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소개
민약 외길 인생, 민약연구가 '홍진수' 대산약촌 촌장
글 대혜 김덕광
요즘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건강에 관심을 갖는다. 유튜부에도 건강관련 영상이 수없이 많다. 이런 곳에서도 거의 보이지 않는 5000년 역사를 지닌 자력비방 자연약초 토대로 만드는 민약(民藥)의 대명사로 불리는 홍진수 회장을 한국에서 만났다.
홍회장은 1978년 부터 민약의 본질을 대자연에서 찾았다. 홍 회장은 그때로 부터 지금까지 줄곳, 고집스럽게 한눈팔지 않고 원료 그대로 사용하여 만드는 ‘대산약촌’의 민약에 대해 갖는 최고라는 긍지는 대단하다. 그는 각종 첨가물 없이 몸에 좋은 최고의 민약 본연의 가치를 전하기 위해 45년간 방방곡곡 고산을 누볐다. 민약 연구가 홍진수의 고집, 정성, 그리고 진심이 ‘대산약촌’의 민약에 담겨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민간약초를 좋아하며 실제로 다양한 형태의 질병이 자연약초로 치료되는 것이 현실인 이상 그 체계를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타당성을 검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의학박사이면서 대체의학에 심취한 전홍준 박사가 1998년에 주장하였는데 이 주장을 20년 앞서 1978년부터 ‘민약’ 연구를 하면서 1983년에 서울 강남에 ‘대산약촌’(大山藥村)을 설립하여 이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홍진수 회장이다. 그는 한국민약연구회 회장, 세계산삼약초연구소 소장, 한국민약협회 회장, 한국특수민방식품원 이사장 등 민약과 산삼 관련 많은 직책을 갖고 있다.
지난 9월에 홍 회장을 서울에서 3차례 만났는데 그의 머리는 숱이 많고, 염색 없이 검었고 머리카락은 굵어 보였다. 전체적으로 건강하고 나이보다 젋어보였다.
홍진수 회장은 경기 포천시 연곡리 군방봉산 아래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의 심메마니들을 따라서 깊은 산골을 다니면서 약초를 채취하는 일을 오랜 기간 해왔다. 그는 약초들이 자생하는 강원도 및 경상북도 일대의 깊은 산속은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그에 의하면 전국을 헤매며 산삼(山蔘)을 채취 전문 심메마니와 전문 약초 채취자가 70년대 후반만 해도 1만 여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약초를 캐는 사람까지 포함해도 600여명이라고 설명한다. 전문 심메마니와 전문 약초 채취자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공해와 더불어 한국의 여러 곳의 산불로 인해 넓은 면적의 산림이 불탔기 때문에 이제 자연적인 약초를 채취하기가 더욱 더 어려워졌다고 심각한 우려를 표시한다.
언론을 통한 민약 소개 그리고 노력의 결실
어린 시절 상경한 그는 종로에서 약초를 판매하고, 환자들에게 달여주었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민약에 빠져 젊은 시절을 보냈는데 주위로 부터 미친놈이라는 말도 꽤나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각고의 노력으로 통해 마침내 조상들의 민약 비법을 알아냈다. 현재까지는 한국 현행법상 민약이 건강식품이지만 섭취하는대로 각종 난치병과 질병들이 신기하게 낫자, 그의 명성은 입소문을 타고 장안에 널리 퍼져나갔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그는 1983년 강남에 ‘대산약촌’을 설립하고, 대국민 건강 지킴이로 발 벗고 나섰다. 그는 “당시 조상들의 임상실험을 거친 과학적 처방인 민약 비방 비법 30여 종류를 체득한 저는 무엇보다 생명의 소중함을 지키는데 혼신의 노
력을 다 쏟았습니다. 민약의 근본 정신을 생명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민약에 빠져 살아온 삶의 이력과 민약의 지향점을 설명한다. 젊은 시절에 나름대로 소명의식을 갖고 대산약촌을 시작하였지만 초창기에는 사회의 인식 부족으로 고전을 했다. 하지만 그의 민약에 대한 이해와 명성이 알려지고 그가 사용하는 희귀한 원재료인 자연약초 때문에 그가 달여주는 민약이 일반 약보다 훨씬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효험으로 대산약촌의 명성은 널리 퍼졌다. 민약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국내외 방송에도 출연하고 주요일간 신문과 월간지, 주간지 등 여러 종류의 매체에 인텨뷰도 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신문에 직접 글을 쓰면서 민약에 대한 기사소개를 하였다. 『홍진수의 민약 이야기』, 『산삼약초의 세계』,『명약 찾아 삼만리』 등은 장기간 신문 연재와 칼럼 제목이다. 이외에도 『심산유곡에 가면 철학이 보인다 1.2 』, 『건강하게 사는 법』, 『산삼약초학 비법』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민약과 한약은 다르다.
그는 ‘민약’을 ‘한약’과 혼동하는 것에는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에 의하면 “한약은 95% 이상 중국산 등을 사용하지만, 민약은 산삼, 산도라지, 산더덕, 산잔대, 산뽕나무, 산딸기, 산머루, 산다래 등 깊은 산골에서 자라는 자연약초를 주 원료로 비방하는 게 다르다”고 설명한다. 골담초, 씀바기, 약쑥, 익모초, 질경이 등 우리 토양에서 나는 모든 식물이 몸을 향상시키는 긴요한 약초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조상의 얼이 살아숨쉬는 ‘민약’ 을 이제는 세계에 널리 알리고 더불어 ‘민약’을 객관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받아드리도록 한 것은 그의 큰 공적이라고 볼 수있다. 이런 활동을 통해 홍 회장은 이제 한국사회에서 ‘민약의 대명사’가 되었고, 사회명사가 되었다. 그는 대학 교수와 전문의들이 쓰는 칼럼을 소개하는 언론에 그들과 함께 그의 글이 실린다. 2022년에는 몽골 불교대학으로 부터 보건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내의 대한무궁화중앙회는 약초 연구 및 민약 저변 확대, 사회 기여 공로로 제 90주년 3.1절 ‘장한 무궁화인상’ 대상을 홍 원장에게 수여했으며 대한민국신문기자협회 등 단체들은 그의 40년 민약연구 개발 활동을 평가해 2019년 ‘위대한 한국인 100인 대상’ 수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민약과 산삼
민약을 말하면서 산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널리 알려졌듯이 산삼은 만병을 치료하는 최고의 명약(名藥)으로 꼽힌다.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의 버지니아와 웨스튼 버지니아 등지에서 나는 산삼에 대해서 ‘세계산삼약초연구소’ 소장인 그는 “산삼의 분포는 경도보다 위도의 영향을 많이 받아 동서로 길게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북위 30도에서 48도에 이르는 지역에 자생하고 있다. 특히 한국이나 중국의 만주지방, 러시아 연해주 지방, 북아메리카 일부 지역이다. 즉 동북아와 북미의 두 대륙에 걸쳐 있다. 그러나 약효면에서는 한반도의 땅 밑의 온도가 좋기 때문에 우리나라 약초와 산삼이 타지역의 산삼보다 훨씬 우수하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인정한다 ”고 설명한다.
산삼은 잎이 보통 5개 이며 사람의 손 모양을 하고 있어 장상엽(掌狀葉)이라고 부른다. 한 쌍의 장상엽은 수십 년 자라야 잎의 줄기가 각각 5개로 늘어 잎의 총수는 25개가 된다. 줄기는 보통 한 줄기이며 때로는 2-3개 일 때도 있다. 재배 인삼은 보통 2년이면 꽃이 피지만 산삼은 10년이 되어야 꽃과 열매가 달린다. 산삼의 잎은 햇볕에 약한데, 성장에 적합한 땅이 매우 한정되어 있고, 독립성이 강한 성질을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신비한 약효가 축적된다고 본다. 수백년 전부터 심산유곡에서 사계절 혹독한 환경을 이기며 홀로 자란 ‘천종산삼’은 발견한 후 수일 내 섭취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한두 뿌리만 해도 워낙 고가(高價)이다 보니 일반인들은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이에 홍회장은 천종산삼과 진귀한 민약재들로 천종산삼환,
천종산삼탕을 최초로 비법기술을 개발하여 수요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는 천종산삼과 산더덕, 산잔대, 석청, 목청, 산버섯류, 산 뿌리류, 산 열매류, 산 꽃류 등 토종 약초만을 사용해 민약을 만들고 있다. 홍 회장이 주로 취급해온 약초는 130여종, 비법으로 빚는 민약의 수는 170여종에 달한다. 의학에서 신약을 개발하려면 많은 예산을 투입해서 오랜 시간 임상실험을 해야 한다. 홍 회장은 “민약도 약학만큼 까다롭고 어렵다.
산삼이나 동식물 등이 좋다고 무조건 복용하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이고, 그것을 환자 체질에 맞게 여타 약초를 어떻게 혼합하느냐가 약효를 결정한다. 그리고 한약, 양약은 종종 발생하는 부작용이 있는 반면 민약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민약에 대하여
그의 설명에 의하면 “민약이란 우리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건강을 찾는 비법이다. 민약이란 발병 이전이나 이후의 치료에도 큰 효과를 보는 방법이다. 민약은 우리 조상들이 체득한 독특한 자연친화적인 약초의 세계인데, 여기에는 산삼, 물찬산 더덕, 목질진흙(상황), 산천마, 적복령, 적하수오 등 고산에서 자생하는 약초들은 물론 동물성, 광물성 약재가 포함된다. 이것은 우리 조상들의 슬기로운 지혜에서 나온 것” 이라고 말하며 민약은 한약, 양약과는 분명하게 다른 민약의 세계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민약의 고객은 보통 사람부터 CEO, 유명한 대학총장, 정치인 등 다양하다. 유명인사 중에서 구체적으로 그가 말한 사람들은 고 정주영, 고 김우중 비롯한 재계 총수들과 이진희 전문화공보부장관, 건축가 김중업 박사,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1997년 12월 선거를 앞두고 악화된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비서실을 통해 홍 회장에게 산삼을 섭취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 홍회장은 전국의 심메마니들에게 급전을 띄워 대선 3일 전 100년 이상 된 산삼 4뿌리를 구해 (고)김대중 총재의 장남인 (고)김홍일 의원과 함께 여의도 새정치 국민회의 당사 총재실 에서 산삼복용 후 김대중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 되었다.
평생을 민약과 더불어 살아온 그는 45년간 전국을 대상으로 우리 민약초 축제 행사와 강연도 펼쳐오고 있다. 민약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그는 그동안 수많은 제약사들과 대기업들로부터 사업제안 유혹도 받았다. 하지만 민약을 하나의 사업부서로 인식하는 큰 조직과 손을 잡을 경우 민약의 명맥은 완전히 끊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 독립적인 길을 걸어왔다고 말한다.
앞으로 그의 하고 싶은 목표
45년을 민약으로 사람들의 건강관련 일을 한 홍 회장에게 ‘건강한 사람의 비율’에 대한 그의 견해를 물었다. 그는 본인이 만난 사람들에 대한 임상을 바탕으로 “건강한 몸으로 태어난 사람이 50% 정도 있다. 30% 정도는 스스로 자기 몸을 잘 관리하고 아끼는 사람이고, 20%는 민약을 홍 회장의 규칙대로 약을 성심껏 복용하는 사람은 효과를 많이 본다. 규칙대로 안하면 효과가 적다. 운동도 자기에 맞는 운동을 해야 하는 것 처럼, 약도 자기 몸에 맞는 약을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그의 과제는 그동안 스스로 터득해 쌓은 민약 제조비법과 전국에 흩어져 있는 비방(秘方)들을 집대성해 ‘민약보감’을 기록하는 것이다. 즉 조상들의 민약 비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이다.
또한 그는 국내 최초의 민약박물관 건립도 꿈 꾸고 있다. 지난 45년 동안 모아온 수천 점의 진귀한 민약초들을 전시해 일반인들에게 민약역사문화를 널리 알리고 보급하기 위한 것이다.
이제는 미국과 일본, 중국, 브라질, 독일, 몽골,우간다, 인도 등 여러나라 에도 민약의 효능이 알려져 해외 방문도 가끔 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구 대국인 인도에서 공식초청하여 다녀왔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미국을 홍진수 민약연구가가 직접 방문하여 미국 사회에 민약을 널리 알리는 행사를 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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