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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현대불교 2024. 5,6월호] “삶은 실험이다” 글 스텔라 박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4.08.14|조회수6 목록 댓글 0

“삶은 실험이다”

-실험주의 미술 전시를 보며 한생각-


글 스텔라 박

 

 

 

인간 구원을 향한 유일한 희망은
인류에게 자기 스스로를 신의 실현을 위한 실험(experiment)으로,
자신의 손을 신의 손으로, 자신의 뇌를 신의 뇌로,
자신의 목적을 신의 목적으로 여기도록 가르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는 인간이 되기를 갈망한 끝에, 몸의 장기들을 절실히 필요로 했고,
인간 존재가 되기를 갈망한 신을, 무력한 갈망으로 여겨야 한다.

 

- 조지 버나드 쇼 -

 

 

 

 

다양성의 나라, 미국에서의 코리아

 

미국은 국호에서도 암시하듯,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세운 나라이다. 본래 이 땅에서 살고 있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 이후 미대륙에 들어 온 필그림들, 그후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이들, 그들이 노예로 데려온 아프리카인들에다가, 사탕수수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온 아시아인들 이르기까지,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이다. 그런 만큼 다양성에 적응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갈등도 많았고, 반대급부로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도 커졌다.
한민족이 같은 언어, 같은 생활 방식을 갖고 살던 한국에서는 조금의 다름도 더 도드라져 보이지만 이곳 미국에서는 일단 보이는 외모부터 다른데다가 생활방식도 모두 다르다 보니 오히려 인류라는 공통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싹텄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다양한 토양인 미국에 코리아, 그리고 코리아의 모든 것이 조명을 받고 있다. 특히 미 전국에서 가장 큰 한인 커뮤니티를 갖고 있는 LA에서는 케이팝과 한국 영화, 한국 화장품, 한국 음식 등 한국 문화에 대한 인식도 높고, 그에대한 애정도 깊다.

 

 

코리아의 예술, 주류사회에서 각광

 

지난 2022년 9월, LA카운티뮤지엄(LACMA)에서는 <사이의 공간: 한국미술의 근대(The Space Between: The Modern in Korean Art)>라는 대규모 기획전이 열렸었다. 방탄소년단의 리더인 알엠이 전시작품에 대한 오디오가이드를 녹음해 방탄소년단 팬클럽인 아미가 대거 찾기도 했거니와 작품의 수준도 높아 한인은 물론이고 비한인들도 많이 방문하며 대성공을 거두었었던 전시였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한국은 문화강국으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사이의 공간>전은 김구선생이 꿈꾸었던 문화강국 코리아의 격동기 근대 예술사를 조명했는데, 전시 규모와 수준에 있어 한단계 층변 변화를 일으켰었던 기획이 돋보였다.

올해 2월부터 한국 예술을 조망한 또다른 전시회가 시작됐다. LA 길거리에는 문화 행사를 알리는 깃발들이 각 시즌마다 들어서는데, ‘한국실험미술’이라는 한국어가 들어간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UCLA 인근인 웨스트우드(Westwood) 지역에 자리한 해머 뮤지엄(Hammer Museum)에서 <오직 젊음: 1960-70년대 한국실험미술(Only the Young: Experimental Art in Korea, 1960s–1970s)> 전시가 개막된 것이다. 이 전시는 지난 2월 11일에 시작돼 오는 5월 12일까지 약 3개월간 계속된다.
알고 보니 이 전시의 시작은 2023년 5월부터 서울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2023년 5월 26일~7월 16일)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1988년부터 세계 미술사 속에서의 한국 미술 영토 확장을 위해 한국현대미술전을 추진해왔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강수정 큐레이터와 구겐하임 뮤지엄(Guggenheim Museum)의 안휘경 큐레이터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한국실험미술>전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 이어, 뉴욕의 구겐하임뮤지엄(2023년 9월 1일~2024년 1월 7일), 그리고 LA 해머 뮤지엄(2024년 2월 8일~5월 11일)으로 순회 전시 중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한국전쟁 이후인 1960-70년대에 등장한 작가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김구림, 성능경, 박현기, 이강소, 이건용, 이승택, 정강자, 하종현 등 한국 실험주의를 대표하는 29명 작가의 작품 80여 점과 기록물들이 선보여지고 있다.

 

 

현실을 고발하는 실험주의

 

이 글을 읽는 독자들 가운데는 아마도 1940년대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경험하고 전쟁을 직접 경험했으며 산업화 과정 속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쉬지 않고 달려온 분들이 있을 것이다. 또1950년대에 태어나 전후 배고프던 시기를 거쳐 격동기에 20대를 보내며 민주화를 향한 뜨거운 열망에 거리로 뛰어나가 “자유"를 외쳤던 분들도 있을 터이다. 또 나처럼 1960년대에 태어나 대통령과 ‘박정희'를 동일한 단어로 알고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나 자신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타고 이 땅에 태어난” 것으로 굳게 믿고 조금이라도 국가에 쓰임받는 존재가 되고자 애썼던 이들도 있을 것이다. 1960-70년대에 활동하던 작가들의 작품들을 둘러보면서 나는 내가 태어났던 시기, 그리고 자아가 형성되고, 깨어지며, 고통받고, 다시금 해체된 자아를 돌아보고 성장하던 시기를 돌아볼 수 있었고, 다른세대에 태어났던 관객들 역시 전시를 돌아보며 비슷한 느낌을 가졌음을 대화를 통해 알게 됐다.
1960-70년대 무렵, 가슴 뜨거운 청년이었던 실험작가들은 한국의 급격한 근대화와 도시화로 인한 사회변화, 그리고 인간소외라는주제를 다양한 매체를 통한 예술작품으로 표현함으로써 사회 참여에의 열정을 불태웠다.
10년이라는 세월이 얼마나 쏜살같이 흐르는 것인지 나이가 들수록 느끼게 된다. 이들이 활동했던
1960년대는 한국 전쟁이 휴전한지 10년 남짓 흘렀던 시기이다. 아직전쟁의 상처는 곳곳에 있었을 것이고, 아직 휴전이라고는 하나, 밥은 먹고 살아야 했을 터이고, 한 번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한 민주주의를 실제의 삶에서 구현해내느라 한국인들은 엄청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겪었을 것이다. 일단은 생존해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의 급격한 산업화과정은 인간소외를 낳았을 것이다.
이 시대의 실험주의 작가들은 그들이 지나고 있는, 경험하고 있는, 펼쳐지고 있는 ‘삶’을 모티브로
하여 지금까지 전혀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의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당시 한국 예술계의 지배적 스타일에 대해 불만을 품었다. 마치 프랑스의 인상파 예술가들이 기존 살롱의 틀에 박힌 스타일에 염증을 내고 현재 순간을 포착한, 자신들만의 새로운 화풍을 개척했던 것처럼 말이다. 강렬한 문화적 전환의 시기에 처한 한국의 실험주의 작가들은 때로는 그룹으로, 그리고 때로는 독자적으로 작품 활동을 해나갔다. 이 시대의 실험주의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시대를 고발하고 문제의식을 던졌다는 점에서 철학자이자 혁명가의 역할까지 겸했었다.
아마도 그들은 군사독재정권을 고발하는 작품을 발표했다는 이유로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취조를 당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들은 전시회가 갑작스레 공권력에 의해 무산되고 저지되고 수정되어야 하는 좌절을 맛보았을 것이다. 물론 초창기의 날선 기개는 몇 차례의 공권 개입으로 꺾여졌을지라도, 그들은 오똑이처럼 다시 일어나 자신의 위치에서 내어야 할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그목소리들은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에 있어 빗물이었고, 태양이었고, 토양이 되었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군사독재시절, 대한민국 국민들은 국가로부터 똑같이 사유하기를 강요받았는지도 모른다. 다른 것(Something Different)은 틀 린 것 (Something Wrong)으로 간주되기 일쑤였다. 모두가 짜장면 시킬 때 짬뽕을 시키는 자는 주문된 음식 빨리 나오지 못하게 하는 원흉으로 여겨졌었으니까. 어떻게 그런 서슬 퍼런 시절에 이처럼 작품을 통해 독특하고, 차별되고, 혁명적인 시도를 할 수 있었을까. 나는 고정관념을 파격적으로 해체한 전시 작품들을 둘러보며 우리 민족의 피에 흐르고 있는 진정한 다양성의 소리에 희열을 느꼈다.
강규진 작가의 1968년도 대형 네온 조형물 <비주얼 센스(Visual Sense)>, 서승원 작가의 오일 추상화 <동시성(Simultaneity)>, 정강자 작가의 <키스미(Kiss Me)> 등의 작품들을 둘러보면서 관객들은 동시대 다른 나라의 예술계와 비교해보더라도 한창 앞서가는 한국 작가들의 실험적 시도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특히 이번 전시의 포스터에 사용된 사진 연작, <사과> 시리즈의 성능경 작가는 사진을 매체로 개념미술을 풀어낸 ‘한국적 개념미술’의 개척자로 평가된다. 작가의 몸과 행위를 기록한 사진으로 구성된 <사과> 연작 - “작가가 살아온 시대의 척박함과 전체주의적 사회 분위기를 생각해볼 때 그의 작품은 예술혁명이라고 불러도 충분할 만큼의 창조성을 지녔다.

 

 

 

 

 

 

현재로부터 시작되는 실험주의

 

미국의 철학자이자 작가, 영성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자신의 ‘삶’이라는 '실험'을 통해 배운 지혜를 이렇게 말한다.
“꿈의 방향으로 자신있게 나아가고, 자신이 상상해왔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자는 일상에서 기대하지 못할 만한 성공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는 어떤 것들을 뒤로하고, 보이지 않는 경계를 통과할 것이다. 또한 새롭고 보편적이며 더 자유로운 법들이 그의 주변과 내부에 자리 잡기 시작할 것이다. 또는 오래된 법들이 더 자유로운 의미로 확장되고 해석될 것이며, 그는 더 높은 질서의 존재라는 면허를 갖고 살게 될 것이다. 그가 그의 삶을 단순화하는 것에 비례하여, 우주의 법칙들은 덜 복잡해 보일 것이고, 외로움은 고독이 아니며, 청빈은 부족함이 아니게 될 것이다. 만약 그대가 공중에 성을 쌓았다면, 그대의 작품은 손실될 필요가 없다. 그대의 성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허공이다. 그 허공 아래에 기초를 두기를."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60-70년대, 우주보다 넓어 마하로 표현되는 우리 마음을, 반공정신으로, 중단없는 전진으로 가득 채우며 진정한 실험 없이 체제가 이끄는 대로 달려온 우리들, 그 시대에 한국의 실험주의 작가들처럼 주변을 돌아볼 것과, 우리의 규격화된 사고체계를 넓혀볼 것을 제안했던 선구자들이 있었음이 반갑다. 그들은 어쩌면 그 힘겹던 시절에, 어떤 의미에서는 잠들어 있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깨어 있으세요” 라고 쉬지 않고 외쳤던 것인지도 모른다. 새삼 그들이 겪어야 했던 불리함, 불편함을 마다하지 않고, 선각자의 삶을 살았던 실험주의 작가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는 과연 내 삶을 진정 자유로운 마음으로 꾸며가고 있을까. 60-70년대의 논리로 2030년대를 살고 있지는 않나. 끊임없이 의심하고 되돌아보고 새로운 것을 실험해보자. 당신이 하늘을품고, 우주를 품는, 그 끝이 없는 마음을 탐구하며 진정 막힘 없는, 무한 가능의 자유로움으로 살아가기를. 그리고 때때로 그 무한가능의 마음을 묘용하며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기를. 그렇게 하기 위해 오늘도 기존 질서와 가치관에 도전하며 또 다른 실험을 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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