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의 마음 공부
심리학자, 붓다
글 스텔라 박
달마의 가르침에 따르면, 심리학은 인간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며, 현실이 어떻게 조합되어 있으며,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에 관한 것이다.
심리학의 궁극적 목적은 사람들이 사회가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방식에 따라
돌아가 살도록 조정하는 것이 아니다.
… 무의미함을 간파할 수 있는 민감성과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자유를 발견하도록 도울 누군가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 로버트 써먼(불교학자) -
심리학과 대학원에 입학하다
이제 내 나이 60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나는 진정 내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다시 한 번 성찰하고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분기점에 서 있다. 7년 전부터 마음 속에 자라던 씨앗이 있었다. 매일 매일 명상을 하면서, 명상 지도자가 되면서, 다르마를 공부하면서 점점 더 심리학에 매료되어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서 미국의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것이 내게는 넘어가기 힘든 진입장벽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내게 남겨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절박감은 거절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뛰어넘게 만들었다. 까짓거, 한 번 도전해보는 거지, 뭐. 아님 말고.
그리하여 난 지난 해 말 임상심리학을 다루는 것으로는 그 분야 전문가들 사이에서 매우 평판이 좋은 안티오크 대학(Antioch University)에 입학원서를 냈고 합격하여 다니기 시작했다. 이름에서 다소 기독교 계열의 대학이라는 냄새가 날지 모르지만, 사실 이 학교는 내가 마지막 순간까지 콜로라도 볼더에 있는 나로파 대학(Naropa University)와 함께 최종적인 선택을 놓고 고려했을 만큼 모든 학과 코스에서 영성적인 면을 강조하는 학교이다.
나로파 대학에는 불교 심리학과가 있어, 정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학교를 위해 이사를 감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고려의 대상이었다. 안티오크 대학에는 ‘영성 심층 심리학(Spirituality &Deeper Psychology)라는 전공분야가 있었고, 이 과정에서는 불교와 마음챙김 명상을 매우 중요한 분야로 다루고 있어, 괜찮겠다 싶었다.
내가 졸업할 무렵에는 약 3개월간 해외 교환학생으로 떠날 기회도 주어진다. 영성 심층 심리학의 경우 일본 교토에 있는 불교 사원, 또는 프랑스에 있는 티베트 사원으로 갈 수 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이지만 나는 학과 과정에 대한 설명 중 이 부분을 보면서 심장이 쫄깃해지는 것을 느꼈다.
37년 만에 다시 학생 되기
10주간의 한 학기에는 3과목을 이수한다. 총 9시간, 까짓것 했는데, 에고, 이게 장난은 아니었다.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나는 <심리학 개론>이라는 과목을 다른 학생들에 더해서 들어야 했고, <대학원 수준의 논문 쓰기> 클래스도 택해야 했다.
이 두 과목만에다가 학점 인정이 되는 다른 과목들까지 이수하자니, 그야말로 압사 직전처럼 마음에 부담감이 왔다.
결국 나는 학점 인정 되는 과목은 취소했다. 이번 학기는 학교 떠난 지 무려 37년이 되는 나의 학교 적응력에 서서히 군불을 떼어 다음 학기부터 제대로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Academic Advisor에게 말했더니 그녀도 동의해주었다.
아직 뭐가 뭔지, 잘 판단하지 못하고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수업 시간에 앉아 있었을 때의 일이다. 클래스에서 다른 학생들이 끊이지 않고 발언을 하는 것이었다. 결국 두 시간 동안 나 혼자 묵언수행을 한격이었다. 나중에 교수가 나눠준 “평가기준” 항목을 보고서 미리 책을 읽어가고 토론에 참여하는 것이 평가 기준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또 한 차례 깨달았다. 질문을 하고, 교수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것에 내가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궁금한 게 많아 질문을 많이 했다가 미움을 많이 받았던 과거의 기억이 쌓이다보니 이제 질문이 있으면 따로 교수를 찾아가 하는 것으로 대체 방법을 택해왔었던 것이다.
심리학 개론 시간에는 심리학의 큰 기둥을 이루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융, 알프레트 아들러, 빅터 프랭클 등의 심리학자들에 대해 배웠다. 대학에서 <심리학 개론>을 공부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나는 이미 그동안 읽었던 책들에서 이들 심리학자들의 이론을 제법 접했었다. 하지만 다시금 심리학도의 눈으로, 그냥 읽는 교양서적이 아니라 교재를 통해, 그리고 수업시간을 통해 접하는 내용은 조금 더 깊었다.
어쩌면 이렇게도 당대 심리학을 주름잡던 사람들이 모두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중심으로 활동했었는지, 나는 쉬는 시간이면 음악과 함께 심리학의 메카였던, 한때 가장 화려한 도시였던 비엔나로 시간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심리학의 발전과정을 보면 커피와도 비슷한 역사를 지닌 것 같다. 최초의 카페였던 비엔나의 ‘블루 바틀(Blue Bottle)’ 이후 비엔나는 커피에 있어서도 유행을 이끌었었지만 20세기 스타벅스라는 커피 회사가 등장하면서 커피의 유통과 소비에도 큰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미국은 커피, 와인, 심리학, 아트 등 여러 면에서 다른 나라의 것들을 수입해, 자신들의 토양에 접목시켜 또 다른 것을 내놓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나라이다. 심리학에 있어서도 그렇다.
비엔나를 중심으로 여러 학파가 구성되며 심리학이 꽃을 피우다가 어느새 미국에서 전 세계 학계에 영향을 미치는 우수한 학자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심리학 교재에서도 배우는 탁월한 미국의 심리학자와 그들의 이론으로는 칼 로저스의 클라이언트 중심 테라피, 프리츠 펄스의 게슈탈트 테라피, 알버트 앨리스의 이성 감정 중심 테라피 등이 있다.
심리학의 원조, 붓다
<심리학 개론>의 마지막 주 수업 시간, 오랜 시간 여러 불교 대학을 전전하며 꾸준히 불교 공부를 해왔고, 불교 심리학의 대체로 영성 심층 심리학 전공을 선택한 나는 “내 선택이 맞았어.” 하는 가슴 속으로부터의 전율을 느꼈다. <심리학 개론>의 한 주 강의 전체에 불교 심리학(Buddhist Psychology)이 할애되었기 때문이다.
교수는 역사적 인물인 붓다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가 어떤 수행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는지, 그것이 심리학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지, 붓다가 가르쳤던 사성제, 팔정도를 줄줄이 이어갔다. 그러고 보면 현대 심리학은 모두 불교의 가르침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불교 공부와 수행의 혜택인 “깨달음”을 심리학적인 언어로 이야기한다면 자신의 어린 시절 첫 애착관계로 형성된 신념체계를 인지함으로써 어린 시절, 직면하기 힘들어 무의식의 영역으로 눌러놓았던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다시금 현재에서 통합시키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에 대한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수업 시간에는 마인드풀니스 수행을 결합한 인지 치료가 얼마나 “무의식의 의식화”에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도 대화가 오갔다. 현대 미국의 심리학에서 불교에서 기원한 마인드풀니스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수업시간에 앉아서 행복감에 가슴이 충만해졌다. 이제껏 내가 고민하고 탐구했던 주제가 다시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붓다의 가르침이 근원적으로 괴로움에 허덕이고 있는 현대인의 마음의 병을 어떻게 치료해줄 수 있는지를, 학문적으로 풀어내는 시간에 나는 눈을 반짝이며 몰입했다. 임상 심리학자들은 결국 붓다의 가르침과 방법론을 체화하여 현장에 나가 다른 사람들을 돕는, 붓다의 제자들인 것이다.
내가 대학원 과정을 모두 마치고 3천 시간의 트레이닝을 모두 끝내고 나면 아무리 빨리 마친다고 해도 아마 62세가 넘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 나이면 대부분 나의 친구들은 은퇴를 준비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제 2의 내 삶이 기대된다. 무엇보다 100세 시대, 인생 후반기에 내가 열정을 가지고 몰입할 수 있는 주제가 생겼다는 것이 기쁘다. 그리고 새파랗게 젊은 심리상담가를 찾아가 자기 삶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래도 인생을 좀 살아보고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어온 것 같은 연륜이 있는 이를 찾고 싶지 않을까. 마음의 병을 들어주고 상담해주는 일을 하면서 나는 또 다른 방법으로 붓다의 가르침을 세상에 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자면 지금부터 한 3년, 삶의 많은 부분들을 포기하고 오직 공부에 매달려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선택과 집중도 해볼만한 도전이라고 여겨진다. 늘 현재에 살지만, 나는 벌써부터 테라피스트이자 수행자의 마음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당신이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면서.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
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
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디
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