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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현불연재물

[미주현대불교 2023. 8월호] 고요한소리 회주 활성 큰스님! /전현자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3.12.08|조회수375 목록 댓글 0

 

고요한소리 회주
활성 큰스님 !

 

 

 전현자 (본지 한국취재기자)

 

 

 

기자           큰스님, 인터뷰 허락에 진정으로 감사드리며 영광입니다.
사단법인 고요한소리를 창립하신 뜻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활성 스님   〈고요한소리〉를 하게 된 배경에는 역사가 있어요. 출가 전에는 불교라는 종교가 있다는 정도로만 알았고, 불교 관련 책이라고는 일본어에서 우리말로 번역한 을 몇 권 읽은 정도로 불교를 몰랐습니다.
기자            불교를 잘 모르셨는데 어떻게 스님이 되셨는지요? 뿐만 아니라 〈고요한소리〉까지 설립하게 되셨는지요?
활성 스님    출가하기 전에는 인생이 험난했지요. 4.19와 5.16을 학창시절에 겪었고 6.25 전쟁까지 경험해야 했던 인생이었으니 말이요. 학창시절은 그래도 괜찮았는데 졸업 후 사회생활이 어렵더라고요.
그때 나는 스스로를 사회에 대한 적응력이 약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사회가 나와는 너무 안 맞는다고 생각했지요. 오만한 사고방식이었다고 나중에 깨달았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군대 제대한 뒤 출가 때까지 10년간 직장 생활하는 동안 직장을 열 번 바꿨어요. 출판사, 무역회사, 심지어는 친구하고 가발 공장까지 했으니 직업으로는 안정을 찾을 수 없었지요. 시대적 상황과 친구들로 인해, 직장이었던 ‘청맥’이라는 잡지사 때문에 중앙정보부에도 세 번 불려갔으니까 말이요.
기자             스님께 맞지 않는 사회를 떠나시려 출가하셨습니까?
활성 스님    세상 풍파를 더 많이 겪다 결국 출가를 하게 됐지요. 독서 신문사에 근무한 어느 날 통도사 극락암에 가게 되었어요. 그곳에서 경봉 큰스님을 뵙게 되었지요. 경봉 큰스님께서 부산에서 온 젊은 남녀들에게 법문을 하고 계셨는데 명정 스님이 그 방으로 나를 밀어 넣어서 뵙게 되었어요. 난생처음 간 절에서 경봉 큰스님을 처음 뵌 것이지요. 경봉 큰스님께서 “이름이 뭐꼬?” 물으셔서 “구 동태. ‘동녘 동’,‘클 태’ 입니다.” 했지요. 스님께서 “와 동태고?” 하시기에 “동, 서가 따로 있습니까?”라고 답하자 경봉큰스님께서 눈을 크게 뜨시며 다시 “왜 동태고?” 물으셨는데 ‘큰 것과 작은 것이 있습니까?’라고 답하려
다가 싱겁게 생각되고, 멋쩍어서 그냥 웃어버렸어요. 그랬더니 “대답할 만한데 왜 안 하노? 여기 앉아라.” 하셨지요. 그날부터 경봉 큰스님의 각별한 배려가 시작됐어요.
기자 “동, 서가 따로 있습니까?”라는 답을 하셨다니 놀랍습니다. 어떤 경지에서 나온 답인지 매우 궁금합니다.
활성 스님 동, 서라는 상대 분별이 어디 있으며, 있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관점이었겠지요. 선지禪智가 조금 발동한 것 같아요. 선禪을 알았던 것도 아닌데, 그날 부터 극락암에 일주일을 머물렀어요. 머무는 동안 경봉 큰스님께서 엄청난 사랑을 주셨지요. 아침마다 포행하실 때는 나를 데리고 산내를 돌아다니셨지요. 암자가 여러 개 있었는데 그 암자를 다 구경시켜주시고. 특이했던 것은 수행처인 토굴을 지어놓으시고 아란냐arañña라고 부르시며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이었지요. 아란냐는 빠알리어로 한적한 수행 처를 말하지요. 그곳에 머물 사람을 기다리신 지가 10년이라 하셨습니다. 머무는 일주일 동안에 일들이 많았어요. 그중 한가지는 암자의 주지 스님을 도감 스님이라 불렀는데, 명정 스님께서 도감직을 맡고 계셨지요. 경봉 큰스님께서 명정 스님께 “방이 있나?” 물으셨고 명정스님께서 “방이 없습니다.” 답하니, 경봉 큰스님께서 “그럼 니 방을 주고 니는 뒷방에 머물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절에 간 청년이 소위 주지스님 방에서 일주일을 지낸 것입니다. 절에서 지내는 법도를 모르니 예불도 안 하고 자고 싶은 대로 자고, 먹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지냈지요. 경봉큰스님께서 한참 법문을 하실 때는 일요일마다 부산에서 천 명이 넘는 대중이 와서 절이 넘쳐났답니다. 마침 내가 절에 간 때는 결재 중이라 빈 방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누각에도 꽉 차고 극락암 역사상 최고로 성황을 이룬 때였다 했습니다.
기자 주어진 일 없이 하루도 아니고 일주일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활성 스님 참선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니 그저 지낸 것이요. 공양간이 어딘지도 모르고, 대중이 어떻게 밥 먹는 줄도 모르니 그냥 방에 있었는데 나를 불러내 공양간에서 먹게 한 것이 아니고, 나이는 나보다 어린 스님들이 밥상을 가져다주어 먹었습니다.
출가한 뒤에는 그 스님들이 나의 사형님들이 되었지만요. 그때 나는 당연한 것인 줄 알고 앉아서 받아먹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지만, 밥을 먹고 나면 경봉 큰스님께서 제 방으로 오셨어요. 방 앞에서 “이리 나오게.” 하시면 나가서 스님을 따라 다녔지요. 산내 구경을 다 시켜주셨는데 하루는 토굴에 가자며 아란냐에 데리고 가셨어요. 제법 잘 지어진
이층집이어서 이렇게 잘 지어진 집이 무슨 토굴인가? 그 정도 생각밖에 못했어요. 나중에 아란냐를 만드신 내력을 알게 되었지만, 일주일을 잘 지내고 집으로 돌아와 직장을 다녔지요. 출가 할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기에 당연한 것이었지요.
기자 스님, 출가는 언제 하셨는지요?
활성 스님 경봉 큰스님 뵌 것이 가장 큰 계기가 되었지만, 출가를 하게 된 또 다른 중요한 계기가 있었어요. 산중에서 맑은 공기 마시며 절집에서 지내다 세상에 나오니까 세상이 참 재밌더라고요. 그런 느낌으로 지내던 어느 날, 내가 고등학교를 부산에서 나왔는데, 고등학교 동창들이 모이는 아지트가 있었어요. 어느 날 아지트에 갔더니, 친구들이 바둑을 두며 놀고 있더라고요. 나도 그때 바둑을 조금 배우던 중이라 같이 바둑을 두고 있는데 검사를 하고 있던 친구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반갑게 맞이해 인사를 나누고 “어쩐 일이냐?” 물으니 “내가 검사 생활을 꽤 하면서 지방을 전전했잖아. 부산에서 광주, 그러다 또 다른 곳으로. 이곳저곳 발령받아 다니다 보니 가족들이 고생이 많아. 특히 아이들이 광주에서 부산말을 하니까 따돌림 당하기도 하는 등 고생이 많았어.”라고 했어요. 그런데 드디어 부산에 발령을 받고 아이들도 고향에 왔으니까 기를 펴고 살게 되었다면서 가족과 함께 광안리 해수욕장에 가서 놀았다고 했어요.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 준 다음 저녁이 되어 집에 데려다주고,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바둑 두려고 온 것이라고 말을 이어 갔지요. 그리고 하는 말이 “검사로서 서울에서 일하게 되면 여러 가지로 기회가 많아서 서울로 가길 바래왔고 마침 기회가 생겼는데 서울로 가면 애들이 얼마나 고생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어렵지만 애들을 위해서 부산에 좀 더 있어야겠다고 사양을 했어.”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들은 친구
들이 모두 “야, 너 철들었다.”라고 칭찬해주었습니다. 그 친구와 바둑을 두고 서울에 왔는데, 며칠 뒤 아침 신문 상단에 ‘검사 일가 화재로 전원 사망’이라고 쓰여 있었어요. 예감이 이상해서 읽어보니, 내 친구 검사 가족이었어요. 불이 난 저녁 이 친구가 술 한잔 하고 집에 들어와서 거실의 소파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다가 졸았고, 손에 있던 담배가 떨어져 카페트에 불이 붙어버린 거요. 연기 때문에 잠에서 깨어보니 거실에 불이 나서 현관으로는 나가지 못하고, 가족들을 모두 안방으로 피신시켰대요. 그리고 친구가 창문을 열었더니 불이 난 것을 알고 사람들이 아파트 아래에 이불을 깔아 놓고 뛰어내리라 했다는 거
요. 이 친구가 자기 손으로 애들을 하나, 하나 이불쪽으로 던졌다고 해요. 마누라도 뛰어내리고 자기도 뛰어내리고 시골에서 올라와서 기거하던 동생도 뛰어내리고...., 그렇게 다 죽은 거지요. 그 기사를 읽은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았지요. 허무하고, 비참하고,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그때 경봉 큰스님의 여러 가지 이야기도 생각났어요. 절에 있을 때 경봉 큰스님께서 내게 “한 생 안 난 셈 쳐라!”라는 말씀을 주셨어요. 그 말씀은 출가를 하란 뜻이었던 것 같아요.
기자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죽음을 경험해도 잠시 힘들어하다 마는데 물론 경봉 큰스님의 영향이 크셨지만 친구의 죽음에 출가하신 우리 스님은 참 특별하십니다. 출가하실 때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활성 스님 남동생이 있었지만 일찍 죽어 내가 우리 집안에 3대 독자였어요. 부모님께서 연로하셔서 내가 출가할 입장은 전혀 아니었지요. 아버님께서 사업가셨는데 아주 모험적으로 사업을 하셔서 수산업, 광산업, 출판업 등 여러 가지를 하셨어요. 어느 때는 반에서 제일 부잣집 아들이었고 어느 때는 가장 가난한 집 아들이었지요. 그래서 세상사 별것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요. 출가할 즈음엔 아버지 사업이 망해서 내가 모셔야만 하는 상황이었는데도 부모님을 설득해서 결국 출가했지요. 부모님께는 이기적인 아들이었지만 출가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기자 한국 스님이신데 어떤 계기로 근본불교에 원력을 세우셨는지요?
활성 스님 아란냐에서 3년을 살면서 숫따니빠아따 와 담마빠다를 읽었지요. 경봉 큰스님께서 나를 아란냐에 들여보내시면서 일체 학學은 하지 말고, 정定을 닦으라 하셨지요.
기자 그 정은 화두 참구인지요?
활성 스님 그렇지요. 화두지요. 경봉큰스님께서 ‘부모 미생 전 본래면목’의 화두를 주셔서 그것을 참구했지요. 나중에는 해인사, 봉암사 선방으로 다니면서도 화두로 정을 닦았지요. 출가 한 뒤로는 당연히 승려로서 어떻게 사느냐가 제일 중요했지요. 그러니 대승불교를 수행하는 환경에서 대승불교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겠소. 그런데 나는 진작부터 숫따니
빠아따도 읽은 데다 우리 절집 수좌 세계도 썩 존경스럽지 않아서 크게 감흥을 못 느낀 것도 사실이었지요.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승려로써 대승불교를 거부한 것은 아니지요.
근본불교에 대해 연구를 하게 된 구체적 계기는 아란냐에서 지내는 동안에 프랑스 스님이 한 분 오셔서 책을 두 권 주고 간 것이 영향이 컸어요. 앙굿따라 니까아야와 미얀마의 마야시 사야도의 영역본이었지요. 그 책들을 읽으니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프랑스 스님은 그때도 불교에 대해서 넓은 견해를 갖고 있었던 것이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그 책들을 읽으니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그런데다 고맙게도 그 프랑스 스님이 계속 근본불교에 대한 책을 보내준 것입니다.
기자 스님께 그런 고마운 인연이 있으셨군요. 스님께서는 근본불교를 주창하시는 뜻을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활성 스님 한국 불교의 소의 경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등 대승경전은 오후悟後 소식, 즉 깨달은 후의 경지를 설해 놓은 것 이지요. 수행 지어가는 방법이나 과정이 빠져 있으니 수행하기도 어렵고 체계적인 방법을 찾을 수가 없지요. 또한 스승이 제자를 점검해 줄 수 있다 해도 아직 깨닫지 못한 제자는 깨닫기 전에는 알아듣기도 어려우니 수행 방법론에서는 어려운 면이 있지요. 그나마 금강경은 금강반야바라밀경으로 대승 경전 중에 가장 근본불교에 가깝고 능엄경도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모두 오후悟後 소식인데다 사마타samatha[삼매], 즉 정定에 치우쳐 있는 것은 피할 수 가 없어요.
그런데 근본불교의 뿌리는 ‘사띠삼빠잔냐satisampajañña’,정념정지正念正知예요. 마음챙김을 바탕으로 사념처四念處를 닦아 팔정도八正道와 중도中道를 실천할 지혜가 생기는 것이지요. 당연히 수행과정들과 ‘수행의 과果’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 있으니 다행이지요.
기자 스님, 사띠sati를 영어로 mindfulness라고 하지요. 그런데 왜 〈고요한소리〉에서 ‘마음챙김’이라고 번역하셨습니까?
활성 스님 앞에서 사띠삼빠잔냐라고 했지요. 삼빠잔냐sampajañña는 영어로 ‘awareness’라 하는데 〈고요한소리〉에서는 ‘알아차림’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사띠는 ‘마음챙김’으로 번역해요.
기자 ‘마음을 챙긴다’에서 마음은 어떻게 챙깁니까?
활성 스님 잡도리라고 하든 지킴이라고 하든 ‘뜻 의意’, 마노mano 챙김이라 하고 싶었던 것이요.
기자 스님, 가르침 감사합니다. 기술의 발달로 엄청나게 편리해졌지만 심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편안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행복할 방법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활성 스님 행복? 참 사치스러운 질문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지금 우리가 행복을 운운할 상황이 되나요?
기자 네?
활성 스님 행복 이전에 존립이 문제요.
기자 존립이라고요?
활성 스님 기후 재앙을 보시오. 우리가 지금 현실에서 경험하고 있잖아요. 사막화의 진행 속도,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고, 온갖 환경변화들이 재앙 수준으로 일어나는 것이 안 보입니까? 재앙 앞에 있는 인류를 어떻게 벗어나게 할 것인가가 급선무지요.
기자 말씀 듣고 보니 맞습니다. 스님께서는 어떤 해결책이 있으신지요?
활성 스님 소욕지족少欲知足이지요. 개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바르고 쉬운 방법이 소욕지족이고 모두가 소욕지족을 실천하면서 지구 환경이 회복되길 바래야지요. 우선은 생존이 급하고, 생존한 다음에 생존 바탕 위에서 어떻게 사느냐 할 때는 팔정도 실천이 중요한 것이지요.
기자 하루 한 끼만 드시는 스님께서는 소욕지족의 위대한 실천을 하고 계십니다. 언제부터 일종식을 하셨는지요?
활성 스님 일종식의 시작은 환경 문제의식을 갖기 전부터 요가의 영향으로 시작했지요. 힌두교 발생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요가의 본질은 깨달음에 의미를 두고 몸의 유연성보다는 정신적 유연성을 지향했지요. 오랜 요가를 해오다 출가한 날부터 오후 불식을 했어요.
기자 출가하신 날부터 지금까지요?
활성 스님 전체적으로 보면 일종식을 반 정도 했고, 주변에서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이유로 염려가 너무 많아 나중에는 아침에 죽을 조금 먹는 식으로 바꾸었지요. 저녁을 먹는 것이 인류의 환경 문제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인류의 생활이 주로 저녁 생활이요. 온갖 소비문화가 거의 밤에 전개되잖아요. 저녁을 안 먹는 것도 환경 되찾기에 직접적이며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에 저녁문화를 시정하거나 지양하는 길을 찾아야 해요. 나는 이 우주를 자비 구조로 봐요. 우주 자체는 한없는 자비 자체에요. 그렇지 않다면 지구부터가 존립이 되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지구 주변에 온갖 유성, 행성, 별들이 돌고 있는데 지구와 부딪치면 지구는 존립이 안 되지요. 그런데도 이렇게 파괴가 안 되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우주 자체가 자비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봐요. 인간이 육체도 가졌지만 의를 가진 면에 중요한 의미를 둡니다. 마노mano, 의意. 즉, 담마를 알 수 있는 게 마노잖아요. 그 담마를 깨달을 수 있는 기능, 의근意根을 가진 존재가 인간이다, 이 말이요. 우주를 지키고 우주의 의미를 구현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려면 의, 마노로 담마를 실천하고 구현하는 존재라야 우주적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기자 스님, 수행은 어떤 방식으로 하시는지요?
활성 스님 우리가 삼보三寶에 의지해서 사는 존재 아닌가요? 우리가 ‘부처님, 부처님’ 하며 찾는데, 왜 부처님이요? 왜 부처님이 우리에게 중요해요? 담마, 법을 설하셨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요. 법을 설하지 않으셨으면 부처님이 100명이 나와도 우리와는 관계가 없어요. 그 분은 깨닫고 홀로 잘 살다 간 분이지요. 우리들의 부처님! 그 분께서는 법을 설해주
셨기 때문에, 그 법을 우리가 부처님의 상속 유산으로 받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 법을 존중하고 실천 하는 것이 인간 존재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부처님의 법, 즉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가 다 중요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요. 그런데 오온五蘊 육처六處 육근六根, 이것들이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핵심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그 육근 중에도 의근意根이 있
다는 게 중요해요. 의근을 가졌기 때문에 인간이고 의‘意를 가진 존재, 인간!’ 그게 핵심이라고 봐요.
사성제, 팔정도를 한 번 봅시다. 부처님께서 진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성제 밖에 없어요. 사성제는 불교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초전법륜경〉에서 중도中道부터 천명하시고, 이어 팔정도와 사성제를 설하셨지요. 중도는 어떤 일정한 노선을 가운데에 설정해놓고 거기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양변을 배제하는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자연히
중을 취하게 되는 걸음이지요. 중도는 눈을 밝히고 앎을 밝혀서 깨달음으로, 열반으로 이끈다고 하셨어요. 이렇게 중도를 선언하심으로써 해탈·열반이라는 인간 완성의 경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구체적인 길을 제시하신 거지요.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는 고성제苦聖諦, 집성제集聖諦, 멸성제滅聖諦, 도성제道聖諦입니다. 고성제는 윤회하는 모든 존재
의 보편적 특성은 고苦라는 부처님의 대 선언이지요. 집성제는 고의 원인과 발생 과정을 밝히고 멸성제는 고를 원인에서부터 멸할 수 있다는 소식입니다. 도성제, 즉 팔정도는 고의 멸에 이르는 길, 다시 말해 갈애를 멸하는 길이요, 무명無明을 멸하는 길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들이 가능할까요? 팔정도를 닦으면 지혜와 해탈이 이루어지므로 무명이 사라져
멸성제가 당연히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팔정도는 빠알리어로 아리야 아탕기까 막가ariya
aṭṭhaṅgika magga인데 성팔지도聖八支道, 즉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定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집중〔正定〕으로 이루어진 길이
라는 뜻입니다. 사성제의 고-집-멸-도 가운데 앞
세 가지는 팔정도를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납득시키고 심적, 지적 준비를 갖춰주는 과정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어요. 사성제의 시작은 우리의 현실인 고성제이고 마지막 결론은 도성제, 즉 팔정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고를 멸하는 길인 팔정도를 설하시기 위한 틀로서 사성제를 말씀하신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요. 달리 말하면 사성제는 세상사를 고苦라고 인식한 바탕 위에서 고를 벗어나기 위해 ‘나는 팔정도를 실천해야겠다.’고 자발적으로 발심하도록 하는 진리 체계입니다. 그리고 고苦의 원인과 고의 멸을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체계의 기본은 연기緣起이며 그 완성된 골격이 십이연기十二緣起입니다. 따라서 사성제는 십이연기라는 인식 체계와 팔정도라는 실천 체계, 이 둘을 기둥으로 삼아 이루어진 진리의 결집이라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팔정도는 진리이자 실천 체계인 거지요. ‘팔정도가 그대로 불교다.’라고 이해하면 사실에 가까울 거요.
팔정도의 맨 처음이 바른 견해입니다.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은 일단 바른 견해를 가지라고 해요. 그래서 바른 견해는 수행의 시작이면서 또 길을 가리키는 방향 제시라고도 할 수 있어요. 바른 견해로 앞길의 윤곽을 제대로 파악하면 바른 사유에 의해서 전체 지도가 확보되고, 또 바른 말·바른 행위·바른 생계·바른 노력에 의해 자기 정화가 확보되어야 그다
음 더 본격적으로 공부를 탈 없이 해 나아갈 수 있어요. 그렇게 팔정도를 걸음으로써 중도의 완성이 가능해지지요. 우리가 공부를 제대로 지어나가려면 무엇보다 바른 마음챙김으로 중도를 확립해야 해요.
바른 집중, 즉 정定에서도 역시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것이 ‘중도 정定’이어야 한다는 거요.
전통적으로는 팔정도를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에 배대配對시키지요. 바른 견해, 바른 사유는 혜와 계에 배대시키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는 계에, 바른 노력, 바른 마음챙김, 바른 집중은 정에 배대시키지요. 그런데 바른 노력은 계에 포함되기도 하지요. 중도는 ‘치우치지 않는다’는 면에서 중도입니다. 계戒에만 치우치거나, 정定에만 치우치거
나, 혜慧에만 치우치면 편중되어 중도를 벗어나요. 어디에도 치우침 없이 계·정·혜를 구족함으로써 중도가 이루어집니다.
요컨대 팔정도를 떠난 불교의 생활화가 있다면 그 역시 올바른 길이 못 되고 말아요. 팔정도를 떠난 공부가 있다면 그건 벌써 방향을 잃은 것이 되기 때문이요. 따라서 생활불교라는 말은 팔정도를 생활화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어야 되겠지요. 우리가 매일 매일 겪는 일상생활에 팔정도를 적용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불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팔정도를 실천하는 겁니다. 불교 수행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라면 팔정도를 조금도 벗어날 수 없고 또 벗어나지도 않아요. 구경 해탈·열반을 성취하신 부처님은 팔정도에서 벗어나신 적이 없습니다. 팔정도! 이것이야말로 불교의 지혜와 불교의 고귀함을 한 마디로 다 드러내는 참으로 소중한 답이고 길입니다.
네게 수행을 어떻게 하는지 물었는데, 나는 이렇게 사성제에 대한 이해로써 불교 전체를 꿰뚫어 보려는 접근 자세로 내 나름의 정진을 하고 있어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팔정도와 중도 수행을 하지요.
기자 이렇게 훌륭한 가르침을 주고 계신 스님은 누구십니까?
활성 스님 내가 누군가? 물어봅시다. 나는 누구요?

 

 

 

 

 

곳 : 〈고요한소리〉 남원 역경원
때 : 2023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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