한 방 먹이는 명문의 소설을 써냈다. “이것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This is a story, I suppose, about a failure in intelligence.)” 라는 첫 문장을 보며 나는 KO패를 당한 권투선수처럼 망연자실 그 문장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녀가 선택한 ‘지성’이라는 단어는 그냥 전체를 아는 통찰(Insight)가 아니라, 인간들의 파편적이고 얄팍한 지식 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수전과 매튜 롤링스 부부는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도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리치먼드에 있는 정원
딸린 주택, 아이들, 살림 잘 하는 가정부까지, 그런데 그들의 그림 같던 삶에 금이 간다. 남편이 어느 파티에 갔다
가 예쁜 아가씨를 집에 데려다주는 길에 함께 자고 왔다는 고백을 듣고서부터이다. 자신이 지성적인 여성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붙들고 있는 그녀는 남편을 용서하려 하지만 그 고백 이후 그들의 관계는 결코 전과 같아질 수 없다.

 

  <19호실로 가다>의 작가 도리스 레싱   <19호실로 가다>의 한 페이지

 

모든 조건화로부터 자유로워지는 19호실

 

작가가 소설 속에서 여주인공의 필요를 빌어 계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생각이라는 방해물이 감히 쳐들어오지
못하는 텅빈 진공, 생각이 모두 사라진 적멸, 현재에서 마음이 떠나 있을 때 찾아오는 두려움이 사라진 상태, 즉 완전한 현존, 뭐 그런 것들이 아닐까 싶다. 수전 롤링스는 그녀에게 조건지어진 역할, 페르소나 등 모든 것들을 벗어버리고 그녀 자신으로 존재하고자, 자신만의 공간을 구한다. 그녀가 한나절을 빌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기만 하는 프레드 호텔 19호실은 소설에서의 묘사를 보자면 마치 한국의 싸구려 모텔 방 같아 보인다. 방금 한 커플이 정사를 나누고 떠난, 값싸고 천박한 공간, 하지만 그런 것들은 그녀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평범한 익명의 장소 안에서 그녀는 비로소 혼자가 되며 삶에의 모든 압박이 사라짐을 느낀다. 아무도 그녀를 알지 못하고 신경도 쓰지 않는 곳에 철저히 혼자가 되어 누리는 절대적 고독은 곧 절대적 자유였다.
방에 들어가면 그녀는 눈을 감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의자에 앉아 있는다. 충분히 쉬고 나면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가서 양팔을 쭉 뻗고 미소를 지으며 밖을 내다본다. 익명의 존재가 된 이 순간, 그녀는 거리를 내려다보며 지나가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느낀다. 그리고 건물이나 하늘을 생전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머리 속이 하얀 백지 같다.
그녀가 19호실에서 하는 것은 명상에 다름 아니다. 명상은 우리들이 하는 그 수많은 활동 가운데 또 하나를 더하는 게 아니다. 명상은 ‘함(Doing)’을 멈추는 것이다. 그녀는 19호실에서 완전히 멈춘다. 명상 후에는 평소 그냥 지나쳤던 들꽃 한 송이에도 새삼스레 눈길이 가고,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게 된다. 수전 역시 멈춤 후에 거리의 사람들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건물과 하늘을 처음 보는 것 같다고 느낀다. 모두 끊어내고 멈추고 텅빈 상태로 존재했던 그녀는 일주일에 며칠간, 하루 중 몇 시간을 온전한 수행자로 존재했던 것이다.
현존을 방해하는 폭력성에 대한 저항 그런데 남성성은, 테스토스테론은 그녀를 페르소나를 모두 벗어던진, 공으로 존재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매튜는 탐정을 고용해 그의 아내가 싸구려 호텔 19호실에 머물다 간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남편이 그 방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자 수전은 더 이상 19호실에서 창의적인 황홀경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이름 붙일 수 없는 초조감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그 방이 없으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 사
람”이라고까지 느낀다.
그녀는 철저하게 혼자 되는 공간이 필요한 자신의 내면을 남편에게 설명하는 대신, 마이클 플린트라는 가상의 애인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이 남편 보소. 자기도 필이라는 애인이 있다며 함께 아내에게 더블 데이트를 하자고 제안하는 게 아닌가. 가상의 애인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었을까, 아니면 아이들도, 집도, 남편도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상실감이었을까, 그녀는 자신을 절대 고독 안에 보호하고자 결국 19호실에서 자살을 택한다.

 

 

우리 모두 19호실이 필요하다

칼릴 지브란과 칼릴 지브란의 책 <광인>의 표지

 

지난 1월, 세 사람과 함께 여행을 떠났었다. 내 생애에 누군가와 함께 떠난 드문 여행이었다. 혼자서하는 여행은 왠지 춥고 배고프고 힘들고 외롭고 청승맞다. 하지만 나는 평생 거의 혼자서 여행을 했었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만의 여행이 오히려 정겹다.
타인과 함께 한 여행이었지만 참가자 대부분이 수행자였기 때문인지, 누구 하나 꼭 이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 모든 순간이 순조롭게 넘어갔다. 함께 하는 여행도 괜찮구나, 싶었다.
따뜻했고, 배불렀고, 편안했고, 즐거웠고 행복했다.
함께 있으면서 따로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뭔가 절실한, 수전 롤링스가 멀쩡한 집을 놔두고 싸구려 호텔 방을 빌려서라도 경험하고자 했던 에센
스가 그리웠다. 아마도 그것은 아메리카 원주민 청년들이 통과의례를 할 때, 광야에서 혼자 며칠 밤낮을 혼자 머물며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들려 오는 목소리를 들으려는 애씀없는 애씀에 대한 그리움 때
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난 왜 내가 지금껏 혼자 있었는지를 깨닫는다. 혼자 있어서 외롭지만, 난 이 고독을 너무도 필요로 하고, 좋아하고, 감사해한다. 내가 나일 수 있는 이 공간과 시간이라면 낡았더라도, 빛이 나지 않
아도 괜찮다.
나는 나의 19호실에서 철저히 나로 존재한다. 나는 이 공간에서 착하기만 하지 않아도 된다. 한쪽만을 인정할 때, 억눌린 다른 면은 분노하며 괴물이 된다.
그리고 그 괴물은 밖에서도 괴물을 찾으려 한다. 내게 덧씌워진 페르소나를 완전히 내려놓고 완전히 나로 존재하는 것은 어쩌면 칼릴 지브란의 <광인>에서 표현한 가면들을 모두 도둑맞은 것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가면을 쓰지 않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본 한 아이가 “미친 사람”이라고 외친다. 고개를 들어 아이를 바라보던 그의 맨 얼굴에 태어나 처음으로 태양이 입을 맞추고, 그의 영혼은 태양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오르면서 더 이상 가면을 원치 않게 되었다. 황홀감에 젖어 그는 외친다. "내 가면을 훔쳐간 자에게 축복이 있으라!"
19호실에 고요히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우리들은 가면이 벗겨지는 경험을 하고, 이내 태양과 입을 맞추며 황홀감에 젖는다. 나는 이제 물리적 19호실이 아닌, 19호실의 에센스를 매일 아침 방석 위에서 경험한다. 방석 위에서 눈을 감고 앉아 아무 것도 하지 않을 때 내 가면은 모두 사라지고, 내 맨 얼굴은 태양과 입을 맞추며 황홀감에 젖는다. 당신이 어느 곳에서건 19호실의 평화를, 텅빔을, 공적함을, 자유를, 무한가능성을, 삶을, 죽음을 경험하기를…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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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금바위 | 작성시간 23.05.17 불법은 초월적이며 현실적이라 생각합니다
    공간적인 19호실에서 부처님 발명하신
    무시간 무공간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법당에
    안주하심 축하드립니다
    청화스님 스승님
    금타대화상상님
    금강심론과
    보리방편문수행=자리행
    금타 아미타불정토만다라 수행=100% 이타행 보현행원
    순간에서 3분사이에
    공무변처정 경험으로
    초일월의 금색광명
    발견 발명할수 있읍니다
    분주한 미국생활에서
    재가불자에 의하여
    ROCHESTER NY LAKE ONTARIO
    호수가 금타만다라연구소
    방문하면 경험할수 있읍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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