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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12월호] 분당 보라선원 寶螺禪院, Jeweled Conch Seon Center / 편집부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2.01.05|조회수61 목록 댓글 0

< 시방세계 >

 

 

 

분당 보라선원 寶螺禪院,
Jeweled Conch Seon Center



 

글 | 편집부

 

 

한국에 온 지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사태도 좀 괜찮아졌다 악화되기를 반복했습니다. 수행의 정체기에서 탈출하고자, 마음의 문제를 풀고자,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 보산사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매우 힘든 한 해였습니다.
우리에게 참선을 배우면서 몸과 마음에 변화를 느낀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배울 기회를 주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이다 보니 기차나 버스를 타고 청주까지 오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미 선禪의 맛을 제대로 본 사람은 당연히 불편함과 어려움을 감수하더라도 보산사까지 왔지만, 확신이 없고, 겪어보지 못한 지인을 억지로 청주까지 가자고 하긴 어려웠을 겁니다. 
그래서 보산사 주지 현지 스님에게 이 사정을 설명하고, 매주 금요일 새벽 4시에 출발해서 서울로 갔습니다. 서울에 아는 스님들께 이런 사정을 설명해 드리자 흔쾌히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단체로 모인 건 아니지만 번거로운데도 불구하고 지인을 데리고 와서 나와 만날 수 있도록 방을 내어주고, 차와 간식도 내주었습니다. 한꺼번에 만날 수가 없어서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결가부좌 자세를 가르쳐주고, 함께 참선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사람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습니다. 코로나도 점점 악화되는 상황에서 아는 스님의 절이나 찻집에서 이들을 하루 안에 전부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미 보산사에 자주 오는 사람들조차도 코로나에 대한 가족의 우려로 점점 오기가 어려워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지난 겨울부터 줌 화상회의를 통해 매일 저녁 다 함께 결가부좌 수련을 하면서, 영화 스님의 옛 참선 법문을 틀고 한국어 통역을 했지만, 이들이 직접 절에 와서 참선과 염불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름내 사방팔방으로 이들과 함께 수행할 수 있는 터전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렇게 분당에 보라선원이 탄생한 것입니다. 사실 미국 노산사에 방문하셨던 비구 스님과 인연이 되어서 이렇게 갑자기 선원이 마련되었습니다. 만일 새로운 장소를 찾아서 도량으로 만들었다면 많은 자금과 시간, 노력, 에너지가 필요했을 텐데, 다행히 좋은 인연으로 영화 스님의 한국 내 두 번째 도량이 생겼습니다. 영화 스님께 새 도량의 이름을 여쭤보았더니, 보라선원(寶螺禪院, Jeweled Conch Seon Center)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보배 소라를 뜻합니다. 이 보라는 사실 천수 관음법 중 밀종에 해당하는 사십이수안에서 왔습니다. 영화 스님의 도량에서는 수행으로 준비된 자에게만 전수해주는 “사십이수안 四十二手眼”이란 관음법이 있습니다. 

 


보통 우리나라의 큰 절에서도 천수천안 관음보살상을 보면 42수(손)에 여러 지물을 들고 있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로 두 손을 머리 위 높이 받친 화불을 비롯해 삼고저(抜折羅), 인장(寶印), 금륜(金輪), 촉루장(髑髏杖), 궁전(宮殿), 경책(寶經), 그릇(寶鉢), 활(寶弓), 소라(寶螺), 포도(葡萄), 보병(寶甁), 견사(羂索), 금강령(寶鐸), 보석으로 장식된 보협(寶筴), 여의주(如意珠), 거울(寶鏡), 군지(軍遲), 염주(數珠) 등을 볼 수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보라수 즉 보석으로 장식된 소라입니다. 
사십이수안 중 보라수는 모든 제석천 천신을 불러모으는 주문에 해당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참선반에 오는 학생 중 천주교가 많습니다. 보라선원의 이름을 받기 전부터 천주교인 참선반 학생이 꽤 많았는데, 신기하게도 이들은 염불도 좋아하고, 예불에 참여하는 것에도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심지어 정토왕생에 관한 이야기에도 관심을 보이고, 그중 몇은 귀의하고 오계를 받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한국은 불교의 뿌리가 깊은 곳입니다. 참선반과 온라인 법문에 참여하는 천주교인 학생에게 어째서 불교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이들은 “어릴 때 할머니 따라서 절에 다니던 기억이 나서 그런지 괜찮아요”라고 말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참선과 법문을 통해서 이미 건강의 문제가 향상되었고, 아이에게 화도 덜 내게 되었고, 남편과의 문제도 줄어들었다고 했습니다. 영화 스님의 말씀처럼 불교는 그냥 말만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불교에 있는 여러 방법이 실제로 문제를 줄일 수 있거나, 해결해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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