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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호] 저잣거리 사글세 참선 포교원(열린禪院) 살이) / 법현스님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22.04.11|조회수46 목록 댓글 0

 

< 이달의 명상 >

 

 



저잣거리 사글세 참선
포교원(열린禪院) 살이

 

 

 

 

 

 

 

 

 

 

 

 

 

 

 

 

 

글 | 법현스님
무상법현(無相法顯);스님
- 서울 열린선원 선원장
- 일본 나가노 아즈미노시 금강사 주지
-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그래도,가끔> 지은이

 

 

 

 

 

서울시에 25개 구가 있다. 그 가운에 가장 재정 자립도가 낮다는 곳이 은평구라고 한다. 그럼에도 따스한 온정이랄 수 있는 적십자 회비를 내는 사람과 내는 비율이 가장 높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자기 집을 가진 사람들보다 남의 집에 사는 이들이 더 많을 가능성이 많을 것이다.
남의 집에 살면서 내는 돈을 삯이라고 한다. 일해서 버는 돈도 삯이라고 한다. 품삯이라는 말이 그렇다. 물건을 빌거나 품을 비는데 드는 돈을 삯이라 하는 것이다. 그 삯을 날마다 내거나, 이레마다 내거나, 보름마다 내거나, 여섯 달마다 내거나, 한 해마다 내거나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 않고 달마다 내는 삯을 달삯이라 한다. 빌리는 돈을 세라고 한다. 세는 한자어이다. 달삯으로 내는 돈을 삯월세라고 했는데 발음도 되지 않는 사이시옷을 빼버리고 발음되는 자음을 이어서 부르는 이름이 굳어진 말이 사글세이다.
이제는 수행자 승려로 산지가 40년에 가까워 열린선원 뿐 아니라 인천공항 제2터미널 종합청사 지하에 세계선원을 열어놓았고, 일본 나가노 아즈미노시 호다카아이아케에 있는 금강사라는 절 주지도 맡았으며 경기도 평택에도 100년이 넘은 사찰 주지 소임을 맡아 네 해가 되어가지만 2005년까지는 절이 없었다.
‘저절로 가는 중’이 아니라 절이 없는 중이었다. 까닭은 이웃종교로 말하자면 기관목회 하는 중이었던 셈이다. 태고종이라고 하는 원래 이름이 조계종이었으며 조계종의 주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이승만, 박정희와 엄청 친한? 스님들에게 밀려서 사이다 콜라 같은? 비주류가 되어 산 지 60년이 되자 이름도 가물가물하다가 생태, 문화, 영성의 시기인 21세기에 들어서 영성, 생태보다도 문화 흐름에 들어서 좀 빛을 보다가 석가 없는 모니, 모니 없는 석가 가름에 따라 모니와 친한 이들이 문화하고 친하게 되는 바람에 다시 밀리는 무리에 든 사람 가운데서도 가장 거시기한 승려라서 그렇다. 예수와 그리스도가 다투는 곁에서 대한이와 한국이가 겨룬다는 우스갯소리인 게다. 그런데, 태고종의 실무자를 거쳐서 책임자인 부장 소임도 오래 보고 총무원 부원장까지 했으면서도 내 사찰도 없는데다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독립 사무실이 없는 것이 늘 아쉬웠다. 은사스님 절이나,도반 스님 절,선배 법사님의 사찰을 맡아 봉사도 했지만 모자란 느낌이었다.
그런데 우연이랄까 나름 필연인 기회가 왔다. 종단을 알리는 소임을 많이 살아온 덕에 프레스프렌드리멍크가 되어 사는 자의 토요일 삶이 재미났었다. 금요일 밤에 마감해 인쇄 넘긴 교계 신문들이 신문사에 배달되고 나머지는 화요일쯤에 배달되니 사달이 생기면 대응하기에 늦어지는 터라 토요일 신문사에 들러 방금 나온 따스한 기사를 읽는 터에 포교원 양도 광고가 눈에 띈 것이다. 전화를 걸어서 나에게 달라 하고 ‘시설비 추후 절충’이라는 문구를 붙잡고 늘어졌다. 불쌍한 표정으로 모니가 없는 석가에게 그냥 공양하라는 말 되는? 이야기를 한 것이다. 한 나절 지나더니 전화를 해서 ‘스님이 정말  오신다면 그냥 드리겠다!’고 하며 한 마디 더 거들었다. “스님은 시대의 부루나존자이시잖아요!” 해서 저잣거리 수행전법도량 열린선원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부루나존자는 부처님의 직제자로 설법제일이라 평가받는 스님이다.

 

열린선원 참선 장면


법당으로 쓰인지 꽤 오래되었으나 앞 스님은 사찰음식 전문가라서 음식재료 요리로 불교를 가르쳤다고나 할까? 나는 ‘음식재료 대신 담마(dhamma) 곧 법,진리를 요리 한다’며 너스레를 떨며 시장 안 이 가게 저 가게를 다니며 인사했다. 달력도 나누어 주고,부처님 말씀이 담긴 잡지나 신문도 나누어주었다. 내가 쓴 책들도 들어있는 잡지나 신문도,책도 보여주었다. 그저 인사나 나누고 생활이야기를 나누는 생활 17년이었다. 역촌중앙시장은 60년대 초 교원공제조합이라는 기관에서 지은 전통시장과 양 옆에 역촌맨션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을 가진 아파트가 있다. 들판 같은 시골에 지은 맨션이라는 이름이 참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그때는 어울리는 이름이었으리라. 잘 모르는 이들은 시장에 사람들이 많으니 신도가 많으리라 짐작한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멸치 콩이야기 하는 것이다. 눈코 뜰 새는 많지만 맘눈 뜨기 바쁜 것이 가게 하는 사람들의 삶이다. 이미 가진 종교가 있고, 다니는 절이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공연히 바쁘다. 그래서 오라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오는 사람이 있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거나 불공, 시식을 의뢰하는 이들이 있기는 하다. 오지 않아도 이야기를 많이 나눠서 다들 잘 어울려 지낸다.
여기는 가게들이 하나 둘 모여서 시장이 이루어진 곳이 아니다. 시장 건물을 짓고 분양을 하거나 임대해서 모여든 상인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것이다. 곧 재건축 한다고 나가라고 걷어차 쌋지만 어찌 될지 모른다. 쌍방통행로에서 오가는 운전자들이 싸우기도 하고 눈에 띄는 나는 교통정리, 심리정리를 하기도 하는 오지라퍼을(乙)이다. ‘스님이 사기 치네’라는 말 안되는 소리도 듣는다. 주차장이 없고 화장실이 없어서 밤 8시가 되거나 휴일인 일요일이 오면 동네에 있는 공원 화장실을 쓰기도 하다가 옥상에 화장실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절에서 쓰고 하나는 교회에 쓰라고 주었다. 얼거나 고장 날 때마다 돈을 함께 내라는 바람에 아예 교회에 주었다.
내 자리에 주차 해놓고도 전화를 받지 않거나 ‘당신 자리야?’라고 묻는 정신 어린 자들도 꽤 있다. 시장이 문 닫은 밤에 큰 일이 생겼을 때 화장실이 얼어있으면 참으로 난감하다. 매우 급해서 불쌍한 표정으로 문 좀 열어달라니 ‘공원으로 가세욧’ 하는 경비의 갑질도 당하고, 옥상으로 올라 가다가 급해서 옷 속에다 일을 보는 낭패를 당하기도 하였다.
전국에 있는 시장마다 교회나 절이 있게 마련이다. 옛날에는 산 속에 있어야 절 맛이 난다는 말들을 많이 들었다. ‘젓갈도 아니고 절이 먹거리 인양 절 맛은 또 뭔 맛이람’하면서도 느낌적인 느낌으로 아는 것이다. 시장에 있는 포교원이 꽤나 많지만 나처럼 시작할 때부터 ‘저잣거리 수행전법도량’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을 붙여서 알리는 곳은 거의 없다. 아무래도 이것저것 절 맛이 나는 장치들을 거의 가지지 못해서 가슴을 턱 내밀기가 쉽지 않아서일 게다. 열린선원에서는 헌공, 시식하면서 축원할 때나 설법할 때, 소개할 때도 으레 ‘저잣거리 수행전법도량’이라는 표현을 많이 한다. 축원할 때 다른 절에서는 종로에 있거나 산하나 없는 영등포, 구로에 있어도 삼각산, 북한산 등 산 이름을 넣어서 축원한다. 본디 산 이름이 아니라 정체성 또는 수행, 전법의 모토, 기치, 깃발을 드러내는 말이다. 신라, 고려시대의 5교 9산에서 선종의 느낌이 좋아서 썼던 것이 내용 없이 이름만 전해져서 뒷산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요즘은 ‘태고종, 조계종, 천태종, 진각종....’이라고 종단 명칭을 넣어서 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날 주민센타(동사무소)에서 전화가 왔다. 목사님이나 스님을 두레복지위원회라는 복지 사각 줄이는 단체에 모시고 싶은데 다른 구청에서 근무하는 친구 말이 ‘그 스님 좋은데 전국구라서 동네일은 하지 않을 거야’라고 했는데 혹시 함께 할 생각 없느냐고 해서 시작한 활동이 작년까지 10년 넘게 했다. 좋은 이름을 서울시에서 사회보장협의체라는 시쳇말로 통일벼 냄새 나는 말로 바꿨지만 좋은 활동이니 함께 하다가 작년 말에 그만두었다. 은평구에서 한 일은 민주평화통일국민회의,한국문학관유치위원회,제1,2기 인권위원회와 1,2기 협치위원회 활동을 나름 열심히 하다 임기 만료로 그만두었다. 그만 두기 전까지 신부나 목사는 거의 참여하지 않는데 승려 혼자서 참여하는 것이 나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대개 이웃종교 구성원들이 적극적이어서 불교가 없는 곳, 승려가 끼이지 않은 곳, 태고종을 필요로 하는 곳에 점이나 꽃처럼 함께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몇 년을 하면서 살펴보니 목사를 포함한 일반인들은 그것이 활동의 중요한 징검다리이자 생활의 중요한 자리가 된다는 느낌이어서 더욱 빠지게 된 것이다. 내가 그들 몫을 나누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다. 참여하면서는 종교인 또는 산속 승려의 느낌으로 일반인이면 지나칠 생각을 함께하는 몫을 했다고 느낀다.
길거리 시장 건물에 세들어 살고 있으니 오고 가는 사람들이 불쑥 들어오기도 한다. 대개 반가이 맞이한다. 걸인들에게도 편하게 맞이하며 비록 적지만 돈도 주고, 절이라 많은 떡이나 과일 쌀도 주면서 어떤 때는 식사도 함께 한다. 그래도 새벽 두 시에 문 두드려 나가 보니 술 취한 사람이 인생상담을 청할 땐 조금 거북한 것도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술 냄새 나는 거친 털 뺨을 스님 사랑해요 하면서 문대서 이것 참 하기도 한다. 천도재, 불공, 시식, 아픈 가족 치료 등을 핑계로 사기 치기도 한다. 시원찮은 이웃종교를 만나게 되면 조금 곤혹스러운 일을 당하기도 한다. 뭐, 그래도 그것이 사바세계의 일상사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저잣거리 수행전법도량이 깃들어 있는 역촌중앙시장이 재건축을 결정지어 2월 28일까지 비워야 한다는 문서를 보내 걱정하기 시작했다. 세입자들의 움직임을 짐작했는지 감자기 12월 31일까지 나가라는 명도소송을 제기해 1000페이지가 넘는 문서와 공지문을 벽에 붙이고갔다. 벌써 이웃 가게들은 붉은 페인트로 폐쇄라는 글씨를 갈겨썼다. 아직 영업중인데도 협상이 끝났다고 그러는 모양이다. 소송이 들어왔기에 나는 우선 법원에 그들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편지를 보내 놓고 다음 추이를 살피는 중이다. 
이제 재건축을 곧 하게 되겠지. ‘어디로 갈거나 어디로 갈거나~’노래 하면 ‘쿠오바디스?’
하면서 불자들이 따라 오려나 모르겠다. ㅎ


무상법현(無相法顯):불교 태고종 승려. 열린선원 선원장,인천공항 세계선원장,평택 보국사 주지,일본 나가노 금강사 주지. 틀이 없으면 참이 드러난다(無相法顯)는 생각을 가진 승려.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그래도,가끔>,<법현스님과 함께 하는 법구경>,등 저서와 ‘틀림에서 맞음으로 회통하는 불교생태사상’,‘불교 차례의식 일고(一考)’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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