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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불 교 사

[2017년 10월호] 오카쿠라 카쿠조, 차의 책 , The book of Tea 미주불교사(8) /김형근

작성자파란연꽃|작성시간17.10.14|조회수408 목록 댓글 0


    미국역사와 함께 보는 미주불교사(8) 


    글/김형근



    미국 불교의 시작은 동부에서는 현지 백인들에 의해 1840년대에, 서부에서는  중국인 이민자들에 의해 1850년대에 시작되었다.
    앞에서 이미 소개하였는데 1877년 일본을 방문한 하바드 대학교 동물학과 교수인 모스를 비롯하여  어니스트 프란시스코 페놀로사, 윌리엄 스터지스 비글로우 등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전환하는 시기에 보스톤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등장무대에 등장하는 인물중에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일본인이 있는데 그가 오카쿠라 카쿠조이다. 미국 불교사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일본인이 바로 이 오카쿠라 카쿠조이다. 
     일본이 제국주의 길로 들어서 아시아 여러 나라를 침략하면서 내세운 ‘아시아는 하나다’는 오카쿠라 카쿠조(1863~1913)의 영문저서 The Ideals of the East(1903)의 첫 문장에서 온 것이다. 이외에도 그는 ‘The book of Tea(차의 책)’의 저자이다.  이 책도  영어로 썼는데 후에 일본어로 번역되었다. 차에 관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책은 중국 당나라 시대 760년에 쓴 유우의 ‘다경(茶經)이고 우리나라의 차에 관한 최초의 책은 조선시대 초의 선사의 ’동다송‘이다.


    오카쿠라 카쿠조



    오카쿠라 카쿠조 (일본어:岡倉天心(おかくらてんしん) 오카쿠라 텐신[*], 1863년 2월 14일 ~ 1913년 9월 2일)은 일본 메이지 시대에 활약한 사상가, 문인, 철학자이다. 미학과 관련된 글을 여러 개 썼으며, 미술사, 미술 평론, 미술가 양성 활동도 했다. 본명은 가쿠조 (覚三(かくぞう) 카쿠조이다. 가나가와 현 요코하마 시의 사무라이 집안 출생으로, 도쿄예술대학의 설립에 참여하였으며, 일본 미술원의 창설자이다. 그는 도쿄 개성소에 입소하여, 정치학, 경제학 등을 배웠다. 그리고 개성소에서 교수 어니스트 페놀로서의 조수가 되어 페놀로서의 미술품 수집을 도왔다. 또 1882년에 덴슈 학교의 교관이 되었으며, 1890년부터 3년간 도쿄예술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1905년 이래 오카쿠라는 보스톤 박물관에서 중국과 일본 분과의 고문으로 있었다.

    한창호 씨가 번역한‘이야기 미국불교사’248쪽에는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나온다.

    오카쿠라는 1856년 막부시대에 세워진 외국서적 연구소에서 영어를 배웠다. 그는 세이코 오쿠하라에게서 미술을 배웠는데 오쿠하라는 여성으로 진보사상을 가졌다고 한다.
    1862년에 태어난 오카쿠라 텐신은 불과 27세에 도쿄미술학교 교장으로 취임할 정도로 뛰어난 청년이었으며, 예술과 미학에 조예가 깊었다. 이후 일본 미술원을 창립하는 등 일본미술의 근대화와 국제화를 도모하였으며, 서구미술과 그 이론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새로이 일본화라는 전통을 확립하고, 일본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작업을 주도했다. 이 책 외에도 『동양의 이상(理想)』이라는 책을 저술하여 동양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자 했는데, 그것은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부르짖으며 세계를 향해 뻗어나가려는 일본제국주의의 정치적 요구와 딱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심미적이고 관조적인 오카쿠라의 성향은 역사의식의 부재와 함께 정치현실의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한계를 지녔다는 평가가 있다.

    오카쿠라 덴신은 1880년 도쿄대학을 졸업한 후 문부성 관료로서 도쿄미술학교 설립을 주도했으며, 미술행정가이자 미술평론가로서 국민국가 건설기 일본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고미술 조사사업이나 문화재 보호제도의 확립, 일본미술사의 체계화에도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그는1898년 도쿄미술학교 교장에서 물러남으로써 미술계에 대한 영향력은 약화되었으나 일본미술원을 설립하여 미술을 통한 서양대응의 입장은 유지했다. 미술이 일본의 국가적 브랜드였던 시기인 만큼 국내외에서 전개된 그의 활동이 가진 의미는 매우 컸다. 역사화를 통해 국가 정체성의 확립에 기여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려 한 점이나 1893년 시카고만국박람회 커미셔너(commissioner)로서 자포니즘(Japonism)이 미국으로 확산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 사실 등은 당시 그의 활동이 가지는 중요성을 말해주는 예들이다. 그러나 오카쿠라의 사후평가를 고려하면, 초기 도쿄미술학교 교장 재직시기까지의 업적이나 이를 사직한 후 일본미술원 설립이나 미술행정, 문화재 보호 등의 영역에서 펼친 활동은 그의 영문 저술이 발휘한 영향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특히 1902년 인도 방문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발행한 The Idealsof the East나 The Awakening of Japan(일본의 각성), The Book of Tea 등에 반영되어 있는 그의 사상은 서양에 대한 동양의 우월성이나 개항 이후 일본의 근대국가 건설과정, 그리고 일본예술 및 일본 미의식의 우수성 등이 핵심을 이루며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 저술들의 내용이 일본의 개항과정과 메이지(明治)시대에 경험한 압도적인 서양문명에 대한 대응이라는 측면을 갖고 있지만, 거기에는 동양과 서양, 일본과 여타 아시아 등, 각 층위에서 검토해야 할 많은 중요한 문제들이 내포되어 있다. 더욱이 영문으로 쓰인 그의 저술이 사후에 일본에 번역· 소개되어 재조명되는 과정에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중일· 태평양전쟁기일본의 오카쿠라덴신 재조명 -김용철 논문-

    오카쿠라의 영문저서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일본 대중의 주목을 받았던 것은 『차의 책』이다. 1929년 무라오카 히로시(村岡博)가 영어에서 일본어로 번역하여 출판한 이 책은 오카쿠라가 ‘심미주의의 종교’로 규정한 일본 다도에 반영된 미의식을 예찬한 도서다. 원래 서양인 화가 존 라파쥐(John La Farge)에게 헌정한 책으로 아시아 문명 전체를 다루거나 개국 이후 일본의 역사를 담은 여타 저서와는 상호보완관계에 있는 것으로도 평가되지만, 이와나미(岩波)출판사에서 문고판인 수진본(袖珍本)이 출판됨으로써 일반대중이 오카쿠라의 사상에 다가가는 통로가 되었다. 내용상으로도 일본의 대중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저술로서 『동양의 이상』이나 『일본의 각성』에 비하면 이념적 메시지는 상대적으로 약했다.

    그에 비하면 한국에 대한 과거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등 왜곡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한 『일본의 각성』은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한 원인이 ‘안으로부터의 각성’임을 밝혔으며, 나아가 그와 같은 각성이 러일전쟁의 승리에까지 이어졌음을 보여줌으로써 일각에서 일고 있던 ‘황화론’(黃禍論)을 불식시키는 데도 주효했던 것이다. 이들 저서에 더하여 중일전쟁 발발 이후 『동양의 각성』이 번역· 출판됨으로써 일본의 과거에 중점을 둔 통시적 인식과 메이지시대 이후 중일 전쟁기 일본의 입장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진 것이었다. 이는 중일· 태평양 전쟁기 일본 사상계에서 이루어진 오카쿠라 카쿠조의 재조명이 초래한 구체적인 결과로서 주목해야 할 측면이다. 다시 말하면 침략적 아시아주의 혹은 전투적 아시아주의를 합리화할 실마리가 카쿠조의 영문 저술 『동양의 각성』 속에서 발견된 것이다.


    100여 년 전, 동양문화의 아름다움을 서양에 전한 책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을사조약이 체결된 다음해인 1906년, 미국 뉴욕에서 한 일본인이 영어로 된 책을 발간했다. 저자는 당시 보스턴미술관에서 동양부장으로서 국제적 명성을 날리고 있던 오카쿠라 텐신(岡倉天心). 펴낸 책은 바로 “The Book of Tea”. 이후 이 책은 오늘날까지 10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동양의 차를 서양인들에게 알리는 데 가장 인기 있는 책으로 손꼽혀왔다. 이 책은 아직도 미국 온라인서점에서 꾸준히 판매되고 있으며, “다도를 통해 일본의 전통문화를 가장 재미있고 매력 있게 해설한 책”이라는 서평에서는 서양인들이 이 책을 통해 다도(茶道)를 넘어서 일본문화, 나아가 동양의 전통문화에 얼마나 매혹되었는지 알 수 있다.


    차의 책
    이 책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차는 약용으로 시작하여 음료가 되었다. 중국에서 8세기에 고상한 놀이의 하나가 되어 시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15세기 일본에서는 그것에 기품을 부여하면서 심미주의라는 종교, 즉 다도(茶道)로 드높여졌다. 다도란 하찮은 일상 가운데 숨어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숭앙, 그것에 기초한 일종의 의례이다. 다도는 순수함과 어울림, 보시의 신비, 사회 질서의 낭만성 등을 가르쳐준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함에 대한 숭배이니, 말하자면 불가능의 연속인 이 인생에서 무언가 가능한 것을 성취하려는 은근한 시도다.(15p)



    차는 약용으로 시작하여 음료가 되었고, 후에는 다도라는 심미적 종교로 드높여졌다. 실용적인 것에 미적인 감성이 더해지고, 나아가 종교로까지 승화되었다는 말이다. 저자인 텐신에게는 예술이 곧 종교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곧 일본 다도의 특징이기도 하다. 텐신은 이런 일본 다도의 특징을 통해 일본문화의 품격을 서양에 전달하고자 했는데, 이는 동양문화에 대한 서양인들의 무지와 편견을 깨뜨리기 위함이었다. 책에서 저자는 도대체 서양은 언제 동양을 이해할 것인지, 아니 이해하려는 시도라도 할 것인지를 물으며, 서양인들이 터무니없는 오해로 “인도인의 영성(靈性)은 무지라고 비웃고, 중국인의 절제는 어리석음이라 치부하며, 일본인의 애국심을 운명론의 결과라고 폄하한다”고 일갈한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30여 년 전으로, 『일본의 다도』(보림사, 1987)라는 책 속에 주석과 함께 번역문이 실린 적이 있다. 또한 2005년부터 《월간다도》에서 영어 원문을 다달이 실은 적이 있다. 그리고 독립된 책으로 출판되었다.. 100여 년 전에 쓰인 이 책이 아직도 읽히고 있다면 단순한 과거의 유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일본문화, 특히 다도에 대한 역사적 관점을 정립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통째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역자정천구는 번역의 동기를 밝히고 있다.

    일본 다도, 그 이상과 실상의 거리
    동아시아의 문학, 사상 등을 비교연구하고 있는 역자 정천구는 말미에 해제를 달아 이 책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터무니없는 서양인들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동양 문화의 가치를 서양에 전파한다는 책 본래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텐신은 심미적이고 비역사적인 성향으로 인해 정치현실을 바로 보지 못함으로써 일본문명이 최고라는 국가주의의 경향을 보였다. 또한 다도의 이상적인 면만을 강조함으로써 실상과 이상의 괴리를 보이기도 했다. 그것은 다도보다는 다법에 치우쳐 형식적으로 점점 까다로워지고 번잡해진 일본 차문화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 또한 다실을 꾸미고 다기를 갖추며 한복을 차려입는 일, 그것은 형식일 뿐이라며 자칫 우리네 차문화 또한 형식으로 흐르고 있지 않은지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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