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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현불연재물

[미주현대불교 2024. 9,10월호] 사라진 별들 사이를 거닐다 - 글 스텔라 박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4.11.05|조회수2 목록 댓글 0

 

 

스텔라의 마음 공부 

 

사라진 별들 사이를 거닐다

할리웃포에버에서 만난 삶과 죽음의 유산들

 

글 스텔라 박

 

 

 

 

"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 니코스 카잔차키스
"

 

 

현장학습을 위해 찾은 
할리웃포에버 묘지
지난 7월부터 심리학 대학원 과정 두번째 학기에 들어섰다. 이번 학기에는 실제 테라피를 시작하게 되면 만나게 될 다양한 클라이언트들을 현장에서 경험하는 과목이 있었다. 교실에서 배우는 것은 전혀 없는 2학점짜리 코스인데, 학생들은 자신들이 친숙한 또래집단으로부터 보다 확장된, 다양한 커뮤니티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 공동체의 이벤트에 참석하며 현장에서의 느낌을 보고서로 써내야 한다. 
내가 나의 시각을 더 넓히기 위해 선택한 주제는 연장자(나이듦과 죽음), 다른 종교 수행자들, 그리고 다양한 성적 취향의 공동체였다. 그리고 첫번째 주제인 연장자(나이듦과 죽음)을 위해 나는 할리웃 포에버 묘지(Hollywood Forever Cemetery)를 찾아, 묘비명 사이를 걸으며 죽음에 대해 사유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름다운 묘지 공원
LA에 거의 40년째 살면서도 LA 한복판에 할리웃 포에버처럼 큰 묘지가 있다는 것도 금시초문이었고 내가 매일 오고 가던 길에 이토록 아름다운 공간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산타모니카 대로로부터 윌로우비(Willowby), 반네스(Van Ness)로부터 가우어(Gower)까지의 그 드넓은 공간이 모두 할리웃 포에버 묘지이다. 출입문을 지나 차를 세우고 묘지 사이를 걸어다니기 시작했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 다. 총면적이 62에이커라니 말 다했다.  인공호수에는 오리들이 헤엄치고 있고, 잘 정돈된 잔디밭과 꽃나무들, 고인을 기념한 벤치들, 간간이 보이는 조각상들까지 할리웃포에버 묘지는 공원이라는 표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이곳은 또한 꼬리가 화려한 공작, 고양이, 오리, 새 등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혹시 밤이 되면 아직 주변을 배회할 수도 있는 망자의 혼과 그들은 이야기를 나눌까, 궁금했다.  묘지의 한쪽에는 붓다의 조각상도 서 있어 반가웠다. 점점 늘어가는 아시아인 고객들을 위한 묘지 측의 배려일 것이다.  여름철에 해가 지면 할리웃포에버 묘지 공원에서는 대형 벽에 영사기를 돌려 영화상영 행사도 갖는다. 흰 소복 입고 머리 산발한 채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처녀귀신 나타나는 망우리 공동묘지만 생각하던 한국인들에게 도시락 싸와서 까먹으며 영화를 보는 묘지는 생소하기만 하다. 

 

이곳에 묻혀 있는 유명인들
할리웃포에버 묘지에 있는 묘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제34대 미국 대통령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의 묘일 것이다. 아이젠하워의 묘는 할리웃포에버를 빛내주기는 하지만 실제 그의 묘는 워싱턴 D.C.의 아이젠하워 묘지에 있다. 1899년에 설립된 할리웃포에버 묘지는 할리우드의 초기 영화 산업의 발전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여러 명의 초기 영화 제작자와 배우, 감독들이 이곳
에 묻혀 있어 할리웃 인물들의 마지막 안식처로도 유명하다. 1998년, 묘지의 소유권이 새로운 소유주에게 넘어가면서 대규모 복원 작업이 시작돼 묘지가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할리웃포에버 묘지에는 초기 찰리 채플린과 작업했었던 할리웃의 여배우이자 코미디언이었던 마벨 노르만(Mabel Normand)의 묘비가 들어서 있다.

초기 할리웃의 유명한 액션 배우이자 영화 제작자인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Douglas Fairbanks)의 묘도 들어서 있다. 초기 할리웃 영화 제작자로 할리웃 영화 산업의 기초를 놓은 인물인 칼로프 마르티네즈(Calop Martinez)의 묘, 할리웃의 유명한 방송인이자 배우였던 헤더 고디언(Heather Godwin)의 묘에도 수많은 팬들이 방문하고 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출연해 전세계 여심을 훔친 클락 게이블 (Clark Gable)의 묘도 이 곳에 있고 제인 폰다의 아버지인 배우 헨리 폰다 (Henry Fonda)도 이곳에 잠들어 있다. 귀여운 곰돌이 <위니 더 푸>의 창장자 A.A. 밀른의 아들인 크리스토퍼 로빈 밀른 (Christopher Robin Milne)의 묘도 할리웃포에버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묘비명 사이를 거닐다 
나는 보고서를 제출하기 위해 할리웃 포에버 묘지를 방문하여 나이듦과 죽음, 그리고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죽음의 또다른 표현 형태인 묘비 사이를 걸으며 죽음과 삶을 깊이 묵상하던 나는 삶이 죽음의 또 다른 측면임을 깨달았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할 때, 비로소 현재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달을 수 있으니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가 서로를 알게 하기 위해 이분화된 현존의 현상이 아닐까. 
할리웃포에버 묘지에는 유난히 유대인들이 많이 묻혀 있다. 유대교의 촛대인 메노라 또는 다윗의 별이 그려진 무덤이 많이 있었고, 묘비명은 낯선 히브리 어로 적혀 있었다. 망자의 이름은 분명 유대인인데 묘비명은 키릴 문자로 적힌 것도 자주 눈에 띄었다. 파란색의 소(Cow) 그림을 많이 그렸던 마르크 샤갈도 러시아 유대인 중 하나인데 그와 같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이곳에 많이 묻혀 있다는 이야기이다. 
한 묘비에는 "사랑하는 아버지, 이 땅에서 나누어 주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라고 새겨져 있었다. 또 다른 묘비에는 "당신이 남긴 흔적은 영원히 우리 가슴에 남을 것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내 마음에 가장 오래 남아있던 문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은 떠나지 않아요. 그들은 매일 우리 곁에 있습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언제나 가까이 있습니다.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내가 이제껏 만난 가장 좋은 친구에게. 당신은 나에게 크고 작은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경계 없이 사랑하는 것과 삶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 단지 삶의 질만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신의 삶 속에 축복받아 함께했던 모든 이들로부터."
묘지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1930년대나 그 이전에 태어났지만, 나와 비슷한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묘 앞에 서서 "이제부터 내 삶을 보너스처럼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묘비명에는 
얼마만큼 사랑했는가만이 적힌다
묘비를 돌아보며, 나는 이 세상에 남겨진 위대한 유산은 부나 명예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어느 묘비에도 "그는 베벌리 힐스의 천만 달러짜리 저택에 살았고 페라리 410 Sport SP3을 몰았다."라고 적혀 있지 않았다. 
"그는 하버드를 졸업했고, 변호사로서 가장 큰 합의금을 이끌어낸 사건들을 승소했다."라는 문구도 없었다. 그의 책이 수백만 부 팔렸다는 내용도 없었다. 
묘비에는 오직 고인이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따뜻한 존재로 느껴졌는지, 그들이 어떻게 그들을 행복하게 했는지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 귀중한 가르침이 돌에 새겨져 있었다.
나는 내 묘비에 어떤 글귀가 적히길 바라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여기 생의 모든 순간을 불꽃처럼 생생하게 살았던 한 여인이 잠들어 있다.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은 더 위대한 무엇(The Great Self)과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Feeling of Oneness)을 주었다. 그녀의 영혼이 평안히 쉬기를…" 이라면 좋을 것 같다.
매일 아침 요가를 수행하면서, 나는 사바아사나, 즉 시체 자세를 통해 죽음을 연습한다. 한때 뼈를 감싸고 있던 근육이 썩어가고, 뼈 자체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껴본다. 나는 그냥 존재한다. 아무 데도 갈 곳이 없고, 할 일도 없다. 단지 여기, 지금이 순간에 있을 뿐이다.
이렇게 나는 삶의 매 순간을 완전히 놓아버리고, 항복한다. 심지어 죽음의 순간이 다가와도, 내 놓아버림은 계속될 것이다.

유명인사들의 묘비명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에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라고 적혀 있다. 붓다의 오도송 같은 이 글귀는 그의 인생 철학과 자유에 대한 깊은 신념을 반영하고 있다.
전설적인 미국의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 (Frank Sinatra)의 묘비에는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The best is yet to come.)”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는 그의 긍정적인 삶의 태도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는 것 같아 보이긴 하지만 현존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묘비에 “껄, 껄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
다.”는 말이 써 있다고 알고 있는데 실제 그의 유해는 화장되었고, 유골은 그의 부인 샬럿 쇼(Charlotte Shaw)와 함께 그들의 정원에 묻혀 있기 때문에 묘비명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지 버나드 쇼는 생전에 자신이 사망한 후의 상황에 대해 유머러스한 표현을 남겼었다. 그가 자주 했던 말은 “~~껄, ~~껄, 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다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이다. 묘비명이라고 하더라도 유머와 풍자로 큰 깨우침을 주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스트랫포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의 홀리 트리니티 교회(Holy Trinity Church)에 위치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무덤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 있다고 한다.
“좋은 친구여, 예수님을 위하여, 여기에 묻힌 먼지를 파헤치지 말아다오. 이 돌들을 건드리지 않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며, 내 뼈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내 묘를 파 해치거나 유해를 옮기지 말라(파묘하지 말라)는 경고이다. 그렇게도 현란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썼던 인류 최고의 극작가치고 자신의 무덤에 남긴 묘비명이 너무 초라하고 소시민적이다. 그래도 자신이 태어났던 고향땅에 묻히고 그 무덤이 옮겨지지 않은 것은 묘비명의 경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유명인의 묘비명
한국의 유명인들의 중에도 몇몇 분의 묘비명은 그들의 삶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만든다. 
서울 국립묘지에 있는 백범 김구의 묘에는 “이 땅에 생명이 있는 한, 이 땅을 위해 죽은 사람을 위하여. 이 땅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라고 되어 있다. 한국 독립운동을 위해 온전히 헌신했던 김구 선생의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랑과 희생을 엿볼 수 있다. 김구 선생이 남긴 문장은 아니고 김구 선생에 대한 존경과 기억을 기리기 위해 후세대들이 제정한 문구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조지훈의 묘비명에는 “시인이 사랑한 대지와 백의의 하늘 아래” 라는 문구
가 적혀 있다. 그의 시적 정서와 자연에 대한 사랑을 잘 표현한 문구로, 많은 이들에게 영감과 감동을 주었던 그의 시를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중요한 인물인 김수환 추기경의 묘비명에는 “사랑은 항상 생명을 나누는 것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삶의 끝에서까지 사랑과 나눔을 강조하는 김추기경의 삶과 일관성이 엿보인다. 

 

삶과 죽음, 그 동전의 양면
죽음이 있어 삶이 있다. 우리가 영원히 산다면, (실제 영원히 존재하긴 하지만) 우리의 삶은 얼마나 큰 형벌일까. 죽음이라는 신비가 있어 우리들의 삶 역시 신비하고 소중하고 아름답다. 살아 있는 동안 이 아름다운 생명의 환희를 만끽하며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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