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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현불연재물

[미주현대불교 2024. 9,10월호] 스리랑카 불교와 나의 인연 - 글 이치란 박사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4.11.05|조회수18 목록 댓글 0

 

시방세계 Ⅰ

 

현대 세계불교㉙
스리랑카 불교와 나의 인연 
45년 전 현지 수행자에서 
유엔제정 웨삭 기념행사의 안내자로

 

 

글 이치란 박사 (원응 보검)
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아시아불교평화회의(ABCP 본부 몽골) 한국회장 
국제불교연맹 이사(IBC 본부 인도)
동방불교대학 전 총장
한국불교신문 전 주필
현: 해동불교대학장 / 강원불교대학장
(사) 종정협 부설 / 국제불교전법대학 총장
WFB 태국본부 전 집행이사 / 일붕신문 상임논설위원 
매일종교신문 기고가 / 땅끝 어룡도 해수관세음보살 도량 당제산 여의암 회주
다나TV 영어경전 강의 / 세계불교 TV에서 ‘세계불교를 가다’ 소개 
(http://www.haedongacademy.org)

 

 

 

 

벌써 45여 년 전의 과거지사가 되었다. 되돌아다보니 정말 감회가 새롭다. 덜 익은 과일처럼 어딘
가 풋풋하고 떨떠름한 젊은 시절, 삶의 한 단면이다. 지나온 여정도 현재와 관련시켜서 뭔가 경험이 되고 자양분이 되는 그런 과정이었다면 현재의 삶에서 매우 가치 있는 지나간 역사로 되살아난다고 하겠다. 그 당시에는 낯설고 무모한 도전 같은 구도의 한 과정이었지만, 45년이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정말 값진 경험이었고, 경력이었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어려운 조건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남방 불교 비구생활에 도전한 것을, 몇 번이나 후회했다.
너무나 혹독한 시련이었다. 비구란 무엇인가? 무소유의 삶을 사는 쉬라마나(은둔 수행자)의 구도자의 길을 가는 수행자이다. 무모하게 도전한 것을 후회했지만, 견딜 수밖에 없었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태국에서의 비구생활은 참으로 값진 경험이었고, 인도 원형불교의 승가생활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는 부처님의 제자들이라고 격찬하고 싶다. 다만 우리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어딘가 이상스럽게 느껴지지만, 그분들의 관점에서 우리불교를 보면 뭔가 또 이상하고 적응하기 힘든 수행공동체일수도 있다.
필자의 관점에서는 상호이해의 전제하에서 소통이 필요하고 교류가 필요하다고 보지만, 상대를 모르고 이해 못하는 상황에서는 낯선 이방인의 종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보다 더 가깝게 접근하면서 교류하고 이해하는 관용이 필요하고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스리랑카 비구니 총회에 참석하여 법문과 후원을 한 팔공총임 방장 임담 의현 대종사와 찬디마 마하테라. 뒷줄 중앙 필자 보검스님


 태국에서 약속한 비구생활을 마치고, 남방 상좌부의 가사를 그대로 수하고 인도양을 가로 질러서 실론 섬에 다다랐다. 스리랑카 불교는 태국불교와는 다소 다른 모습이었다. 같은 남방 불교로서 상좌부 전통이었지만, 스리랑카는 인도문화권이다보니, 보다 더 인도적이었다. 이후 수 십 차례 스리랑카를 다니면서 학습한 바로는 스리랑카 불교가 더 인도의 원형불교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었다.  앞에서 수차례 언급한 바 있지만, 스리랑카는 인도였다. 하지만 태국은 말 그대로 인도차이나이다. 인도와 차이나가 공존한다고 해야 하겠다. 지리상으로 인도와 중국의 사이에 놓여있는 반도이지만, 문화는 두 방향에서 받아 들였다. 그렇지만 스리랑카는 중국적인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인도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상좌부의 정통성을 논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남방 상좌부의 명맥은 바로 계맥(戒脈)의 전수에 있는데, 현재의 스리랑카 승단의 계맥은 태국과 미얀마에서 다시 이어왔기에 시암종(태국), 아마라뿌라종(미얀마)과 라만나종(미얀마)으로 3종파가 있다. 이것은 비구계맥을 의미하는데, 중간에 비구계맥이 단절되어서 태국과 버마에서 역수입해 갔기 때문이다. 비구니 계맥은 1천 년 전에 단절되었고, 미얀마 태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1996년 12월 한국의 비구니 계맥을 이어가서 지금은 1만 명에 가까운 비구니 승단으로 급성장했다.

 

세계불교사상, 가장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스리랑카 비구니 승단이 한국불교에 의해서 재탄생 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위키 백과사전에도 기록되어 있는 사실인데도 우리나라 불교계에서는 전연 보도가 되지 않고 있다. 태국 미얀마도 스리랑카에서 비구니 계맥을 이어가서 비구니 승단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게다가 서양에서도 이 비구니 계맥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남방 불교권에서는 준 비구니에 해당하는 식차 마나니(正學女) 정도의 여행자(여자 행자)가 없진 않지만, 정식 비구니는 아니다.
 2017년 5월 12일부터 14일까지 스리랑카 콜롬보와 캔디에서 제14차 유엔제정 웨삭(부처님 탄생 성도 열반)의 날 기념행사가 개최됐다. 필자는 이 대회에 간사로써 대표단을 안내하여 대회에 참가했는데, 1백 개 국가에서 1천여 명의 고승과 불교지도자가 참가했다. 스리랑카 정부에서 초청하여 개최하는 불교대회였다.

 

웨삭(Vesak)은 부처님의 탄생 성도(成道) 열반을 동시에 기리는 불교의 최대 명절이면서 가장 중요한 행사이다. 웨삭에 대한 공식 용어는 빨리어로 웨사카(Vesākha)라고 하며, 산스크리트어로는 와이사카(Vaiśākha)라고 부른다. 또한 붓다 푸니마(부처님의 날)라고도 하는데, 나라마다 봉축행사 일정이 다르기도 한다. 1999년 12월 13일 제54차 유엔총회 결의로 웨삭(웨사카)의 국제총회 날을 제정하여 봉축하도록 해서, 2000년 뉴욕 유엔 총회장에서 개최된 바 있다. 이후 유엔 웨삭의 날( United Nations Day of Vesak) 국제총회본부를 태국MCU(마하출라롱콘불교대학)에 두고, 태국승가와 정부의 지원으로 태국 방콕에서 11차례 베트남 하노이에서 두 차례 개최되었으며 제14차 대회가 스리랑카 콜롬보와 캔디에서 3일간 72개국에서 온 대표와 옵서버 1천 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웨삭의 날 국제총회는 인도원형불교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인도권 불교의 나라, 스리랑카에서
개최되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며 특히 인도 모디 수상이 개회식에 참석해서 기조연설을 했다. 모디 수상은 인도 내에서의 불교성지 보호와 개발에 더욱 정책적 배려를 할 것이며, 세계의 모든 불교도들이 인도불교성지를 원만히 순례할
수 있도록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 가능한 한 바라나시와 보드가야에 항공노선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스리랑카에서도 바라나시와 보드가야로 직접 연결되는 항공노선을 더 늘리겠으며 인도의 불교도 들에게도 보다 더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발표했다. 
 

필자가 45여 년 전에 스리랑카에 갔을 때 만해도 스리랑카 불교와 한국불교는 교류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극히 소수의 한국 스님들이 스리랑카 성지 순례를 간 정도였고, 별다른 교류도 없을 때였다. 필자가 한국 출신 비구로서는 처음이 아닌가 한다. 이런 인연으로 당시 유엔제정 웨삭의 날 행사도 필자가 인솔하게 된 것이다. 지금 한국에는 스리랑카에서 온 6만 명의 노동자들이 있고, 스리랑카 절도 다섯 군데나 문을 열고 있다. 스리랑카는 인구의 80%가 불교도이기 때문에 외국에 가서도 불자로서의 신행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 보검스님이 세계불교승가대회에 참석하여 스리랑카 비구들과 함께 참석하고 있다.


스리랑카만이 아니고 태국불교센터도 한국에 세군데나 있고 노동자도 3만 명 정도 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45여 년 전 만 해도 태국 스리랑카 등 남방불교와 별다른 교류가 없었지만, 현재는 매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수차례 언급했지만, 실론(스리랑카)은 중국에 매우 이른 시기에 잘 알려진 불교국가였다. 4세기 말 중국의 동진(東晋) 시대에 법현(法顯) 법사가 서역구법승으로 서역과 천축(인도)을 거쳐서 이곳에 갔다 온 기록인《법현전(法顯傳)》또는《불국기(佛國記)》에서는 사자국(獅子國)、상가라(僧伽羅)、능가도 (楞伽島) 등으로 불렀다. 명대(明代)에는 석란도(锡蘭島)라고 했다. 하지만 현재 공식 명칭은 스리랑카민주사회공화국(Democratic Socialist Republic of Sri Lanka)이다. 줄여서 스리랑카라고 부른다. 나는 45여 년 전 스리랑카를 방문하면서, 가장 감명 받은 것은 이른바 ‘섬 암자 불교학파’이다. ‘섬 암자’란 내가 의역한 말인데, 영어권에 알려진 명칭은 'Island Hermitage'이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이 섬을 도단두와(Dodanduwa Island)또는 폴가스두와 (Polgasduwa)섬 이라고 부른다. 1911년 이 섬에 조그마한 숲 속 암자를 세운 이후에는 도단두와 ‘섬암자(Island Hermitage)’로 통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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