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의 명상 >
기다려라!
글 | 법현스님
무상법현(無相法顯);스님
- 서울 열린선원 선원장
- 일본 나가노 아즈미노시 금강사 주지
-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그래도,가끔> 지은이
우리는 세상 드러난 현상만을 본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속에는 엄청난 아픔과 기다림과 슬픔의 세월을 견뎌 낸 노력이 들어있다. 아름다운 꽃들도 그냥 피어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들도 들여다보면 참으로 오묘한 조화를 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때에 따라 피는 꽃이 다르지 않은가?
봄에 바로 피는 꽃들은 백목련 개나리 복수초 매화 홍매화 할미꽃 영춘화 모란 철쭉 벚꽃 해당화 진달래 목련수선화 쇠별꽃 백정향(천리향) 동백 ....등이 있다고 한다. 여름에 피는 꽃은 자귀나무 족제비싸리 왜우산풀 톱풀 박쥐나무 매화노루발 초롱꽃 미국자리공 떡쑥 산달래 고란초 골무꽃 덩굴꽃마리 동자꽃 더덕 수염며느리밥풀꽃 층층잔대 곰취 어수리 활량나물들이 대표적이다. 가을에 피는 꽃으로는 코스모스 칼잎용담 산국 큰수리취 향유 산박하 섬쑥부쟁이
흰그늘돌쩌귀 미꾸리낚시 산좁쌀풀 흰고려엉겅퀴 돼지풀 왕고들빼기 비수리 활나물 쇠무릎들이 있다. 그런데 겨울에 피는 꽃도 있음을 아는가? 눈보라 몰아치는 겨울에 무슨 꽃이 필까?
겨울동백, 군자란, 시클라멘, 안스리움, 애기동백, 크리스마스로즈, 프리뮬러 등이 있다고 한다. 눈 속에 피어나는 매화(梅花), 복수초(福壽草)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참 오묘한 것이다.
티끌 벗기 그리 쉬운 일 아니니(塵勞逈脫事非常)
실마리를 꼭 쥐어 끝까지 가서(緊把繩頭做一場)
찬 기운이 뼛속까지 사무치지 않고서야(不是一番寒徹骨)
코끝을 찌르는 매화향기 얻겠는가.(爭得梅花撲鼻香)
황벽희운(黃檗希運:?-850)선사의 게송이다. 당나라의 선승(禪僧)으로 백장선사(百丈禪師,749~814) 회해(懷海)의 지도를 받고 『황벽산단제선사 전심법요(傳心法要)』를 남긴 분이다. 뒤에 우리에게 ‘평상심이 바로 도(平常心是道)’라는 말로 더 유명한 임제의현(臨濟義玄:?-867)의 스승이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매화가 피어나는 때가 찬바람이 쌩쌩 불 때 이후이니 깨달음도 그런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하지만 요즘은 아무 때나 피게 만드는 힘이 있다. 조건이 갖추어지면 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조건을 갖추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매미의 애벌레는 굼벵이다. 싯타르타가 농부의 쟁깃날아래 꿈틀거리다 새에게 물려가는 굼벵이를 보고 인생의 허무함을 느꼈다고 하는 그 벌레다. 굼벵이는 땅 속에서 7~17년 살다가 세상에 태어나 1개월 정도 매미로 살다가 간다고 한다. 참 힘들고 무서운 세월이다. 그런데 더 한 놈이 있다. ‘오래 살다 보니 단맛 쓴맛 다 보고 죽는다’는 우스갯소리의 주인공인 하루살이란 놈은 땅 속에서 3년을 살다가 세상에 태어나 하루 산다고 한다. 하루살이는 입이 없다고 한다. 하루를 사나 일 년을 사나 사는 동안에 뭔가를 먹어야 할텐데 입이 없다니? 입이 없어서 먹지도 못하면서 생식기는 있어서 후세를 만들어 넣는 일만 하고 죽는다고 한다. 아마도 지구촌의 모든 가족 가운데 가장 험난하고 허무한 삶을 사는 것일게다. 어찌 보면 가장 뜻깊은 일만 하고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고통을 참으며 살아낸 세월이 있어야 맛있는 과일을 맛보는 것이다. 우리가 성인으로 자라나 공부 마치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해서 성공하기까지는 하루살이나 매미가 기다렸던 것보다 더 많고 어두운 땅속 같은 세월을 기다려야 할이지 모른다. 하지만 기다려야 그날이 온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자그마한 생명체인 코로나19바이러스라는 놈에게 지구촌의 모든 가족들이 힘들어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속에 지닌 용구를 해소하기 위해 열심히 날아다니기까지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자연 경치를 만나고, 동물들을 만나고, 벌레들까지 만나면서 살아왔더니 바이러스가 우리들을 반기게 된 것이다. 재미있게도 바이러스가 우리의 행동양식을 정해주기까지 한다. 지구촌 가족 모두를 무섭게 하고 불편하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어야 할 거리,떼어야 할 사이를 나눠주는 묘한 맛이 있다. 덮어놓고 누구나 만나던 것을 이제는 만나야 할 사람, 만나도 될 사람,,전화만 할 사람 등으로 나눠주기까지 한다.
봄에 씨앗 뿌려 봄에 피어나거나 여름에 피거나 혹은 다음 해쯤만 피어나고 열매 맺어도 그것은 꽤 실용적이고 결과를 확인하기가 쉬워서 좋다. 하지만 한 3년이 걸려서 피거나 매미처럼 7년이 걸리는 것도 힘이 드는데 3천년이 지나야만 피어나는 꽃이 있다면 어떨까? 그 전설속의 꽃이 바로 우담바라이다. 우담바라는 인도말로 우담발화(盂曇鉢華) 또는 금발라화(金鉢羅華)라고 한역한다. 우담바라가 피어나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세상을 평화롭게 다스리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나타나거나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부처님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이 어려워서 그런지 보았다는 사람을 역사 속에서 보기 어렵다. 우담바라는 꽃이 가려서 안 보이는 까닭에 3천년 만에 한 번 핀다는 전설이 만들어진 것이다. 무화과도 꽃이 피는데 꽃이 꽃받기 속에 피어서 잘 모르는 이들이 무화과라고 한 것이 굳어서 아직도 무화과라고 부르는 것이다. 무화과의 일종인 우담바라의 꽃을 한 번 보면 아니 꽃이 한 번 피어나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니 ‘풀잠자리알’을 ‘우담바라꽃’이라고 하여 문제가 일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봄에 피는 것으로 알았던 꽃이 가을인데 꽃망울을 피우는 일도 있다. 그러면 대개가 ‘철없는 것, 철모르는 아이’라는 핀잔을 듣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뭘 몰라서 하는 소리다.3월이 되어서 꽃을 피운 것이 아니다. 3월이 되어 꽃이 필만 한 환경 곧 온도와 습도 등이 갖춰져서 꽃이 피는 것이다. 포도를 잘 가꿔서 많은 돈을 버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세상에 가장 맛난 과일들을 보라! 어디 비료 주고, 농약 주고, 물 주고 하던가?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 받아먹고, 햇볕 쬐고, 바람 쏘이고 해서 맛난 과일이 되지 않던가? 더 많이 벌려는 욕심으로 아주 많은 포도송이를 달아놓게 하면 서로 경쟁하느라 잘아져서 결국 높은 가격은커녕 제 값도 받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초기에 몇 톤씩 따 버려야 한다. 아무데나 버려서 노인들 잘못 드시고 탈 나면 곤란하니 꼭 모아 삭혀서 유기농 비료를 마들어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맛나게 자라고 익어서 사람들이 누구나 찾으니 따버린 개수보다 더 많은 돈을 받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살 찔 틈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네.” 한다. 제대로 열매 맺듯이 마음 닦는 일도 마찬가지다. 열반이라는,해탈이라는,맑음이라는,깨달음이라는 오래 이어지는 곧 지속가능한 행복을 얻는데 잠간 뾰족한 수로 할 수 있겠는가? 필요한 만큼의 물과 필요한 만큼의 햇빛과 필요한 만큼의 바람이 때 맞춰 또는 당기거나 늦춰서 와줘야 하는 것이다. 비가 필요하다고 많이 부우면 장마나 태풍이 되는 것이며, 많다고 없애버리면 가뭄이 드는 것이니 알맞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알맞다는 것이 늘 일정하다는 말은 아니다. 목마른 뒤에 물의 단맛을 느끼듯 고행 같은 수행을 하면서 눈 밝은 스승을 만나서 교정을 받고 지도를 받아서 무르익을 때 그 때 가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도 있다.
잎사귀 달린 애들에게 달라붙어 식물의 진액을 빨아먹어 새까맣게 죽여 버리는 놈 응애란다.
대웅전 앞에 심은 국화가 더운 여름날을 전후해서 잎사귀들이 말라들어가서 비가 오지 않아서, 말라서 그러는 줄만 알았다. 불교 제자 가운데 식물 전문가에게 보였더니 대번에 응애 때문이란다. 할 수 없이 없애야 했다. 그랬더니 해 입지 않은 아이들은 활짝 피어나 가을 손님들을 맞이하는데 참 좋았다. 가만히 보니 응애란 놈들이 먹어버린 애들은 타들어가서 할 수 없이 뽑아버렸다. 했더니 포토존이 생겨서 나름 좋아보였다. 아니 많이 좋아 보인다. 어쩔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더니 딱 그 짝이로다. 보국사 대웅전 앞뜰에 응애 덕에 노란 국화밭 포토존이 생겼다. 응애는 좀 진드기 곧 작은 진드기. 진드기(tiks)는 큰 진드기란다. 응애의 천적은 진드기란다
아무튼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리더라도 그러한 환경이 갖춰지면 꽃이 핀다. 그리고 예정된 사실을 믿고 준비하였으면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기다려라. 그러면 좋은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