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미현불연재물

[미주현대불교 2024. 4월호] 다가오시는 사랑 그득한 미륵彌勒부처님 1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4.06.20|조회수9 목록 댓글 0

 

 

이달의 명상

다가오시는 사랑
그득한 미륵彌勒부처님 1

 

글 무상법현(無相法顯) 스님
서울 열린선원 선원장
평택 보국사 주지
일본 나가노 아즈미노시 금강사 주지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그래도,가끔> 지은이

 

 

 

 

 

 

미륵부처님은 미래세계의 부처님이기도 합니다.
세계에 관해 우선 알아보는 것이 필요할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불교의 세계관은 그냥 단어로 보면 world 같은 느낌이 드는데 한자로는 世와 界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世는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 하고 공간의 표지를 이야기 합니다. 시간의 흐름으로 본다면 지나간 시간, 다가 올 시간 곧 과거 현재 미래가 있죠. 그래서 시간은 삼세로 나눠서 보고 있습니다. 界는 공간의 욕계, 색계, 무색계로 나누고 있죠. 욕심의 세계, 물질의 세계, 정신의 세계입니다.
욕심의 세계는 저 아래 수준의 굉장히 괴로움을 겪고 있는 지옥, 배가 고파서 힘들어 하는 존재들
세계인 아귀, 그리고 어리석어서 정말로 힘든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기 피붙이까지도 잡아먹기 까지 하고 잡아먹힘을 당하기까지 하는 축생, 그리고 평화롭고 재미있게 살수도 있는데 오로지 싸움만 하는 아수라, 이렇게 말하는 인간들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 삽니다. 즐거움이 참 많다고 하는 세상이 하늘나라인데 그 하늘나라 중에 욕계 나라가 여섯 있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인간 바로 위, 사천왕천이 있고 그 위에 도리천이 있습니다. 제석천왕을 가운데에 두고 사방에 여덟 천씩 있다고 해서 별명이 33천입니다. 33천이 전체 하늘의 숫자 라고 오해하시는 분이 있는데 도리천이라는 하늘입니다. 그 위에는 야마천이라는 야마는 염라와 같은 것인데 세상에서 제일 먼저 죽은 사람이 올라가서 나는 하늘이라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도솔천이라는 하늘, 화락천 그 위에 타화자재천의 여섯 하늘이 있습니다. 도솔천은 이번생만 보리살타, 보디삿트바 보살로 수행을 하면 다음생은 반드시 부처님 되는 보살은 일생보처보살이이라고 합니다. 일생보처(一生補處)보살이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미륵보살님이 지금 수행을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 미륵보살님이 언제 우리들 가까이 오셔서 부처님이 되느냐 하면 56억 7천만년 뒤라고 합니다.
이렇게 욕계에 여섯 하늘이 있고 그 외에 여덟 하늘이 있습니다. 색계도 묶어서 얘기하면 초선‘이선, 삼선, 사선의 구분을 통해서 18하늘, 초기불교에서는 16하늘로 말하는데 그렇게 나뉘어져있습니다. 그 하늘을 넘어가면 무색계하늘이 나오는데 무색계도 1선, 2선, 3선, 4선의 그런 하늘이 있습니다.
1선은 공무변처라 공간이 무한하고, 2선은 식무변처라 해서 의식이 무한하고, 3선은 존재(有)자체가 없는 그런 곳이라 해서 무소유처라고 합니다. 무소유처라고 무소유는 무,소유로 읽는 방법이 있고 무소,유로 읽는 방법이 있습니다. 무,소유는 소유가 없다. 가지는 것이 없다라는 의미이고, 무소,유는 ’존재 곧 있음이 없는 곳‘ 이라는 의미입니다. 있음이 있으면 이런저런 일들이 걸리게 되어 있는데 있음이 없다면 자유롭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선정삼매를 닦아서 그 의식의 수준이 존재 없음의 단계까지 올라간다는 의미이죠. 그 위가 비상비비상처천이라고 합니다.
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상이 아닌 것이 아닌 것도 아니라고 해서 많이들 뜻을 헤아리는데 어렵습니다. 쉽게 말하면 연상작용(聯想作用)이 없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제가 누군가요? 어떤 분은 법현이라는 승려, 어떤 분은 무상이라는 법호를 지닌 승려, 어떤 분은 방송을 하는 법사, 어떤 분은 저를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 저 사람은 누구다 이런 물건은 무엇이다라고 연상을 해놓으면 반드시 맞느냐, 꼭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그거일 뿐이고 그 사람일 뿐인 것이죠. 그렇게 연상 작용이 없는 그런 하늘까지를 무색계하늘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의 세와 욕계, 색계, 무색계의 계를 합쳐서 보는 것을 불교의 세계관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world라는 일반적 의미에서의 지구와는 너무나 다른 것이죠. 불교의 세계관은 의식의 수준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세계마다 부처님이 계신다는 것이 삼세불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과거 부처님이 계시고, 현재에는 현재부처님이 계시고, 미래에는 미래부처님이 계신다. 이런 생각입니다. 그런데 불경에 나오는 과거 현재 미래가 반드시 지금 우리가 느끼는 과거 현재 미래와 같은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불교도 지금 우리 한국불교는 여러 불교가 종합적으로 신행되고 있습니다만 부처님당시의 불교는 초기불교라고 이야기 하지요?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제자들의 불교는 어른들 불교가 테라와다불교, 그리고 대중 불교는 열여덟 파로 나뉘어 가지고 20부파라고 하지요. 그것에 따라 테라와다 불교로 나뉘어져 있지만 경전에는 과거불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포함해서 27분이 나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한국 등에서 신봉하고 있는 대승불교에서는 과거불이 석가모니 부처님을 포함해서 7분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과거는 그분들의 시간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지금 현재 우리는 부처님이 안 계시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무불시대라고 하죠. 무불이라는 이름을 가진 스님이 ‘내가 부처님이야’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수 있는 데요. 그렇게 보면 우리 석가모니 부처님은 과거불로 볼 것이냐 현재불로 볼 것이냐, 현재의 우리들은 바로 판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는 과거 현재불이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미래의 부처님이 지금 오늘의 공부의 대상인 미륵부처님인 것이죠. 그 미륵부처님이 누구냐. 라고 하는 것은 아직까지 누구도 부처님이 아니라고 본다면 아직 그 부천님이 오시지 않았다고 본다면 저도 미륵불이 될 수 있고 지금 명상들을 읽고 있는 님께서도 미륵부처님이 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에 따른 삼세의 부처님이 계시다면 장소에 따라서도 부처님이 계십니다.
하나는 시방불, 쉽게 말하면 이 동네에 계시겠죠.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타방불은 어떤 부처님이냐면 방위라는 것이 동쪽 서쪽 남쪽 북쪽 가운데(中)방위죠. 사방불, 오방불이 됩니다.
그 부처님들도 장소 방위에 따라 이렇게 나눠질 수가 있죠. 동쪽에는 약사여래부처님을, 서쪽에는 아미타부처님을 북쪽에는 무우부처님을 말씀드리고 남쪽에는 보승 부처님을 얘기합니다. 여러 경전에 따라 사상에 따라 조금씩 이름이 다르지만 타방불을 이야기 합니다. 다음으로는 신체불이라고 그 몸이 어떤 가입니다. 보통 비로자나부처님을 법신불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을 화신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보통불자님들이 여러 보살님과 부처님을 나눌 때 어떤 분은 법신이고 어떤 분은 보신이고 어떤 분은 화신인지를 헷갈려하는 분들이 많은데 아주 쉽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만 화신이고 비로자나 부처님만 법신입니다. 나머지 모든 부처님과 보살님들은 보신입니다.
비유하자면 태양이 있다면 태양이 법신이고 우리한테 다가온 것은 빛을 통해서 다가옵니다. 그 빛은 빨주노초파남보 등 여러 색깔로 나누지 않습니까? 보신입니다. 우리에게 가까이 와서 태양을 느끼게 하는 것은 볕입니다. 이 볕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것이죠. 그렇게 인식을 하시면 가려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체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 이런 부분에 대한 생각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는 중생이었다가 수행을 통해서 부처가 된다는 설들이 미래에 가능성을 두고 좋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원판 보존의 법칙이라는 생각으로 본다면 중생이 부처가 된다는 것은 약간 곤란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들이 아주 굉장히 좋아하는 판소리 가운데 춘향가가 있습니다.
그 노래 가운데 이몽룡 도령이 성춘향을 노래를 부르는데 ‘작은 이 도령 서는데 먹으려느냐’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거기서는 좋지 않은 꼬드김의 이야기지만 작은 이 도령과 큰 이도령의 말에 의미가 있습니다. 나의 아이는 작은 이도령이라고 하는 것인데 즉, 작은 이 도령을 잘 먹이고 잘 가르치고 잘 먹이면 큰 이도령이 되지 작은 이 도령이 갑자기 큰 김도령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래서 중생이 부처가 될 수는 없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
중생이라는 이름 속에 부처의 성품 부처의 씨앗이 들어있다고 봐야 된다. 그래서 부처가 되려고 노력하는 존재다. 이것이 보살사상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