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시방세계_현대 세계불교⑭
태국불교와
한국불교의 만남
상좌부 불교전통과
대승불교 전통의 다른 점과 교류
글 이치란 박사
태국불교와 한국불교는 뿌리는 같지만, 가지와 잎은 많이 달라져 있는 것처럼 외형적인 모습은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국불교는 상좌부 불교 전통이며, 한국불교는 마하야나(대승불교)전통이다.
다소 다르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불교사상사적인 면에서는 대승과 소승이라는 교리발달사적 변화에 의한 차이가 있으며, 승가 내적인 면에서의 차이는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만, 율장면에서는 다소 논란은 있지만, 한국불교는 《사분율》과 《범망경》을 함께 의지하는 편이고, 상좌부에서는 전적으로 《사분율》의 맏형격인 근본율장에 의지하고 있다.
승가구성의 내적인 율장전통에서 보면, 태국이나 한국이나 다 같은 비구 승가로서 부처님 재세시의 근본율장에 의지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한국불교는 승가구성에 있어서 비구 비구니라는 출가 2부중이 존재하지만, 태국불교 승단에는 정통율장에 의한 비구니가 존재하지 않고 오직 비구 승가만이 존재한다. 다만 정식 비구니가 아닌 10계 정도만을 준수하
는 매치라는 준 비구니가 존재한다.
최근 뉴스로는 1996년 한국불교의 도움으로 세계대각회의 주관으로 인도 녹야원에서 11명의 스리랑카 여성(다사실라)들이 비구니 계맥을 전수받아서 상좌부 국가에 비구니 승단이 재건됨과 동시에 스리랑카에서 태국으로도 전수되어서 현재 수천 명의 정식 비구니 승단이 출범했다. 이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태국과 한국불교의 교류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겠다.
세계불교도우의회(WFB)의 본부가 태국 방콕으로 이동하면서 한국불교는 태국불교의 존재감을 인식하게 되고, 한국에서 몇 명의 스님들이 태국으로 연수를 가게 됨으로써 시작되었다. 사실, 한국불교에서의 태국불교는 율장면에서의 관심이었다. 이리저리 따져보니, 상좌부 불교권에서 율장상으로는 태국 비구승단이 가장 정통성을 지닌 승단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상좌부에서는 가장 역사가 긴 스리랑카 불교승단도 중간에 계맥을 태국과 버마에서 전수해 왔기 때문이었다. 버마와 접촉하기가 용이하지 않았던 한국불교로서는 자연스럽게 태국불교와 교류할 수 밖에 없었다.
필자는 이런 연수 프로그램에 의해서 제3세대로서의 태국승단에서의 출가경험을 갖고 있다. 2천 대 이전까지는 한국과 태국불교와의 교류는 주로 승단에서의 출가경험과 세계불교도우의회를 통한 총회 참석을 통해서였다. 2천 년대 이후에는 교류의 폭이 넓어지고 다양화 했는데, 현재로서는 다양한 채널이 가동되고 있다.
2천 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불교에서 태국불교에 더 능동적으로 관심을 가졌지만, 2천 년대 이후에는 태국불교에서도 한국불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유엔제정 ‘웨삭의 날’ 행사에 스님과 불자들이 매년 5월 행사에 정기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마하출라롱컨불교대학교에서 주축이 되어서 태국승가의 후원과 왕실 그리고 정부의 지원으로 100여 개국에서 3천여 명의 세계불교 대표들이 참가하고 있는 불교대회로서는 대형 모임에 속한다. 2017년 5월에는 스리랑카에서 개최된 바 있다.
태국의 노동자들이 상당수 한국에 진출한 관계로 태국스님들의 한국방문 또한 자주 있게 되는데, 주한 태국 사원이 3개나 될 정도이다. 한국에 있는 노동자들이 한국 절을 찾기보다는 태국 스님이 있거나 아니면 한국스님으로서 태국에 가서 출가하여 수행 경험을 쌓은 뒤, 태국 불상을 봉안하고 태국불교 전통으로 의식과 집회를 열고 있는 사원을 정기적으로
다니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태국승가에서도 대승불교로서의 한국불교를 보다 체계적으로 심도 있게 연구하기 위하여 대학 등에서 연구하고 있는 태국스님도 있다.
세계불교도우의회만 해도 한국에서 세 번이나 개최됐다. 1990년 제17차 대회와 2012년 제26차대회 그리고 2016년 제28차 대회를 유치하여 태국을 포함한 세계불교 대표들이 한국불교와 친근감을 갖는데 한국불교 이해의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필자는 이 세 번의 대회에서 역할을 한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세계불교의 여러 나라 뿐 아니라 태국
불교와의 교류에 큰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밖에도 ‘웨삭의 날’ 행사 참여와 최근에는 한국내의 태국사원 행사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태국의 왓 아룬(새벽 사원) 주지스님 일행이 경북 성주군의 한 태국 사원을 찾아서 법회를 열고 있다.
필자가 태국에서 출가하여 수행할 때 만해도 태국의 비구스님들은 한국불교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하지만 45여 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본, 태국 승가의 한국불교의 관심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데, 이것은 비단 한국불교만의 관심은 아니고 대승불교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런 대승.소승이란 상호차별은 1950년 세계불교도우의회의 창립대회에서의 차별불식 결의사항이기도 하다. 이 창립대회에서는 대.소승 차별불식에 의한 대승의 소승폄하 불식, 소승의 관점에서 대승불교의 이단성 불식을 결의했고, 불기의 통일을 결의한 바 있어서 다 같은 일불제자로서의 단결과 우의를 과시한 바 있다.
이후에 소승 대신 상좌부라고 칭하게 되었고, 대승비 불설(대승불교의 교설은 불타의 직설이 아니라는 것)에 의한 이단성 시비는 잠잠해 졌다. 이 문제는 사상과 철학의 근본문제이기 때문에 학자들에 따른 논란은 그치지 않고 있지만, 대체로 남방과 북방불교의 부처님 제자들은 단결과 일치운동에 공감하고 있다.
태국불교의 승단은 공동체생활 위주여서 비구들의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태국 국내에서의 이동 또한 철저한 승가규칙에 따라서 움직이기 때문에 율장(계율)에 위배되지 않아야 하고, 태국의 국가법령에 포함된 승가법에 저촉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태국의 비구스님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도 태국승가(사원)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하다.
불교가 인도에서 출발한 이래, 남.북방으로 전파 되면서 지역문화와 충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방으로 전해진 인도불교는 실론 같은 나라에는 그대로 전파되었지만, 북방 페르시아로 전파된 불교는 페르시아 문명과 충돌하게 되었고, 이후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재충돌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인도의 원형불교는 많은 변용을 겪게 된다. 태국과 한국만을
놓고 보면, 태국불교는 남방으로 전해진 인도의 원형불교전통이 그대로 살아있고, 한국불교는 페르시아 문명과의 1차 충돌 중국과의 2차 충돌에 의하여 변용된 페르시아-중국적 대승불교가 한국의 문화와 3차 충돌에 의한 통불교(회통불교)란 한국불교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