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불교사
미국역사와 함께 보는 미국불교사(57)
글 김형근 (본지 발행인)
글은 1997년부터 약 20년에 걸쳐 미주현대불교에 번역 연재되었던 미국불교사에 관한 중요한 책들인 ‘백조가 호수
에 온 이야기 How the swans came to the lake(한국어로는 이야기 미국불교사로 출판’, ‘미국이 만난 불교 The
American Encounter with Buddhism’, ‘미국 불교 Buddhism in America’를 토대로 하여 이 책들을 다시 인용하여
재구성하여 쓴 글이다. 전체적인 방향은 아래와 같은 관점에 방점을 두고 기술할 것이다.
미국에 도래하는 불교는 뉴잉글랜드의 초월주의자들이 동양의 대안적 영성을 찾아 나섰던 이래로 150년간 지속되었던 구도역정의 종착지였다. 유럽계 지식인 미국인들의 내밀한 관심사로부터 이른바 하나의 대중운동으로 변화했다. 여러 차례에 걸쳐 미국사회의 흐름에 대한 반발과 그 대안으로 불교가 당시의 미국사회의 젊은이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2000년대 미주한국불교 (2)
여러 스님들이 불교로 박사학위를 받은 시기
그리고 캘리포니아 태고사와 현각스님의 부상
2002년 5월호에 미주현대불교에 보도된 내용에 의하면 미국에서 불교로 한국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1959년 Lee, Sang kun씨가 달라스신학대학교에서 불교와 기독교를 비교하여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상근 씨는 불교인이 아니다. 불교인으로 미국에서 불교로 박사는 1969년 서경보 스님이 첫 번째 이다. 그 뒤로 많은 사람들이 원효, 보조 연구로 박사를 받았는데 그 중에는 기독교인이 많다. 불교인은 1977년에 박성배 교수가 버클리대에서 ‘원효의 대승기신론’으로, 1979년에는 강건기 교수가 뉴욕대, 심재룡교수가 하와이대학에서 받았다. 1988년에는 법안스님이 뉴욕대에서, 지명스님이 템플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계속 많은 한국인들이 그 뒤에 미국에서 불교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1998년도에는 박포리, 박진영, 진월스님 등이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0년대에 들어서 화공스님을 비롯하여, 소운, 성원, 일미, 혜민스님 등 여러 스님들이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주목할 점은 이 중에서 성원스님, 일미스님, 혜민스님 등은 미국의 유명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을 하였다는 점이 다른 스님들과 다르다.
2000년대에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불교인은 아래와 같다.
2000년
서 샤론 Suh, Sharon Ann. Finding/Knowing One's Mind in Koreatown, Los Angeles:
Buddhism, Gender and Subjectivity (California). Ph.D. Harvard University.
화공스님 Hwang, Chang-geun. A Korean Yogacara Monk in China: Won-Cheuk (612-696) and His Commentary on the Heart Sutra. Ph.D.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2001년
박철현Park, Chur Hyun. Madhyamika Soteriology: A Reinterpretation of Sunyata in the Light of the Doctrine of One Mind (Sanskrit and Chinese Text.) Ph.D. Temple University. 중관구제론 (一心의 입장에서 본 공의해석) 노스 캘로라이나 거주 .
백양사에서 서옹스님에게 출가를 한 적이 있다.
Im, Chandler H. Korean Christian-Won Buddhist Dialogue on Suffering and Liberation. Th.M. Fuller Theological Seminary, School of World Mission.
맥브라이드 McBride, Richard Dewayne, II. Buddhist Cults in Silla Korea in Their Northeast Asian Context. Ph.D. 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2002년
6월 6일 소운스님 하바드대학교에서 ‘능가경 인도 주석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
11월 일아스님 West University에서 '부처님의 자비사상이 팔리어경전에 어떻게 나타났었나'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2월: 성원스님 위스콘스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음. The History of Doctrinal Classification in Chiness Buddhism:A Study of the Panjia Systems(중국불교 교판사상사의 연구) -- West University, 하와이 대학교, 사우스 켈롤라이나 소재 코스탈 캐롤라이나 대학에서 불교와 강의를 하였으나 2017년 입적.
2006년
혜민스님 프린스톤에서 ‘중세 나한 신앙의 원류’연구로 박사학위 받음.
2007년
6월 7일 일미스님 하바드 대학원에서 ‘한일불교사’로 박사학위 받음.
미국대학교에서 한국불교인들의 강의 시작
미국대학교에서 박성배 교수, 법안스님 등이 한 한국불교인이 강의는 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법안스님은 교수가 아닌 강사로 강의를 하였다. 그런데 2 천년대 시기에 미국대학교에서 스님들이 강사가 아닌 교수로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년 표는 아래와 같다.
2004년 성원스님 대만 불광사에서 설립한 로스 엔젤레스에 설립한 웨스트대학(West University)에서 강의시작. 2007년까지 이 대학에서 강의.
2006년 혜민스님 Hampshire 대학 부교수로 임용됐다.
2007년
1월부터 안준영 씨가 토론토 대학교 종교학과에서 강의를 시작 함. 안씨는 ‘선을 하면서 생기는 병’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준비 중이었다. 봄. 종매스님 로스 엔제레스 로욜라 메리 마운트 대학( Loyola Marymount University)에서 강의시작.
8월 중순부터 성원스님 하와이 대에서 강의 시작하였다.
9월: 일미스님 아리조나 주립대학교에서 강의 시작하였다.
2009년
9월: 일미스님 ‘노스 켈로라이나’ 주 듀크대학교에서 강의 시작하였다.
한국사찰에서 주 정부 허가 받은
불교대학교 등장
이 시기에는 하와이 무량사, 로스 엔젤레스 관음사, 시카고 불타사 등에서 주에서 허가를 받아 대
학교 허가를 받은 시기이다. 교수진과 그럴듯한 캠퍼스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들 대학교에서는 ‘입학허가서인 I-20’를 발행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입학허가서를 받고 들어오면 유학생 자격으로 합법적으로 미국에 체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대학 허가를 받기 위해 하와이 무량사 도현스님, 로스 엔젤레스 도안스님, 불타사 현성 스님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년 도별 정리는 아래와 같다.
2002년
8월 하와이 싯다르타 대학 4년제 학부와 2년제 대학원 과정 설립허가.
2006년
6월 14일:Lotus university 켈리포니아 교육청의 인가를 정식으로 받았다.
학장: 김안수
12월 17일: 불타사 현성스님 불타사내 선학원 확대하여 동방대학교(Chicago East University)로 개명하고 연방정부와 주정부에 학교재단으로 등록하였다.
이렇게 설립 허가를 받은 후에 이 세 학교의 이름으로 몇 년간 강의를 했다.
현재는 모두 강의가 중단 된 상태이다.
한국학교 다시 등장하여
현재까지 존속함.
또 이 시기에는 뉴욕, 시카고 등지에서 한글학교 시작하였다. 2천 년 대에 미주한국불교계에는 다시 한국어 학교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전에도 하와이 대원사를 비롯하여 뉴욕 원각사, 시카고 불타사와 불심사, 로스 엔젤레스 관음사 등지에 한국어를 지도하는 어린이 학교가 있었다. 그러다가 흐지부지 사라졌다. 어린이 학교나 한글학교를 운영하려면 주지 스님의 의지와 예산이 필요하다. 2천 년 대에 등장한 한국어 학교는 기존의 어린이 학교와 다른 점은 각 지역의 한국 영사관에 등록을 한다는 점이다. 등록이 되면 교재를 비롯하여 교사의 인건비가 보조된다는 점이 기존의 어린이 학교와는 달랐다. 공교롭게도 이런 한국어 학교를 잘 운영하는 사찰들은 현재 학부모인 젊은 신도들이 많이 있다.
2002년 9월 뉴욕한마음 선원 한글학교 시작
2004년 시카고 불타사 불타한국 학교 개교.
2007년 뉴욕 불광한국문화학교 설립.
2008년 2월 뉴욕 청아사 부설 ‘선재한국학교’ 개원
태고사와 현각스님 부상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숭산스님 미국인 제자들인 예일대학교 출신인 현각스님과 무량스님이 미주 한국불교계에 크게 부각되었다. 1999년 12월 한국의 ‘열림원’ 출판사에서 발행된 현각스님의 ‘만행 하바드에서 화계사까지’는 독자들의 큰 호응을 얻어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불교인을 넘어 많은 한국인들이 사서 읽었다. 아마도 한국인들은 하바드대학교 출신 백인이 스님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관심이 생긴 것 같다. 이렇게 되어 숭산스님이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현각스님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하였다.
그리하여 2000년 9월에 현각스님 초청 행사를 미국에서 첫 번째로 ‘뉴욕사암연합회’ 주최로 하였는데 1천명 넘는 관중들이 참석하여 큰 성황을 이루었다. 이 행사를 시작으로 보스톤,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로스 엔젤레스 등 전 미주에서 현각스님 초청행사 봇물이 터졌다. 이후에도 2000년대 내내 거의 매년 현각스님은 미국의 여기 저기 초청을 받는 인기강사였다.
숭산스님의 또 한사람의 제자로 무량스님이 1994년부터 사막지대인 로스 엔젤레스 근교의 테하파치에 태고사 건립을 시작하였다. 혼자 시작한 태고사 건립이 소문이 나기 시작하여 2000년 대웅전 기공식행사에 1,300여명, 2004년 개원 10주년 행사에는 신도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큰 성황을 이루었다.
본지 자료에서 요약한 2000년대 태고사,
현각스님 관련 행사
2000년
4월 22일 태고사에서 요사채 개원식 및 대웅전 기공식 열려 1,300여명이 참석하였다. 이후 태고사는 매주 일요법회 시작하였다.
9월 10일 뉴욕불교사암연합회 주최로 1,200여명의 청중이 참석한 가운데 플러싱 고등학교에서 현각 스님 초청강연회.
9월 17일 보스톤 문수사 주최 현각 스님 초청 강연회
9월 24일 워싱턴 D.C. 현각스님 초청강연 500여명 참석
9월 27일 샌프란시스코 현각 스님 초청 강연회.
2001년 현각스님
3월 24일 미주불교법사회에서는 현각스님 초청하여 동국로얄한의관대학에서 열린 청소년 법회는 350여명이 참석하여 큰 성황을 이루었다.
3월 25일 미주포교사협회 주최, 남가주사원연합회 후원으로 현각스님과 대봉스님 초청하여 이벨극장에서 강연회를 개최.
3월 30일 뉴욕 조계사는 현각스님을 초청하여 영빈관에서 맨하탄 이전 기금모금행사를 주최함.
4월 1일 뉴욕 자비원 만행 저자 현각스님을 초청하여 청소년을 위한 법회 개최.
2004년
9월 19일 태고사 개원 10주년 기념행사 거행. 1500명 참석.
2005년
3월 26일 뉴욕 유니온 신학대( Union Theological Seminary)의 James Memorial Chapel에서 현각스님이 연사로 초청되어 'Zen: The way to Great Enlightment'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10월 2일 현각스님 L.A. 초청법회, 장소: 윌셔 레데슨 호텔.
2006년 현각스님
10월 22일: 뉴욕 불광선원 개원 10주년 현각스님 초청 기념행사. 300여명 참석.
2009년
12월 13일: 로스 엔젤레스 근교 오렌지 카운티의 정혜사 미국인 현각스님 초청 법회 및 정율스님 초청 음악회.
미국의 역사 : 현대 (2000~2010)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을 ‘잃어버린 10년’ 으로 규정하고 있다.
2000년 조지 워커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시작된 21세기는 미국에 엄청난 시련과 혼란을 가져왔다. 2000년 상반기에서 2001년에 걸쳐, 인터넷 거품이 터졌다. 인터넷 관련주의 유망성에 관한 과열 양상에 따라 주요 지표가 크게 상승했다. 2000년 3월 10일 NASDAQ이 1년 전에 비해 2배 이상이 올랐고, 고가 5,048.62선까지 기록했을 만큼 IT산업 거품(Bubble)이 부풀어 오르다가 3월 13일 월요일에 촉발된 대량의 매도 주문이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투자자, 펀드 등의 기관이 청산에 매달렸다.
이어 2001년 9월 10일 아침, 19명의 알카에다 테러리스트에 의해서 4기의 항공기가 납치되었다.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 전원이 사망하였고, 총 2,977명의 인원이 사망한 9.11 테러는 국제적 테러 사건으로는 가장 큰 사망자수를 낸 미국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 9.11 사건을 계기로 조지 부시의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여,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고 오사마 빈라덴을 포함하여 알카에다 수뇌부를 제거하였다. 그리고 이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2년 1월 연두교서에서 이란, 이라크와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선언했으며, 이라크를 침공하여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시켰다. 조지 부시 행정부의 이러한 대외 정책으로 미국에 대한 국제적 불만은 전례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2007년에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영어: subprime mortgage crisis)는 미국의 초대형 모기지론 대부업체들이 파산하면서 시작된, 미국 뿐만 아니라 세계 금융시장에 신용경색을 불러온 연쇄적인 경제위기 로 1929년의 미국 경제대공황 이래 최대의 금융위기였다. 사태의 발단은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다.
2000년대 초반 IT버블 붕괴, 911테러, 아프간/이라크 전쟁 등으로, 미국 경기가 악화되자 이에 미국은 경기부양책으로 초 저금리 정책을 펼쳤다. 이에 따라 주택 융자 금리가 인하되었고 그러자 부동산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주택담보대출인 서브프라임모기지의 대출금리보다 높은 상승률을 보이는 주택가격 때문에 파산하더라도 주택가격 상승으로 보전되어 금융회사가 손해를 보지 않는 구조여서 거래량은 대폭 증가하였다. 증권화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높은 수익률이 보장되며 신용등급이 높은 상품으로 알려져 거래량이 폭증했다.
하지만, 2004년 미국이 저금리 정책을 종료하면서 미국 부동산 버블이 꺼지기 시작했으며, 서브프라임모기지론 금리가 올라갔고 저소득층 대출자들은 원리금을 제대로 갚지 못하게 된다. 증권화되어 거래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구매한 금융기관들은 대출금 회수불능사태에 빠져 손실이 발생했고, 그 과정에 여러 기업들이 부실화 된다. 미 정부는 개입을 공식적으로 부정했고 미국의 대형 금융사, 증권회사의 파산이 이어졌다. 이것이 세계적인 신용경색을 가져왔고 실물경제에
악영 향을 주었고, 이는 세계 경제시장에까지 타격을 주어 2008년 이후에 세계금융위기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뽑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