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7년
부처님 오신날 봉축사
글 원 공 스님
원공스님은 1990년 미국에 입국한 이후
뉴욕 한마음선원에서 수행과 포교를 하고 있다.
영원한 오늘 부처님 오신날.
오늘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날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하나의 큰 뜻을 가지고 오셨다고합니다.
우리에게 모든 고에서 벗어나 영원한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합니다.
그 가르침은 고,집,멸,도-사성제와 바르게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른 말하고, 바르게 행위하고,바르게 생활하고,바르게 노력하고,바른 알차리고,바르게 집중하는-팔정도가 중심입니다. 그리고 계(바른 행위), 정(바른선정), 혜(바른 지혜)의 삼학이 세 발달린 솥의 세발 처럼 완전한 수행의 요소로서 갖추어진 가르침입니다. 진리에 이르는 바르고 완전한 수행의 기준을 세워주신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어떤 것에도 비할 바가 없는 보배입니다. 알 수 없는 낯선 길을 힘들게 걸어본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귀한지 그가 걸어본 만큼 느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만나기 어려운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만난 고귀한 인연에 감사하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거룩하신 뜻을 찬탄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항상 열반을 향해 있습니다.열반은 모든 존재의 고향이며,실상이며, 일체의 고에서 벗어난 영원한 자유와 행복이며, 모든 것이 성취된 세계라고합니다. 싯다르타 라는 이름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는 뜻을 가진것처럼,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에게 모든 괴로움이 사라지고 모든 갈망이 다이루어진 완전한 자유를 성취한 위없는 진리에 이르는 길을 스스로의 삶으로 보여주시고 제자들을 통해서 가르침을 실천하면 누구나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셨습니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오직 존귀하니
온통 괴로움에 휩싸인 삼계
내 마땅히 안온하게 하리라.
부처님께서 태어나 오른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말씀하셨다는 이 게송은 부처님 오신 뜻을 간단하고 분명하게 표현하고있으며, 여기에 모든 가르침의 알맹이가 담겨있습니다.
첫 번째는 세상을 바로 보신 것입니다. 온세상의중생들은 괴로움에 빠져있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실천하기위해서는 괴로움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선지식들께서는 삶에서 고를 만났을 때에 발심하셨습니다. 고에 대한 자각이 깊어지면 고에서 벗어남을 간절히 구하게 됩니다. 고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정진이며 그 정진은 열반을 향해있고 열반에 이르러서야 온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열반의 선언은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오직 존귀하다”.에 담겨있습니다. 열반은 고에서의 벗어남 해탈이며,시작도 끝도 없이 본래 있는 나의 근본이며, 모든 존재의 바탕(뿌리)이며, 변함없는 영원한 진리의 한 이름입니다.
괴로움은 나를 알지못하는 데서 생겨나는 환상과 같은 것이라 합니다.열반은 실재이고 이 몸과 현상세계는 참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데서 고가 생겨난다고합니다. 그러므로 금강경에서 일체의 물질세계(일체유위법)는 환상같고, 물거품같고, 이슬같고,번개같다. (여몽환포령 여로역여전)하여서 고의 원인이되는 현상세계와 육신의 나를 바로 알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선언하신 ‘나’는 싯다르타라는 육신의 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중에 만난 웃다까라마뿟다 선인에게 “분별하는 번뇌가 있으면 해탈이 아니다. ‘나’라는 관념을 남김 없이 모두 없애야만 진정한 해탈이라 할 수 있다.”하셨습니다. 또, 보리수 아래에서 “고통스런 생사의 굴레에서 끊임없이 윤회하며 중생들이 벗어나지 못하는 까닭은 바로 번뇌 때문이구나.”것을 아셨고, “이것은 번뇌다. 이것은 번뇌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번뇌의 사라짐이다. 이것은 번뇌의 사라짐에 이르는 길이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마침내 모든 번뇌에서 해탈했다는 것을 스스로 아셨습니다.
그리고 선언하셨습니다. “나는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였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깊은 근원적인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 우주법계에 부처님과 비교할 수 있는 분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비할 바 없는 위없는 진리의 가르침은 우리가 쉽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물러서는 마음을 내지말고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부처님 오신 뜻이 오늘에 살아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 실천의 중심은 ‘나라는 관념’을 알아차리고, 놓아버리고, 벗어나,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바르게 보고 바르게 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하면서 기본이 되는 것은 고와 고의 원인 그리고 고의 사라짐에 이르는 길입니다. 고는 번뇌로 부터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번뇌는 ‘나라는 생각’에서 나오며, 번뇌를 놓아버리고 우리의 본성(주인공)이 드러나 주인이 되게하는 것이 수행의 요체입니다. 번뇌는 ‘나라는 관념’을 바탕으로 분별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므로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어나는 생각을 붙들지않고 스스로 흘러가도록 놓아 버려야 합니다. 그 생각들은 업식의 작용이기 때문에 업식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으로 무심히 바라보는 정진을 이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업식은 “나라는 생각”이 뿌리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하므로 내가 죽는 공부라합니다. 그래서 일상 생활 속에서 나를 내세우지않고 사는 법을 수행해야 합니다. 나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마음의 작용과 몸의 움직임을 주의깊게 관찰하는 노력이 쌓이면서 차츰 “나라는 생각’의 작용을 느끼고 관찰하게되며, 자신이 고정관념 속에 빠져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해탈의 가능성이 싹트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가르침을 배운다고 해도 실제 우리의 일상 수행은 단순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해야 더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자기의 수행 방편에 집중하는 것이며,모든 수행에는 자기의 마음과 몸의 작용을 분별하지 않고 지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의 고향인 열반은 우리의 몸과 생각에서 벗어나 모습없는 근본 중심으로 있는 나의 주인공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나’가 중심이 되어 사는 삶에서 ‘주인공이 중심’이 되어 사는 삶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이것이 자유인의 삶입니다.
주인으로 사는 사람은, ‘육신의 나’가 주인되어 번뇌 속에 애쓰는 것은 중생의 삶인줄 알아서, 주인공에 믿고 맡겨 그 중심에서 모든 것을 나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무량공덕을 나투는 공부이며, 나의 중심에서 일체의 공덕을 자재하게 나툴 때에 우리는 자유인이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영원한 오늘 부처님 오신 날.
부처님께서 오신 뜻을 실천하며 사는 불자되길 발원하며,
모든 사람들이 참주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이 세상이 불국토 되길 발원합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