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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정보[파우더]

운수 좋은 날

작성자신호간|작성시간13.04.19|조회수150 목록 댓글 1

운수 좋은 날...

내 마음 밑바닥 한 구석에 숨겨진 슬픈 가락은 어쩌면 이 소설로 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국어책이었는지, 어디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단편을 보고난 이후로, 운수 좋은 날엔 문득 김첨지 생각이 난다.

평상시엔 왠만한 힘든 일은 그냥 넘어가는데, 어쩌다 가끔 너무 슬퍼서 혼자 꺼이꺼이 울어제끼기도 하는데, 울 마눌님도 내가 이러는지는 모른다. 그런 날은, 내 주변에 안타까운 모든 사람들이 일시에 마음에 들어와 그냥 하염없이 목놓아 울게 된다. 어려서 처음  죽음에 대해 알게 될 때, 나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생각에 어찌나 울어댔는지... 그래선지 모르겠지만, 막상 장례식장에 가면 그리 눈물이 나지 않는다. 한번은 할머니가 숙환으로 돌아가셨는데도, 울지 않고 있으니, 사촌형이 불같이 화를 내며 내 뺨을 갈겼다. 할머니가 널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셨는데,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느냐고... 

지난 토욜엔 정말 오랜만에 깊은 드라이 파우더를 맛보게 되었다.

오전엔 동료 강사들과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깊은 파우더가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영화에서나 나오는 깊은 파우더에 한동안 앞을 못 볼 정도의 페이스 샷을 맞으며 괴성을 질래대고 다녔다.

오후에도 마찬가지로 그러고 다니다 정상 리프트 아래쪽에서 갑자기 한쪽 스키가 빠져나간다. 턴을 하는데 바깥발의 압력이 느껴지지 않고, 스키 한짝이 밑으로 달려가는게 보인다. 발을 보니, 스키가 없다. 오...그레잇! 순간 자빠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누웠다. 비정설 사면이라 한발로 타기가 무지 힘들고 넘어져도 안아프니.. 지나가던 보더가 내려오는 스키를 자기 보드로 부딪혀 정지시키고, 동료가 주워 들었고, 리프트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일이지? 하며 의아해 했다. 근데, 누군가 뒤에서, "이거 니 바인딩이냐?" 하는 거다. 뭐? 바인딩? 잘 보니 내 바인딩이 맞다. 일단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하고...보니.. 오..마이.. 바인딩이 풀린게 아니라, 아예 스키에서 빠져버린 거고, 다행이 뒤에 오던 보더가 그걸 용케 보고 줏어다 준거였다.

이번에 새로 장만한 파우더용 스키가 얇은 편인데, 바인딩 나사를 충분히 깊게 박지 않아 빠진 것이다.

배낭을 맨 동료가 바인딩과 스키를 가지고 내려가고, 난 외발 스킹으로 비정설 사면을 산중턱 리프트 정상에서 베이스까지 내려간다. 리프트타고 내려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음... 이놈의 쓸데없는 자존심 땀시... 그리고, 동료들도 부추긴다. 너 정도면 외발로 충분히 내려가지...  

정설된 사면에서야 워낙 훈련을 많이 해서, 외발로 타는 건 그냥 하는데, 비정설사면에서 그 긴 슬롭을 외발로 내려가려니.. 

첨부터 밸런스를 유지할 생각을 버렸다. 그냥 넘어질 듯 하면 버티지 말고 그냥 자빠지기로... 밸런스를 잡으려고 하면 힘이 많이 들어가니 금방 지칠테니, 분명 다칠 가능성이 높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중간 중간 블랙 경사도 있고, 모글도 있고, 파우더도 있고, 슬러쉬도 있고, 아이스만 없네..

다행이 첨부터 맘을 그렇게 먹어서 인지, 의외로 한 서너번 정도만 자빠지고, 잘 내려왔다... 슬롭 중간 중간에 벌써 소문이 나서, 리프트 타고 올라가던 동료들이 화이팅을 외쳐준다. (Go! Hogan!) 슬롭에서 만난 사람들도 얘기 들었다며 힘들겠다며, 그래도 외발 스키 훈련은 제대로 하겠다며 응원해 준다. 보통 외발 스킹 훈련을 해도 이렇게 한번에 길게 하진 않는데... 예상치 못한, 비정설 사면 외발 스킹 훈련을 제대로 하게 된거다.

강사 라운지에 들어서자... 다들 이미 알고 있는지 난리가 났다. 더 타고 싶으면, 스페어 스키를 빌려주겠다는 동료도 있고. 

더 안타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정리하고, 집으로 향하는데, 도로에 경찰차와 방송국차 그리고 구조팀이 와서 북새통이다. 알고 보니, 스노우 슈잉 (snow shoeing) 하다가 두팀이나 눈사태로 다치고 실종된 거란다. 제발, 구조가 되길 바라지만, 눈사태로 실종되면 거의 살아남기 어렵다. 거길 지나, 몇마일을 달렸는데, 왠지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어.. 운전하면서 확인해 보니, 부츠를 놓고 온 것 같다. 차를 세우고 확인해 보니, 정말 부츠가 없다.

덴장.. 강사 라운지 문을 잠갔을 수도 있는데, 동료에게 전화를 하며 되돌아 가는데, 전화를 안받는다... 파우더 타느라 정신이 없겠지. 얼마전엔, 레이싱팀 리드 코치가 부츠를 놓고 가는 바람에 내가 가져다 준적이 있는데, 같은 일이 내게 벌어진 거다.

도착해보니, 다행이 다른 동료들이 있어서 문이 열려있고, 부츠를 찾게 되었다.

딥 드라이 파우더 스킹에 대한 댓가가 좀 큰 날이었다. 다들 bad day라며 위로해 주고..

그러면서, 김첨지 생각이 났다. 결코 그에게 비할바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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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신호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4.19 사진은 생략했습니다. 딥 파우더 스킹한 사진은 아예 없고, 파우더 비슷한 건 있지만, 그나마 염장일 듯 하여...
    낼 새벽에 Mt. Hood Meadows로 출발합니다. 운전만 약 4시간반 정도.. 계속 눈 오다가 낼 비가 올 수도 있다네요... 하필 가는 날 비가 오냐..쩝.
    약 18명이 함께 내려가 떼스킹을 할 예정이고, 다른 그룹은 위슬러로 출발했슴다. 그러고 보니, 위슬러도 운전시간은 비슷하네요.
    Mt. Hood를 아직 안가봐서 기대가 됩니다. 다들 경치가 죽음이라는데. 밤에는 엄청 먹고 마시며 스키 얘기...강사들이라, 아주 심도있는 기술 얘기들. 초창기엔 그냥 무게잡고 있었는데, 요즘은 그나마 말이 좀 트여서 저도 한수 거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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