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서는 미리 카운터에 신청해 놓으면 아침을 마련해 준다고 했다. 다른 데 가봤자 별거 없을 거니까 신청을 했는데, 의외로 깔끔하고 맛있는 아침식사를 준비해 주었다. 우리 말고도 투숙객들 여럿이 식당으로 내려와 아침을 먹는다.
[깔끔한 북어국에 두부구이, 제육 등 맛난 아침상을 받으니 기분이 좋다.]
[숙소 창밖 풍경. 식사 후 아래 테라스로 나가 커피 한 잔 마시며 경치를 감상해도 좋다.]
아침을 먹고 들른 곳은 별마로 천문대... 물론 몇 달 전에 예약을 해야 별관측이나 '숙소' 예약을 할 수 있을테지만, 우리야 당연히 '밤손님'은 될 수 없고, '낮손님'이 될 밖에.... 그래도 800미터 봉래산 꼭데기까지 차로 오를 수 있으니, 영월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겠다는 희망, 그리고 추억의 영화 '라디오 스타'의 촬영지를 둘러본다는 희망을 가지고 '구비구비' 산길을 돌고 돌아서 별마로 천문대로 향했다. 물론 좁은 길에서는 내려오는 차 만날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대체로 길도 잘 정비되어 있다. 오히려 남한산성길 보다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결론부터 말하면, 낮손님이라도 되어 별마로에 온 게 잘했다는 생각이다. 정말 영화에서처럼 영월 시가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천문대 옆 봉래산 정상에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있어 사람들이 하늘을 날아 오르는 모습도 지켜볼 수도 있다. 연주와 윤식이는 예전에 문경에 갔을 때 패러글라이딩을 체험한 적이 있다. 연주도 그 때 기억이 새삼스럽나보다.
[천문대 입구. 주차장이 입구 바로 옆에 있다.]
[천문대이니만큼 앙부일구가 재현되어 있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준다.]
[뒤에 보이는 저 삐까번쩍한 것은.... 화장실이다. 봉래봉 산꼭데기에 있는 화 장 실... ]
[뿌연 연무가 끼어 있지만, 그래도 영월시가지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천문대 바로 뒤에는 봉래산 정상이 있고, 거기가 바로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다.]
[패러글라이딩 출발모습.... 내 맘도 저와 함께 영월의 하늘을 비행한다.]
영월을 떠나기 전 꼭 가봐야 할 곳이 바로 관풍헌과 자규루. 단종이 사약을 받은 곳이며, 김삿갓이 별시를 보았던 바로 그 현장이다. 그런데... 많이 실망스럽다. 그런 곳이 '방치'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땅은 잘려서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고, 자규루는 마당 한 쪽에 내 몰려 있는 지경이고... 관풍헌은 무슨 '포교당'에 끼어 있는 그런 형국으로 되어 있다. 지방 재정이 넉넉하리 만무지만, 그래도 입장료를 받아서라도 원래의 모습으로 복구되었으면 하는 맘이 간절하다.
[자규루에서 바라본 관풍헌의 모습. 앞에 잔디밭으로 보이는 부분이 왜곡되어 있는 부분. 담장이 자규루 왼쪽까지 복원되어 정문가지 일자로 복구되고, 관풍헌의 앞마당도 옛모습을 회복했으면 싶다.]
원래 영월을 벗어나 고씨동굴을 먼저 들러보려 했지만... 포기. 시설을 크게 확장해서 여러 가시 복합시설들을 갖춘 종합 테마파크로 변신한 고씨동굴은 그러나 주차마저 불가능한 상태... 비마져 사납게 내리고 있어 우산을 들고 기나 긴 저 다리를 걸어서 평창강을 건너 동굴까지 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 뭐, 안 봤던 곳도 아니고... 연주를 위해 가려고 했던 곳이었으나 그냥 통과하기로.... 대신 마지막 목적지인 김삿갓 무덤을 찾기로 했다.
여기는 우리 부부에게는 새삼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우리가 아직 결혼하기 전, 그러니까 91년 여름, 영월이 고향인 동료 선생님 안내로 지인 선생님들이 차 두 대에 나눠타고 여길 찾았었다. 지금이야 '신작로'가 잘 뚤려 있지만, 그때는 말 그대로 '비포장' 마을길.... 문제는 두 대의 차 중 하나인 '마크5'가 개울을 건너다 '오버이트' 해서 퍼져 버린 것. 손을 데일듯 뜨거운 차체를 밀기도 하고, 마을에다 경운기를 요청하네 어쩌네 하면서 '별의 별 짓'을 다 해서 한 두어시간 만에 차를 살리기는 했지만, 우리 '예비부부'와 차주인 가족은 시간 상 김삿갓 무덤에는 아예 가보지도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혹시나 차가 다시 퍼지면 어떻하나 걱정걱정 하면서.... 물론 영월 읍내로 나오는 길에 부러진 악셀 패달아래 스프링을 교체하고는 좀 안심이 되긴 했지만....
내리다 멈추길 반복하는 빗줄기를 뚫고 구비구비 선경을 거슬러 올라가니 그 선경끝에 김삿갓 기념지구가 나왔다. 비구름에 잠긴 깎아지는 듯한 산세가 가히 선경이라 하겠다.
[김삿갓 무덤답다. 무덤 주위의 돌들도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되어 있다. 맘에 든다.]
[김삿갓 유적비. 역시 여초선생님이 쓰셨다. 전국에 돌아다니며 선생님의 흔적을 하나씩 찾아보는 것도 또다른 재미다.]
서울로 향하는 길....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영동, 중부로 가라는 네비의 제안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올때와 마찬가지로 감곡IC를 거쳐 중부내륙으로 가기로 했다. 그래야 가능한 한 영동을 덜 타게 되니까...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천을 거치게 되었는데, 길에서 '의림지'까지 900미터 밖에 안 된다는 표지판을 보고 차를 돌려 의림지로 들어 갔다. 삼한시대, 농경문화의 발상지라고 하는 역사적 사실만을 알고 왔는데, 의외고 그 규모가 대단하다. 그때의 순수 인간의 노동만으로 이만한 저수지를 만들었다는게 경이롭기까지 하다. 와보니 의림지는 제천 사람들에게는 아주 사랑받는 종합 레저타운의 중심이라는 인상을 준다.
[의림지 외곽을 둘러 볼 수 있는 산책 데크가 잘 꾸며져 있어 경치를 완상하며 거닐 수 있다.]
[의림지 본 둑 옆의 보조 둑 아래는 이처럼 깊은 협곡을 이루고 있다. 양쪽을 수면 표고차가 다단하다.]
[오리배를 타고 의림지 호수위를 다녀보는 것도 재밌는 체험거리.]
[2000년 전 인간의 순수 노동으로 이루어진 의림지 본 둑.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로마에 갔을 때, 대욕장 대로변 가로수가 소나무라는 것이 놀라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들의 소나무는 기둥처럼 굵게 쭉쭉뻗은 그런 종들이어서 우리의 정서와는 멀었다. 물론 목재로 사용되는 금강송 등은 곧게 뻗은 것을 상품으로 치겠지만, 우리에게 소나무란 구불구불, 우리의 삶을 대변해 주는 것들이다. 의림지 둑에 자라고 있는 오래된 이 소나무들이 그래서 더 정이 가는지 모르겠다.]
[평화로운 제천시민들의 휴식처 의림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맘이 차분해 진다.]
1박 2일 영월여행은 이렇게 끝이 났다.
아무 계획도 없이, 숙소 예약도 없이, 그냥 '무대뽀'로 떠나는 여행은 그러나 늘 생각지도 않았던 것을 경험케 해 준다. 이번 여행에서도 기대하지 않았던 많은 우연과 만남이 이어졌다. 여행 중 하나의 주제가 생기고, 그 주제를 따라가다 보면 보지 못했던 사실들이 드러나고... 그런 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올 겨울 방학때는 좀 계획된 여행을 갈 거다. 그것도 아이들 다 데리고 '해외'로....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