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이달의 명상
종(鐘)소리에 담은 종교,철학
글 무상법현(無相法顯) 스님
서울 열린선원 선원장
평택 보국사 주지
일본 나가노 아즈미노시 금강사 주지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그래도,가끔> 지은이
처음이 곧 마침이며 마침이 곧 새로운 시작이려니 이달의 명상 마무리 공부하고자 합니다. 이번 주제는 종소리에 담은 종교,철학입니다.
세상을 떠난 듯한 불교 수행자들의 수행도 언제나 세상과 함께,우리와 함께, 우리 하나인 나와 함께 합니다. 우리의 첫 스승이신 부처님과 함께 걸음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위한 수행(명상)의 길이 새로 낸 길이 아니라 옛 제국의 길(제국의 옛길)이라 하셨습니다. 그 길 따라 열심히 가보면 대중가요 이야기처럼 가다 보면 어느새 그 바닷가...깨달음의 바다 가까이 가게 됩니다.
트럼프를 비롯한 나라의 지도자들에게서 비롯한 복잡한 세상 이야기가 사람들의 눈과 귀,입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닙니다. 해결하기 위한 열매이야기도 곳곳에서 생겨났고, 생겨납니다. 내 안에서 찾는 방법이 명상,참선의 길이고 바깥에서 찾는 방법이 우주 개발 이야기 등 미래영화,재난영화 등이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해서 생겨납니다. 미래영화,재난영화가,우주탐험개발영화가 왜 생겨날까요? 우리가 사는 이 곳이 우리들의 헛 마음 탓에 언젠가는 살기 어려워질 것이라 느껴서입니다. 지구 밖에서 살아갈 곳을 찾아보자는 대안을 모색하는 까닭이지요? 그런 영화들의 공통된 결론이 무엇이던가요? 네,그렇습니다.
거의 꼭같이 같은 사람들이 만든 것처럼 “지금. 여기, 그리고 사랑(Here and Now, and,Loving kindness)”입니다. ‘나중 아니고 지금, 저 멀리 아니고 바로 여기, 그 어떤 특별한 기구나 방법이 아닌 사랑함’이 바르고 적확하며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야말로 적중(的中)하는 길 곧 중도(中道)이고 그것이야말로 바른길이라고 모든 이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길입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담은 율경론(律經論, vinaya, sutta, abhidhamma) 에 따르면 누구나가 느끼는 것에서 괴로움이 비롯되고, 깨달음도 비롯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바라는 깨달음은 괴로움(苦, dukha)이 사라져서 자유롭고(解脫, moksa),깨끗하고(淸淨, vimuti),고요한 상태(涅槃, nibbāna)입니다. 이것은 바깥의 우주나, 지구, 사람들이나, 자연을 살핀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상황(狀況, situation) 관계(relation)를 살핀 것입니다. 붓다께서 살핀 것은 붓다가 되기 전 싯다르타의 몸으로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바로 12연기(緣起)인 것입니다. 왜 이렇게 괴로운 것인가? 근심, 걱정, 괴로움, 번민이 생겨나는 과정을 추적해 들어가 보니 그것은 바로 밝지 못함 곧 어리석음에서 비롯한 것이었습니다. 무엇에 밝지 못한 것인가? 가장 큰 것은 여덟가지 바른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열반에 이르러 열반을 알고 열반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 까닭은 괴로움이 무엇이며,그 괴로움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 가를 알지 못해서 였습니다. 그 모두가 모름에서 오는 밝지 못함 곧 어리석음입니다. 어리석음을 지니지 않거나 가졌다 해도 흩어버리면 괴로움의 묶임 곧 윤회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아니 윤회하지 않게 됩니다. 윤회하지 않고,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을 해탈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깨달으신 뒤 열반에 이르기까지 “나는 괴로움과 괴로움을 없애버리는 것에 관해서 설법한다”고 하셨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괴로움 없애 즐거움, 행복함을 얻게 하는 가르침을 제자들 곧 우리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무슨 시간일까요? 그것은 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어떤 과목을 가장 좋아할까요? 바로 휴강(休講)이라고 합니다. 배울 것이 더 이상 없다는 분을 무학(無學)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것에서 괴로움을 느끼다가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되면 일체유심조의 느낌처럼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느껴지는 일체(一切)라는 말의 뜻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일체경(一切經)>이라는 경전에 나오는 “일체는 12처다”는 말씀에 그대로 나옵니다. 12처는 감, 지각기관 곧 주관기관인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와, 감, 지각대상 곧 객관인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燭法)입니다. 안이비설신의가 색성향미촉법을 만나서 일어나는 현상이 부딪힘(觸)에 이은 느낌, 연상, 생각(受想思)입니다. 이 과정의 결과에 좋아하여 오래감(愛取)이 괴로움입니다. 애취를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앎, 깨달음이고 닦음, 수행입니다. 앎과 닦음, 깨달음과 수행에 관해 여러 가지 가르침이 있습니다. 이번 명상은 불교의 법기(法器) 가운데 하나인 종(鐘)과 그 소리, 울림을 통해 알아봅니다. 우리의 감각기관인 귀가 느끼는 소리를 통해 괴로움과 괴로움을 벗어나 행복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불교의 문화예술 관점에서 보는(살피는) 종의 효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이란 괴로움 없앰입니다. 일체 곧 12처에서 감, 지각 기관인 6근(根)이 6경(境)을 만나며 바로 6식(識)이 발생하는 것을 삼사화합에서 오는 촉의 작동이라고 합니다. 이 닿음(觸)은 이어지는 느낌, 연상, 생각(受想思)과정에서 좋아하고 늘이고 가지려는 애취(愛取)의 괴로움을 벗어 없앰(解脫涅槃)효과를 귀를 통해 소리를 듣는 작동에서 찾아보려는 문화활동이 바로 종(鐘)입니다.
초기불교를 지나, 대승불교(반야, 유식, 정토, 밀교, 선불교)에서 마음을 닦는 방법을 많이 이어받았습니다. 초기와 대승 공히 멈춰보
는(止觀, samatha, vipassana)수행을 합니다. 살필 때, 집중살핌의 대상이 처음에는 몸(살갗)닿음, 마음, 법(身受心法)이었는데 선불교에서는 그 뜻을 지닌 말(單語)에 들어있는, 제뜻, 본뜻, 행간에 숨은 뜻(말씀, 話, 話頭)이 대상입니다.
우리 마음은 꼭 눈처럼 생겨서 초점 맞은 것만을 제대로 보듯이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에 집중해 온마음이 되면 다른 것은 느끼고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을 영어로 온마음(mindfulniss)이라 합니다. 추억에 푹 잠기듯 아름다운 소리를 듣는 동안 다른 생각,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해탈이며 종소리의 효과(效果)요, 공능(功能)입니다. 그래서 그 기간이 늘어날수록 효과가 큰 것입니다. 괴로움은 지옥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러다 보니 한국사찰 종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효능을 지닌 종소리라고 해서 종의 학명 가운데 한국 사찰 종만을 한국종(Korean bell)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 중국, 일본 종이 비슷해도 한국사찰종이 가장 긴 소리를 내는 공명 구조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음향공학적으로 독립된 구조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 것입니다. 보조기구, 용기를 충분히, 다양하게 활용하는 지혜를 쏟아 부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웃종교의 종은 짧게 빨리 울립니다. 복음을 전하는 효과이기 때문입니다. 사찰종은 길게 오래 울립니다. 괴로움을 쉬고 벗어나는 것 곧 해탈이 효과이지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찰 종에는 특별히 붙인 ① 용뉴(龍鈕) 종을 매다는 부분, 용이 감고 있습니다. 상징적으로 하늘과 뭇삶(衆生), 부처를 연결합니다. ② 음통(音筒, sound tube)은 종의 윗부분 속 빈 관입니다. 공명 증폭의 핵심 장치로 소리의 길이와 깊이를 늘리는 기능을 합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만파식적의 기능을 살렸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③ 유곽(乳廓, boss zone)유두(乳頭, 돌기)가 9~11개 있음. 진동 중심이 되는 곳, 배음 조절합니다. ④ 당좌(撞座, striking point)는 타종하는 부분으로 소리의 시작, 파동 발생점입니다. 기본적으로 하늘(happy)에 오르는 용(龍)이 울게하는 기구가 종입니다. 용뉴, 당좌, 음통, 유곽, 유두 그리고 둥그런 공간을 지닌 종의 모양과 혹시 모자라면 돕는 땅에 있는 명동(鳴洞, 곧 음향통(音響筒, 동그랑고 빈공간 또는 항아리)이 공명을 늘입니다. 우리 한국 사찰종의 특징은 소리가 적어도60초 또는 그 이상 지속된다는 점입니다. 두꺼운 하단부 곡률(曲率)의 기능이 중요합니다. 종의 아래쪽이 부드럽게 벌어지며 두꺼워, 타격 후 진동이 쉽게 소멸하지 않고 회귀 반사파로 돌아옵니다. 유두(돌기)의 배열이 완벽한 원형이 아니라 약간 비틀려 있어, 소리의 공진 파형이 일정하게 분산되어 파동이 겹치며 장시간 울림이 유지됩니다. 한국 종의 긴 여운(공명)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수행의 장치입니다. 타종과 함께 번뇌의 파문이 멈추고, 여운이 사라지기 전까지 마음이 그 소리에 머물러 생각이 고요해집니다.
이 ‘멈춤 효과’는 청각 명상(聲禪)의 구현입니다. 소리가 곧 공(空)임을 직감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장치입니다. 중국 종이 ‘법의 선포’, 일본 종이 ‘시간의 통보’라면, 한국의 종은 마음의 멈춤과 자비의 울림을 전하는 수행의 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종소리 들으며 열반으로 흘러보십시다. 모두 괴로움에 머물지 말고 긴 여운의 열반종소리에 머물러 봅시다. 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