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불교사 >
미국역사와 함께 보는 미국불교사 (48)
이 글은 1997년부터 약 20년에 걸쳐 미주현대불교에 번역 연재되었던 미국불교사에 관한 중요한 책들인‘백조가 호수에 온 이야기 How the swans came to the lake(한국어로는 이야기 미국불교사로 출판', '미국이 만난 불교 The American Encounter with Buddhism', '미국 불교 Buddhism in America'를 토대로 하여 이 책들을 다시 인용하여 재구성하여 쓴 글이다.
전체적인 방향은 아래와 같은 관점에 방점을 두고 기술할 것이다.
미국에 도래하는 불교는 뉴잉글랜드의 초월주의자들이 동양의 대안적 영성을 찾아 나섰던 이래로 150년간 지속되었던 구도역정의 종착지였다. 유럽계 지식인 미국인들의 내밀한 관심사로부터 이른바 하나의 대중운동으로 변화했다. 여러 차례에 걸쳐 미국사회의 흐름에 대한 반발과 그 대안으로 불교가 당시의 미국사회의 젊은이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글 | 김형근
미국불교의 마음챙김 명상운동
(mindfulness movement)
'mindfulness'라는 말은 미국에서 명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말이다. 이 말은 명상계를 넘어서 이제는 일반사회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말이다. 핸드폰의 건강을 체크하는 곳에도 mindfulness 라는 항목이 있다. 하지만 미주한인사회에서는 이 단어를 아는 사람은 매우 적다. 한국사회에서도 미국에서 발행된 ‘Mindfulness'라는 들어간 많은 책들을 번역하여 출판하였기 때문에 많이 알려진 단어이다.
1982년에 웨스터 버지니아의 바바나 소사이어티 (Bhavana Society), 숲속의 수행처를 설립하여 미국인들에게 성공적으로 위빠사나를 지도하는 올해 96세의 헤네폴로 구나라타나 스님은 “알아차림(mindfulness)은 팔리어 싸띠(sati)를 번역한 말이다”라고 주장한다. 스님의 저서 'Mindfulness in Plain English-한국어 책은 -가장 손쉬운 깨달음의 길 위빠사나 명상,'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알아차림(mindfulness)은 팔리어 싸띠(sati)를 번역한 말이다. 싸띠는 어떤 활동이다. 정확하게는 무엇일까? 적어도 말로는 어떤 적확한 답이 있을 수 없다. 말이란 마음의 상징 수준에서 고안된 것이어서, 상징적 사고가 다루는 현실을 묘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알아차림은 상징 이전의 것이다. 그것은 논리에 구속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란 점만 명심하면, 알아차림은 비교적 쉽게 체험할 수 있고, 묘사될 수도 있다. 말이란 물(物) 자체가 아니다. 실제 체험은 말과 상징 너머에 있다. 알이차림이 여기서 사용되는 용어와 전혀 다른 용어로 묘사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어느 쪽의 묘사나 다 맞을 수 있다.
리쳐드 휴지스 시거는 'Buddhism in America-한국어 번역 책- 미국불교‘에서 “미국불교에서 가장 두드러진 대중적인 면모를 마음챙김 명상운동(mindfulness movement)이라고 본다. 이것은 넓고도 다채로우며 서구화되고 세속화된 발전상이며, 1970년대의 불교대중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음챙김이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부상한 시기를 2000년대 말로 본다. 즉 2005년 부터 2009년으로 본다.
1990년대 중엽에 선은 미국 불교계에서 무대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편 티베트 불교수행은 대세가 되어가고 있었는데, 그것은 달라이 라마의 효과적인 홍보활동과 티베트 사태에 대한 할리우드의 관심에 큰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선 전통은 대표적인 선 수행기관들의 산하에 있는 많은 제휴단체들을 통해서 계속 번창하고 있지만, 주요 회원인 비트 세대와 히피 세대가 60대로 접어들면서 ‘선불교의 고령화’라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티베트라는 나라는 비록 그 전통 보존의 필요성이 여전히 공동체의 많은 종교적, 정치적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해도 더 이
상 각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반문화 내부에서 초걈 트룽파Chogyam Trungpa의 선구적인 업적을 둘러싼 논란들은 사라졌으며, 티베트 전통을 재해석하면서 그가 보여주었던 영특함은 서양에서 가르치고 있는 새로운 세대의 라마들에게 점차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이 글에서는 미국 불교에서 가장 두드러진 대중적인 면모를 ‘마음챙김 명상운동’(mindfulness movement)이라고 본다. 이것은 넓고도 다채로우며 서구화되고 세속화된 발전상이며, 1970년 대의 불교 대중운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뒷 부분에서 다룰 것이다.
2000년대의 첫 십 년이 끝나갈 즈음, ‘마음챙김’(mindfulness)이란 말은 주류 불교 공동체들의 내부와 주변에서 의미 있는 유행어로서 부상했으며, 이 말이 다각적으로 표출되었다는 것은 본격적인 ‘마음챙김 운동’이 일부 공동체들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미국 불교에서 ‘마음챙김’이란 용어는 마음, 몸, 환경의 상호연관성을 인지하는 것, 그리고 영적 수행과 사회적 행동에서 그러한 인지를 닦는 명상기법을 의미한다. 마음챙김은 대다수의 불교 종파에서 권장되지만,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체계적인 철학과 수행으로서 초기에 영향력을 발휘하며 정교한 체계가 갖추어졌다. 이 방법은 통찰명상협회(Insight Meditation Society)와 스피리트 록SpiritRock 같은 다르마센터들을 통해서 미국에 들어왔다. 틱낫한은 사회참여에 대한 가르침, 마음챙김의 종, 알아차리는 삶의 공동체들(Communities of Mindful Living)을 통해서 마음챙김의 윤리와 수행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는 선禪을 활용함으로써 기여했다. 마음챙김이라는 대중 불교적 개념은 오늘날 주로 이러한 테라와다와 대승의 토대들에 기반하고 있지만, 다른 종파와 전통에서도 자유롭게 이끌어오고 있다. 이러한 혼합수행의 선호 현상은 신생하는 서양 및 미국 불교의 특징이라고 이십 년 전에 밝혀졌다.
명백히 불교적인 마음챙김의 개념들은 이제 미국문화에 널리 전파되어 있으며 사회적, 윤리적 쟁점의 토론에서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러한 개념들은 페처 연구소(Fetzer Institute)와 사회 명상심 센터(The Center for Contemplative Mind in Society) 같은 재단들에도 영향
을 주고 있는데, 이들은 영적으로 절충적이거나 비종파적인 기반에서 사회변화를 위한 명상수행을 촉진하고 있다. 마음챙김이 세속화 되어 표출된 경우는 명상 공동체의 가정에서 발견되기도 하며, 마음챙김의 신경생물학은 연구뿐 아니라 추측을 위한 대상이 되었다. 대중출판 분야는 마음챙김의 원칙들을 사회적 이슈들, 역기능적 개인행동, 심지어 디자인, 요리, 몸단장 같은 생활방식의 문제에까지 적용하는 서적들을 발간함으로써 이 운동을 더욱 더 확장시켜갔다.
2010년에 이르러서 마음챙김은 유럽계 미국인 불교 공동체 내외에서 중요한 가치와 수행으로서 등장했다. 사실상 마음챙김은 아주 다르게 전개되는 새로운 다르마 담론 속에서 중심적인 수사법이 되었다. 주로 책, 예술, 다른 문화적 공예품들에 고정되어 자유롭게 떠돌던 초창기의 담론은 미국인들이 아시아의 선생들 아래서 불교 지식을 심화하고, 또 그것을 새로 설립된 기관들에 정착시키면서 변화해 갔다. 불과 이십 년 만에 상황이 크게 바뀐 것이다. 오늘날의 마음챙김 담론은 이러한 새로운 불교기관들로부터 퍼져나가고 있으며, 이 기관들은 다르마와 다르마의 영향을 받은 사상들을 문화 전체로 확산시키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역동성은 미국 다르마의 한 사례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노력뿐 아니라 불교도가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방식이 성공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마음챙김에 관한 불교개념들은 CD를 통해서, 오디오 다운로드를 통해서, 남녀 승려, 재가 선생, 유럽계 미국인 및 아시아인에 의해 쓰인 책들을 통해서 확산되고 있다. 또한 이것들은 유튜브, 불교 블로그, 그리고 열성적인 개인, 출판사, 수행센터에 의해 운영되는 웹사이트의 토론방을 통해서 더욱 확산되고 있다. 마음챙김 교재들은 너무 많기 때문에 여기서 일일이 소개할 수는 없지만, 여기에는 샤론 살즈버그Sharon Salzberg의 『자애심』(Lovingkindness)과 잭 콘필드 Jack Kornfield의 『마음과 함께하는 길』(A Path with Heart)처럼 통찰명상센터(IMS)와 스피리트 록의 초창기 고전들도 포함되는데, 이 둘은 1990년대에 출간되었다. 수잔 스몰리Susan L. Smalley와 다이애너윈스턴Diana Winston이 쓴 『전적으로 현재에 머물기』(Fully Present)는 요사이 대표적인 텍스트들로서, 여기에는 수행과 사회운동이 경험과학들에서 표출되는, 마음챙김에 관한 최근의 관심에서 얻어낸 통찰들과 통합되어 있다.
원래 2002년에 출간되었던 조셉 골드스타인Joseph Goldstein의 『하나의 다르마: 신생하는 서양 불교』(One Dharma: The Emerging Western Buddhism)는 오늘날 미국 불교의 중심에 있는 수행센터의 선생들이 마음챙김에 관해 성숙한 성찰을 제시한 책들 중 대표라고 할 수 있다. 골드스타인은 자신의 비전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말하고 있다. 즉 마음챙김이 그 방법이고, 자비가 그것의 표현이고, 지혜가 그 본체다. 지혜란 모든 현상이 무상하다는 자각이며 사람들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주는 무집착의 태도다. 자비란 세상의 고통에 대한 자연스런 반응이며 그것을 완화하고자 하는 추진력이다. 마음챙김이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기 위해 판단을 가하지 않고 현재에 머물 수 있는 능력이며, 무상의 자각을 촉진하는 수행을 통해 계발되고, 또 자비와 지혜로 진입하는 방식의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의 다르마』가 명시적으로 사회참여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골드스타인은 마음챙김, 자비, 지혜의 교차점이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위한 토대라고 여기고 있다.
『하나의 다르마』는 다른 여러 가지 면에서도 대표성을 지닌 책이다. 이것은 앞서 언급한 일종의 ‘기원으로 돌아가기’라는 역사주의의 특징을 줄곧 드러낸다. 즉 정통성을 판단하는 두 가지 기준은 ‘붓다가 가르친 것인가’와 ‘그것이 쓸모가 있는가’라는 실용성이다. 골드스타인 자신의 개인적 여정을 성찰한 것이기도 한 『하나의 다르마』는 저자가 비트•히피 세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던 선, 티베트, 테라와다 진영의 자료만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주류 미국 불교도들의 종파적이고 인구통계적인 기반을 간접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더욱이 그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주류불교의 혼합수행이 지닌 함정들을 확인하고 그것들과 절묘하게 타협하는 것이었고, 또한 그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아시아로부터 물려받은 종파적 차이들을 절충 하거나 억누름으로써 서양 불교의 통합(ecumenism)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골드스타인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이어진 ‘두 개의 미국 불교 논쟁’에 새로운 자료를 무심결에 제공해주고 있다. 『하나의 다르마』에서 그는 좌선수행을 하는 유럽계 미국인 불교도의 입장에서 말하면서 그들의 상황을 다루고 있고, 또한 그들과 그들의 수행이 신생하는 서양 불교로서의 규범적인 지위가 있음을 주장한다. 이것은 다른 주석가들도 종종 많은 타당한 이유와 함께 내세우는 익숙한 주장이다. 그러나 이렇게 주장함으로써 골드스타인은 미국 불교에서 누가 문화적 권위를 행사하며 대중적인 목소리를 지니고 있는지, 누가 그렇지 않는지에 대한 오래된 의문점들을 되살려내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그가 주장하는 하나의 다르마는 유럽계 미국인 주류 불교도의 머릿속에 있는 지도가 미국의 복잡한 불교영역을 일부분만 묘사하고 있을 뿐임을 상기시켜준다는 것이다. 이 점은 우리가 다르마의 서양 진출에 대해 생각할 때 아직 적절하게 다루지못했던 한계다.
21세기의 첫 십년 동안 한 세대의 젊은 다르마 선생들이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들 중 일부는 유럽계 미국인 공동체들에서 자라났고, 또 일부는 보다 더 최근에 불교도가 되었다. 이 젊은 선생들은 자신들을 베이비부머 선생들과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으로부터 다르마를 새롭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때로는 저속한 언어로 다르마를 논의하고자 하는 의식적 노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세대의 관점을 표현한다. 그 가운데 ‘히피’라는 용어는 종종 우스운 비난조로 사용되며, 그들이 자신들과 자신들의 의제를 밝힐때 즉각적으로 거부감을 보이는 말이기도 한데, 여기서 그들의 의제는 민감한 영역으로부터 매우 계획적인 영역을 총망라하고 있다. 이 젊은 선생들은 좌선, 마음챙김, 불교와 과학의 융합에 대한 확신과 같은 베이비부머의 근본적 불교규범들에 대한 정면공격을 감행하지 않는다. 이 젊은 선생들은 가르칠 때 자신들이 인정할 수 있을 만한 헌신과 자신들이 인정해줄 만한 영향력을 갖춘 나이든 선생들을 종종 칭찬하기도 한다. 비록 이들이 구세대들을 가리켜 너무 전통에 얽매여 있다거나 너무 반문화적이라고, 즉 어쨌든 신세대의 욕구와 열망에 부합하는 강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비판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구세대들은 수십 년의 사회변혁 동안 철저하게 대안적일 뿐 아니라 심지어 혁명적이기까지 한 열망을 지니고 불교에 들어왔으며, 이러한 점은 주류불교에 매우 반문화적이고, 때로는 유토피아적인 경향을 제공해주었다. 젊은 세대들은 이러한 유산 중 많은 부분을 물려받은 것 같은데,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들을 표현할 때조차도 이런 것들을 선별적으로 인정한다. 그들의 관심사에 대한 미묘한 차이를 묘사한 것이 수미 런던 김Sumi Loundon Kim의 『청바지를 입은 부처』(Blue Jean Buddha, 2001)와 『붓다의 도제들』(The Buddha’s Apprentices, 2005)이다. 그녀 자신은 유럽계 미국인의 조동선 공동체에서 성장했다. 김은 한국인 스님과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고 있으며, 듀크 대학(Duke University)의 불교 공동체에서 법사(현재는 예일대학교에서 일하고 있다)로 일하면서 거기서 불교도뿐 아니라 비불교도의 젊은이들에게 봉사하고 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말하기를,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진리, 신, 의미에 대한 의문을 던지면서 다르마로 다가오지만, 베이비 부머 불교도들은 이제 “쇠약해져가는 이 몸을 어떻게 할까요? 과거의 재산손실을 어떻게 할까요? 나는 폐경기에 접어들었는데,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까요?” 등을 묻는다는 것이다. 김은 미국 불교의상가, 즉 공동체적 측면이 아직 발전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이를테면 다르마센터에서는 함께 모임을 가지고, 영화를 보거나 볼링도하는 비공식적 기회를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그녀는 다르마센터에서 노인들이 눈에 잘 띈다고 해서 젊은이들이 참가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그들을 찾아보려면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해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