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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현대불교 2023. 11,12월호] 명상 네 꼭지(6) - 글 이원익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4.05.21|조회수19 목록 댓글 0

 

부루나 칼럼 Ⅰ

명상 네 꼭지(6)

 

글 이원익 leewonik@hotmail.com
한국 불교의 전파와 대중화에 힘을 보태려는 발원으로 태고사를 도와 왔으며
우담바라회 회원이다. 포항에서 태어나 경남고와 서울 문리대를 졸업했다.
오래 전에 회사 주재원으로 와서 LA 지역에 살며 국제운송업을 하고 있다.

 

 

 

명상 #2 2022. 1. 15

바닷가가 좋아

 

두아저씨가 술집에서 얘기를 나누고있었습니다.
“딸을 대학에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야...”
"그래? 난 말이야, 첫딸을 대학에 보냈는데 한 해에 5만 불이 들더군. 그러고도 결혼할 만한 남자를 데려오는데 다시 10년이 걸리데.
그래서 늦둥이 둘째딸은 대학 대신 하루에 50불씩 줘서 바닷가로 내보냈지. 한달 만에 아예 결혼을 해서 집으로 들어왔다니깐?! 대학보단 바닷가가 좋아!"
대학이 꼭 결혼 잘 하려고 가는 데는 아니고 우리 한인 동포들은 거의가 당연히 아들딸을 대학에 보내지만 많은 분들이 자녀 결혼 문제로 걱정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도대체 결혼할 생각이 있기나 한 건지 세월만 흐르고 있기 일쑤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부모까지 '과연 결혼이라는 걸 꼭 해야 하나?' 하고 생각을 조정하여 세태에 맞추어 나가려 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미국이나 한국이나 왜 이리 결혼들이 어렵고 늦어지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다들 너무 눈이 높고 '생각이 많아서'일 것입니다.
너무 따지고, 너무 손해 안 보려 하고, 너무 큰 것 바라서일 것입니다.
좀 단순하게, 순수한 충동과 본능과 직관에 따르면 대개는 좋은 결과가 올 텐데 말이지요.
세상사 어디에나 얼마간의 리스크는 있는 것이니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가서야 되겠습니까?
불교도 수행도 명상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냥 하면 됩니다.
지금 당장 '오직 할 뿐', 생각이 너무 많고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고민만 깊어 갑니다.
잘못된 결정보다 더 나쁜 것은 아무 결정도 아니 하는 것입니다.

 

 

 

명상 #17 2022. 4. 30
웃음과 울음

 

말을 못하는 아기는 울음으로써 의사를 표현합니다.
배가 고파도 울고 몸이 불편해도 울고 낯선 것을 보아 두려워서도 울고 외따로 남겨져 어미가 보이지 않아도 불안해서 날카롭게 웁니다.
살아남기 위한 절대적인 무기이지요.

이런 아기가 조금 뒤늦게 방긋방긋 미소를 짓는가 하더니 어느덧 부모가 놀리면 소리 내어 까르르 웃기 시작합니다.
가까이서 플라스틱 빠닥종이를 마구 구겨 주거나 짐 꾸리는 데 쓰는 완충제의 공기 방울을 터뜨리면 까무라치듯 웃지요.
미소와는 달리 이런 웃음은 본래 울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위험을 느끼고 겁이 나서 울상을 지으며 울음을 터뜨리려다 마지막 순간에 깜빡 속았다며 안심하는 과정에서 생겨나 헐떡이는 것이 웃음인 것이지요.
그러니 울음이 본바탕이며 웃음은 그 곁가지인 셈이지요.
우리 삶의 바탕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세상의 바탕은 괴로움과 위험의 바다라 우리는 한 순간도 방심 않고 주의하며 살핍니다.
낯선 사람이나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은 일단 의심하고 두려워하며 침울한 얼굴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안전하구나, 내게도 참된 짝이나 벗이 있구나, 길동무가 있고 스승이 있고 이웃이 있고 가르침이 있구나 하고 안심하고 믿음이 가는 순간 우리는 더없는 행복을 느끼며 모여서 아기들처럼 까르르 웃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서로에게 행복을 주고 받는 중생이 되어야겠습니다.
겁내고 의심하며 혼자 떨어져 외로워하지 말고 어울려 소통하고 서로를 안심시키며 까르르 웃고 삽시다.

 

 

 

명상 #45 2022.11.12
재齋와 제祭

 

요즘 한국말에서는 표준어(서울말)에서조차 ‘애(æ)’와 ‘에(e)’ 소리의 구별이 점점 옅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불자들 사이에서도 ‘재(齋)’와 ‘제(祭)’를 발음에서 뿐만 아니라 뜻에서도 혼동하시는 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발음에서 보자면 원칙적으로 재(齋)는 ‘jæ’ 비슷하게 짧게 발음해야 하며 제( )는 ‘je:’비슷하게 길게 발음해야 합니다.
하기야 서울말을 쓰는 젊은이나 어린아이들 중에 음의 장단을 거의 구별하지 않아 예를 들어 말(言)이나 말(馬)이나 똑같이 짧게 발음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추세인지 영어에 너무 신경 쓰다 보니 국어 공부를 등한시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네요. 어쨌든 별로 바람직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각설하고, 돌아가신 분과 관련하여 불교에서 하는 각종 의식은 ‘재(齋)’라고 해야 하며 주로 가정에서 유교식으로 하는 의식은 ‘제(祭)’라고 해야 맞으니 알아 두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한자의 훈으로는 각각 ‘재계할 재(齋)’와 ‘제사 제(祭)’입니다.
흔히 보는 불교의 의식으로는 사십구재(四十九齋)와 천도재(薦度齋), 수륙재(水陸齋), 영산재(靈山齋) 같은 재(齋)들이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북방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 영가( 駕)가 중음신(中陰身)이 되어 49일 동안 이레(7일)마다 명부시왕(冥府{十王) 중에서 일곱 대왕에게서 차례로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화요일에 돌아가셨다면 그 다음주 월요일에 첫 심판을 받으니까 그날 첫번째 재(초재)를 지내는 거지요.

 

이렇게 일곱 번째 재(막재)까지 지내면 심판이 끝나 다음 생이 결정되어 환생하는 것이랍니다.
사십구재와 별도로 영가가 중음신으로 있는 동안 미혹에 빠지지 않고 좋은 곳에 환생하기를 바라며 따로 재를 지내기도 하는데 이를 천도재(薦度齋)라고 합니다. 천도란 영가를 각성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어 법도(rule, dharma)를 천거(recommend)한다는 뜻이지요.
수륙재는 물과 뭍에서 떠돌며 헤매는 영혼과 아귀(餓鬼)를 달래고 위로하는 의식입니다. 그러니 사십구재나 수륙재나 넓은 뜻에서 다 천도재에 속합니다. 영산재는 한국의 무형문화재로서 돌아가신 지 49일 만에 하는 종합예술적인 대규모 천도재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생활에 쫓기다 보니 사십구재를 스님께 맡겨 두고 초재와 막재에만 참여하는 경우도 있으나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곱 번 모두 유족이 몸소 자리하여 망자를 위해 정성껏 재를 올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명상 #82 2023.8.5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유마힐 거사가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들은 부처님은 문병을 가라고 십대제자에게 차례로 권유하셨으나 모두들 이를 두렵고 버거워 하여 사양하므로 마침내 문수보살이 총대를 메기로 하였습니다.
그 이전에 이 부처님의 제자들은 재가의 유마 거사를 상대하였다가 자기들의 수행과 설법 등에 관하여 호되게 꾸지람을 받았을 정도로 유마힐 거사의 법력은 대단하였던 것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떠밀려 문병을 간 문수보살이 유마힐 거사에게 물었습니다.
“병은 어째서 생겼으며, 얼마나 오래 됐으며,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겠습니까?”
유마힐이 대답했습니다.

“내 병은 무명으로부터 애착이 일어 생겼고, 모든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픕니다. 중생의 병이 없어지면 내 병도 없어질 것입니다.”
<유마힐경>은 <승만경>과 함께 재가신도인 우바새(청신남, 재가남자신도)와 우바이(청신녀, 재가여자신도)의 존재감과 역할을 확인하고 한껏 높여 준 경전입니다.
비구와 비구니 스님들은 속세에 태어나 승가로 출가하셨지만 우리 우바새 우바이 재가불자들은 일단 속세에 태어났던 점은 마찬가지지만, 부처님의 밝은 빛을 쏘인 크나큰 인연으로, 그 속세 속에서 다시 다른 속세로 출가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출가한 또 다른 속세에는 중생의 신음소리가 귓전에 바로 들려옵니다.
누구든 그 신음소리를 듣고 자비를 실천하는 이는 유마힐이 되고 보살이 됩니다.
이것은 내 몸이 아무 이상 없이 건강했을 때만이 아닙니다.
내 몸이 외롭고 병들거나 아플 때에도 그것이 내 한 몸에 국한되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중생의 외로움과 아픔이 전해져 온 결과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어른이 되었어도 정신이 아직 제 밖에 모르는 어린아이 상태에 머물러 있거나 제 한 몸 챙기기에만 온 마음이 쏠려 그런 중생들의 소리를 아예 듣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뿐이겠습니까?
지나치게 건강한 몸으로 다른 중생들의 아픈 상처를 재미 삼아 헤집으며 그들의 비명과 단말마를 즐기는 마귀들도 없지 않습니다.
이렇듯 겉보기에 아무리 멀쩡하더라도 공감능력이 제로이면 마귀인 것입니다.
이런 마귀들이 길목을 막고 마구 설친다면 그런 곳을 일컬어 우리는 아수라장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인간세상에서 제대로 살려면 공감능력부터 길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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