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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현불연재물

[미주현대불교 2024. 9,10월호] 학담 선사가 해석한 유마경선해 - 글 편집부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4.11.05|조회수0 목록 댓글 0

 

 

책소개

 

학담 선사가 해석한
유마경선해 維摩經禪解
-비말라키르티 니르데샤 수트라

 

글 편집부

 

 


모든 있는 것이 공하지만 
공도 공하니(空亦空) 
공을 깨친 지혜의 공능을 역사 속에 
실현해야 한다

 

 

 

재가와 출가, 세간과 출세간의 이원성을 깨뜨린 유마거사의 ‘유마경’은 대승불교권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경전중의 하나이고 역사적으로 대승경전 편집의 출발이 되는 경전이다. 그동안 ‘현수법장으로 읽는 반야심경’, 사십이장경 강의, 천수관음과 대비다라니, 관음예문선해, 팔천송 반야경, 천태선사로 읽은 금강경, ‘아함경’ 평석(12,000페이지), ‘조론’(1,200페이지) 해석 등 수 십년에 걸쳐 수 십권을 발행한 학담스님이 최근 ‘유마경선해((維摩經禪解)’를 발간했다.

 

『유마경』의 산스크리트 원이름은 ‘비말라키르티 니르데샤 수트라’로서 ‘비말라키르티 거사가 설한 경’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발간사, 제1장 옛 성사들의 서문을 통해본 유마경의 대의, 제2장 유마경의 본문과 해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담스님은 이 책에서 비말라키르티 장자의 이 수트라는, 아라한 과덕을 증득한 슈라바카 현성들의 사후, 출가주의를 교조화 하고 연기론을 적취적 인과론으로 이해하는 시대불교의 병폐를 비판하면서 출현하다고 적었다. 이 책 “‘비말라키르티 수트라’는 ‘비말라키르티’ 라는 큰 보디사트바로서장자를 출현시켜 출가주의에 갇힌 슈라바카 현성에 대한 꾸중을 연출하여 참된 연기의 뜻인 마하야나를 구현한 것이다”고 말한다. 
유마경의 주석은 중국 구마라집의 번역과 그의 역장에 참여한 승조의 주석, 천태의 강설과 관정의 필기에 의한 <유마경현소> 발간, 형계선사의 <약소>, 명대 유계존자의 <유마경무아소>에 이르도록 천태가(天台家) 조사들의 주석이 해석의 대종을 이루고 있다.
이번에 800페이지 분량의 <유마경선해>를 펴낸 학담스님도 이 해석의 큰 흐름을 따르며 대승선(大乘禪)을 이 시대불교 선불교(禪佛敎)의 새로운 대안, 이 시대 억압된 문명이 강요하는 환상의 극복, 분단된 민족사 위기극복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학담스님은 “위기는 제도개혁만으로 극복될 수 없고 불교의 위기는 세계관의 위기이며 실천론의 위기”라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대승선은 연기론적 선정의 다른 이름이다. 대승선은 선(禪) 없는 교(敎)와교 없는 선을 동시에 넘어서며 휴식 없는 노동과 노동 없는 휴식을 동시에 지양한다”며 “대승선은 생각(念)과 생각 없음(無念)의 하나 됨을 지향하며, 모든 분단과 단절, 갈등과 충돌 속에 둘 아님(不二)과 화쟁(和諍)의 길을 제시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 발간사는에는 스님의 어린 시절 다녔던 광주 관음사에 관한 것부터 스님의 출가와 수행에 관한 것이 들어있는데, 아홉개의 목차가 있다. 


1. ‘비말라키르티 니르데샤 수트라’와 인도에서 보디사트바야나 상가의 출현,
2. 동아시아에서 ‘비말라키르티 수트라’의 번역과 성사 승조 천태의 주석
3. 영가 선사의 증도가와 유마경 그리고 선과 교,
4. 신라 원효 의상 두 성사가, 백제 땅에서 고구려 보덕국사에게 유마경을 배우다. 
5. 처음 유마경 강설을 듣고 출발한 학담의 출가 초기 생활
6. 이념의 절대화와 해탈, 에로스의 해방과 보디시트바의 행
7. 비구정신 그 육체적 천민성과 정신적 귀족성의 하나됨. 없음과 있음의 통일
8. 선과 정토
9. 오늘의 역사에서 화쟁 그 둘 아닌 법문(不二法文)의 실천

 

여기에는 ‘유마경’의 역사적·경전적·사상적 가치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저자 자신이 ‘유마경’과 어떤 인연이 있었으며, 20세 무렵 대학생 신분으로 분황사를 찾아가 출가하게 됐는지를 담담히 서술한다.

 

학담스님의 저서가 많으니까 스님을 학승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발간사에 보면 스님이 출가 초기에 오직 수행에만 전념한 것이 군데 군데 나온다. 이 책에 보면 출가 초기에 대전유성에서 백봉 거사의 강의가 끝나면 좌복과 두터운 외투만을 들고 뒷산 묘지 사이에 앉아서 좌선하다 새벽에 방에 들어와 잠깐 휴식한 후에 아침을 먹고 강설을 듣는 수행생활의 일면이 소개되어 있다. 그때로부터 출가생활 오십년이 될 무렵 그때를 회상하며 게송을 지었는데 앞 부분이 이렇게 되어 있다. 

 

학담이 출가하여 첫해가 되던 날 유성의 초당에서 백봉선생을 뵈었네.
반야경과 유마경을 그 문하에서 배우고 무덤사이에서 좌선하여 밤에 덮지 않았네, 

 

학담스님은 틈틈히 소천스님에 대해 말한다. 발간사 6의 ‘이념의 절대화와 해탈, 에로스의 해방과 보디시트바의 행’에 소천스님에 관한 많은 언급이 있다. 소천스님이 학담스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밝혔다고 하면서 소천선사의 말을 소개했다. 

 

‘이 몸이 곧 진리가 깃드는 법당이다. 중생은 탐애로 목숨을 받고 탐애가 다하면 목숨이 다하는 것이니, 탐애의 힘을 어떻게 쓰느냐가 수행의 요체이다.’ 
‘모든 있는 것이 공하지만 공도 공하니(空亦空) 공을 깨친 지혜의 공능을 역사 속에 실현해야 한다’ 

 

학담스님은 소천선사의 이 육체 긍정, 역사 긍정의 세계관은 온전히 이 ‘비말라키르티수트라’에서 ‘번뇌와 탐애의 본성이 해탈이고 보디이다’라는 가르침의 뜻과 상통한다고 주장한다. 

 

학담스님은 조계종 현대사에서 선의 정법안장을 보디사트마의 행으로 소천선사와 한암선사 제자 난암 유종묵 스님을 들었다. 유종묵스님은 1935년 일본으로 가 해방전에 그곳 유학생들과 재일동포들을 보살피며 생활하다가 1983년 그곳에서 입적하였다.
해방이후 그곳에 남아 도쿄에 국평사, 오사카에 통국사를 창건하고, 재일본조선불교교연맹 창립을 주도한 스님이다. 그는 조총련 계열 동포들을 위해 여생을 바치며, 조국의 화해와 민족의 하나됨을 기원하였다. 
이 외에도 이 발간사에는이 발간사에는 스님이 모시고 선수행을 하였던 동헌선사를 비롯하여 스님과 인연있던 백봉 거사, 광덕, 석우, 난암, 소천, 종림, 현응 스님, 김하우 고려대 교수, 김종술 전남대 교수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50대 무렵에 학담스님은 인식론적 충격을 받은 책으로 젊은 시절 읽었던 베르쟈예프의 ‘러시아 지성사’와 ‘유마경’이라고 말한다. 베르쟈예프가 러시아의 역사적 과제를 ‘육체적 천민성과 정신적 귀족성의 통일’이라고 제시한 말이 ‘몸으로는 밥을 빌고 마음으로는 법을 빌라’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상통하며 이것이 곧 출가 정신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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