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방세계 Ⅱ
붓다의 면목
글 공일 스님
서울대학교 졸업,
인도철학자,
현재 서울 봉은사 포교국장
감은 듯 뜬 듯한 눈길을 하고 얼굴에는 금빛의 평안한 미소가 감돈다. 결가부좌로 견고하게 앉아 있다. 절집 법당에서 마주치는 불상의 특징이다. 붇다의 저 오래된 침묵은 묵언으로 알려진다 침묵의 언어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그 어떤 것들에 대해서도 서두름이 없다.
떠나는 자의 발길에 아쉬움도 없고 또한 다가서는 그 누구도 막아서지 아니한다. 양다리를 꽈배기 틀듯 하여 움직임을 막는 결가부좌의 앉음새는 우주가 무너진다해도 요동이 없다. 묵언과 결가부좌, 그리고 비밀스런 미소는 천사의 날개조차 굳어버리게 할듯한 기세다.
그러므로 절집에서는 흐르던 강물조차 멈추기에 번뇌가 쉬는 법이다. 하늘의 구름조차 마음내려 놓고 쉬는 것이다. 밤 하늘의 별들조차 깨어나지 않으려 박제된다.
꿈꾸는 듯한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잠도 아니고 꿈도 아니다. 모든 것이 허용되는 사랑은 결코 꽃피지 않을 것이다. 오직 대상도 없이 인식 자체만 홀로 깨어있다.
적막과 고독의 불꽃이다. 그래서 숱한 사연들이 드나들어도 가느다란 실눈은 단 한번도 떠지지 않았다.
붇다의 뒤편으로는 후불탱화의 기묘한 평면성의 공간만 나부끼고 있다.
지금 등 뒤쪽이 가려워도 돌아보지 말라. 이때까지 끌고온 삶의 무게가 사라지면 중생인 그대의 정체성이 사라진다. 그저 그대의 등 뒤로 무한한 하늘이 펼쳐져 있음을 믿으라. 이것이 시방 그대와 나 사이의 사랑법이니까
사랑법
강은교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은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 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