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의 마음 공부
찾으라, 찾을 것이니…
수불스님과 함께 한 간화선 공부
글 스텔라 박
화두를 타파하여 깨치게 되면, 마치 꿈속에서 깨어난 것과 같다. 자기의 본래면목을 깨달으면 온갖 경계에 걸림이 없는 정신적 자유를 알게 된다. 돈오를 체험하고 나면 상대적인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어떤 경계를 만나더라도 갈등 없이 또렷하게 된다.
-수불스님-
LA안국선원에서의 간화선 공부
수불스님이 이끄는 간화선(看話禪)공부가 지난 4월 23일부터 일주일간 LA안국선원에서 펼쳐졌다.
나는 LA안국선원의 회원들과 함께 이번 행사를 위한 홍보를 맡았었다. 신문 광고에 사용될 문구를 작성하고 SNS에 올릴 홍보물을 제작하는 일이었는데, 이 준비과정을 함께 하면서 LA안국선원 회원들의 수불스님을 향한 존경과 사랑에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공부를 마치고 나서야 나는 스님을 향한 그들의 경애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나를 진정으로 아는 것이거늘, 우리는 사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이 중요한 것을 평생 미룬다. 어디 바쁘다는 핑계 뿐일까. 마야의 세상에서 펼쳐지는 경험들을 실재로 여기는 우리들의 오랜 습은 이런 중요한 공부를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로 여길 뿐 진지하게 탐구할 생각을 않는다.
선지식을 만나 진정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은 온 천하를 얻는 일이다. 100만달러를 줄까, 아니면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알겠는가, 선택하라면 나는 당연히 후자를 택할 것이다. 내가 진정 누구인지를 안다는 것만큼 중요한 일대사는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온 천하를 얻는 인연을 제공해주신 선지식에게 나의 시간과 돈 등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선뜻 내어놓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거저 주었으니, 거저 받으리라
그래서 안국선원의 회원들은 수불스님이 간화선 공부를 마련하고자 LA에 오신다고 했을 때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내놓았다.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는 한 거사는 통역을 하기 위해 휴가를 내어 LA를 찾았다. 불교방송의 <마음공부 시리즈>로 얼굴이 잘 알려진 김홍근 교수, 한국 안국선원의 신도회장과 임원들도 스님과 함께 한국에서부터 LA를 찾았
다. LA안국선원의 회원들은 만사 제쳐두고 일주일동안 공양간에서 맛난 음식을 준비했고 공부하는 이들을 위해 차와 간식까지 세심하게 챙겨주었다.
그동안 늘 고엥카 명상센터가 무료로 안거를 제공하고 안거에 참여한 사람들의 보시로 잘 운영되는 것을 부러워만 했었는데 수불스님과 그 제자들 역시 이에 못지 않은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공부는 100퍼센트 무료로 진행됐다. 일주일 동안 50명이 넘는 대중들이 선원에서 먹고 자기 위해 들어갈 비용이 한두 푼이 아니었을텐데 무료로 진행한 수불스님과 LA안국선원 신도들에게 큰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공부 후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감사한 마음에 자진해서 지갑을 열게 되었다. 거저 주면 거저 받는 경제 시스템을 체험하면서 우리는 이곳에 발 붙이고 살면서도 천상세계에 사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수불스님과의 인연
내가 수불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2018년, UCLA에서 열렸던 간화선 학술대회 때였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초기 불교의 위빠사나 수행만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유일한 수행법이라고 여겼었던 나는 간화선 학술대회를 접하면서 이미 약발 떨어진,붓다 가르침의 원음과는 거리가 먼, 한국식 퓨전 수행법에 대한 집착으로 참 많은 돈을 투자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LA에 왔던 안국선원 신도들, 그리고 LA안국선원의 신도들은 마치 선지식인 수불스님과의 공부만이 유일한 공부인 것처럼 얘기했었고 그럴수록 수불스님에 대한 나의 저항감은 커져만 같다. 그래도 도대체 무슨 반찬이 있기에 저처럼 확신을 가지며 얘기를 하는 걸까, 궁금한 마음이 일기는 했었다.
이왕 아침에 하는 정진, LA안국선원에 나가 하려고 몇 차례 전화를 했지만 인연이 아니었는지 연결이 되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팬데믹 기간 동안, 구글 알고리즘이 내게 가져다 준 동영상은 김홍근 교수의 <마음공부 시리즈>였다. 김교수는 나를 마음공부로 이끌었던 에크하르트 톨레, 바이런 케이티, 마이클 싱어 등 서구의 영성지도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강의에 포함했다. 김교수의 강의에 매료된 나는 "견성 체험을 했을 때 빨리 선지식을 찾으라"는 그의 강의 내용을 듣고 여기 저기 수소문하여 김교수에게 이메일을 썼다.
김홍근 교수, 버스웰 교수의 스승
김교수는 생판 모르는 어떤 여인의 자다 봉창 두드리는 이메일에 정성껏, 그러나 단도직입적으로 답장을 해주었다. 나는 그의 영적 여정을 도와준 선지식이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했고 여러 웹사이트를 찾아본 결과, 그 주인공이 바로 수불스님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돈을 뿌려가며 약빨 떨어진 간화선을 홍보하는 한가한 분으로 여겼던 수불스님이 김교수님의 선지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궁금증이 발동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스승인 걸까.
그리고 지난 해 UCLA를 은퇴한 로버트 버스웰 교수를 인터뷰했을 때 또 한 차례 수불스님 이야기를 들었다. 로버트 버스웰 교수와 그의 아내인 크리스티나 버스웰 교수 부부는 수불스님과 함께 간화선 공부를 했던 이들로, 내게 꼭 인연이 닿아 간화선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간화선은 중국과 한국에서나 하고 있는, 본래 불교와는 거리가 먼 수행법 아니냐는 나의 질문에 대해 버스웰 교수는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 덕에 한국은 송나라 시절에 했던, 매우 깊고 보수적인 좌선 수행, 화두 수행, 선 수행의 오랜 전통이 고스란히 유지되어 아직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답변을 해주었다.
위빠사나 수행을 했었고, 대학 교수로 재직했던 그의 입에서 나온 간화선과 수불스님에 대한 찬미는 나로 하여금 더욱 이게 무엇인지를 파고 들게 했다. 버스웰 교수는 간화선 수행에 대해 “‘이 뭐꼬?’ 등의 화두를 들고 깊은 질문을 하기 위해 필요한 집중 상태는 완전한 자나 상태와 같으며, 화두에 집중함으로써 집중력과 사마디를 성취할 수 있고 이에 더해 통찰(Insight)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간화선에 대한 책에도 대충 이와 같은 구절들이 써 있다. 그런 책을 볼 때마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명상에 대한 지나치게 일반적인 묘사 같다고 느꼈던 버스웰 교수의 설명, 그리고 책 구절들이 공부를 마치고 나서는 구구절절 진실로 다가왔다.
“이 뭐꼬?”
간화선 공부가 시작된 첫날, 스님은 참가자들을 모아놓고 둘째 손가락을 구부리시며 “무엇이 이 손가락을 이렇게 구부리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시며 답을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답이 없는 것을 가지고 골탕먹이는 것은 아니고, 답이 분명히 있다고 하셨다.
나는 평소 꾸준히 명상을 해서인지 이내 화두에 걸려들었다. 밥을 먹을 때도, 걸을 때도, 샤워를 할 때도, 오직 그 답이 무엇인지를 찾을 뿐이었다. 하지만 막막했다. 그래서 목구멍에 무언가가 걸린 것 같고, 가슴이 답답했다. 하지만 평소 해왔던 마인드풀니스 수행 덕에 나는 이내 몸과 연결되어 몸의 감각들을 살피고, 몸의 긴장을 내려놓았다.
첫번째 질의응답 시간, 나는 현재 내가 느끼는 바들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다. 스님은 그렇게 답답함을 느낄 때, 몸의 긴장을 내려놓는 대신, 끝까지 밀어붙이라고 말씀하셨다.
참가자 중 한 사람이 통역을 하던 거사에게 당신도 답을 찾았었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수년 전 공부에 참가해서 답을 찾았다는 것이다.
나와 똑같은 보통 사람인 그가 답을 찾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에서는 일종의 분심이 일었다. 아니, 저 사람도 찾았다는데, 그 말은 정말 답이 있다는 얘기잖아. 찾아보자. 찾아. 찾아. 어디 있어? 찾아라.
나는 그 순간 끝까지 밀어붙였다. 밖에서는 그 어디에도 답이 없었다. 그렇다면? 찾는 자 안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그러자 갑자기 머리가 뻥 뚫리며 하늘과 직접 만나는 것 같은 시원함이 찾아왔다. 그 순간 나는 비로서 나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보게 되었다. 갑자기 온 천하가 내가 나라고 여기고 있었던 이 몸과 마음을 보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온 천
하가 바로 나임을 알게 되었다. 말 그대로 유리병 속에 담겼던 작은 물이 나라고 여기던 상태에서부터 나와 바다 물과 합일하는 경험이요, 풍선 속에 담겨져 있던 공기가 나라고 여기다가 대기와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나를 경험하고자 이제까지 나라고 여기던 나
(The Subject of Experience)와, 그것이 경험하는 세상(The Object of Experience)을 분리했던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경험은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현상일 뿐이었다. 그것의 내용이 어떻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 내용들의 변화의 물결이 고요히 존재하는 나를 알게 해줄 뿐이다.
마인드풀니스 수행으로 얻는 ‘통찰(Insight)’의 상태에 대해 간화선에서는 ‘본성을 본다’라고 표현한다. 간화선으로 창조되는 상태는 자연스러운 알아차림(Natural Awareness)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주변 환경에 대한 자연적인 깨어남, 인식, 즉 통찰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손을 들어 답을 찾았다고 말했다. 공부 시작한지 하루 만이었다. 스님은 대중 앞으로 나오라고 하셔서 지금 어떤 느낌인지를 말하라고 하셨다. 나는 머리가 뻥 뚫린 것 같고, 모든 것과의 합일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나는 또한 그동안 내가 간화선에 대해 가졌던 편견과 판단에 대해서도 돌아보았다. 간화선과 한국 선사들의 언어는 너무 친절하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았었다. 한국어를 사용하면서도 선사들의 법문을 들으면 “도대체 뭔 얘기하는 거야.” 싶을 때가 많았었다. 그런데 그 이해하기 어려운 법문들, 수수께끼 같고 신비한 표현들이 일순간 완벽하게 이해되었다. 그리고 세수하다가 코만지는 것처럼 쉽다는 말이 바로 이 말이구나, 싶었다.
이어 나는 2층에 마련된 공간으로 초대되어 스님과 검증 문답을 가졌다. 또 한 미국인 참가자 역시 비슷한 체험을 하고 2층에 올라왔다. 그녀의 얼굴 역시 환하게 밝아져 있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나는 화두 참구 후, 답을 찾았을 때, 마태복음 7장 7-8절 말씀을 떠올렸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그런데 우리는 구하지 않는다. 찾지 않는다.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왜냐? 절실하지 않다. 관심이 없다. 먹고 사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 먹고 사는 이
주인공에 대해서는 아무런 궁금증을 갖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은 지극히 불교적이다.
나는 너무 빨리, 너무쉽게, 어이없게 답을 찾아버려 싱겁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그동안 얼마나 절실하게 답을 찾아왔는지를 안다. 나는 평생을 “이뭐꼬?” 화두를 들고 살아왔었다.
이 시대의 깨어 있는 선지식, 수불스님
어쩌면 그렇게도 절실하게 구할 때, 결국 나인 우주는 내게 선지식을 보내주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제자의 견성에 별 도움을 주지 않는 것 같은 선지식의 역할은 왜 그렇게도 중요한 것일까? 그리고 왜 수불스님은 이 시대의 깨어 있는 선지식으로 추앙받고 있을까?
선지식은 이미 간화선 참구로 답을 찾은 스승이다.
자신의 체험이 없으면서 제자들을 탄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는 죽어 있는 화두도 화산처럼 뜨겁게 타오르게, 살아 있게 만들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체험했기에 제자들이 힘들어 그만두려 할 때 조금만 더 밀어붙이라고 용기를 내게 만들고, 분심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는 이미 많은 제자들을 그렇게 탄생시켰다.
수불스님은 이번에 간화선을 지도하시기 위해 일주일여 여정으로 LA를 찾으셨다. 돈 들여, 시간 들여, 발품 팔아가며 LA까지 오셔서 돈 한푼 받지 않고 공부시켜주고, 새벽까지 공부 잘 하고 있나 점검하며, 조는 놈 있으면 “할” 하며 깨우기도 하시고, 기본도 안 된 질문에도 모두 인내심을 갖고 답변해주셨다.
나는 수불스님에게서 고통받는 중생을 향한 엄청나게 큰 사랑을 보았다. 결국 나인 이 세상 모든 존재들을 고통에서 건지려 하는 보디사트바의 큰 마음이 아니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공부를 모두 마치고 법회 후 가졌던 마지막 설법 시간, 나는 참가자들에게 수불스님의 커다란 사랑에 함께 감사하는 박수를 보내드리자고 제안했다. 다음 번 간화
선 공부가 펼쳐진다면 나는 아마 공양간이든, 통역이든, 주차 관리든 도움 준다는 마음 없이 도울 것이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낼 것이다.
화두를 참구(參究)하고서 답을 찾은 후, 나는 그냥 진정한 나로 존재하며 앉아 있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삶은 이제 더 이상 작은 내가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펼쳐지는 현상을 통해 나를 알며 나로 존재할 뿐이다.
수불스님은 내게 우주를 준 분이다.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에 삼배를 올린다.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
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
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
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