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불교사 >
미국역사와 함께 보는 미국불교사(18)
이 글은 1997년부터 약 20년에 걸쳐 미주현대불교에 번역 연재되었던 미국불교사에 관한 중요한 책들인‘백조가 호수에 온 이야기 How the swans came to the lake(한국어로는 이야기 미국불교사로 출판', '미국이 만난 불교 The American Encounter with Buddhism', '미국 불교 Buddhism in America'를 토대로 하여 이 책들을 다시 인용하여 재구성하여 쓴 글이다.
전체적인 방향은 아래와 같은 관점에 방점을 두고 기술할 것이다.
글 | 김형근 (본지 편집인)
1960년대 미국불교
샌프란시스코 선원
샌프란 선원
1960년대는 미국불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1950년대에는 스즈키 다이세츠, 엘렌 왓츠, 잭 캐루악 그리고 불교에 매료되었던 비트세대의 저서들이 나오면서 선이 크게 유행하였다. 이것이 1960년대 선의 대폭발로 바뀌었다고 평가를 받는 시기이다. 1950년대 선에 대해서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들에게 큰 환영을 받은 것은 화두를 드는 간화선도 아니고 티베트 선도 아니었다. 미국불교(buddhism in america) 저자인 리차드 휴저스 시저에 의하면 일본인들이 말하는 무사선(bujizen, 無事禅)이다. 비트세대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람들은 실제로 수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저서와 강연을 통해서였다. 이들은 선이 가지는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권위를 부정하는 것 등에 대해 열광하였다. 아래는 휴저스의 진단이다.
미국에는 일본인들이 무사선(無事禅: 모든 존재가 불성을 지니고 있으며 본래 깨달음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일부러 수행할 필요가 없다는 선수행자의 자만과 허세)이라고 부르는 활발한 현상도 나타나는데, 이말은 전통적 맥락에서 볼 때 형식적인 전통 및 가르침과 관련된 제도적 규율을 무시하면서 선 수행자라고 자처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무사선은 자유로운 형식의 영성을 표출하는 것이며 상당한 창의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초기 비트 세대가 불교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많은 사례와 앨런 와츠에 의해 대중화된 선은 미국의 무사선이라고 간주될 수도 있다. 부정적으로 볼 때 무사선은 에고이즘을 깨달음으로 착각하는 일종의 자기기만적 방종이라고 종종 무시되기도 한다. 선을 자처하고 나서는 이러한 주장을 어떻게 평가하든 그것은 미국의 개인주의적 분위기와 매우 잘 어울리고, 또한 선의 영향을 받아서 대중적 출판물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데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시기는 이러한 경향의 선이 지적인 차원에서 수행의 차원으로 전환된 시점이었다. 1960년대 말부터 미국인들은 일본의 좌선, 남방불교의 위빠사나, 티베트 불교, 그리고 일본 니치렌 식의 염불 등의 수행에 관심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직접 참여하게 되었다. 미국의 영적 풍경에 돌연히 새로운 것이 나타난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일본 스즈키 순륜 , 야스타니 하쿠운를 비롯하여, 중국의 선화, 베트남 틱냑한, 한국의 서경보 스님 등 중요한 아시아 각국 인물들이 미국에 도착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중에는 1960년 하와이 도착하여 여기에서 학교를 다니다 1964년 뉴욕으로 온 에이도 시마논 스님은 현재는 활동은 하지 않지만 지금도 살아있다. 이 스님은 원래 스즈키 다이세츠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선학협회(Zen Studies Society)를 템플대학교 종교학과 과장이었던 버나드 필립스(Bernard Philips) 박사의 소개로 이 학회를 인수하였다고 업스테트 뉴욕에 있는 다이보사츠 선원(International Dai Bosatsu Monastery)를 설립했다.
1960년대 미국 불교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은 1965년 이민법이 개정되면서 아시아 이민자들이 급증한 것이다. 이 시기에는 또 여러 단체들이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중요한 로체스터 선방과 타사하라 선방이 개원되었다. 미국사회에서도 반전 평화운동과 이민 확대로 아시아인들의 미국 이민의 문이 활짝 열렸다.
이 글에서는 (가)1960년대 미국 사회 선 단체 출현 현황, (나)스즈키 순륜과 야스타이 하쿤 활동 (다) 로체스터 선원과 타사하라 선원 개원.
10여년 전의 에이도 로시 모습
(가) 1960년대 미국사회에 선 단체 출현 현황
미국에서 주로 일본 스님들에 의해 2차 대전 이전에 결성된 단체들은 1950년대 선의 대유행의 기반이 되었으며, 1960년대에 불교에 대한 관심이 훨씬 더 커졌을 때 선이 많은 혜택을 거두어 들일 수 있는 위치에 서게 해주었다. 선은 미국에서 그 견고한 문학의 역사로부터 혜택을 보기도 했다. 스즈키와 앨런 와츠(Alan Watts, 1915~1973)는 20세기 중엽에 폭넓은 미국인 청중을 위해 선에 대한 해석을 제시했다. 비트 세대의 시는 선에 대한 뚜렷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작품은 이제 미국문학의 규범이 되었다. 1965년 필립 카플로(Philip Kapleau, 1912~2004)에 의해 출간된 『선의 세기둥』(The Three Pillars of Zen: Teaching, Practice and Enlightenment)과 1970년에 발간된 스즈키 순륜(鈴木俊隆, 1904~1971)의 『선심초심』(Zen Mind, Beginner’s Mind)은 이제 미국 불교의 고전에 속한다. 최근에는 출판의 대유행이 일어나면서 선 혹은 적어도 선과 유사한 사상들은 대중의 높은 인지도와 큰 명성을 얻었다.
선은 동아시아 승가기관에서 수백 년 동안 수행되어온 전통의 일부다. 선은 중국에서는 찬(Ch’an), 한국에서는 선(Son), 베트남에서는 티엔(Thien)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러한 여러 형태는 공유된 전통으로서 이제는 미국 불교의 격동속에서 창의적인 방식으로 일본의 선과 함께 혼합되고 있다.
일본에서 선은 공안公案의 사용을 강조하는 종파인 임제종과 좌선을 강조하는 조동종으로 나뉘어져있다. 그런데 1960년대의 다수의 유력한 일본인 선사들은 미국인 학생들에게 임제종과 조동종 수행법을 함께 가르쳤으며, 또 그 때문에 비록 미국에서 이 두 전통이 별개의 기관을 보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미국의 선 수행이 절충적인 성격을 가지는 데 도움을 주었다.
전반적으로 미국의 선은 승가에서 스님들이 하는 수행법을 재가자가 직접하는 운동이다. 이를테면 재가자가 엄격한 선수행을 직장과 가족의 요구와 균형을 맞추어가면서 혁신도 이루어낸 하나의 흐름이다. 승려의 수행법을 재가자가 하는 것은 일본에서 많은 전례가 있기는 하지만, 미국에서는 불교의 민주화 사례 중 하나로서 일컬어지기도 한다. 유명한 선 기관 중 많은 곳은 1960년대에 일본인 선사들과 그들의 미국인 제자들에 의해 세워졌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러한 주력기관들이 미국선의 주류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기관들은 전국의 명상센터들의 본보기가 되기도 하면서 종종 그들에게 선생들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맨하탄 제일선학원
맨하탄 30가. 제일선학원 건물
60년대 중반에 이르자 소엔 사쿠, 소케이안, 센자키, D. T. 스즈키와 모든 다른 이들이 물을 뿌려 둔 땅에서, 마치 봄비 내린 뒤 버섯이 솟듯이 20개의 선모임이 등장했다.
해당 지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메인 주에서는 전에 줄리아드의 학생이자 뉴욕제일선원의 일원이던 월터 노윅Walter Norwick이 일본에서 수년간 공부한 뒤, 주이간 고토 로시의 법의 계승자가 되었다.
(2) 보스턴에서는 캠브리지 불교협회가 활동을 지속했다.
나카가와 소엔 로시, 야스타니 로시, 순륜 스즈키 로시가 모두 방문하였다.
(3)뉴욕에서는 미국의 제일선학원이 이스트 30번가에 있는 갈색 사암으로 지은 건물로 옮긴 후, 메리 파르카스의 지도 아래 계속 소케이안의 가르침을 따랐다. 그녀의 선 노트(Zen Notes)는 이 당시 벌어지고 있던 상황을 기록하였다. 이스 후 미우라 로시는 선학원의 문하생들 중 열 명을 제자로 받아 들여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조용히 가르쳤다. 타이 시마노 센세이의 ‘선연구 학회’는 소엔 및 야스타니 두 로시와 동시에 연관을 가지면서 계속 확장되었다. 몇 년 후인 1967년에는 실론에서 공부한 젊은 조동종 승려인 나카지마 스님이, 어퍼웨스트사이드의 타이 시마노가 살던 바로 그 아파트에서 좌선모임을 시작하였다.
서경보 스님
필라 서경보스님이 운영했던 선원이 있던 건물
(4) 필라델피아에서는 앨버트 스툰카드Albert Stunkard 박사가 야스타니 로시, 소엔 로시, 타이 시마노 등과 연대하여 선모임을 조직했다. 또한 필라델피아에서는 서경보 박사가 템플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소모임을 조직하여 한국 불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5) 워싱턴 D. C.에서는 또 다른 선모임이 선연구 학회와 관련을 맺었다. 또한 1966년에는 워싱턴 불교사원(Washington Buddhist Vihara)이 등장했으며, 여기엔 상좌부(Theravadan) 승려들 몇 분이 모여 있었다.
(6) 로체스터에서는 필립 카플로의 로체스터 선명상센터가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
(7) 시카고에서는 정토진종의 승려인 교마이 쿠보세 스님이 좌선모임을 만들었다. 뉴욕의 세키 스님처럼 쿠보세 스님은 중국 불교에서와 같이 미국인들이 염불 수행과 선 수행을 병행하는 시기의 도래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가 적은 대로 그때까지 정토진종은 대체로 미국 내 일본사회에만 국한되어 있었고, ‘크리스천들과 비슷한 접근방식’ 때문에 많은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D. T 스즈키가 미국 불교학회에서 행한 대담에서 지적했듯이, 사실 정토진종의 진眞은 기독교나 타력신앙 및 기타의 신과는 확연히 구별되었으니,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진아眞我였다. 사실 정토진종의 신도모임의 이름인 ‘미국 불교사원(Buddhist Churches of America)’은 소수 미국인들을 끌어들였고, 그중 일부는 승려가 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대체로 그들의 영향력은 그들이 사는 지역 사회 내부로 한정되었다.
(8)샌프란시스코에서는 스즈키 로시와 함께 공부하는 인원이 증가한 이외에도, 중국선사 선화상인(宣化上人; Hsuan Hua)과 함께 좀더 작은 한 그룹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9)하와이에서는 금강승가(Diamond Sangha)가 야스타니 로시 및 소엔 로시와 연계를 갖고 로버트 에이킨의 지도 아래 계속 성장했다. 1965년에는 소엔의 승원인 류타쿠지 출신 재가불자 지도자인 카츠키 씨가 좌선의 통역자 겸 스승의 역할을 하기 위해 미국에 도착했다.
(10)1967년,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마에주미 센세이의 그룹이 젠슈지에서 옮겨 윌샤이어 구역의 세라노 가에 있는 한 집에 세를 들었다. 한동안 이들이 스즈키 로시의 모임과 합치리라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결국은 이들 나름대로 독립해 남아 있다가, 1968년에 로스앤젤레스 선원(Los Angeles Zendo: 현재의 Zen Center of Los Angeles)으로 통합되었다. 야스타니 로시도 로스앤젤레스 선원에서 정진을 조직하기 시작했는데, 첫 정진이 1967년에 열렸다. 마에주미 센세이의 형제인 쿠로다 센세이가 방문한 직후에 로스앤젤레스 선원은 부신지(‘부처님의 진법’이라는 뜻)라는 이름의 조동종 사원이자 승당僧堂으로 등록하였다. 1970년 내내 마에주미 센세이는 야스타니 로시와 함께 수행을 계속하기 위해 일본으로 두 차례 장기간 여행을 했다. 마에주미 센세이는 두번째 장기 방문의 말미에 야스타니 로시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한편 또 다른 선사, 조슈 사사키 로시가 로스앤젤레스로 왔다. 순회하며 다니는 나카가와 소엔 로시와 하쿠운 야스타니 로시를 제외하고, 이들은 모두 미국 땅에 정착하러 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워싱턴 불교사원
1960년대 미국사회 풍경
또한 냉전이 계속된 가운데 우주 개발 경쟁의 결과 인간을 처음으로 달에 보내는 되었다. 이 시기는 1960년대 이후 반세기 미국의 정치를 만들어 낸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vietnam-war-protest 1960년의 기억들은 다음 반세기를 위한 정치판 구도를 형성했다. 빌 클린턴이 1990년에 설명했듯이, "1960년대를 되돌아 보면, 나쁜 일보다 좋은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아마 민주당원일 것이고,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아마 공화당원일 것이다."[1]
1955년 몽고인 티벳트 겔루파 게셰 완걀Geshe wangyal스님 미국 뉴져지 도착 p465. 설립 현. 재는 시마노 스님이 이어받아서 업스테이트 다이보사츠 선원에서 사용함, 남부아시학과로 확대 재편되었고, 나중에는 아시아언어문화학과로 확대재편 됨. 미국불교학의 기초. 1934년 호센 이소베가 설립한 절이고 조동종 본부에서6 번 째 파견하여 왔음 나중에 Daimond Sangha로 불림 . 그는 미국선의 학장이라 불림. 의해 세워졌다. (미국불교사 543쪽) (Robert aitekn 8년간 지도받음) 견성체험 강조. 그의 부인 Jin YU-tang. 운영하고 있다 . 대통령의 역사적인 개정 이민서법명 식이 거행됐다. 점에서 스즈키와 와츠의 저작들보다 훨씬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야스타니와 그의 방식을 많은 미국인들에게 소개해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