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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현불연재물

[미주현대불교 2024. 7월호] 삶이라는 성장의 기회,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 스텔라 박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4.08.20|조회수0 목록 댓글 0

 

 

스텔라의 마음 공부

‘삶’이라는 성장의 기회,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글 스텔라 박

 

 

 

 

 

 

“오직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삶만이 가치 있는 삶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가로 우리가 지불하는 임대료이다.

 - 무하마드 알리 -

 

 

 

 

 

매일 아침 기지개를 펴면서 나는 내게 주어진 또 하루의 사랑할 수 있는 기회, 꿈과 비전을 펼칠 수 있는 기회, 성장의 기회, 그리고 이토록 아름답고 소중한 삶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선물로 주어졌음을 하늘과 땅에게, 삶에게, 저 깊은 곳의 나에게 감사드린다.
삶의 우리들을 향한 사랑은 우리가 태어난 이후 멈춘 적이 없었다. 그렇지않아 보였던 시절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좀더 시간이 흘러 삶의 큰 그림과 계획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 개입 없었던 시기에도, 버려져 있는 것처럼 보였던 기간에도, ‘개입 없음’이라는 방식으로 개입했던 삶의 자비와 은혜를 느끼며 감사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삶’이란 공(空)이 연기법에 의해, 인연조건에 따라 색(色)으로 나투어, 내 앞에 펼쳐진 현재의 경험이라고 사족을 달 수 있겠다. 현재의 경험에 대해 비판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연습을 계속하던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천지가 새롭게 창조되는 듯한 느낌을 경험했다. 그러니까, 무위를 향한 노력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가, 갑자기 통으로, 삶을 받아들인다는 어떠한 인위적 생각이나 노력도 없이, 쓰윽 들어오는 경험, 즉 그 경험과 하나가 되어서, 살아지고 있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와! 살아지는 경험이 곧 사라지는 경험이다. 경험을 했다는 표현은 사실 그리 좋지 않다. 경험한 자와 경험한 대상이 둘이 될 때에야만 그 경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언어의 한계는 여기까지이다.

 

수행 이전과 이후, 존재의 변화 없는 변화는 삶을 대하는 이 경험자(나)의 태도를 바꾸어버렸고, 이 삶이라는 ‘유한'하다고 믿었던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할까?”에 대한 전략을 수정하는 것에 이르게 했다. 내가 그렇게 해야지, 하는 마음을 낸 것은 아니지만, 어느새 이 경험자는 그렇게 바뀌어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어느날 그런 자각이 이 경험자(나)를 찾아왔다. 나(경험자와 경험자가 체험하는 경험)는 나를 알고자 나(경험자와 체험하는 경험)를 창조한 것이로구나.
그 앎의 경험이란 것은 제 몫의 재산을 달라 요구해서 집을 나갔다가, 모든재산을 탕진하고 탕자가 되어, 다시 아버지 계신 집으로 돌아온 아들이 느끼는 것과 같구나, 싶었다.
나는 드디어 내가 ‘삶’이라는 꿈에서 해야 할 미션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즉 사는 동안 내가 해야할 일을 알게 된 것이다. 이 말은 곧,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뜻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나로 부터 사랑받는 경험을 위해 나를 창조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방법으로 나를 사랑하고 사랑받을 것인가.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누군가는 맛있는 밥을 만들어 결국 나인 손님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 하는 것을 보며 사랑하고 사랑받는 경험을 창조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나로 현현한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주고자 멋진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정말 그 일에는 귀하고 천한 것이 없다. 오직 이 경험자가 몸을 갖고 태어나 반복해온 것이 잘하는 것, 그 안에서 기쁨을 찾는다면 계속할 힘을 공급받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다양한 경험 가운데 다른 것을 시도해봐도 좋은 것이다.
나는 환갑을 앞둔 나이에 내가 어떻게 나를 사랑하고 사랑받는 경험을 할 것인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우리 모두가 그 고요한 지점을 사용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먹고 마시고 자는 그것이 우리 각자에게 모두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우리임을, 그리고 어떻게하면 그 지점에 접근하고 연결되어, 마음껏 활용할수 있는지를, 완전히 망각하고 게임 속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있잖아. 사힘든 날들도 이겨낼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 너무나도 방향이 정확하고, 구체적인 사랑에의 열정은 확장되고 유연하여 어떤 일을 해도 괜찮다. 즉 직종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를 들으며 나도 라디오 방송 진행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의 씨앗을 품었었다. 그 일이 이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이라서가 아니라, 멋있어 보였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하려 했다. 남들 앞에 멋져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몸과 마음에 장착되면 그런 장면을 대할 때 몸에서 “쪼르르” 하는 느낌이 일어난다. 소름 돋는 전율이 있다. 우리 몸은 이를 기억하고 또다시 삶 속에서 그런 경험을 원한다.
얼굴로는 주목을 받을 수 없었지만 학예회에서 춤 잘 춘다고 이성으로부터 환호성을 받아본 경험을 해본 월드스타 싸이는 누나들의 휘파람 소리가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한다. 그 순간의 짜릿함을 맛보고자 평상시 친구들과 노는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피눈물나게 연습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성공을 향한 우리들 몸의 메카니즘은 중독과 어느 정도 결을 같이 한다고 생각된다. 중독의 길을 걷던, 성공의 길을 걷던, 우리는 도파민이 분비될 때의 쾌락을 얻고자 오늘도 심장이 팔딱거릴 정도로 달리고, 무거운 아령을 들고서 근육을 찢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면서도 또다시 영어단어를 외우며, 뚜벅뚜벅 길을 걸어간다.
이렇게 그 일이 주는 호르몬의 변화와 즐거움에 집중하다 보면 이 세상에 오직 그 일만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 같아 보이기 시작한다. 집착하면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망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내가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길은 오직 배우가 되는 거야.”라고 답을 미리 정해놓으면 그 많은 가능성 가운데 오직 한 가지만을 붙잡고 있는 격이기 때문에 정말 그 일을 이룰 가능성이 오히려 낮아진다. 그리고 그 목표지점으로 가는 길은 모든 즐거움의 희생이고, 외로운 싸움이 되어버린다. 그래야 나중에 정상에 깃발을 꽂고 눈물을 터뜨리면서 “이제 꽃길만 걷자.”는 되도 않는 덕담을 스스로에게 한다.
신성이 춤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을 이용하여, 수많은 가능성 중에 오직 하나의 지점만을 고집하며 그 길을 향해 나간다면 인간적 차원의 성공을 맛보게 된다. 그런데 노력을 그렇게 좁은 것에 고정시키고, 끊임없이 변해가는 주변 상황들을 고려하지 않고 매진하는 것에는 너무 큰 노력이 필요하고 그래서 가는 길에 이미 내 진짜 목적을 잃어버리고 우리는 미아가 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경험을 하기 위해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제까지 해왔던 일들 중 우리들이 가장 잘 해왔던 일과 비슷한 분야의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근원에서의 전환이 일어났기에 이제 우리들의 목적은 더 이상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전문가의 일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경험이다. 그러니 그 과업을 이루기 위해 꼭 무엇인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제 내게는 “나는 꼭 이것이 되어야 행복해질 수 있을 거야.”라는 것이 없어졌다. 즉, 나는 방송인이어도, 요가강사여도, 강연자여도, 작가여도, 액티비스트여도, 농부여도, 실업자여도, 백수여도 된다. 일의 종류에 상관 없이, 나는 세상 그 어느 곳에 있다 하더라도, 내가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그 평온의 근원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알려줄 수 있다.
우리의 실체는 영원한 의식이지만 이 몸을 가지고 경험하는 이 삶의 하루 하루는 너무도 소중하다. 왜냐,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처럼 저끝에 우리의 목표 달성이라는 도달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곳의 이 삶이 우리가 그렇게도 원했던 바로 그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지금 이곳에서부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면 아무리 가상이지만, 방편으로 자신의 가치관과 목표를 명확히 하고, 이를 중심으로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도 “가테 가테, 파라가테, 바라쌈가테, 보디 스와하" 라고 노래했던 것이다. 해석하는 이에 따라 “가세 가세 어서가세. 어서피안으로 가세.”라고 미래형으로 번역하거나, 또는 “닿았노라, 닿았노라. 피안에 피안에 와 닿았노라. 깨달음에 이르러 기쁘도다.”라고 완료형으로 풀이하기도 하지만, 어찌 됐든, 이는 차안과 피안을 나누고서 피안으로 나가자는, 가상의 가치관 또는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우리들은 전도몽상에 사로잡혀서, 있는 그대로 완전한 ‘현존’ 또는 ‘삶’을 '고통'이라 여기고 고통을 여읜 피안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그렇게 본래 차안 피안이라 할 것이 없지만, 가상으로라도 피안을 규정하는 순간, 피안에 반대격인 차안이 생겨나고 피안으로 나갈 바램(욕망)도 생긴다. 그리고 이 욕망은 매우 귀중한 에너지이다.

당신이 설정한 방편으로서의 목표는 무엇인가? 가능하면 가장 원대한 꿈을 꾸라. 왜냐, 어차피 가상이니까.
인간이 꿀 수 있는 가장 원대한 꿈은 해 탈 (Enlightenment)이 아닐까. 감히 그 큰 꿈을, 몇 생애를 다시 태어나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꿈을 가슴에 품어보자. 그러면서도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딛고서, 먹어야 생명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이 육체를 보존하며 그 큰 꿈에 한 발자국씩 나아가보자.
그런데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우선 내 현재의 모습, 내 현주소, 쉬운 말로 내 꼬라지를 알아야 한다. 자기 성찰을 통해 현재의 삶이 내 가치관과 원하는 삶이라는 목표에 부합하는지를 확인하다 보면, 성장, 사랑, 꿈, 즐거움 등 삶의 다양한 측면을 아우르면서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단기 목표와 장기 목표를 설정할 수 있게 된다. 다음은 사랑하고 사랑받는 경험을 위해 일상 생활에서 매일매일 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목표들이다.

 

 

 

첫째, 현재에 연결되기
이를 위해 마인드풀니스만큼 효과적인 도구가 있을까. 현재 이 순간, 그 중에서도 현재 이 순간의 몸의 감각에 있는 그대로 집중하고 그대로 허용하는 것을 시간을 정해놓고 매일 반복 연습한다. 이것이 가장 쉽고 단순화시킨 마음챙김 명상의 내용이다. 또한 이 순간에 저항하여 일으키는 마음의 불평 불만에 귀를 기울이고 무엇이 그렇게도 불편한건지를 계속 물어본다. 지금 이 생각을 일으키는 이것은 무엇인가도 계속 질문한다. 일기를 쓰면서 현재의 감정과 생각을 가감없이 허용하며 정리해본다. 즉 내가 심의기관이 되어 “그런 생각을 하면 되나.” 하며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와일드하게, 마음대로, 감히, 발칙한 생각까지도 허용하며, 그 생각이 오가고 있는 바탕을 인지한다. 그렇게 불온한생각까지도 품을 수 있는 것이 우리들 마음이다.

 

둘째, 자기 돌보기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서는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균형잡힌 식사를 하고, 잘 배설하고, 잘 잔다. 이 기본적인 것이 잘 안 되고 있다면 전문가에게 도움받기를 망설이지 말자.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며, 충분한 쉬어주고, 여가 시간에는 하이킹 요가 등의 몸을 움직이는 운동,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여행, 노래부르기 춤추기 등 좋아하는 활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관리한다.


셋째, 친밀한 관계 가꾸기
친밀한 관계는 인간 삶에 있어 마치 아이스크림 위의 생크림과 체리 토핑처럼 맛있고 달콤한 것이다. 가족, 친구, 연인에게 자주사랑과 감사를 표현한다. 또한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진심 어린 대화와 함께하는 질 좋은 시간을 통해 깊은 유대감을 형성한다.

 

넷째, 긍정적 태도와 감사
삶의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한다. 아직은 우리들에게 긍정적으로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할지 모르나, 긍정형은 우리의 꿈이 아닌 실제 상황이다. 즉 현재의 삶은 아무리 팍팍해보일지 모르지만 늘 발전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다. 우리 시각이 좁아 그 큰 그림을 보지 못할 뿐이다. 이제 살만큼 살아보니 그 믿음이 장착되었다. “나는 지원받고 있어요(I am supported). 나는 사랑받고 있어요(I am loved).” 그리고 그러한 삶의 일관된 사랑에 감사한다. 감사도 연습이다. 자꾸 감사하는것을 억지로라도 연습하면 점점 더 잘 하게 된다. 나는 이를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억울한 일밖에 없는 하루 끝자락에 억지로라도, 이를 악물며감사할 일 5가지를 생각해내 감사일기를 썼다. 그리고나니 눈뜨고 있는 동안 나의 뇌는 감사할 것을 찾느라 깨어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눈물이 줄줄 흐르며 숨을 쉬고 있음에, 이제껏 잘 살아왔음에, 하다 못해 “뭐, 저런 인간이 있어” 했던 인간이 그런 인간임에 감사했다.
그가 그렇지 않았다면, 아니 그를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면, 나의오늘이 있었을까. 감사는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 비교는 불행으로 가는 숏컷이다. 감사한 마음이 든 사람들에게는 말이든, 문자이든, 선물이든, 어떤 매개로라도 감사를 표현한다. 풀어낼 길이 없었던 인간관계가 갑자기 축복으로 변한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섯째, 봉사, 기부, 옹호 등 사회적 기여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자원봉사, 기부, 옹호(Advocacy) 등의 사회적 활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도록 한다. 이것도 연습이다. 하면 할수록 더 잘하게 된다. 내가 존경하는 한 법사님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월급을 타면 기부금부터 따로 떼어놓고 가계를 운영하셨다고 한다. 그분은 지금도 많은 기관에 많은 보시를 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삶을 살고 계시다. 그분을 통해 드러난 돈의 법칙은 나를 감동시켰다. 나도 약 5년 전부터 몇 분의 스님과 명상센터, 사찰, 비영리기관에 보시를 하기 시작했다. 천상세계의 경제법칙에 나를 허용하며 나는 플러스 마이너스를 넘어선 세계에 대해 눈떠가고 있는 중이다.
또한 환경보호, 사회정의, 통일과 평화 등 내가 정의라고 믿는 가치를 위해 옹호활동에도 책임감을 하지고 열심히 참가하고 있다.

 

지속적인 배움과 성장
독서, 교육 프로그램, 워크숍, 새로운 취미 배우기 등 지속적으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개발한다. 이렇게 새로운 것을 대했을 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왜냐하면 새로운 것인 만큼 지금껏 반복 연습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매번 새롭게 도전하다 보면 어느 틈에 두려움은 사라지고 몸이 그것을 기억하게 된다.
우리들이 최초로 걸음마를 했을 때, 실패할 것을 두려워했다면 지금 제대로 걷고 있는 어른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99번 넘어지고 한 번 일어서서 한 걸음을 떼었을 때 “아이고, 우리 아가 잘 하네.” 하는 칭찬에 힘입어 우리는 결국 걷기 전문가가 되었다. 걷는 능력 역시 꾸준한 연습의 결과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연습을 할 기회는 내 앞에 펼쳐져 있다. 그 기회를 감사히 여기고 꾸준히 연습한다. 작은 성취도 소중히 여기고, 계속 노력 연습 수행하는 것이 고귀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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