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루나 칼럼 Ⅱ
사후死後 준비
글 조성내 (법사, 컬럼비아 의대 임상조교수)
나무 잎이 땅에 떨어져 썩어 없어진다고 해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뿐이지, 이파리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단지 변화한 것뿐이다. 질량불변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이 세상에는 새로 생기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사라져 없어져버리는 것도 없다.
봄이 가면 다시 봄이 오듯이, 꽃이 졌으면 다시 꽃이 피든, 살아있던 사람이 죽으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변화만 있을 뿐 질량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그만큼 지구의 무게가 가벼워진 것이 아니다. 사람이 태어났다고 해서 지구가 그만큼 무거워지는 것도 아니다. 지구의 무게는 그냥 그대로 있다. 어린 갓난아이가 성장해서 어른이 되었다면? 어린 갓난아이가 죽어 없어진 것이 아니다. 단지 변화해서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늙어서 죽었다면, 사람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단지 변해서 죽음으로 변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세월 따라 변해간다. 새로 생긴 것도 없고, 있던 것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나이 86세, 늙었다. 매일매일 몸 상태가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조금만 걸어도, 조금만 육체적인 일을 해도 금방 피곤해진다.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그래도 아직까지
는, 노인으로서는,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운이 좋은 편이다. 내 주위에 친구들이 한두 명씩 죽어가고 있다. 친구들의 죽음은, “야, 닥터 조, 너도 죽을 준비를 하고 있어!”
하고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 같다.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얼마 못가 나도 죽을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운명을 아무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내가 내일 죽을 수도 있고, 혹은 10년 후에 죽을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죽음은, 아팠다 하면 이삼일 내로 죽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죽음 후에는 서로 다른 두 죽음의 세계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도를 깨친 도인의 죽음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죽음 세계이다.
도인(道人)의 사후(死後)
도인들은 죽음을 죽음으로 보지 않는다. 반야경에 “사리자여, 모든 법은 공(空)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는다.”라고 했다. 나지 않았으니 멸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다. 우리는 분명히 태어나서 지금 엄연하게 살고 있는데, 우리가 태어나지 않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살고 있으니까, 우리는 언젠가는 죽게끔 돼 있다 .그런데 “멸하지도 않는다.”라고 했으니! 우리로서는 이해 불가능이다.
금강경(29분)에 “여래는 어디로 조차 오는 바도 없으며 또한 어디로 가는 바도 없으므로 여래라 이름 하는 때문이니라.”라고 했다. 부처는 이 세상에서 80평생을 살면서 45년간 설법을 하고 다니셨던 분이다. 그런데 ‘오는 바도 없으며 또한 가는 바도 없다’고 했다. 부처가 왜 거짓말을 하시겠는가? 참말만 하실 텐데! 우리가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으니까 부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를 깨친 도인들은 죽음을 미리서 안다. 마조스님(709~788)은, 두 달 후에 죽는다고 했다. 그리고 두 달 후에 열반에 드셨다. 그런데 죽음후의 일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만공 스님(1871~1946)도 6개월 후에 이 세상을 떠난다고 말했다. 아무 누구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6개월이 되자, 만공 스님은 방에 들어 누워 편안하게 열반에 드셨다. 떠난다고 말했으면, 어디로 간다고 말을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어디로 간다는 말도 하지 않은 채 떠나버렸다. 왜 한 마디 말씀도 하지 않았을까? 괜히
말을 해가지고, 오히려 오해를 일으킬까봐 두려워서, 일부러 사후에 대해 말을 하지 않
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혜능대사(638~713)의 죽음이 <돈황본단경>에 나온다. 혜능대사는 8월3일에 돌아가셨다. 그런데 7월8일에, 문인들을 미리 불러 작별을 고하셨다. “너희들은 가까이 오너라. 나는 팔월이 되면 세상을 떠나고자 하니 너희들은 의심이 있거든 빨리 물어라.”
이때 여러 스님들이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다. 이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여러해 동안 산중에서 무슨 도를 닦았는가? 너희가 지금 슬피 우는 것은 또 누구를 위함인가? 나의 가는 곳을 너희가 몰라서 근심하는 것인가? 만약 내가 가는 곳을 모른들 마침내 너희에게 고별하지 않겠느냐? 너희들이 슬피 우는 것은 곧 나의 가는 곳을 몰라서이다. 만약 가는 곳을 안다면 곧 슬피 울지 않으리라. 자성(自性)의 본체는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느니라.
여기서 “자성의 본체는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느니라.”라고 혜능대사는 말했다. 도인들은 자성에 대해 말하는데,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육체를 갖고 있는 ‘나’에 대해 말하고 있다. 차원이 다르다. 자성은 오고 감이 없지만, 육체는 오고 감이 있는 것이다. 육체를 갖고 있는 한, 영원한 생과 사의 윤회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태어남은 고통이다. 왜 고통인가. 태어남은 늙고 병들고 그리고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불교의 최종목표는, 태어나지 않음이다. 도를 깨친 도인들은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어떤 도인은 일부러 다시 태어날 수는 있다.
평범한 사람의 죽음 세계
죽는다면? 불교에서는 죽으면 다시 태어나고, 태어나면 다시 죽는다고 했다. 생과 사(生死)가 업에 따라 육도(六道)를 윤회한다. 육도는 천상, 아수라, 인간계, 동물, 아귀, 지옥을 말한다. 그렇다면 내가 죽으면, 나는 도를 깨치지 못했기에, 육도 어느 곳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나는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다. 뉴욕의 어느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고 싶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소망일뿐,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질지는 모른다.
내가 다시 한국인 가정에서 태어날 수도 있고, 백인 가정에서 태어날 수도 있다. 혹은
흑인가정에서 태어날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다시 태어나질까? 불교에서는 “내
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니다”라고 돼 있다. 그렇다면 누가 혹은 무엇이 나를 만들고
나를 운영해가고 있는가? 내가 나를 운영해가고 있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든 업이 나를
운영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를 운영해가고 있는 업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가? 내가 바로 나의 업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나의 신·구·의(身口意)의 행동이 나의 업을 만든다. 내가 만든 업
이 바로 다음 생의 나를 만든다. 그리고 나의 생명과 운명을 좌지우지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은 업을 만들 수 있을까? 부처는 게으름 피우는 사람을 싫어
하셨다. 부처는 항상 열심히 일하면서 살라고 했다. 부처는 5계를 지키라고 했다. 5계
란 무엇인가. 살생· 도둑질· 사음(邪淫)·거짓말하지 말라, 그리고 술을 마시지 말라 이
다. 오계를 지키면 다음과 같은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1 큰 재산을 얻어 거부장자가 되고
2 명성이 널리 떨쳐지고
3 고위급 사람들의 집회에 참석하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고
4 죽을 때에 마음이 어지럽지 않고 바른 생각으로 임종하게 되고
5 죽은 뒤에는 좋은 곳에 태어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죽을 때에 “마음이 어지럽지 않고 바른 생각으로 임종”하게 된다고 했다. 도인들은 죽어갈 때 맑은 정신으로 죽는다. 그런데 의문은? 죽을 때 의식없이 죽어간 사람들이 많다. “바른 생각으로 임종”하는 사람에 비해, 의식(意識) 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사후의 운명은 다를까? 다르다면 얼마나 다를까? 궁금하다.
혜능대사는 <돈황본단경>에서, “다만 마음에 깨끗하지 않음이 없으면 서방정토가 여
기서 멀지 않다”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다만 십선(十善)을 행하라. 어찌 새삼스럽게 왕
생하기를 바랄 것인가. 십악의 마음을 끊지 못하면 어느 부처가 와서 맞이해주겠는가”
라고 말했다. 십악(十惡)이란 무엇인가?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 이간하는 말· 나
쁜 말·이치 없는 말·탐욕·성내는 일·사뙨 소견을 말한다. 10악을 행하지 않는 것이 10
선이다.
사후에 좋은 곳에, 좋은 복을 갖고, 총명하고 건강한 몸으로, 장수의 운명을 갖고, 좋
은 부모의 가정에 태어나고 싶다.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나는 먼저 5계를 지키고 그
리고 10선을 행하면서 산다. 내가 저지른 잘못을 회개한다. 건강하게 태어나고 싶어서
매일 운동을 한다. 총명하게 태어나기 위해서 매일 책을 읽는다. 장수하고 싶어서 살생
을 하지 않는다. 좋은 가정에 태어나기 위해서 아내에게 그리고 자녀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준다. 도를 깨치기 위해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한다. 매일 적어도 30분 정도
참선한다. 이렇게 살다보면 더 늙어지겠지. 그러다가 죽겠지! 마음 편안하게 죽어지기
를 바란다.
시 한편
가을의 반영
늙어짐을 모르고
펄펄하게
살아왔었는데2023년 8월호 83
늙어지고 보니
이제 늙어져감이 느껴지는 구나
가을의 이파리들
곱게 단장하고서 낙하할 채비를 하는데
나는 어떻게 여생을 꾸미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