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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3일 합평작 -선녀들 박숙경

작성자박숙경|작성시간26.06.21|조회수86 목록 댓글 0

단편소설

 

 

선녀들

 

박숙경

 

 

친절한 사람을 조심해,

 

진희는 세탁기에 엉켜 있는 빨래들을 한 아름 건져 올려 건조기에 넣었다. 축축하고 무거운 직물들은 저마다 다른 옷의 소매와 바짓가랑이를 악착같이 붙잡은 채 하나의 거대한 매듭을 지어 놓았다. 물기를 머금은 빨래들은 생의 무게를 측정하는 도구처럼 무겁고 손이 시리다. 도망치려는 서로의 발목을 낚아채 지상에 주저앉히려는 필사의 손길들 같다. 섬유유연제의 인공적인 향취가 밀폐된 베란다의 공기를 탁하게 오염시키고 있다. 건조기가 있어 빨래를 널지 않아 편리하다고 말한 게 언제였나, 이마저도 귀찮고 번거롭다. 일체형으로 바꿔야지 마음먹는다. 가전은 고장보다 지루해져 바꾼다는 엄마의 말을 생각났다.

신혼집에 들일 가전을 고를 때 엄마는 구경꾼처럼 따라만 다녔다. 주부 경력을 내세워 자신의 눈높이로 살림살이를 간섭해 엄마와 싸웠다는 친구들 하소연의 진의가 의심스러운 정도로 무심했다. 대놓고 이 결혼은 반대라 말하지 않았지만 무심함으로 가장했다. 좁은 신혼집에 터무니없이 큰 세탁기를 샀다. 엄마의 의견을 물으려 돌아보면 언제나처럼 먼 곳에 시선을 두고 있다. 그 눈길을 못 본 척 판매원이 권하는 것에 카드를 건넸다. 미래를 예견한 것인지 대가족 용량인 세탁기는 제 역할을 넘치게 하고 있다.

세 아이의 빨래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건조기를 돌리고 팔짱을 낀 채 빈 눈으로 건너편 아파트에서 흘러나온 불빛과 하늘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엄마가 빨래를 널다 멍하니 바라보던 그 하늘이다. 한숨이 많으면 삶이 스산하다 했던가!. 나오려는 숨을 삼키며 진희는 내일 친정에 챙겨갈 것들을 떠올리려 애쓰며 지친 몸을 돌려세운다.

 

엄마가 또 가출했다, 고 아빠가 가족 단톡방에 올렸다. 그 말에 아무도 답글을 달지 않는다. 한동안 침묵이 이어지고 남동생이 울음울음 이모티콘을 보냈다. 읽지 않는 두 사람은 여동생과 엄마일 것이다. 아빠의 생일을 앞두고 가출을 감행하다니 대단한 결단력이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번은 다른 때와 다르다고 아빠는 긴 하소연을 털어놓았다. 같은 레퍼토리에 신물이 날만 한데 아빠는 지치지 않는다.

어쩌면 아빠의 예감처럼 이번은 다를지 모른다. 진희는 계속 걸려 오는 아빠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상대가 원하지 않아도 아빠는 꾸준하게 연락을 해왔다. 가족에게 일상이 되어 부재중 전화가 떠 있어도 연락하지 않아 문제가 생긴 적은 없다. 엄마는 아빠의 친절에, 그 무구함 때문에 집안의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가족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걸 아빠는 모른척했다. 하물며 미국에 가 있는 진아의 시차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고 보이스톡을 보냈다. 진희의 딸 셋은 그런 할아버지를 무척 따른다. 서울과 4시간의 거리가 있음에도 한 공간에 사는 듯 모두의 일을 공유하는 것은 아빠의 끊임없는 전화 공세 때문이었다. 남동생 진형이 결혼하고 관심이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멈추지 않고 꿋꿋하게 이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여행을 핑계로 종종 집을 비웠다. 아빠는 그걸 가출이라 칭했다. 엄마보다 살림에 재능있는 아빠가 있어 진희와 동생들은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어딜 가는지, 언제 돌아오는지, 누구와 동행하는지에 대한 말을 하지 않기 시작한 건 진희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다. 이모와 여행을 가면 어김없이 프로필을 바꾸는 이모 덕에 어디에 있는지 대충 짐작할 뿐이었다. 대부분 일주일을 넘기지 않았다. 엄마가 여행에서 돌아오면 집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진희는 엄마의 결혼식에 가장 어린 하객이었다. 23세의 신부는 너무 울어 눈이 퉁퉁 부었다. 소읍의 결혼식장은 갓을 쓴 노인들이 많았다. 이른 새벽에 출발한 신부 하객은 하필 구불구불한 산길에서 차가 고장나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연락할 방법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이모가 어찌어찌 전화로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결혼식은 2시간이 지난 후에 치러졌다. 배가 둥글게 부풀어 오른 신부를 보고 갓 쓴 어른들은 고개를 외로 꼬았다. 선비의 고장이라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하는 남자의 고향집에 하루 묵은 엄마는 진희를 잉태하고 돌아왔다. 엄마에게 진희는 사랑의 결실도, 축복도 아니었다. 원치 않는 임신이 만들어낸 족쇄였다, 자신의 화려했던 날개를 꺾어 지상에 주저앉힌 무거운 모래주머니였다.

 

진희의 유년 시절 속 엄마는 언제나 베란다의 접이식 창문 앞에 위태롭게 서 있는 실루엣으로 기억된다. 탈수된 빨래를 털어 널다 말고, 엄마는 몇 시간이고 넋을 잃은 채 아파트 단지 위로 낮게 내려앉은 회색빛 하늘을 응시하곤 했다. 어린 진희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부풀어 오른 치맛자락을 붙잡으면, 엄마는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무언가에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엄마의 눈동자 속에는 알 수 없는 허기가 서려 있었다.

엄마, 선녀는 왜 자식 둘만 데리고 나무꾼은 버리고 하늘나라로 돌아간 거야?”

날개를 가진 것들은 땅에서 행복할 수 없어, 그래서 하늘나라로 돌아간 거야!”

침대에 누워 그림책을 읽어달라 조르던 진희에게, 엄마는 책장을 덮으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옆에 누운 아빠가 아이가 둘밖에 없어서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고 장난스레 대답했다.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엄마가 낮게 속삭였다.

 

너만 아니었으면 네 엄마는 훨훨 날아다녔을거야

어린 시절 외가에 가면 어른들은 진희의 귀여운 볼을 꼬집으며 이런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 말은 어린 진희에게 공포였다. 무슨 이유인지 어린 진희는 엄마에게 잘 안기지 못했다. 어른의 세계를 알지 못하지만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 잘 아는 아이처럼 굴었다. 밥상을 펼치면 재빨리 수저를 가져다 놓아 어른들의 칭찬을 받았다. 무거운 물통을 들고 어른들 사이를 지나가며 컵에 물을 채웠다. 엄마가 선물을 고르라 하면 필요없다 고개를 저으면서 바비인형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동생에게 제 것을 양보하는 아이였다. 이모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진희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진희는 언제나 칭찬받는 아이였다. 엄마가 웃는 게 좋았다. 그 웃음이 좋아 엄마가 좋아할 만한 행동이 무엇인지 고심하며 성장했다. 가장 잘한 건 노래와 춤이었다. 사촌 언니들이 유치원에서 배워온 율동을 한번 보고 그대로 따라 했다. 직접 배운 언니들보다 훨씬 잘했다.

 

엄마의 꿈은 뭐야!

 

"나 이번 전교학생회장 선거 포스터 문구, 뭐라고 쓸까?" 진희는 식탁 위에 종이를 올려놓으며 물었다. "아빠랑 의논해, 엄마 좀 피곤하거든.“ 엄마의 목소리는 모래알처럼 건조했다. 진희는 엄마가 기어이 창문을 열고 하늘로 증발해 버릴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기를 쓰고 밝아졌고, 전교 1등을 도맡았다. ‘너만 아니었으면 내 팔자가 이렇지는 않았다.’라는 서늘한 독백은 진희의 성장기를 관통하는 무거운 배경음악이었다. 진희는 엄마의 날개옷을 훔쳐 숨긴 나무꾼의 자식이라는 부채감을 뼈에 새기며 자랐다. 엄마의 입버릇을 너 때문에 내가 산다로 바꾸고 싶어서, 진희는 기꺼이 말 잘 듣는 지상의 인질이 되었다.

그 완벽한 인질이 처음으로 균열을 일으킨 것은 중학교 2학년 겨울이었다. 유명 가수의 백댄서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와 연습해 오디션을 보기로 약속했다. 진희는 춤에 특별한 재능을 가진 아이였다. 티브이에 나오는 가수들의 춤을 한번 보고도 그대로 따라 할 만큼 뛰어났다. 엄마는 간혹 부러운 눈으로 그런 진희를 바라보았다. 진희는 가수의 백댄서가 되겠다며 반짝이 옷을 들고 와 엄마 앞에서 춤을 추었다. 음악이 시작되자 진희의 몸은 중력을 거부하듯 허공으로 가볍게 도약했다.

"엄마, 나 춤출 때가 제일 행복해. 나 오디션 봐도 돼?.“

춤을 멈춘 진희가 헐떡이며 말했을 때, 엄마의 표정이 복잡해진다. 진희는 되고 싶은 게 많았다, 수시로 꿈이 바뀌긴 했지만, 싱어송라이터가 되고 싶었다. 백댄서가 되면 자연스레 그 길이 열릴 것이다.

연예인이 되는 게 얼마나 힘든데 그걸 하려고 해, 공부가 제일 쉽다는 말도 있잖아!“

엄마 꿈도 가수였다면서, 나 때문에 못 했다면서, 근데 왜 못 하게 해?“

엄마의 아름다운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았어?“

이모가 다 말해줬어, 할아버지가 반대해 집 나갔다 아빠 만나 나를 임신했다면서!“

그거 하려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데, 우리 집 사정 알면서 그런 말을 하니?“

엄마 비겁해,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라며, 난 춤이 좋다고, 공부가 인생이 전부가 아니라고 늘 말했잖아. 엄마도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일 하면 되잖아, 아무도 안 말려. 우리 핑계 대지 말라고

진희는 그동안 쌓아온 말들을 쏟아부었다. 끼가 전부가 아니라는 말,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확률, 끼보다는 외모로 경쟁하는 세계라며 쌍꺼풀 수술을 자처한 큰엄마의 시린 농담들, 오디션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은 이모의 덕분이었다. 한 번의 도전으로 꿈을 접은 것은 엄마가 슬퍼 보여서다. 진희가 백댄서를 하겠다고 반항한 사건이 엄마의 생을 뒤흔들 만큼 강력한 태풍이었다. 방에서 잘 나오지 않던 엄마는 가수가 되는 대신 직장을 가졌다. 그리고 놀랄 만큼 변모해 갔다. 엄마의 가출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진희가 대학에 들어가던 해 골프연습장의 주인이 되었다.

 

근무지가 먼 지방으로 이전이 확정되었을 때, 어학연수를 빼고 집을 떠난 적 없는 진희는 내심 반가웠다. 이직을 고민하며 웅성거리는 동료들 사이에서 오래된 미래처럼 자연스럽게 그 일을 받아들였다. 사내 연애 중이던 현준과 헤어진 게 진희가 다른 세계로 나가는 길을 열어준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었다.

계약직이지만 기획부서는 진희의 적성에 잘 맞았다. 학창 시절 대부분을 진희는 학생회장을 도맡아 했다. 칭찬받는 게 좋기도 했지만, 맨 앞에 서 있을 때 가장 행복했다. 정직원보다 계약직이 더 많은 회사였다. 서울의 중위권 대학을 나와 영어 공부는 물론이고 취업에 필요한 많은 스펙을 쌓았음에도 취직이 되지 않았다. 아빠 고향 선배 도움으로 인턴을 시작해 계약직으로 근무할 수 있는 것도 운이 좋았다. 정직원과 차별을 많이 두지 않았고 처우가 좋았다. 정직원이 될 기회가 많이 열려 있었다.

현준과 사귀는 걸 안 엄마는 진희에게 일어난 어떤 일보다 과하게 반응했다. 반년도 되지 않아 현준을 집으로 초대해 이 서방이라 불러 모두를 기함시켰다. 미국에서 공부한 현준은 한시적 프로젝트에 투입된 연구원이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시한부 연애였다. 물론 결혼해 미국으로 갈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엄마는 그 기회를 잡으라고 진희를 채근했다. 방송국 아나운서였던 사촌 언니가 국제변호사와 결혼해 뉴욕에서 가정을 꾸렸다. 일 년에 서너 번씩 이모는 딸의 집을 오가며 엄마를 자극했다. 엄마는 이모를 보이지 않게 경쟁자로 인식하고 살았다, 엄마가 늘 참패 했지만, 포기하는 법을 몰랐다.

현준의 업무를 도우며 가까워진 사이였다. 한국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현준에게 진희는 무람없는 도움을 주었다. 회식 자리에서 친구가 되었다. 분위기를 휘어잡는 진희에게 반한 현준의 적극적인 구애였다. 취업 준비하느라 꿈도 꾸지 못한 연애를 시작했지만, 이상하게 큰 기대가 없었다. 곰돌이 푸처럼 생긴 현준은 아빠의 확대판이었다. 키는 작고 몸집이 컸다. 현준을 처음 마주한 엄마의 눈에 순간 실망의 빛이 어렸다 사라지는 걸 진희는 보았다. 외모가 용서된 건 현준의 상황 때문이었다. 미국으로 딸을 시집보내고 싶은 꿈이 엄마가 평생 헐뜯은 용모에 대한 반감을 돌려세웠다. 둘은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예견된 이별이 덜 슬픈 건 아니지만 견딜만했다. 서울을 떠나 온전하게 혼자가 되고 싶었다. 엄마 때문이다. 엄마 그림자로 더 살고 싶지 않았다. 진희는 엄마의 잦은 가출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 엄마의 전화기에는 또 다른 엄마가 살고 있었다.

 

네가 결혼 따위는 상관없이 자유롭게 살 줄 알았어!

 

공공기관들의 이전으로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 도시는 밤이 찾아오면 기괴할 정도로 고요해진다. 어둠과 함께 찾아오는 안개는 흡사 유령의 옷자락 안으로 스미는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낮의 활기는 순식간에 어둠에 잠식된다. 도심 외곽에 자리한 관사의 밤은 더욱 그랬다. 퇴근 후 문을 닫고 들어서면 냉장고가 우웅하고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진동이 온방을 천둥처럼 뒤흔들었다. 편의점 도시락의 플라스틱 비닐을 벗기는 사소한 마찰음조차 사방의 벽에 부딪혀 거대한 메아리로 되돌아올 때마다, 진희는 뼛속까지 스며드는 오한을 느꼈다.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 혼자여서 자유로운게 아니라, 보호의 눈이 사라진 공포로 다가왔다. 회사는 너나없이 정신없이 돌아갔다. 식사 시간을 잊을 정도로 적응하는 일에 몰두했다.

주말이면 도시가 텅 비었다. 가족이 함께 온 직원은 거의 없었다. 지방 이전의 취지가 무색할 지경이지만 이제 막 짓기 시작한 아파트가 완성되고 나면 분위기를 달라질 것이다. 진희는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싶었다. 정직원이 되는 일이 쉽지 않겠지만 엄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을 꾸려가고 싶었다. 지역 아파트에 청약할 기회가 직원들에게 주어졌다. 운 좋게 당첨이 되었고 3년 후에 입주가 가능했다. 낡은 관사가 있어 숙소를 구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지만, 너무 낡고 외진 곳에 있어 야근 후 퇴근길이 무서웠다.

낡은 엘리베이터가 삐꺽 이며 힘겹게 진희를 8층에 올려주었다. 복도 등이 꺼져 있다. 센서가 고장 났는지 전등이 켜지지 않았다. 12시가 다 된 시간이라 모든 집이 무덤처럼 고요하다. 진희는 발소리를 최대한 줄이며 집 앞까지 걸었다. 가방에 손을 넣어 열쇠를 찾았지만, 손에 잡히지 않았다. 순간 막막해진다. 기억을 되살려보려 애쓴다. 분명 아침에 문을 잠갔으니 집 안에는 없을 것이다. 물건을 꺼내다 책상에 올려둔 게 생각났다. 이 시간에 다시 회사로 가 열쇠를 가져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변에 숙소도 없다.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해요. “진희와 동갑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정우가 식사 자리에서 전화번호를 입력해 주었다. 이 지방 출신이며 인사팀이었다. 진희의 인사기록을 보고 동갑인 걸 알았다며 수줍게 웃었다. 짙은 눈썹이 매력적이었다. 정갈하게 자른 손톱이 보기 좋았다. 늦은 시간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다. 벨이 두 번 울렸는데 전화를 받았다.

내가 금방 갈게요,“

정우의 숙소가 멀지 않았다. 따로 원룸을 얻어 살고 있었다. 자신의 방을 내주고 옆에 사는 친구 집으로 자러 가는 정우가 미더웠다. 둘은 급속하게 친해졌다. 주말에 서울에 가지 않을 이유가 하나 더 생겨 좋았다.

결혼 후 딸 쌍둥이를 낳고, 밑으로 딸을 하나 더 낳아 세 딸의 엄마가 되는 동안 진희는 악착같이 버텼다. 낮에는 회사에서 정직원이 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일했고, 밤에는 아이들의 기저귀를 갈며 공부했다. 정우와 함께여서 힘들지 않았다. 공개채용이지만 근무 중인 계약직에게 유리한 조건이었다. 정우는 근무 평가 점수가 낮아 1차에서 떨어졌지만, 진희는 최종 면접까지 올랐다 한차례 낙방했다. 희망이 보였다. 또 한 번의 도전으로 마침내 정직원에 합격했다. 입사한 지 8년 만이었다. 임명장을 받아 쥐던 날, 진희는 남편에게 임명장을 보여주며 활짝 웃었다.

"여보, 나 드디어 정직원 됐어. 이제 우리 집 대출금도 금방 갚을 수 있어."

그러나 정우는 임명장을 빤히 바라보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좋네, 능력 있는 와이프 둬서. 당신은 참 대단해."

그것이 시작이었다. 정직원이 된 아내를 질투하듯 정우는 몇 달 뒤 회사를 그만두었고, "아이들에겐 아빠가 필요하다"라는 방패 뒤로 숨어 거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빈둥거리기 시작했다. 아빠의 무능함이 정우의 몸을 통해 완벽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진희는 정우의 퇴사를 집에 알리지 않았다. 엄마의 생을 복사하듯 살고 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다. 손녀를 보기 위해 아빠가 자주 집에 내려왔지만 철저하게 함구했다. 간혹 아이들의 입에서 정우의 존재가 튀어나오며 서둘러 수습하기에 급급했다.

 

 

 

엄마 이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도 돼!” 결혼 전, 엄마와 홍콩 여행길이었다. 엄마를 자유롭게 놓아주고 싶었다. 엄마는 여전히 젊고 아름다웠다.

난 네가 멋진 스포츠카를 타고 세상을 누비며 멋지게 살 줄 알았다.”

서로 다른 말을 했다. 정우와 결혼을 결정한 직후였다. 이모는 진희가 아깝다며 대놓고 반대했는데 엄마는 착한 사람이라고 했다. 사촌 언니의 결혼을 부러워하던 엄마는 어디로 간 걸까.

대학에 진학할 때, 진희는 엄마의 뜻에 따라 취업이 잘된다는 경영학을 선택했다. 숫자로 가득한 전공 서적을 펼칠 때마다 활자들은 모래알처럼 서걱거리며 진희의 눈을 찔렀다.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였지만, 진희는 매 학기 장학금 고지서를 식탁에 올렸다. 공부가 제일 쉽다던 어른들의 말은 기만이었다. 적성에 맞지 않는 학문을 이 악물고 버텨내는 찬란한 미래가 기다릴 거라는 믿음이었다. 유일한 숨통은 학생회 일을 하는 것이었다. 진희는 여전히 누군가 앞에 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로 스스로를 증명했다. 그러나 취업의 문은 진희가 흘린 땀방울의 무게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외환위기와 불황이 겹친 초겨울, 서른 개의 이력서가 모두 휴짓조각이 되었다. 서류조차 통과하지 못했다는 탈락 문자가 도착했다. 취업에 실패하고 결국 지인 기회를 써야 할 만큼 처참했다. 계약직 사원으로 밀려나게 된 날 밤, 진희는 친정 거실 한복판에서 평생 참아왔던 날것의 원망을 쏟아냈다.

"내가 하고 싶다고 했잖아! 2 , 나 춤추게 내버려 두지 왜 주저앉혔어!"

싱크대 앞에서 마른행주로 컵을 닦던 엄마의 손길이 뚝 멈췄다. 엄마의 등판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어른들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며? 공부가 제일 쉽다며! 그래서 내 적성에도 안 맞는 경영학책 들여다보면서, 나 엄마 눈치 보느라 뼈가 녹는 것 같았는데…… 결과가 겨우 이거야? 나 이제 겨우 공공기관 인턴 면접 보러 가! 내 망가진 인생은 누가 보상해 줄 건데, 엄마!"

진희의 비명이 좁은 거실을 난도질했다. 엄마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엄마의 눈동자는 깊은 수렁처럼 어두웠고, 그 안에는 딸의 망가진 청춘을 마주한 늙은 선녀의 비참한 죄책감이 일렁이고 있었다.

"누가…… 너 보고 그렇게 악착같이 하랬니?" 엄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몰라서 물어? 내가 그렇게 안 하면 엄마가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으니까! 난 엄마를 이 집에 붙잡아두려고, 엄마에게 잘 보이려고 내 꿈을 버렸어! 그런데 엄마는 왜 날 원망해? 왜 나 때문에 평생 인생 망한 것처럼 굴어잖아!"

엄마는 대답 대신 행주를 식탁 위에 내려놓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엄마의 이중성을 폭로해 만천하에 드러내놓고 난도질하고 싶은 욕망이 들끓어 올랐지만 닫힌 문 앞에서 주저앉았다.

엄마가 아니었으면 삼 남매는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아빠의 무능은 극치를 달렸다. 허세에 절어 온갖 사업에 손을 댔지만 늘 빈손이었다. 그날 이후 엄마의 말 없는 가출이 더욱 잦아졌고 기간은 더 길었다. 진희가 쏟아낸 원망의 무게가 엄마를 주저앉히던 마지막 지상의 중력을 소멸시켜 버린 것이었다.

 

선녀의 날개 옷

 

아빠 생일은 진형이 예약한 식당에서 식사하는 걸로 끝냈다. 손녀들을 데려오지 않았다고 아빠가 몹시 서운해했다. 시누이에게 아이들을 맡겼다. 할머니의 부재를 아이들에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술에 취한 아빠는 횡설수설하며 진희의 신경을 건드린다. 그 말이 듣고 싶지 않아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자네, 진희한테 소홀하게 대하진 않겠지?”

안방 문 틈새로 흘러나오는 아빠의 음성은 장인으로서의 당부라기보다, 품을 벗어나려던 날짐승을 붙잡아두는 사육 방식에 대한 은밀한 공모처럼 들렸다. 거실 소파에 앉은 남편은 머리를 긁적이며 순진하게 대답했다. “그럼요, 아버님. 진희는 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지방 근무 처음 할 때 외로워서 맨날 울던 사람인걸요.”

진희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말끔하게 정리된 화장대에 눈길이 머물렀다. 화장하지 않아도 엄마는 어디서나 돋보이는 외모였다. 아빠의 작은 키와 평범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았다. 아빠는 엄마가 화장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그 탓인지 화장대가 조촐하다. 옷장 문을 열었다. 흰색 실크 원피스가 맨 앞자리에 걸려있다. 진희가 정직원이 되고 첫 월급으로 백화점에 가 사준 옷이었다. 엄마는 여행 갈 때 입을 거라며 몹시마음에 들어 했다. 키를 돋아 원피스를 꺼내 몸에 대어본다. 진희는 부모의 유전자를 반반 나눠 가졌다. 엄마의 아름다운 외모를 물려받지 못했지만, 몸매는 엄마와 비슷했다. 거울 속에 언뜻 엄마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가 따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빠는 모른 척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엄마에게 더 다정하게 굴었다. 수시로 직장을 옮겨 다니며 평생 생활비도 내놓지 못하는 무능을 용서의 도구로 사용했다.

입고 있던 펑퍼짐한 실내복을 벗고, 엄마의 흰색실크원피스에 발목을 넣었다. 지퍼를 올리자, 옷은 무서우리만치 진희의 골반과 어깨에 자로 잰 듯이 맞아떨어졌다. 거울 속에 엄마가 서 있다. 당장이라도 베란다 난간을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오를 것 같은, 지상과 화해하지 못한 낯선 눈빛을 하고 있었다. 거울 속 진희의 눈동자 위로 엄마의 외로움이, 엄마의 광기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겹쳐 흘렀다. 그 순간, 방문이 벌컥 열렸다.

진희야, 가방 다 쌌으면 이제…….”

정우의 목소리가 멈칫했다. 거울 앞에 선 진희와 흩어진 엄마의 짐들, 그리고 흰 옷을 입은 진희를 보며 정우의 얼굴은 이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거 장모님 옷 아니야? 왜 그 옷을 입고 있어?” 정우가 다가와 진희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의 손바닥은 여전히 두툼하고 따뜻했다. 그러나 그 온기가 피부에 닿는 찰나, 진희는 거대한 쇠사슬이 자신의 쇄골을 짓누르는 것 같은 극심한 폐쇄공포를 느꼈다.

이 옷, 내가 엄마에게 선물한 옷이야. 엄마가 가장 원하는 곳에 갈 때 입으라고 사준 거라고.” 진희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뱉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진희야, 너 왜 그래 대체? 장모님 잠시 가출 아니 여행 가신 거 가지고…….”

가출이 아니야! 엄마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진희의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정우가 진희의 몸을 부둥켜안았다.

진희야, 제발 정신 차려. 애들이 기다리고 있어, 너 지금 장모님 때문에 너무 피곤해서 그래. 우리 집으로 가자. 집에서 쉬면 다 괜찮아질 거야.” 정우의 다정한 포옹은 세상에서 가장 견고하고 안락한 창살이었다. 나무꾼들은 선녀가 하늘을 그리워하며 피 울음을 토해낼 때마다, 그저 지상의 밤바람이 일시적으로 차가워 내는 신음이라 치부한다. 그리고 더 두꺼운 무명 이불을 덮어주며 그녀들의 날개 돋친 뼈마디를 짓누른다. 그들이 아는 유일한 사랑법이자, 가정을 지키는 지상의 방식이었다. 정우도 본능적으로 그걸 알아챈 것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익숙하고 지루한 아파트 특유의 공기가 진희 몸을 감쌌다. 아이들은 고모집에서 자고 올 것이라 오랜만에 집안이 고요했다. 정우는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며 넥타이를 풀었다. “아유, 이제야 살 것 같네. 역시 우리 집이 최고지? 당신 배고프지 않아? 치킨 시킬까?” 정우는 거실의 형광등을 일제히 켜고 익숙하게 TV 전원을 눌렀다. 가짜 웃음소리가 가득한 예능 프로그램의 소음들이 거실을 빠르게 메워나갔다. 진희는 대답 대신 천천히 어두운 베란다로 걸어 나갔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자, 똑같은 사각형의 불빛을 밝힌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거대한 벌집처럼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저 무수한 불빛 속에서, 얼마나 많은 선녀가 각자의 날개옷를 빼앗긴 채 스스로 날아오르지 못할 핑계와 자식이라는 방패를 만들며 지상의 저녁을 짓고 있을까.

진희는 베란다 난간을 잡고 서서 자신의 양 어깨뼈 뒤편을 손끝으로 천천히 더듬었다. 뼈마디가 도드라진 그 살 죽 아래가 지독하게 가려워 왔다. 새하얀 깃털이 다시 돋아나려는 징후인지, 아니면 영영 잘려 나간 상처 자국이 지상의 습기에 덧나 짓무르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세탁기 안의 빨래 더미 속에서 젖은 옷가지들은 여전히 완강하게 엉킨 채 서로의 숨통을 쥐고 있었다. 빨래를 집어 올려 건조기 안으로 옮긴다. 진희는 그 무거운 덩어리를 향해 등을 돌린 뒤, 베란다 문을 굳게 닫았다.

, 하고 완벽하게 맞물려 잠기는 샷시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깼다. 그것은 지상으로 자진해서 복귀한 선녀가 자신의 손목에 채우는 가장 다정하고도 잔인한 수갑 소리였다. 진희는 거실의 눈이 부신 불빛 속으로, 다시는 비상을 꿈꾸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삶을 향해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갔다.

 

쓰고자 했던 의도는 어디론가  사려져버리고

평범한 이야기만 남았네요.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건 핑계고 마음 먹으면 써질줄 알았는데 ㅠㅠ

언제나 그렇듯 어느 지점을 넘어서지 못하고 늘 그자리에서 서성이는 중입니다.

편하게 읽어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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