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미현불연재물

[미주현대불교 2023. 7월호] 무여 큰 스님 인터뷰 -글 전현자

작성자무량수|작성시간23.08.30|조회수145 목록 댓글 0

수행과 포교하는 사부대중

무여 큰 스님 인터뷰

 전현자 (본지 한국취재기자)

 

 

 

 

미주현대불교 한국주재 기자로 활동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 있고 보람된 것들이 많았습니다. 독자 분들을 대신하여 큰스님들을 친견하며 인터뷰 해온 것은 큰 영광이었습니다. 특히 무여 큰스님을 친견 드리며, 큰스님의 자비심을 통하여 부처님의 가피를 경험 할 수 있었습니다.

3배 올리고 앉으니 큰스님께서 미주현대불교에 대하여 “어떻게 시작 하였는가”와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인데 어떻게 해결하는가?” 등을 물으셨습니다.
답을 들으신 다음 큰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다른 뜻이 아니라 그렇게 오래도록 잡지 출판을 이어 온 것에는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유지 해 온 발행인께 특별히 감사드리고 발행인을 도와 지금까지 잡지가 출판되도록 도움 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부처님의 법음을 전하길 부탁합니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기자 큰스님! 화두가 무엇이기에 화두로 깨달음이 이루어집니까?

 

큰스님 화두란 쉽게 말해서 참선자가 깨달음을 이룰 때까지 애써서 닦아야 할 문제 중의 문제로 아주 큰 문제가 화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자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문제가 없기 때문에 못 깨닫습니까?

 

큰스님 깨닫는 것은 화두가 있어야만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화두가 없어도 깨친 분이 있습니다. 화두라는 매개체 없이 깨친 분도 있지만 화두는 깨닫는 것에 가장 적당한 문제 중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조사 스님들이 평생 갈고 닦은 노하우를 담은 말씀 중의 말씀이 화두라 할 수 있습니다.

 

기자 과거 조사스님께서 화두를 주실 때는 그때 그 제자에게 맞는 화두를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요?

 

큰스님 네, 맞습니다.

 

기자 그러면 800년 정도 전에 중국 선사들께서 그때 제자들을 깨닫게 하려 준 화두를 지금도 한국 간화선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에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큰스님 한국의 스님들 중에서도 중국의 조사 스님처럼 지금에 맞게 화두를 주어서 깨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옛 관습을 계승해서 지금도 옛 화두이지만 선별해서 참구자에게 맞게 가장 적당한 화두를 주는 경우도 있고요. 옛것이나 지금 것이나 심오한 내용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용만 갖추어지면 옛것이나 지금 것은 같은 것입니다.

 

기자 가르침 감사드립니다. 불교는 진리를 깨치는 것으로, 부처님께서 진리를 깨우치시어 가르침 주시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샛별을 보고 깨치셨다고 전해져 오는 것은 그때에 샛별을 보지 않으셨거나 다른 것을 보시고서도 깨달으실 때가 되어 깨달으실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라고 이해합니다. 스님의 고견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큰스님 그것은 맞습니다. 깨달을 상황이 다 되어서 동쪽의 샛별을 보신 것 뿐 만 아니라 대상과 기회는 다를 수 있지만 깨달을 수 있는 내용을 갖추었으면 깨닫게 됩니다. 시기나 유발된 것이 다를 뿐 깨달음은 갖추면 누구나 깨닫게 됩니다.

 

기자 스님께서 화두가 아니어도 깨달을 수 있다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도 화두로 깨치신 것은 아닌 것인데 한국불교에서는 유독 간화선을 주창하는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큰스님 깨달음은 누구나 어떤 이유나 방법으로 가능하겠으나 한국불교에서 조사선 간화선에 대한 지극한 말씀을 그대로 따르는 것은 옛 조사스님들의 말씀이 가장 적당하기 때문입니다.
옛 스님들의 말씀이 알맞고 적당하기 때문에 지금도 그 방법이나 내용이 고스라니 유효합니다. 참선공부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물에 빠지고 떨어져 자연스럽게 옛 스님들의 말씀을 소중히 여기며 공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탈피하고 얼마든지 새로운 말씀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로 길을 가려는 사람이 서울을 한 번도 가지 않은 상태에서 교통수단까지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서울을 찾아 이곳저곳 다니면서 가야 하지만 서울까지 길이 잘 나 있는 지금은 가기가 아주 편하고 쉽습니다. 그렇듯이 공부도 새로운 방법으로 새 길을 찾는 것이 알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 길을 만들어가고 새 길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하다보면 시간이 그 만큼 걸릴 수도 있고, 괴로움과 어려움이 더해져서 공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옛 선사들의 가르침을 고스란히 알면서 공부해 가는 것이 좋은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에 굳이 다른 길을 찾을 필요가 없겠습니다. 그러나 간화선만이 유일한 깨달음의 길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자 깨달음에는 옛것도 지금 것도 없다 하시는 큰 스님의 가르침을 잘 알겠습니다.
큰스님께서 말씀하신 “옛것이어도 지금의 한국불교에 맞다”는 가르침은 귀하고 옳으신 말씀이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큰스님! 그러나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간화선 화두 들기가 매우 어렵다 합니다. 특히 불교를 모르는 일반인들은 이해가 안 된다고, 알려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가르쳐 주시기 위한 방안을 창안 하실 뜻이 있으신지요?

 

큰스님 공부를 하다보면 내 스스로 새 길을 만들 수 있어요. 만들 수 있으나 그래도 그 길을 유지해 와서 그 길에 대해서는 환히 아는 것이기에 아는 그 길을 의지하고 가까이 하는 것이 좋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그 사람들에게 적절한 것을 찾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접목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근본 바탕은 간화선이지만 현대적인 사람들의 문화와 생각들에 맞도록 개선하는 것이지요. 나무로 치자면 뿌리나 큰 줄기는 간화선으로 두고 잔가지는 현대적인 것으로 자라게 할 수가 있습니다.

 

 

기자 큰스님! 한국의 젊은이들이 괴롭고 불행하다고 합니다. 괴로움으로 인하여 어떤 젊은이들은 게임중독이나 또 다른 중독들에 빠지기도 한다합니다.
큰스님께서 덜 괴로울 수 있고 안 괴로울 수 있도록 간화선 수행방법으로 가르침을 주신다면 어떤 화두나 어떤 방법으로 가르침 주실 것인지요?

 

큰스님 어떤 세상이라도 어떤 나라라도 나이를 막론하고 괴로움을 겪습니다. 오랜 옛날 보다는 점점 일상생활 하는 것은 비교 할 수 없이 편리해졌고 여러 가지로 여유로워 졌습니다.
그럼에도 인생은 어쩌면 비틀거리면서 괴로워하면서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살아가는 것이라 말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보면 일제 침략을 벗어나 해방이 되었어도 국가적으로 여러 어려움이 있었고, 6.25전쟁이란 참담한 비극과 그 이후 휴전 상태에서 생긴 70여년의 상황이 있습니다.
특히 지형적으로 매우 특이하고 어려운 상황에 있고, 정치적 사상적 상황도 어려운 입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작은 나라에서 살아내며 경제와 문화를 이만큼 이루어 내느라 생긴 여러 가지를 심도 있게 종합적으로 성찰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대한민국은 늘 불안하고 힘든 상황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인들의 사고의 밑바탕에 있는 어려움의 요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적인, 국가적인 문제가 불행을 야기하는 간접적인 원인이 되는 면까지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려움을 풀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업으로 쌓여진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한국의 역사적 실상이라 할 수 있지요. 문제를 직시하면 문제에서 벗어 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낼 수 있겠지요. 국가적 문제는 국가적으로, 개인의 문
제는 개인적으로 풀어 나가는 것에 간화선 수행이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이 뭐꼬 화두가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뭐꼬?
나는 누구인가를 참구하는 것은 시대나 상황을 초월하여 언제, 누구라도 화두로 참구하여 근본으로 돌아가 본성을 놓침으로 인하여 생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 있을 것입니다.

 

기자 자유롭게 해주는 가르침이어 큰스님께서는 화두가 괴로움을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다. 깨달을 수 있다 하십니다. 화두가 어려운 사람은 어떤 수행을 하면 좋겠습니까?

 

큰스님 불교는 간화선뿐만 아니라 염불을 하던 주력을 하던 길은 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출발은 다를 지라도, 한참 들어가 화두에 빠지고 염불, 주력에 빠지면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해집니다. 거기서 더 들어가면 행복을 느낍니다. 그야말로 최상의 진정한 행복을 느낍니다.
아미타불을 신봉하고 염불하면 그 곳이 극락세계 입니다. 부처님 말씀에 서쪽으로 10만의 국토를 지나면 서방정토 극락세계가 있다고 말씀하셨다지만 우리 마음속에 극락세계가 이미 있습니다. 서방 극락세계나 마음의 극락세계는 같은 곳이지요. 그 극락세계는 느낌에 따라서 고요하고 편안한 느낌도 있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깊은 평온함이 경험되며 이 이상의 느낌은 있을 수 없는 최상의 기쁨을 경험함으로써 이 수행을 그만 둘 수가 없는 상태가 경험됩니다. 누구든 화두를 참구하여 경험하게 되는 최상의 상태의 것은 비길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수행하는 것은, 공부 하는 사람에 따라서 차이와 격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처음 하는 사람은 염불을 하고 염불에서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마치, 낚시를 던져 고기를 낚듯이 화두로써 참구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때면 화두가 보다 쉽게 들리고 공부를 제대로 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람에 따라서 근기에 다라서 화두로 바로 들어 갈 수도 있지만 징검다리 같은 방편을 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단계를 거쳐서 하는 것이지요.

 

기자 큰스님! 화두 하나를 타파하면 1700공안이 다 타파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화두타파에도 단계가 있다는 스승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화두에 따라 깨침이 달라 향상구와 향상구 아님이 있다고 합니다. 화두에 따라 어떤 화두는 타파 되었어도 또 다른 높은 수준의 화두가 타파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큰스님 화두에도 차별이 있습니까?

 

큰스님 깨침은 하나입니다. 확철대오 하나입니다. 깨침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이 뒷산을 예를 들면 50부 70부 100부 능선에서 바라보는 시야가 다릅니다. 50이던 70이던 100부던 거기서 보면 그 시야가 전부이고 최고입니다. 그 단계를 즉 50부를 70부를 100부 정상으로 보는 수행자도 있습니다. 그 경우에 그 자체를 깨침으로 보는데 그것은 올바른 깨침이 아닙니다. 즉 안목이 열리긴 열렸지만 근본적으로 다 열린 것은 아니지요. 안목이 열린 정도가 아닌 깨달음을 증득하면 그 깨달음은 하나입니다.
어느 쪽으로 올라가던 각기 오른 분상에서는 분명 산 아래 경관과는 다르나 그렇다 해서 산 정상은 아닙니다. 어느 쪽으로 오르던 산 정상은 오직 하나인 산 정상 인 것처럼 완전한 깨달음은 하나입니다.

 

기자 화두에 따라 50. 70, 100으로 깨침이 다를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아니면 화두 하나로 다 깨칠 수 있다는 것입니까?

 

큰스님 확실한 화두이면 화두 하나로 깨치고 전부를 깨치는 것입니다. 자기 깜냥이 50, 70 일 때 50,70도 깨달음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이것이 깨달음인가 하는 착각 속에 50, 70을 100으로 착각 할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기자 큰스님! 간화선 수행자들께서 보시공양을 받으실 때 공양 올리는 사람에게는 무엇을 주시는지요?

 

큰스님 물을 한 모금만 마셔도 그것에 적당한 나름의 느낌이 옵니다. 간화선 수행을 잘 하고 있는 수행자가 깨쳤다면 깨침 자체가 큰 보시입니다. 그 깨침으로 보시한 분에게 이미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보시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기자 큰스님의 가르침에 숙연함이 느껴집니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간화선 수행자들께서 보시자만이 아니라 일반 사회에는 어떻게 이바지 할 수 있으신지요?

 

큰스님 예를 들면 만약 어떤 아버지가 큰 부자가 되면 돈 많은 아버지가 그 돈을 자식, 가정에 안 쓰고 누구에게 쓰겠습니까?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뉴욕에 좋은 집도 사줄 수 있고 프랑스에도 사주어 가족들이 행복하게 여유롭게 살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것처럼 여유가 있으면 쓰게 됩니다. 가족은 물론 사회 국가에도 저절로 큰일을 하게 되고 좋은 일을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수행이 되면 수행의 힘은 저절로 나누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깨침을 이루실 때도 부처님만을 위한 것이 아니셨던 것처럼 깨치시어 어떻게 가르쳐 줄 수 있을 까 생각하시다가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어이 중생들이 깨닫도록 하신 것을 잘 새겨볼 일입니다.

 

기자 큰스님! 스님은 누구십니까?

 

큰스님 누구신가 묻는 그 놈 일세!

 

 

일시 및 장소
2023년 4월 27일 경상북도 봉화 축서사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