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방세계 Ⅰ
현대 세계불교㉑
실론근대불교와 신지학회
기독교전도에 대항,
근대불교운동으로 민족불교 지켜
글 이치란 박사 (원응 보검)
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아시아불교평화회의(ABCP 본부 몽골) 한국회장
국제불교연맹 이사(IBC 본부 인도)
동방불교대학 전 총장
한국불교신문 전 주필
현: 해동불교대학장 / 강원불교대학장
(사) 종정협 부설 / 국제불교전법대학 총장
WFB 태국본부 전 집행이사 / 일붕신문 상임논설위원
매일종교신문 기고가 / 땅끝 어룡도 해수관세음보살 도량 당제산 여의암 회주
다나TV 영어경전 강의 / 세계불교 TV에서 ‘세계불교를 가다’ 소개
(http://www.haedongacademy.org)
실론불교는 승단이 정화되고 재건되면서 또 하나의 강력한 도전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기독교 선교였다. 네덜란드가 물러가고 브리티시가 섬에 오면서, 종교분쟁이 대두되었다. ‘파나두라 논쟁’이란 종교 간의 논쟁으로 상징되는 사건이 발발하게 된다. 파나두라는 지명으로서, 콜롬보에서 남쪽으로 27km 떨어진 곳으로, 여기서 1873년 논쟁은 실론 민족불교운동가인 비구와 감리교 목사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이다. 주역은 미겟투와테 구나난다 테라(1823-1890)로서 기독교전도에 대항, 민족불교를 지키는데 노력한 승려이다.
이 논쟁은 미국에서 1880년 실론에 온 신지학회(神智學會) 소속의 헨리 스틸 올코트 대령(1832-1907)을 자극했다. 올코트는 미국의 대령 출신이면서, 저널리스트 변호사였고, 신지학회의 공동창립자였다.
신지학협회(神智學協會, Theosophical Society)는 러시아 제국에서 태어난 헬레나 블라바츠키가 일으킨 신비 사상 결사이다. 결성 당시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신지학협회의 목적은 인종, 성별, 계급, 피부 색깔의 차이에 얽매이지 않고 인류의 보편적 형제애가 핵심이 된다. 본부는 인도 타밀나두 첸나이에 있다. 올코트 대령이 실론의 민족불교 운동과 불교근대화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다. 올코트는 불교로 개종하였고, 서구지성의 렌즈를 통하여 불교를 해석하는 불교근대화운동의 기수였다.
올코트는 실론의 독립과 불교부흥 및 근대화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된다. 올코트는 미국의 군인 간부 출신이었지만,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로서, 헬레나 페트로브나 블라바츠키(1831~1891)여사와 함께 신지학협회를 창설했다. 블라바츠키 여사는 러시아 제국의 예카테리노슬라프에서 독일계 러시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이미 러시아 제국의 각 지역을 여행하였으며, 1849년에는 미국으로 여행을 가기도 하였다. 이때의 여행을 기점으로 서유럽과 인도, 티베트를 여행하면서, 자신의 철학적 사상을 정리하였다. 그 이후, 올코트와 영국의 철학자들을 만나 이들과 교류하였고, 1875년에는 이들과 함께 미국의 뉴욕에서 신지학협회를 창설하였다. 1878년에는 영국령 인도 제국의 뭄바이로 이주하고, 신지학협회의 본부를 인도의 첸나이로 이전하는 작업에
착수하였다. 1885년에 건강의 악화로 다시 영국으로 갔으며, 1891년에 인플루엔자 감염으로 사망하였다.
여기서 신지학과 블라바츠키 여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매우 길어진다. 다만 실론불교의 근대화를 논함에 있어서 신지학협회와 블라바츠키 여사 그리고 공동 창립자인 올코트 대령을 빼고서는 이야기 전개가 안 된다는 것만 밝혀두기로 하고 올코트 대령으로 집중해 보자.
올코트 대령은 신흥종교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실론에 오면서 불교에 매료되었다. 올코트의 주된 관심은 불교에 있었고, 영어가 가능했던 실론 불교인들과의 접촉은 그로 하여금 점점 불교에 접근하게 만들었다. 블라바츠키 여사와 함께 오계를 받을 정도로 불교에 친화적이었다. 올코트는 실론에 머무는 동안 실론 불교부흥운동에 노력했다. 또한 서구인들을 위한 불교교리 문답서를 만들기도 했다. 신지학협회는 실론에 몇 개의 초급대학교를 지어주기도 했다. 그는 세계불교도기(佛敎徒旗)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나중에 세계불교도우의회(WFB)에서 전 세계 불교를 상징하는 불교기로 채택했다.
이런 올코트의 노력은 웨삭(부처님 탄생 성도 열반)을 공휴일로 제정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불교신자도 증가했다. 올코트의 통역을 담당했던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를 근대불교운동가로 성장하게끔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인도불교와 성지복원의 선구자가 되도록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 근대불교운동을 일으키는데 올코트는 영향을 미쳤고, 실론의 독립운동에도 협력했다.
여기서 잠시 나와 스리랑카(실론)불교와의 관계를 정리해 보려고 한다. 나는 40여 년 전, 태국으로 가서 비구수업을 한바 있다. 내가 태국에서 약속한 기간의 비구생활을 열심히 한 다음,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가서 한번 꿈을 펴보려던 희망을 가졌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영국으로 일단 목적지를 정하고 스리랑카 인도로 가려는 계획을 세우고, 콜롬보로 건너갔다. 실론에 처음 발을 디디자,
인도 亞 대륙의 남단 끝에 위치한 이슬방울 같은 나라가 너무나 아름답고 불교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콜롬보 와지라라마 사원(Vajirarama Temple)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 사원에는 실론 불교계의 고승이신 나라다 대장로(Narada Maha Thera 1898-1983)가 주석하고 계셨다. 실론이 영국 직할 식민지를 경험한 역사가 있어서인지, 세계불교계에서 실론 출신비구들은 영어를 잘했다. 나라다 대장로 비구스님은 중류 가정 출신으로 성 베네딕트 칼리지를 나와서 실론 대학을 졸업하고 비구가 되었다. 1929년 그는 인도 녹야원의 스리랑카 사원 주지가 되기도 하고, 1934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전법활동을 하였으며, 한 때 불교국가로서 융성했던 인도네시아에 450년 만에 상좌부 불교 전통을 세우게 하고 타이완 라오스 베트남 싱가포르 일본 네팔과 호주 등지를 방문해서 전법활동을 펼쳤다. 1956년에는 영국과 미국을 방문 했고, 오랜 기간 동안 그는 영역(英譯)작업에 몰두했는데, 빨리어와 신할라어 불전에서 다수의 영역 저서를 남겼
는데, 거의가 마스터피스(masterpiece) 수준으로 영어권 세계의 많은 독자들로부터 인기를 누려왔다.
그의 저서를 소개해 보면 《부처님과 그의 가르침(The Buddha and his Teachings)》 《불교요약(Buddhism in a Nutshell)》《업장과 환생의 불교교리(The Buddhist Doctrine of Kamma and Rebirth)》《아비담마 입문(A Manual of Abhidhamma)》《빨리어 기초과정(An Elementary Pali Course)》 《사리불존자의 생애(Life of Venerable Sariputta)》 《모든 사람의 윤리학(Everyman’s Ethics)》 《삶의 실체(Facts of Life)》 《담마빠다, 빨리어 텍스트와 번역(Dhammapada, Pali text and translation)》 《열반에 이르는 길(The Way to Nibbana)》
《불교개론(An Outline of Buddhism)》 《부처님의 생애, 그의 직설(The Life of Buddha, in his
own words)》 등 이밖에도 스리랑카 언어로 된 다수의 저서를 남기고 있다. 이 가운데《아비담마입문(A Manual of Abhidhamma)》과《빨리어기초과정(An Elementary Pali Course)》은 지금도 매우 인기 있는 스테디셀러이다.
나는 이런 대학승을 친견하고 이 사원에 3개월간 머무르면서 짧은 기간이지만, 실론 불교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사원에는 나라다 대장로 비구의 뒤를 이어서 활동했던 삐야다시 대장로(Piyadassi Maha Thera) 비구가 계셨다. 나라다 장로의 사제로서 날란다 칼리지와 스리랑카 대학을 나와서 미국 하버드대학 세계종교학 연구센터에서 연구했다. 이 분들은 와지라라마 사원을 세우신 와지락나나 대장로 대승정(Ven. Pelene Sri Vajiragnana Maha Thero 1878-1955)문하에서 득도하고 실론 전통방식에 의해서 빨리어 삼
장을 배우셨다. 삐야다시 대장로는 실론 불교에서 영문과 신할라어 불서 발행의 주요 기관인 BPS(Buddhist Publication Society)의 신할라어 판 불서 편집 책임자로서 입적하실 때까지 냐나포니카 장로 비구(영문 저서 편집 책임자)와 함께 일했다. 현재 영문 판 저서는 비구 보디스님이 맡고 있다.
나는 이런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사원에서 미국 출신비구로 대학승이신 비구 보디(Bhikkhu Bodhi 1944-현재)스님을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내가 이 사원에 머무르면서 얻은 정보와 지식은 두고두고 유용한 길라잡이 역할을 했다. 영국유학에 앞서서 예비과정을 밟았다고나 할까, 이 때 현대 불교학에 대한 정보를 이곳에서 알게 된 다음, 영어공부와 불교 연구에 대한 꿈은 더욱 더 커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