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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현대불교 2023년 9,10월호] 부루나 칼럼-인간의 잔인성-글 조성내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4.03.11|조회수6 목록 댓글 0

 

 부루나 칼럼 Ⅱ

인간의 잔인성

 

 

조성내 (법사, 컬럼비아 의대 임상조교수)

 

 

 

 

 

태초로 만들어진 아담과 이브가 낳은 첫 번째 아들 카인이, 동생 아베를 돌로 쳐서 죽였다(창세기 4;8).
인간은 왜 최초부터 잔인해야만 했을까? 한번 알아보는 것도 흥미가 있을 것 같다.

 

기독교에서는 야훼하느님이 우주를 태초에 만들었다고 했다. 일일이 손수 만들지 않았다. 우주가 무한하게 넓은 데 어떻게 손수 일일이 만들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말(言語)로 우주를 만들었다. 우주가 생기기 전에는 암흑이었다. 그래서 야훼가 말로서 “빛이 생겨라” 하고 말을 했더니 빛이 생겨났다.
말로서 하늘도 만들었고, 땅도 만들었고, 물도 만들었고, 그리고 동물도 만들었다. 그런데 사람만은 말로 만들이 많았다. 야훼가 손수 진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어 사람을 만들었다. 사람을 “하느님의 모습대로” 만드셨다고 했다.(창세기1:27). 만약 하느님이 모습대로 만들어졌다면? 인간은 하느님의 복제생물(clone)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까지 하느님을 닮았을까! 생김새만 닮았을까? 혹은 하느님의 두뇌와 전지전능 지능까지 닮았을까?

 

하느님은 전지전능하다. 하늘과 땅을 마음대로, 힘 들이지 않고,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신다. 그런데 인간은 1미터 높이도 뛰어오르지도 못한다. 인간은, 하느님처럼, 말로서 아무 것도 만들지 못한다. 가령 말로서, “야, 집이 한 채 생겨라.”한다고 해서 집이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인간은 하느님의 형태로만 만들어졌을 뿐이다.
그런데 인간은 하느님만큼 전지전능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지능과 총명함을 갖고 있다. 동물은 하느님의 말로서 생겨난 것이다.
하나님이 “동물아, 생겨나라”하니까 동물이 생겨난 것이다.(창세기 1:24).
그래서 동물은 지능이 없다. 그런데 인간은 지능이 있다! 인간은 전화도 만들고 자동차도 만든다. 비행기도 만들어서 공중을 날아다닌다. 심지어 우주선을 만들어서 태양계 내를 날아다닌다. 그렇다면 이런 영리함과 청조성은, 신의 두뇌를 닮지 않았다면?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나중에 말하겠지만, 하느님이 따먹지 말라는 열매를 아담과 이브가 따먹었다(창세기3;3). 따먹지 말라는 열매를 따먹었기에, 이 열매에서, 지능과 총명함이 생겨난 것이다.

 

선악과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가 대략 6~7세 때 만들어졌다 (참조: 미주현대불교 2013년 5월호).
그런데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이 따먹지 말라는 열매를 따 먹었다. 왜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했을까? 하느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말만 했지, 평소에, 아이들에게 하느님의 말에 항상 복종해야 한다고 교육을 강력하게 시킨 것 같지는 않다. 열매를 따먹기 전에는, 아담과 이브는 벌거벗고 다녔다. 벌거벗고 다니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열매를 따먹고 난 후 갑작스럽게 벗고 있다는 것이 창피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게 총명해졌다는 첫 징후인 것이다. 이런 나이가 대략 7~8세 때 생긴다. 이런 나이에는 여자의 경우 월경이 아직은 없다.
따 먹지 말라는 열매를 따먹었기에 아담과 이브는 천당에서 쫓겨났다. 둘이는 성장했다. 결혼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큰아들 카인을 낳았다. 둘째 아들 아벨도 낳았다.
큰아들 카인은 밭을 가는 농부가 되었다. 아벨은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다. 카인은 땅에서 난 곡식을 야훼께 예물로 드렸다. 둘째 아들 아벨은 양떼 가운데서 맏배의 기름기를 드렸다. 야훼(하느님)께서는 아벨이 바친 예물을 반기시었다. 야훼는 카인이 바친 예물을 반기시지 않았다. 카인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몹시 화가 나 있었다.
카인은 아우 아벨을 “들로 가자.”고 꾀었다. 그리고 들로 데리고 가서 아우 아벨을 쳐죽였다.
위의 이야기는 성경 <창세기>(2장-4장)에 써진 이야기이다.
여기서 보면, 첫째는 하느님도 먹는다는 사실이다. 야훼도 곡식보다는 양떼의 맏배의 기름기를 더 좋아하셨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채식주의자는 아니었다. 야채보다는 고기를 더 좋아하셨다는 점이다. 하느님은 곡식을 바친 카인이나 고기를 바친 아벨을 동등하게 사랑해주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고기를 바치는 아벨을 더 좋아했었다. 왜 하느님이 공평하게 모두를 사랑해줄 수 없었을까? 그게 하느님의 본성일까? 카인은 질투심에 불탔다. 아우 아벨을 들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죽였다. 자, 그렇다면, 왜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게 되었을까?
첫째 가정교육이 없었기 때문일까? 야훼가 아담과 이브를 만들어놓고서, 이네들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서로 사랑해주라,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등 소위 가정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아담과 이브는, 두 자식을 낳고서, 야훼로부터 교육을 받은바 없으니까, 두 자녀에게,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라는 등 가정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가정교육 부족으로, 카인은 아벨을 죽였다고 볼 수가 있을까? 만약 가정교육이 좋았다면, 이런 형제간의 살인이 예방되었을까?

 

 

둘째는 환경이 원인이었을까?

 

카인은 피 빠지게 땅을 파고 땅을 갈아서 농사를 지었다. 곡식을 야훼에게 예물로 바쳤다. 그런데 예쁨을 받기는커녕 미움을 받았다. 그 대신 동생 아벨은 편안하게 양떼를 몰고 다녔다. 양을 잡아서, 양의 맛있는 고기를 예물로 야훼께 바쳤다. 야훼가 즐거워하는 것을 보았다. 카인은 질투심이 생겼다. 동생이 미웠다. 자기를 예뻐해 주지 않는 야훼에 대한 분노가, 그 분노가 동생 아우를 죽인 원인 중에 하나인 것 같다.


셋째는, 유전인자의 탓일까? 야훼가 자신을 닮은 아담을 만들었을 때, 이때 아담의 콧속에다 입김을 불어넣어서 아담을 만들었었다. 이때 야훼의 어느 정도의 DNA(유전인자)가 아담의 콧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때 야훼의 잔인성이 아담의 몸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야훼의 잔인성? 야훼는 원래 자비하신 분이라고 알려졌는데?
자비하신 하느님! 하고 우리 인간들은 하느님께 예배를 들이고 있는데, 야훼가 잔인하다고! 왜 잔인한가 한번 알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첫째, 따먹지 말라는 열매를 따먹었다고 해서, 야훼는 아담과 이브를 무정하게 천국에서 쫓아내버렸다. 용서해줄 만큼 그런 넓은 아량을 하느님은 갖고 있지 않았다. <창세기>(6장)에 야훼는 노아에게 “세상은 이제 막판에 이르렀다. 땅 위는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저것들을 땅에서 다 쓸어버리기로 하였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커다란 홍수를 일으켰다. 노아하고 그의 가족만 빼놓고, 지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동물을 다 죽어버렸다. 야훼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는 조금만치도 없었다.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죽어버리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자기가 만든 인간들이 못된 짓을 하고 사악한 짓을 한다면? 하느님으로서 인간을 좋을 길로 가도록 도와주고 인간을 교육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인간을 좋은 길로 가도록 도와주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홍수를 일으켜서 다 죽여 버렸다. 아주 잔인했었다. 사람을 많이 죽인 히틀러, 스탈린, 모댁동도 사람을 수백만수천만 명을 죽였지만, 그래도 인류전체를 죽이려고는 하지 않았었다.


홍수 때 선량한 노아와 가족은 살아났다. 노아의 후손은 선량해야 할께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렇지 않다. 노아의 후손들도 사악했다. 그래서 야훼는 손수 하늘에서 유황불을 소돔과 고모라, 두 도시에 직접 퍼부었다. 거기에 있는 도시와 사람과 땅에 돋아난 푸성귀까지 모조리 태워버리셨다(창세기 19장). 여기서 보면, 야훼가 하늘에서 손수 가져온 유황불로 직접 소돔과 고모라 도시에 퍼부었다고 했다. 푸성귀까지 모조리 다 죽였다고 했다. 악한 사람을 선도해서 선량한 사람으로 고쳐주려는 기색은 전연 없었다.
<신명기 13장>에 보면, 야훼는 “다른 신을 섬기러가자고 말하는 자가 있거든. 반드시 죽여야 한다. 죽일 때는 네가 맨 먼저 쳐야 한다. 그러면 온 백성이 뒤따라 칠 것이다.” 라고 말했다. “다른 신을 믿지 말라”고가 아니라, 다른 신을 섬기러 가자고 하면, “네가 먼저 그 사람을 죽이라”고 야훼는 말했다. 이런 잔인한 야훼의 유전인자가, 야훼가 아담의 콧속으로 숨을 불어넣을 때, 아담의 몸속으로 스며들어간 것 같다. 그래서 인간의 잔인성은 야훼로부터 물러 받은 유전인자 때문인 것 같다.

 

 

야훼의 아들 예수

 

하늘에서 야훼가 성령으로 변했다. 지상으로 내려왔다. 성령이 마리아의 자궁속으로 들어갔다(마태1:20). 10개월 후에 인간의 육체를 가진 예수가 태어났다. 기독교에서는 성삼위일체(聖三位一體)라고해서,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이 한 몸이라고 했다. 즉 아버지 야훼, 아들 예수, 그리고 성령이 각각 개체가 아니라 한 분이라는 것이다. 만약 아들 예수가 아버지 야훼하고 같은 분이라면, 예수하고 야훼는 생김새나 성격 성질이 똑같아야만 했다. 그런데 같기는커녕 정반대다.
예수는 잔인해본 적이 없었다. 예수는 잔인성을 전연 갖고 있지 않았다. 예수는 단 사람도 죽인 적이 없었다. 예수는 자기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앞장서서 죽이라고 말한 적도 없었다. 오히려 예수는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주었다. 예수는 병자들을 보면, 긍휼히 여겨, 병자들의 병을 고쳐주었다. 그러면서 예수는 “이웃을 제 몸 사랑하듯 사랑하라” 고 가르쳤다. 예수는 실제로 사랑을 베풀면서 살다가 십자가에 못 박히어 죽었다. 사람을 죽이기 좋아하는 아버지 야훼와 사람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사람을 사랑하는 아들 예수는 극과 극으로 성격이 서로 달랐다. 왜 서로 다를까? 앞으로 생각해볼 문제이다.

 

 

불교 의견

 

불교에서는 창조주는 없다. 인간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태초에 어떻게 해서 생명체가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인연 따라 생겨났다가 인연 따라 죽는다. 토끼나 사슴처럼 초식 동물은 비교적 선한 동물들이다. 초식동물처럼 선하게 태어난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호랑이나 사자처럼 비교적 악하게 태어난 사람도 있다. 환경에 따라서 더 선하게 혹은 더 악하게 되어지기도 한다.

 

 

쿠시나가르 열반상

 

한번 태어나면, 둘 중에 하나다. 먹느냐 혹은 먹히느냐 이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는데, 먹는 것 자체가 살생(殺生)이다. 살생은 잔인한 행위이다. 먹지 않고는 인간은 살아갈 수 없으니까, 인간은 본질적으로 잔인한 존재이다.
불교에서는, 시작 없는 과거부터 끝이 없는 미래까지 영원토록 육도를 윤회한다.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하나, 도를 깨쳐서 열반에 들어가는 것뿐이다. 열반에 들어 가면 먹지 않는다. 열반에 들어가야만 잔인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기독교의 천당에서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야훼도 먹으니까, 천당에서도 살기 위해서 사람들이 먹어야 한다면? 먹는다면? 살생자체는 잔인하니까 천당생활도, 어느 면에서는, 잔인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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