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과 포교하는 사부대중
지리산 화엄사 종곡 큰스님께 수행에 대해 묻다
글 전현자(본지 한국 취재기자)
기 자 스님! 인터뷰 허락에 존경의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어떤 가르침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스 님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 즉 삼법인(三法印)입니다.
기 자 스님! 삼법인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스 님 무상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허상(虛像)임을 뜻하며, 고는 허상인 세상을 진짜라고 착각하는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허상임을 깨달으면, 즉 물질과 정신의 본질을 깨달으면 무아를 체득할 수 있습니다.
기 자 모든 것이 허상임을 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스 님 없습니다. 무상, 고 무아는 체험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누구의 말을 들어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허상임을 여실히, 꿰뚫어 알아야 합니다. 알음알이로는 불가능합니다.
기 자 스님이 계시고, 저도 있는데, 허상이라고요?
스 님 내가 비워져야 합니다. 안 비워진 상태에서는 내가 있고 대상(對象)이 있습니다. 내가 없으면 대상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상에 대한 공(空)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공이 안 된 상태에서는 자기가 있는 것입니다. 이 이치는 너무 간단한 것인데 이것을 얻기까지가 힘듭니다.
기 자 공(空)한 상태가 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스 님 부처님께서는 스승 ‘알라라 칼라마Alara Kalama’에게서 무소유처 선정을, ‘우드라가 라마푸트라’에게서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체득하셨습니다. 무색계(無色界) 선정(禪定)에서는 물질적 대상이 완전히 사라져, 내가 사라지고 대상이 사라져 ‘텅 빔’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무색계 선정상태에서는 없던 번뇌가, 무색계 선정에서 나오면 생겨남을 부처님께서 아시고, 선정의 끝을 이루었다 해도 번뇌는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음을 깨달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번뇌를 완전히 소멸할 수 있는 수행을 하신 것입니다.
기 자 스님! 공의 상태를 체득했을 때, 체득한 것은 어떻게 아는지요?
스 님 공(空)함입니다.
기 자 공한 상태에서의 대상은 어떻게 보이는지요?
스 님 공함입니다. 지금 방바닥을 보는데 온 우주가 텅 빈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공한 상태가 아닐 때는 방바닥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방바닥이 있고, 방바닥을 보는 ‘내’가 있습니다. 내가 있고, 방바닥이 있고, 내가 방바닥을 본다고 인식하고 그 인식작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나, 너 라는 이분적(二分的) 즉, 둘로 나누어집니다. 그런데 선정에 들어가 내가 사라지면, 방바닥도 사라집니다. 방바닥을 보면서도 온 우주가 텅 비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때에 깨닫습니다.
기 자 무엇을 깨닫는 것입니까?
스 님 내가 없고, 방바닥도 없는 공한 상태를 깨닫습니다.
기 자 제게는 비닐로 덮여진 방바닥이 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이 방바닥이 공하다고 하십니다.
스 님 두 가지로 보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방바닥 즉, 비닐이 노란 색이어 노란 색을 봅니다. 선정에 들어가 보면 공한 상태로 모두가 하나입니다. 그러나 다시 육안으로 돌아오면 노란색으로 된 방바닥, 즉 보이는 대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인간의 육체적 생각이 있을 때는 이것저것 다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없어지면 온 우주가 됩니다. 이것을 한 번만이라도 경험하면 그 이치를 압니다. 그러나 완전히 몰입되기까지는 수행이 필요합니다.
대상을 보는 즉시, 대상의 공함이 순간마다 되면 자유자재(自由自在)가 되겠지요. 그러나 한번이라도 공함을 체험하면 공함을 다시 경험하지 못한다 해도, 공함의 이치는 아는 것입니다. 공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공함으로 존재하면 앞, 뒤가 없고 위, 아래도 없이 텅 비어져 있는데 육체적 눈으로 보면 앞, 뒤도 있고, 위, 아래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자유자재로 들어가고 나오고, 원하시는 만큼 그 상태에 머무실 수 있습니다. 수행이 부족한 사람들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한 번 경험을 하면 두 번하나, 열 번하나 그 경험 자체는 같은 것입니다.
기 자 스님께서는 어떤 수행방법으로 그 경험을 체득하셨습니까?
스 님 제가 절에 와 스님들을 가르치는 일을 오래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인도를 가게 되었는데 떠날 때는 계획하지 않았던 히말라야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람살라에서 아주 작은 책을 발견하고 읽은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책은 영어로 쓰여 있었는데 히말라야로 가는 날마다의 일정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영어실력이 약해 사전을 찾아가며 읽어 내용을 대충 짐작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곳에 직접가보니 영어를 잘 몰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들도 실재의 상황을 보고 경험하니 이해가 되었습니다. 5400미터 높이의 산을 37일 걸려서 올라갔습니다. 처음 얼마간은 마을을 따라 갔습니다. 거리로 4000미터나 5000미터 정도를 걷다보면 마을이 나옵니다. 그러면 그 마을에서 밥을 얻어먹거나, 사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산을 다 올라간 뒤, 내려와 라다크의 레(Leh)에 도착했는데 여정(旅程)이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이런 여행은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여정 중의 경험을 말씀드리면 어느 날, 저녁 무렵 도착한 곳에 넓고 평평한 돌이 있고 여기 저기 옷들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어 하룻밤 지내기 괜찮은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그 시절 저는 잠은 언제나 앉아서 잤으며, 음식은 생식(生食)으로 했습니다. 침낭은 앉아서 자기 편하도록, 지퍼를 올리면 머리끝까지 올라가고 등산용 깔개를 잘라 배낭 바닥에 놓을 수 있는 것으로 네팔에서 마련하여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날 그곳에서 잠을 잘 때는 평평한 돌이 조장(鳥葬)을 할 때 시체 자르는 것인 줄 몰랐기에 평평한 돌이라 앉아서 자는데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 돌에 앉아서 잠을 잤습니다.
그곳이 조장하는 곳이라는 것은 한국에 돌아온 뒤, TV 다큐멘터리를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그 돌이 시체를 자르는 곳인 줄 알았다면, 돌 위에서 잠자지 않았을 것입니다. 17일간의 산행을 끝내고 어려웠던 경험들을 내려놓고 하룻밤 잘 쉬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돌아가야겠다고 버스를 타려는데 장마로 길이 무너져 이틀이면 가는 길이 삼일 걸린다 했습니다. 그 때의 제 몸은 매우 야위어서 자리에 앉으면 엉덩이뼈가 바닥에 박히는 듯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러다보니 버스 의자에 앉아 삼일을 간다는 것이 너무 어렵게 느껴져 걸어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왔던 길에서 조금 어긋난 형태로 돌아가는 것이어 잘 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떠났습니다. 이미 길을 떠나 어느 정도 갔는데 나타나는 마을마다 사람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집집마다 다 자물쇠로 잠가 놓은 것만 보게 되었습니다. 그 집들은 유목민이 목축하는 시기에만 사는 집이라, 그 지역에서 목축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옮겨 목축하며 산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매일 굶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길을 나설 때, 아주 조금의 보리미숫가루가 먹을 것의 전부였어도 마을을 만나면 얻어먹거나 사먹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 마음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그 어떤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어 10일간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걸어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산의 마지막 꼭대기인 5400미터 높이를 넘어 가야하는데 고산병(高山病)이 왔습니다. 안나푸르나 산을 다녀오며 고산병은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열흘을 굶은 몸이 고산병을 견딜 수 없었던지 약 오천 미터쯤의 높이에서부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습니다. 호흡이 막혀 숨이 쉬어지지 않아 한 걸음도 걸을 수가 없어 “아! 내가 여기서 죽는가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다람살라에서 읽었던 책의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목숨은 헛것이다. 때가되면 내 버려지는 것으로, 죽을 때까지만 사는 것이다!”
그 글을 읽었을 때는, 그렇지! 당연한 이치다 생각했는데, 막상 죽음 앞에 내 몰리니 죽는다는 것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살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살 수만 있다면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살려는 일념으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발을 움직여 그 고개를 넘었습니다. 산 정상을 넘어, 4500미터 정도에 내려오니 고산병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이틀을 더 걸어 큰 도로를 만나 지나가는 트럭의 도움을 받아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총 1년 1개월 정도의 여행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수행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념처경에 나오는 부정관(不淨觀)을 수행했습니다. 부정관의 몸을 해체하는 방법으로, 높은 곳에서 떨어져 몸이 산산 조각나는 것, 몸이 죽는 것이나, 몸을 죽이는 수행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2년을 했음에도 깨달음에 이르지를 못했습니다. 다시 화엄사로 와서 선원장이 되어 학인들을 가르치면서 저녁 예불을 끝내고, 7시부터 걸어서 지리산 노고단 꼭대기에 올라가 명상을 했습니다.
그러다 절에 내려와 새벽 세시 예불을 했습니다. 그렇게 매일 2년을 했습니다. 멋스런 산(山)도 몇 번 정도야 새롭고 즐거운 것인데, 2년 동안 매일 같은 산에 가다보니, 가기 싫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비가 세게 쏟아졌습니다. 산에 가야하나 가지 말아야하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데 무엇 하러 가? 아니야 가야 돼!, 왜 가? 아니 가야지! 여러 번 갈등하다 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은 다음 방 밖을 나와 빗속에 서서 생각해 봤습니다. 무엇 때문에 방 밖에 나오기를 싫어했는가? 방안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비는 계속와도 비옷을 입으니 비에 젖지 않는데 방안에 서 있을 때와 방 밖에 서 있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차이가 없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생각이 비를 만들고, 그 생각이 빗길을 가기 싫어했구나! 이 몸은 오고 감이 없는 것! 이라는 앎이 확연히 체득되었습니다. 그 체득된 상태로 그저 걸어갔습니다. 전등불 하나 없는 깊은 산을 손전등도 없이 발로 더듬거리며 걸어갔습니다. 어느 날은 귀신이 나타나 목을 낚아채 죽일 것 같은 으스스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귀신아 나를 잡아가라” 하며 목숨을 던져버리는 수행을 했습니다.
또 어느 날은 오래 된 썩은 나무를 밟아 물컹한 느낌에 뱀을 밟았나 싶은 생각이 든 다음 땅 바닥에 엎드려 뱀이 이 몸을 물어도 좋다는 의도를 일으키며 목숨을 내던지는 수행을 계속했습니다. 밤 산길을 가기 싫을 때는 왜 가기 싫은가? 피곤하다 생각되면 무엇이 피곤한가? 등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을 통찰했습니다. 통찰을 하다보면 피곤이 없어졌습니다. 그렇게 산행을 계속하던 어느 날 시간 당 100mm 정도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습니다. 산에 가기 싫었음에도 갔습니다. 한 걸음 마다에 ‘나’를 죽이며 걸어갔습니다. 노고단까지 가는 길에 연기암(烟起庵)이 있는데 그 암자 입구 쪽에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있습니다. 쏟아지는 물은 폭류(瀑流)가 되어 그 다리를 당장이라도 무너뜨릴 것 같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런 폭류가 내리치는 다리 한가운데 서서 폭류를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이 두려운가? 죽음이 두려운가? 죽는다는 것이 왜 두려운가?”
죽는다! 이제 죽는다! 생각하고 죽음을 준비했습니다. 부모님, 형제, 도반들을 비롯하여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하직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그 폭류 속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목숨을 다 내려놓고 그 물살에 뛰어든 순간 ‘내’가 사라졌습니다. ‘나’는 없었습니다. ‘내’가 없으니 ‘폭류’도 없었습니다. 온 우주천지가 텅 비었습니다. 그 비워진 상태로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몰랐습니다. 모든 것이 비워진 텅 빈 상태에서 한 생각이 일어났는데 참 이상했습니다. 앞을 보는데 뒤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자문(自問)해 보았습니다. 왜 앞을 보는데 뒤가 보이나? 스스로 답이 열렸습니다. 텅 빈 상태이기 때문에 앞, 뒤 가 없어져 하나로 보일뿐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강사를 했기에 경전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래서 그 지식들이 새로운 현상에 대한 지혜로운 파악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생각합니다. 앞을 보는데 동시에 뒤가 보여, 앞이나 뒤는 본래 없는 것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세상에 앞, 뒤 가 있다는 것은 ‘나’라고 하는 가상적인 중심을 만드니까 앞, 뒤도 가상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앞, 뒤의 가운데인 ‘내’가 없으면 한계(限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아’도 없고 ‘죽음’도 없고‘ 삶’도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동안 삶이라 생각해왔고 죽음이라 생각해온 것은 무엇인가? 그것들이, 삶과 죽음이 가짜임을 깨달았습니다! 폭류가 쏟아져 무너질 것 같은 다리에서 경전에 있던 내용들이 확연히 체득되고 깨달아졌습니다. 깨달음의 의식이 몸에 연결된 일반의식으로 돌아 왔을 때 몸이 보여, 몸을 보니 몸이 다리위에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폭류는 이 몸을 포함해 다리를 어느 순간에라도 삼킬 듯이 쏟아져 내려오는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 공포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다리를 건너려 했을 때, 다리를 건너다 죽을 까 두려워, 죽음의 공포를 없애기 위해 마음으로 애써 노력했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지금, 폭류에 휘말려 빠져 죽을 것 같은 다리 한가운데 서 있으면서도 아무런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낄 수 가 없었습니다. 마음으로 보면 모든 것이 텅 비어있을 뿐인데, 육체적 눈으로 보면 폭류, 다리, 서있는 이 몸도 다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폭류도, 몸도 다 허상임을 깨닫고 노고단으로 걸어갔습니다.
그 뒤로도 한 달 정도를 산에 더 다니다가 갈 필요가 없어 그만 두었습니다. 수행을 더 하지 않아도, 그 체험을 하고 나니 가만히 있으면 비워져 공(空)한 상태가 됩니다. 그렇다 해서 육체적인 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육체적 눈은 가상적인 눈이기 때문에 앞, 뒤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니 육체적 눈은 업(業)의 눈으로 나타난 것이고, 진리의 입장에서는 눈이 없습니다. 이 깨달음을 바탕으로 고통과 괴로움의 본질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들은 실재(實在)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몸을 관찰합니다. 나이가 많다보니 몸에서 통증이 여기저기서 생깁니다. 때로는 심각한 통증이 느껴질 때도 있는데, 몸의 작용들을 마치 AI 로봇이 작동하는 것처럼 바라봅니다. AI가 즐겁게도 작동하고 고통스럽게도 작동하는 것을 제 3자가 된 듯 지켜봅니다. 통증이 어떤 연관관계로 생겨 작동하고 있는지 봅니다. 그렇게 지켜보면 통증은 통증이 할 일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하여 이루어진 깨달음으로 통증이나 어려움을 바라봄으로서 평온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기 자 스님! 훌륭하십니다. 스님의 경험을 토대로 말씀해주신 귀한 가르침 매우 고맙습니다. 의학적 연구와 기술의 발달로 더 오래 살고, 생활은 매우 편해졌는데도 괴롭고 불행하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행복할 수 있는 가르침을 주시길 바랍니다.
스 님 불가능합니다. 제가 절에서 살아온 세월이 50년입니다. 수행하기 전에는 ’연기(緣機)‘를 몰랐습니다. 스님들을 가르치는 강사로써 “연기는 이런 것이다.” 라고 강의를 했을 때도 ‘연기’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공’을 보고 나니 연기에 대해 저절로 알아졌습니다.
연기는 허상(虛像)입니다. 가짜입니다. 고(苦)는 가짜를 진짜로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고통은 이 세상, 현상들을 진짜라고 보는데서 생기는 것으로 이 세상이 가짜임을 분명히 보게 되면 해탈(解脫)하게 됩니다. 더 이상 고통, 괴로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 밖에 보이는 뜰의 소나무를 비롯하여 세상 모든 것은 두뇌의 정보가 만든 가상적(假象的)인 것입니다.
내가 없으면 가짜임을 바로 알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있는 한 아무리 이해하려해도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기 자 스님! 스님은 누구십니까?
스 님 나는 양변(兩便)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대답을 하려면 양변을 사용해야합니다. 양변을 사용한 나는, 종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