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명상
마음 닦으며 새길 몇 가지
글 무상법현(無相法顯) 스님
서울 열린선원 선원장
평택 보국사 주지
일본 나가노 아즈미노시 금강사 주지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그래도,가끔> 지은이
1. 마음에 틈을 마련해보자
슬기,지혜를 나타내는 지(智)자는 알 지(知)자 밑에 날 일(日)자가 붙어 있습니다. 어제는 몰랐는데 오늘은 알고 오늘은 몰랐는데 내일은 알 듯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앎이라는 뜻도 되고 달이나 별이나 촛불이나 반딧불같이 희미한 불빛이 아니라 태양처럼 빛나는 앎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슬기는 어떻게 얻어질까요? "슬기란 말하고 싶을 때마다 그것을 참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보낸 평생의 시간에 대한 값진 보상이다"라고 말한 D.라슨(Doug Larson)의 말처럼 내가 말하고 싶을 때 그것을 참고 남이 가진 슬기를 내 안에 받아들이는 말 듣기가 참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점심시간이 2시간이었다고 합니다. 밥상 차리기가 무섭게 10분도 안되어서 후다닥 먹어치우는데 익숙한 우리 나라사람들은 어리둥절할 것입니다. 무엇을 얼마나 먹길래 두 시간이나 걸릴까 하고 생각하겠지요? 그런 것이 아니라 칸트는 날마다 점심때면 사람들을 초청해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심을 먹느라 시간이 그렇게 필요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누가 더 이야기를 많이 했겠습니까?
그야 물론 칸트가 많이 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그 반대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도 유명했던 그에게 손님들이 말을 많이 한 이유는 자신의 이야기가 유명한 철학자의 철학으로 거듭나기를 희망한 손님의 노력에 의하기도 하였지만 칸트의 슬기로움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전체를 크게 보지만 주관과 객관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주관은 아함경에 의하면 ‘눈귀코혀몸뜻“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입니다. 물론 객관은 감각기관의 여섯 감각 대상입니다.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고, 나는 대로 맡으면 번뇌가 없어지고 자유로워지며 평화로워지고 행복해집니다.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여섯 기관을 잘 다스리라 하셨는데 눈보다 귀를 잘 다스리는 것이 더 큰 효능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능엄경에서 말씀하신 관세음보살님의 이근원통(耳根圓通)이 바로 그것입니다. 잘 듣는 노력이 꼭 필요한 때입니다.
2. 꾀하는 것도,이루는 것도 나!
우리는 흔히 큰일을 도모해 놓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자세를 겸허하게 표현해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합니다. 해석하면 ‘사람이 할 일을 다 해 놓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뜻이겠지요. 또, ‘모사는 재인이나 성사는 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이라 하기도 합니다.
이 말은 ‘일을 꾀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라는 뜻이겠지요 부처님께서는 아함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연못에 돌을 빠쳐 놓고 마을 사람들이 빙 둘러서서 ‘돌아 떠올라라 돌아 떠올라라’ 하고 소리치거나 ‘돌이 떠오르게 해 주십시오’ 하고 신에게 빈들 돌이 떠오르겠느냐?”고 하시면서 물에 빠진 돌을 건지려거든 물을 퍼내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고 역설적인 시어를 써서 조선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던 만해 한 용운선사께서는 ‘모사도 재인이요 성사도 재인(謀事在人 成事在人)’이라 하였습니다. 풀어서 보면 ‘일을 꾀하는 것도 사람 즉 나에게 달려 있고 그것을 이루는 것도 다른 존재나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에게 달려 있다’는 적극적인 의지가 깃들어 있는 말씀이지요. 부처님께서는 중아함업상응품 제3 도경(中阿含 業相應品 第三 度經)에서 세상에는 ‘제도한다,구원한다’고 하는 설이 세 개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절대자가 구제한다는 설이고, 둘은 운명이 구제한다는 것이고 셋은 아무나 구제한다는 설이라고 하였습니다.
절대자가 구제한다는 것은 존우조론이라고 하여 당시의 브라흐만교나 오늘날의 절대자를 믿는 종교를 뜻합니다. 운명이 구제한다는 설은 숙명조설이라 하여 예나 지금이나 사주 팔자 관상 등을 믿고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나 구제한다는 것은 무인무연설이라 하여 아무렇게나 대충 산다는 자들의 주장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셋을 따르면 5계를 어기는 것과 같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며 그 셋을 따라가지고는 윤회를 끊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만해스님의 말씀이나 부처님의 말씀이 뜻하는 바는 바로 행위를 하는 나 자신이 자유의지와 도덕적 책임을 가진 창조자라는 것을 강력하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내가 바로 주인공입니다.
3. 모두 다 꼭 필요하네
부처님 당시에 죽은 이도 살려낸다는 명의가 있었습니다. 이름이 지바카((Jivaka)인데 인도말로 ‘생명’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는 부처님을 잘 따랐던 빔비사라왕의 아들인 무외와 창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가 그를 낳자마자 보자기에 싸서 버렸는데 마침 무외왕자가 발견하였습니다. 왕자는 죽은 줄 알았더니 목숨이 붙어 있다고 하여 ‘지바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잘 키웠다고 합니다. 출생의 비밀도 모르고 무럭무럭 자라난 지바카는 15살이 되었을 때 공부를 하겠다고 아버지인 무외왕자에게 말했습니다. 무슨 공부를 하겠느냐고 묻자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생명을 되찾아 주겠다는 생각으로 의술을 공부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지바카는 집을 떠나 이웃나라의 명의인 핑갈라(Pingala)에게 10년간 의술을 배웠습니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
스승은 의술의 마지막 비법을 알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희망에 부풀은 지바카에게 스승은 묘한 제안을 하였습니다. 전국을 다 뒤져서 ‘약에 쓸 수 없는 풀들만 골라서 한 바구니’를 구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지바카는 명의가 되겠다는 희망으로 방방곡곡을 샅샅이 뒤져보았습니다. 하지만 산과 들에 널려있는 풀들 중에서 약에 쓸 수 없는 풀을 찾는 것은 참으로 힘이 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지바카에게 스승이 ‘얼마나 캐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지바카는 ‘아무리 뒤져보아도 쓸모없는 풀을 찾을 수 없어서 스승님의 분부를 받들지 못하겠다’고 힘없이 대답했습니다.
그 때 스승님은 뜻밖에도 지바카에게 자비스럽게 말했습니다. “하나도 뽑아오지 못했다는 말이지? 잘했다! 쓸모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안 너는 참으로 어진 의사가 될 것이다. 이제 아픈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러 가라”
스승 핑갈라의 예언적 당부대로 지바카는 민간에서도 못 고치는 병이 없었고 빔비사라왕의 치질과 부처님의 풍병, 아나율 존자의 눈병과 아난다 존자의 부스럼을 치료하는 등 명의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별 기구도 없이 두개골을 절개하는 수술을 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파세나디 왕에게 자신은 기껏 사람 몸의 병이나 돌볼 뿐 마음까지 돌보는 대의왕은 바로 부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쓸모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허공엔 주먹이나 비행기와 새들 같은 온갖 것이 다 들어갑니다. 새삼스럽게 알려 줄 필요도 없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허공에도 수없이 많은 공기 알갱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 공기 알갱이들 또한 여러 가지 작은 물질들의 모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작은 알갱이들만을 따로 뭉쳐내고 나면 허공에 손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듯 물질의 속에도 공간이 아주 많다고 합니다. 물질 속에 들어 있는 이 공간을
빼어버리면 알갱이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작다고 합니다. 80억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동식물들이 살고 있는 이 지구도 알갱이만 모으면 축구 공하나의 크기도 못되는 작은 것이라고 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 안에서 남이니 북이니, 기독교니 불교니, 조계종이니 태고종이니, 남자니 여자니, 경상도니 전라도니 나누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짓입니다. 모두 다 필요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