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의 명상 >
한국에서의
테라와다불교 현황
글 | 법현스님
무상법현(無相法顯);스님
- 서울 열린선원 선원장
- 일본 나가노 아즈미노시 금강사 주지
-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그래도,가끔> 지은이
독특한 마하야나 불교의 나라 한국에 테라와다 불교가 뿌리 내리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은 것도 독특하다. 역사 속에서 모든 종교, 종파의 전파는 거대한 힘의 이끎이나 보호 아래 진행되었다. 불교도 예외가 아니다. 붓다에 의해 전해진 불교도 마찬가지다. 아소카왕의 호법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교,이슬람교 등 유일신교와 금강승의 종교정치통합교화는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하다.
교단의 측면에서 바라볼 때는 그리움과 긴장이 버무려지며 전파된다. 그리움은 가까이보다 멀리서 더 크게 느끼기 마련이다. 붓다시대는 갠지스장 중류중심의 동쪽교화가 많았으나 부루나(뿐나),아난다가 인더스강 중심의 서쪽교화에 나섬으로써 국제화의 통로마당을 마련한 쾌거가 이루어졌다. 이른바 간다라불교다. 붓다와 바로 이은 마하 깟사빠 계열의 불교와는 조금 떨어진 다른 지역의 제자들은 붓다를 자주 만나기 어렵기에 간절함이 오히려 더하다. 그리움에 의해 고스란히 보존되기도 하고 약간의 왜곡이 진행되기도 한다. 긴장에 의해 확산이 빠르기도 하고 강제당하거나 세속화되기도 한다.
문명의 이동로 셋이 있었다. 그린로드(초원길)와 실크로드(비단길) 그리고 시로드(바닷길)이 있었다.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동북아 3국에 불교가 전해지는 계기가 이루어졌다. 중국보다 이른 삼론종이야기가 있다. 고구려 승랑스님의 시대가 중국보다 이르기에 중국에서 인정하지 않으려한다. 그러나 사실이다. 바닷길 가야불교도 있다.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신앙적 진실이랄 수 있는 비바시불 수행터가 경주에 있다. 아소카왕의 석탑의 존재가 석보상절에 실려 전라도 장흥 탑산사 뒤 천관산 꼭대기에 있다. 이런 독특한 주장이 있는 마하야나의 나라가 한국이다.
세계불교도우의회(W.F.B.)가 그렇게 활발하지 않은 나라, 간화선이라고 하는 선정삼매의 독특한 방법론을 좋아하는 나라, 자신도 모르게 밀교와 정토 그리고 참선수행이 버무려진 불교를 신행하고 있는 나라. 현대불교의 질곡시기의 반성으로 빠르게 테라와다를 받아들이고, 바즈라야나도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에 남방 상좌부 곧 테라와다(長老)불교가 성큼 다가왔다. 1950년 W.F.B 시작 이래 모임에서 한국불교가 동참했지만 다른 나라 불교의 개별 또는 지회단위 참석과 달리 대표성이 있는 종단(단체)의 참여가 아니면 아예 참여 자체를 뜨악하게 보았던 한국이었다.
그러다가 W.F.B에 참여하며 3사 7증이 구족되어야 제대로 된 수계라는 의식구조가 밖에서도 확인되면서 조선 5백년의 흑역사 속에서 이어지지 않은 계단, 계계(戒界), 현전승가의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남방불교국가의 하나인 태국의 승려들을 초빙해서 계를 받기만 하는 어려운 일도 있었다. 해외 경험이 있는 거해스님이 법구경1,2를 펴내고 위빳사나 수행자를 초빙해 80년대 중반 서울 승가사에서 집중 수행을 한 이래 30여년의 세월에 다가감에 따라 상당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빠알리어를 직접 체득한 각묵, 대림스님과 전재성박사,최봉수박사,정준영박사 등의 율경론의 번역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미얀마(Myanmar)의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 계열의 위빠사나,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순차적 과정을 강조하는 파욱 사야도(Paaut Sayadaw),재가자로서 인도에서 활약하고 있는 고엔까(S. N. Goenka)등의 명상 기법이 주목을 끌고 있다. 청정도론을 중심으로 한 정교한 이론과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일체감 형성과 업그레이드에 관한 기대감이 꽤 높다. 그들은 『대념처경(大念處經,Mahāsatipaṭṭhānasutta』,『청정도론(淸淨道論, Visuddhimagga)』 등에 근거해 궁극의 목적을 열반의 실현에 두고서 개개인의 변화에 역점을 둔다.
진행과정이 누구나 비슷하다. 이게 스텝 바이 스텝이라고 테라와다불교에서 많이 주장한다. 그런데 여러 생애를 거친 바라밀이 현생에 어떻게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그게 달라진다. 그 점을 착안해서 대승불교 간화선 쪽에서는 아주 활발발한 지도 점검을 했었다. 그 전통이 질곡시기에 희미해져 버렸다. 그런데 테라와다 불교 쪽은 율경론 3장에 근거한 공부, 연구, 토론, 집필이 근거를 바르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 수행처에서도 수행의 진전과 퇴굴, 방일, 방해 등에 관한 지침을 주는데 그것을 지도라는 이름으로 한다. 옛날에 거량(法擧量)이라는 이름의 접화(接化)를 통해서 했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스승과 제자, 사제가 동행하는 좋은 전통을 지금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긍정적인 거다. 반면 옆에서 보기에는 약간 도그마화 되면서 오히려 소통에 해가 되기도 하고 남방 테라와다의 장점인 공동생활과 탁발의 전통을 잇기가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한국은 비불교도가 너무 많고 대승불교도가 많기 때문에 테라와다 불교도 중심의 탁발이 어렵다. 물론 이승만 박정희 시대에 제약을 가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있다. 한국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홀로 살고, 재물에 손댈 수밖에 없거나 아니면 본인이 의도해서 손을 대서 생기는 문제가 이미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금 현재도 잘하고 있는 인터뷰(지도)정신을 좀 살리되 어느 분야에서는 개별지도, 어느 분야에서는 집단지도,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강의와 실습 이런 것들을 좀더 확장할 필요가 있겠다. 대승하는 사람들 일부는 “위빠사나는 대단히 위협적이다.”라고 표현한다. 마찬가지로 테라와다 불교를 한다는 분들은 대승쪽을 금기하는 경향들이 있다.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방법이나 흐름을 따르던 이웃이나 사촌이나 팔촌이다 이런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먼저 공통점을 찾아보고서 이런 차이도 있다고 하는 사고를 갖는 것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테라와다의 나라 미얀마 군부쿠데타와 민간인 살상사태를 일반인들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위한 공동선 5월호 대담에서 필자가 말한 내용 줄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