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방세계 Ⅱ_현대 세계불교⑩
태국불교의
승가권력구조
승려 수 40만의 단일 승가, 승왕(종정)의 권위와 존엄 절대적
글 이치란 박사 (원응 보검)
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아시아불교평화회의(ABCP 본부 몽골) 한국회장
국제불교연맹 이사(IBC 본부 인도)
동방불교대학 전 총장
한국불교신문 전 주필
현: 해동불교대학장 / 강원불교대학장
WFB 태국본부 전집행이사 / 일붕신문 상임논설위원
매일종교신문 기고가 / 땅끝 어룡도 해수관세음보살 도량 당제산 여의암 회주
다나TV 영어경전 강의 / 세계불교 TV에서 ‘세계불교를 가다’ 소개
세계불교도 대회(WFB)에서 태국 왕실 고위급 관리가 왕의 메시지를 대독하고 있다.
승가(僧伽)도 하나의 단체이고 구성원이 있기에 관리와 운영 그리고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선 조직과 기구구성은 필수적이다. 승가란 조직체는 불교 그 자체의 몸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승가를 말하지 않고 불교의 정체성을 논할 수가 없다. 물론 불교란 교단의 구성은 출가 승가와 재가 신도들로 구성되지만, 그러나 불교의 실체는 승가이다.
승가는 부처님 시대부터 이어져 온 불교의 전통이요 역사이다. 근대에 들어와서 출가에 의한 승가만이 아닌 재가형 프로테스탄트적인 변용된 승가도 출현했다. 하지만, 이런 개신(改新)의 재가형(在家型)승가는 아직 보편적으로 수용되지는 않지만, 일본에서는 보편화되어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실험은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 몇몇의 신(新) 불교 단체가 출현해서 100년 70년의 역사가 되었고, 삭발염의(削髮染衣=머리를 깎고 먹물 옷을 입은)의 전통종단에 서도 독신승려와 가정을 거느리는 대처형으로 분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제강점기의 강요에 의한 것이지만,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이 문제가 공식적으로 합의되고 수용된 적이 없으며, 현재도 이런 현상은 현재진행중이다. 이제 태국승가로 눈을 돌려보자.
태국은 100% 비구 승가이다. 비구승가란 독신 출가승들로 구성된 승가공동체를 의미한다. 태국의 헌법에도 규정되어 있을 정도로 이 비구의 신분은 독신으로 되어 있으며, 가정을 거느릴 수가 없다. 가정을 원하면 받았던 계(戒)를 반납하는 환계(還戒=가사를 반납하고 세속으로 돌아가는 것)를 할 수 있도록 승가법에서는 문을 열어 놓고 있다. 이 문제는 태국 왕실과의 특수 관계가 고려되었다고 보는데, 특히 현짜끄리왕조의 제4대 왕인 라마 4세에서 찾고 있다.
그는 왕자신분일 때, 정치적 이유로 무려 27년간이나 비구로서의 생활을 했는데, 왕위를 계승할 마땅한 후계자를 찾지 못하자, 할 수 없이 비구의 신분이었던 왕자를 왕위를 잇도록 해서 가사를 벗게 했다.
이로써 태국승가에서는 적어도 두 번 정도는 환계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고 있다. 이것은 전적으로 라마 4세로부터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제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태국 사회의 독특한 문화로 이해해야 하고, 불교전통은 아니란 점을 말해두고 싶다.
승가최고회의는 태국불교승가의 최고집행기구이다. 태국승가의 궁극적인 권력기구이다. 여기서 결정된 사항은 그대로 태국승가에 적용되며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1962년에 개정된 승가법 에 의해서 1963년 설치되었다. 태국의 전역에서 보수. 진보를 초월해서 가장 존경받고 영향력 있는 원로스님 가운데서 선출되어 태국승가의 상징인 상가라자(승왕=종정)를 자문하여, 의사결정을 하며 결정된 사항에 대한 집행권을 갖는다. 여기서 승가최고회의에 대한 구체적인 전모를 소개할 수는 없는 일이고, 다만 승가최고회의의 대표인 상가라자에 대해서 잠깐 일별을 해보자.
태국 상가라자는 17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역사적으로 현재 방콕 짜끄리 왕조 이전인 아유타야 왕조나 수코타이 왕조 시대에도 승가의 수장은 존재해 왔지만, 현재 태국 승가의 수장인 상가라자는 짜끄리 왕조와 함께하고 있다.
태국불교에서 이런 승가의 하이라키(hierarchy=계층제)를 먼저 이해하지 않고서, 태국불교를 이해 하려고 한다면 답이 풀리지가 않는다. 이런 승가의 하이라키 배후에는 왕실이 깊이 관여되어 있다. 필자가 태국불교와 관계를 맺은 지가 어언 40여년의 성상이 흘러가고 있다. 태국불교의 모든 면에서 이런 구조와 원칙이 적용되고 있음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태국이 입헌군주국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태국과 태국불교의 상관관계이며, 태국불교의 현실이다. 다만 보편적 불교도의 관점에서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는 별개의 관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같은 상좌부 권이지만,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태국보다는 스리랑카가 훨씬 더 민주적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스리랑카는 국회에 까지 진출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갖고 있을 정도이다.
태국불교 승가는 비구들에게 세속적 권력에의 참여나 그 어떤 활동도 용납하지 않는다. 승가 자체 내에서의 수행과 교육에만 전념하고, 신도들에게 종교적 역할만 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비구는 정신적 지도자로서 스스로 수행하고 교육활동에 종사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종교인으로서의 역할과 기능이다.
이런 관점에서 불교개혁활동이란 승가 내부에서의 자체 정화나 불교원칙주의에 대한 철저함이 있을 뿐이다. 사회개혁이나 현실정치문제에 관여하고 개입한다는 것은 허용이 안 된다. 승가 내의 하이라키에 의한 위계질서가 분명하다. 그런가하면 태국불교는 율장(律藏)에 의한 서열이 확실하기에 승가 내에서의 자율통제가 저절로 되고 있다.
태국승가의 최고권위를 자랑하는 최고승가회의와 여기서 선출되어서 형식상 행정수반인 수상의 제청으로 왕으로부터 임명받은 승왕은 종신제이다. 승왕은 우리의 종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지만, 그 의미는 사뭇 다르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에서의 종정은 한 종단의 수장이지만, 한국불교 전체 승가의 대표는 아닌 반면에 태국 같은 경우에는 태국 전체 승가의 대표성을 갖는 수장이다. 태국은 승가가 분열되지 않고 단일 승가이기에 그 권위와 존엄은 가히 절대적이다.
태국의 승려 수는 거의 4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비구가 30만 명, 사미승이 10만 여명이다. 이밖에도 준 비구니에 해당하는 매치가 있는데, 8계나 10 계 정도를 지키면서 사원에서 독신생활을 하면서 사원에서의 적당한 업무를 보고 있다. 여신도 보다는 위 단계로서 비구니의 역할과 기능을 일정부분 담당한다. 불교전통에서는 사마네리(sāmaṇerī=사미니)에 해당하는 정도이다.
전통적으로 상좌부에서는 비구니 계맥이 단절되어서, 비구니 승가가 존재하지 않았는데, 태국승가에서는 1928년 태국불교 승가의 수장인 승왕의 발의에 의해서 법적으로 보장받는 매치가 탄생하게 되어서 지금에 이르기 까지 승가의 출가 구성원으로서 존재하고 있다. 미얀마도 태국과 마찬가지로 준 비구니인 띨라신이 존재한다. 반면에 스리랑카에서는 과감한 개혁으로, 비구니 승가를 부활시켰는데, 1996년 인도의 바라나시 녹야원에서 11명의 여성들에게 비구니 계를 수여했다. 그런데 이 비구니 계맥은 한국 비구니 계맥을 이어 간 것이다. 지금 스리랑카에는 3천 명 정도의 비구니들이 활동하고 있다. 다시 태국의 상가라자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현재 태국승가의 최고 정신적 행정적 수장인 승왕은 1782년부터 제1대를 시작, 현재 20대에 이르고 있다. 다만 20대 승왕은 승가최고회의에서 선출은 되었지만, 아직 수상이 왕에게 제청을 하지 않는 상태이고 더욱이 왕이 서거해서 임명이 늦춰지고 있는 실정이다. 19대 승왕은 썸뎃 프라 냐나상와라(1913년2013년)인데, 1989년에 임명되어 2013년 100세로 입적할 때 까지 24년간 승왕의 지위에 있었다. 적어도 승왕으로 선출되어 수상의 제청과 왕의 임명을 받기까지는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첫째는 비구로서의 모든 면에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조건을 충족해야 하고, 1단계는 최고승가회의에서 선출되어야 하고, 수상의 제청과 왕의 임명을 받기까지에는 정치적인 문제도 고려되어야 하며, 국민들의 정서와 존경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왕의 의중에 크게 좌우된다고 하겠다.
현재 20대 승왕은 승가최고회의에서 선출되었으나 수상이 정치적인 이유로 왕에게 제청하지 않고 홀딩하고 있다가 왕이 서거한 상태라서, 승왕 임명은 차기 왕이 즉위해야만 가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