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도의 포기는 믿음을 포기하는 것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성도가 아니다. 성도의 삶은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마치는 것이다.
기도 속에 문제가 녹아나고 험산 준령이 평지가 된다. 기도 속에 하나님이 계시고 인생에 길이 열린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 하지만 기도하면 하나님이 동행해 주신다.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
하나님이 잠잠히 우리의 기도를 경청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왜 그토록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말씀하시는가?
기도하면 응답하시겠다 말씀이다. 바보는 인생의 길을 홀로 걷지만 기도하는 자는 주와 함께 길을 걷는다.
기적은 아무 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기도가 기적을 불러온다. 기도가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도 바쁘게 일하신다.
기도는 사랑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한 만큼 기도한다.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섬김이다.
기도 속에 회개가 있고 기도 속에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다. 기도하면 되는데,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기도하지 않는가?
기도 속에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걸면 결과는 하나님이 만드신다. 바보처럼 울지 말며 아파하지 말고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여호수아는 기도로 해와 달을 멈추게 했다. 기도하는 다니엘은 사자굴에서도 살아났다.
기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꿈을 꾸며 사는 이는 결코 기도를 포기하지 않는다.
인생의 큰 장애물은 문제나 상황이 아니라 기도 하지 않는 것이다.
기도의 포기는 믿음을 포기요 인생을 좌절 속에 방치하는 것이다.
2. 때 늦은 후회 하지 않기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기회를 놓치면 결코 나의 것이 되지 않는다. 천국도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 했다.
가만히 있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다. 행복은 주신 것에 대하여
족한 줄로 아는 자만이 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진정한 만족은 하나님만이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힘든 광야에 있었을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차고도 넘쳤다. 천국이 왜 천국인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기 때문에 천국인 것이다. 모든 감사도, 모든 은혜도 깨달음에서 나온다.
깨닫지 못하면 배움이 헛것이 되며 모든 노력과 지식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후회가 무엇인가?
후회는 뒤늦은 깨달음이다. 나이 들어 후회하는 것은 잘못 살아온 삶에 대한 회한일 뿐이다.
깨달았으면 바로 고쳐야지 후회만 하고 있으면 상처만 깊어질 뿐이다. 사람은 고난이 찾아올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되고 기도하게 된다. 사람은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후회하고 잘못된 과거를 한탄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을 때 똑바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 서는 날 반드시 후회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자신이 완벽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교만하고 목이 곧아 결코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그들은 말씀을 들어도 가슴에 담고 살지를 않는다. 깨달음이 없으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
은혜를 아는 자만이 전능자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다. 뒤늦은 후회의 날이 오기 전에 먼저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3. 사탄이 두려워하는 것
지금은 아파트에서 많이 살기 때문에 큰 개를 별로 기르지 않지만 예전에 개를 기르는 집에 가면 대문에
개조심이라는 글들을 종종 볼 수가 있었다. 사실 개가 많이 짖는 이유는 낯선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사람이 큰 개를 만나면 두려워하지만 개 역시 사람이 두렵다. 사탄도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
사람이 늘 사탄의 시험이나 유혹을 두려워하고 경계하지만 사탄 역시도 진짜 예수쟁이를 만나면 두려워한다.
예수 이름 앞에 사탄은 결박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도는 사탄을 두려움에 빠지게 한다.
기도는 사탄을 쫓아내는 능력과 권세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을 당해 낼 장사는 없다. 누가 세상을 능력 있고 당당하게 살아 가는가?
누가 강단에서 능력 있는 설교를 하는가? 누가 능력 있게 복음 전하는가? 기도를 빼고 믿음을 이야기할 수가 없다.
기도하는 한 사람을 당할 자는 없다. 학벌과 재능이나 부유함이 세상의 힘이 아니라 기도가 힘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를 이길자는 없다.
역사는 기도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예수이름이 세상의 권세요 능력이다.
4. 하나님께 붙어사는 것이 영적 실력
영혼에 불이 꺼지면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가까이할 수도 없게 된다.
캄캄한 죄악 세상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하나님께 붙어사는 것이 영적 실력이다.
성도는 영적 실력으로 말하는 자다. 지금 믿음이 좋다고 항상 좋을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신앙은 자신의 신념이나 의지로만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방치하면 신앙에도 풍파작용이 일어나 서서히
세상의 것에 침식을 당하게 된다. 나의 신앙을 과대 평가 하면 안 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한때는 무너졌고
다윗도 넘어졌다. 쌓아놓은 신앙의 제단은 한 번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마귀가 날마다 찾아와 우리의 신앙을
날마다 흔들어 대기 때문이다. 마귀, 그것쯤이야 하겠지만 마귀의 끈질긴 유혹과 시험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마귀는 영적인 존재다. 우리의 내면과 밖을 언제든 드나들며 미혹하고 시험에 빠지게 한다.
마귀가 뿌려놓은 불신의 씨앗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속에서 자라고 있다. 인간의 의지는 결코 믿을게 못된다.
나약함 그 자체다. 아무리 훌륭한 선수라도 운동을 게을리하면 실력이 바닥을 보이듯이 믿음의 훈련을 하지 않는
사람은 언제든 무너질 수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아래 사는 사람들이다. 누군가에 의해 보호받고 산다는 것처럼 안전하고 든든한 것은 없다.
성도는 영적으로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매 순간 성령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교회를 가까이하고 말씀을 가까이하는
것이 주를 가까이하는 것이다. 삶의 우선순위가 항상 어디서든지 주를 가까이하는 것이 넘어지지 않는 비법이다.
하나님의 품은 언제나 안전하다. 하나님께 붙어사는 것이 영적 실력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기도의 자리를 찾고 예배의 자리를 찾는 것이다.
5. 신앙생활에 기쁨이 있는가?
신앙생활에 기쁨이 있는가? 기쁨이 없다면 왜 하는 것일까? 억지 춘양이 노롯을 교회에서 하고 있지는 않은가?
신앙생활에 기쁨이 없다는 것은 주안에 있지 않다는 증거다. 주를 알고 진리를 알면 참된 기쁨이 넘쳐난다.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참된 진리를 알게 되면 그 진리로 인하여 인생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 된다.
그것이 거듭난자의 삶이다. 주님이 항상 기뻐하라 하신 것은 세상적인 기쁨이 아니다.
사람은 아무리 주어져도 세상의 것으로 만족하며 항상 기뻐할 수가 없다.
세상이 주는 기쁨과 쾌락은 잠시뿐이요 그것이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된 기쁨에는 참된 안식과 평안이 있다. 참된 기쁨과 안식이 없다는 말은 주안에 온전히 있지 않다는 말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세상의 것만을 찾아 무엇인가 쌓으려는 것에 내몰리고 있다. 자신의 힘으로 살려하고 완벽주의자가
되려 하지만 어찌 보면 완벽주의 자는 하나님보다 자신의 힘을 의지하며 살려는 불신앙이다.
인생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는 삶을 살아야 거기에 평안이 있고 행복이 있다. 하나님 앞에서 좀 부족하고 모자라는
것 같아도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며 그로 인하여 채움을 입고 사는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모자람은 모자람이 아니다. 채워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믿음은 주님의 능력을 내게 끌어다 쓰는 은혜의 통로다. 하나님께 붙어사는 것이 실력이며 참된 안식이고 기쁨의 근원이다.
신앙은 힘든 것이 아니다. 맡기지 않기 때문이 힘들고 참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주님은 항상 기뻐하라 명령하고 계신다.
6. 믿는 자라고 말하기 부끄러운 시대
교회에 다니면서 명심해야 것 두 가지는 절대 사람을 보고 다니거나 건물의 크기를 보고 다니면 반드시 실망하게 된다는것이다.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온전치 않으며 깨끗하지도 않다. 세상에는 온전한 교회가 없다. 하나님 외에 누가 온전하며 거룩한가?
하지만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달라야 한다. 얼마 전 한 지인에게 열심히 전도를 하였다.
말씀을 너무나 잘 받아 드리는 모습에 매우 기뻤지만 그분의 말씀이 교회가 너무 타락해 있어서 교회에 나가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각종비리에 교회 세습, 헌금 강요, 성적 타락등 여러 가지를 말씀하셨다.
그것 때문에 자신의 처갓집은 오랫동안 다니던 교회를 떠나 천주교로 개종하였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할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믿는 자들을 향하여 "너나 잘하세요"다. 이것이 우리들의 현실이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오늘날 복음을 전해도 전혀 먹혀들지를 않는다. 성도들의 삶이 오히려 사람들을 교회에 오지 못하도록 내 쫒은 형국이
되어 버렸다. 교회 안에서 믿음보다 돈 있는 자가 대우받고 직분도 받으며 가난한 자들은 늘 비주류 취급을 받는다.
자기 배만 불리기에 급급하여 교회를 늘리는데만 신경을 쓰고 영혼 구원은 뒤전인오늘날 교회는 본질을 잊어버렸다.
한국 교회는 부패와 타락의 상징이 되었다는 인상을 세상 사람들에게 강하게 심어 주었다.
세상 그 누구도 교회에 관심을 갖으려 하지 않는다. 자기들끼리만 구원받았다고 좋아하며 이웃은 안중에도 없는
교회를 좋아할 리가 없다. 세상은 세련된 신자, 말 잘하는 신자, 큰 건물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늘날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조금도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안 믿는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믿는다고 하니 믿는
우리의 죄가 더 크다. 이 모두가 믿는다고 하는 내 탓이다. 내가 잘못 믿었기 때문이다.
영적인 능력은 삶으로 말하는 것이다. 교회 밖에서는 불신자요 교회 안에서 만의 신자 노릇을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
교회에서 무엇이 되려고 경쟁하듯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볼 때에 마치 중직자가 되기 위하여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성도는 신앙의 양심을 따라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나를 내려놓는 희생과 사랑이 몸에 배어 있어야 세상에서도 빛이 되고
소금이 될 수가 있다. 온전한 성도로 살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나를 정화하는 정결 의식이 필요하다.
유럽에 교회가 그랬듯이 이렇게 살다가는 나 때문에 교회는 망한다.
7. 가짜와 진짜의 싸움
신자의 귀에는 말씀이 들려져야 산다. 세상은 진짜와 가짜의 싸움이다. 진짜 같은 가짜가 진짜를 핍박하는 시대다.
오늘날 가짜를 진짜처럼 믿는 것이 비극이다. 가짜는 늘 요란하고 말이 많다. 세상은 수의 싸움이 아니라 진리와의 싸움이다.
많은 사람이 주장한다고 수의 논리에 빠지면 안 된다. 많은 수가 부흥이 아니며 성공이 아니다.
기독교 인구가 줄어든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가짜는 떠나가야 하고 진짜가 교회에 남아야 진정한 부흥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내 배만 불리고 자신의 명예를 얻으려는 자들은 떠나야 한다.
껍데기만 교회에 가득하고 가짜가 판을 치는 공동체가 되면 모두가 망한다. 이 시대에 분별력이 필요하다.
반 기독교 세력이 홍수와 같이 밀려와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진리는 반드시 이긴다.
성도의 가슴 속에는 성령의 불이 임해야 한다. 꺼진 불은 소용이 없다.
예배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불이 임해야 거짓을 태울 수가 있다. 신앙은 진리와의 싸움이지 수의 싸움이 아니다.
세상은 허풍과 가짜가 판을 친다. 사람을 따르지 말고 진리이신 예수를 따라야 한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엮여있는 존재다. 하나님은 대단한 사람을 부르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부르셨기에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말씀이 임하면 하늘이 열리고 말씀이 임하는 것이 축복이다.
말씀이 내 삶가운데 흐르면 우리의 영혼은 살아나고 새로워진다.
8. 기도 응답의 목적
우리의 기도가 응답만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 뵈옵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인생은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삶의 목적이 하나님이 되면 세상의 것들이 오히려 초라하게 보인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셨다.
기도의 중심이 하나님께로 기울지 않는 기도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우상숭배와 같은 이기적인 것일 뿐이다.
말로만 하나님의 영광을 외친 들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다.
주를 위해 살게 해달라고 기도만 하지 말고 정작 그렇게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행하지 않고 입만 살아 있으면 그 입으로 인하여 정죄함을 받을 수도 있다.
말만 많고 행함이 없다면 울리는 꽹과리와 무엇이 다르랴!
날마다 기도하면서 기도한 대로 살지 않는다면 그 기도가 무슨 소용 있으랴!
기도한 대로, 말씀을 들은 대로 그리고 깨달은 대로 사는 것이 성도의 삶이다.
듣고도 행치 않는 자! 깨닫고도 모른 체 사는 자는 결코 은혜 아래 있는 자가 아니다.
나를 위하여 살고자 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없다.
내가 죽어지고 낮아져야 주님이 높아지고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
찬송을 한곡 불러도 주께서 기쁘게 들으실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루종일 찬송을 부르고 예배를 드리며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면 허공을 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기도 응답의 목적은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다.
9. 인생의 이정표
말을 해서 무엇하리오 믿음으로 산다는 것! 몰라서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요 힘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없고 의지가 없어서 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 보다 더 좋고 더 사랑하는 것이 있기에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하며 시간이 없다 능력이 없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사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결과는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
어떻게 살아도 그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할 몫이다. 믿음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가다가 페달을 멈추면 쓰러진다. 말씀이 인생의 이정표요 기도가 삶에 나침판이다.
이 모두를 잃어버리면 인생의 목적지도 잃어버리게 된다. 오늘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한다.
오늘 좋았다고 내일도 좋으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가 큰 것에도 충성한다.
중심을 잃으면 목적도 잃어버린다. 오늘 하루를 사는 것에 급급하여 큰 것을 놓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목적을 따라 사는 인생이 되어야 후회가 없다. 영원한 것을 사모하며 사는 인생의 끝에는 반드시 우리 주님이 계신다.
인생은 주와 함께 나그네 길을 걷는 것이다. 오늘 내가 무엇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자만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인생에 이정표 되신 예수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사는 인생은 반드시 세상 끝에서 주를 뵈옵게 될 것이다.
10. 참 그리스도인 분별하는 법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복음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확신도 없이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참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한다.
은혜받은 것에 대한 응답이 심령 깊은 곳으로부터 넘쳐 나기 때문이다.
복음을 위한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믿음에 대한 배신이요 예수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예수가 한없이 자랑스러워야 한다.
그러기에 날마다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전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잘 믿는 사람이 아니다.
겉으로 껍데기만 믿기 때문에 복음이 그 속에서 살아 역사하 지를 않는 것이다.
교회에서 복음을 제켜두고 평생을 봉사하며 섬겨도 거기에 생명력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담대함과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의 비난이 두려워서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면 그는 비겁한 그리스도인이다.
어떤 박해나 비난도 받을 각오가 있어야 한다. 한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큰 사랑은 없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다. 담대히 입을 떼는 순간 역사는 성령께서 일으키신다.
내가 전하는 자가 될 때 비로소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는데 어떻게 그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말은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전하지 않는 자는 성도라는 옷만 입고 교회에 다니는 불신자에 불과하다. 불신자는 절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우리는 복음의 증인들이다. 참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판가름이 난다.
11. 성도는 언제 가장 행복한가?
성도는 일상을 살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할까? 예수 믿고도 불행하다 생각하며 산다면 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다.
나는 기도 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말하고 싶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 독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데이트가
즐겁지 않다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도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우리는 무슨 배짱으로 기도하지 않는 것일까?
이는 하나님 없이도 내 힘으로 세상을 살 수 있다는 교만함이 내 속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왜 기도가 그렇게 힘이 든 것일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식어서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멀어졌기 때문이다.
기도는 자신의 실체를 보게 하는 거울이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이 없다면 어쩌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할 때에 대화가 아닌
자신의 말만 하는 것은 하나님을 패싱 하는 것이다. 영의 귀가 열린 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기도는 하나님과 쌍방의 소통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함께 교감하며 사랑을 나누는 것이며 기도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의 깊으신 속마음까지 알게 된다. 세상은 기도하는 자의 것이며 그 누구라도 기도하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세상에 기도보다 무섭고 기도보다 강한 것은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기 때문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세계를 보게 하는 영적인 눈이 열리게 한다. 기도에 모든 것을 걸라. 인생이 바뀐다.
12. 믿음의 수고
믿음에는 수고가 따른다. 세상에 수고 없는 열매는 없다. 하나님께 주시기만을 바라고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귀찮다고 쌀을 날로 먹는 사람은 없다. 믿음은 수고를 통하여 날마다 성장해 가는 것이다.
전도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교회가 부흥하기를 기도하는 것은 위선적 신앙이다. 나는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받기만 바라는 것은 잘못된 사랑이다.
받고자 하면 먼저 주는 것이 주께서 가르쳐 주신 황금률이다. 사람은 공짜를 좋아하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공평하신 분이다. 다 아시는데 왜 구하라 하시는가? 믿음의 수고를 하라는 것이다.
믿음은 행함과 함께 자라 간다. 무조건 믿습니다를 죽을 때까지 외쳐도 그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다. 선을 쌓으면
선으로 갚아 주시고 악을 쌓으면 심판으로 보응하신다. 그렇지 아니한가? 그래야 공평하신 하나님이 아니신가?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하지 않으시며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은 얼마든지 공짜로 주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주신 달란트를 버려두면 죄가 된다. 우리가 행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과 세상 앞에 보여야 한다.
일한다는 것은 성스러운 것이다.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하셨다.
다른 말로 말하면 먹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기에 일하기 싫으면 죽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일하고 계신다.
성도는 열심을 품고 주를 위해 믿음의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상급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3. 기도로 끝장내는 인생
기도를 쉬면 인생이 꼬이고 기도를 멈추면 인생의 문제를 풀 수가 없다. 날마다 기도의 군불을 지펴야 한다.
기도의 불이 꺼지면 인생의 겨울이 찾아온다. 오늘날 믿는 신자 가운데도 기도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불신앙을 드러내는 것이다. 기도를 무시한다는 것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다.
기도는 모든 것의 시작이요 끝이 되어야 한다.
세상 방법 다 동원해 보고 기도나 하자는 식으로 기도가 마지막 수단이 되면 안 된다.
기도를 우선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우선 한다는 말이다. 기도가 막히면 인생이 막힌다. 엘리야처럼 기도로 끝장 내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기도는 믿음의 증표요 행위다. 세상 일에 빠져서 바쁜 사람은 기도 할 수가 없다.
기도에 시간을 바쳐야 한다. 무시로 언제든 길을 걸으면서도 기도 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기도는 습관이다. 밥먹듯이 자연스러워야 한다. 기도하지 않는 것도 습관이다.
영적인 게으름뱅이는 기도하지 않으며 기도는 늘 하는 사람이 한다.
시간이 없다거나 교회에 가지 못해서 기도 못한다는 것은 핑계다. 기도 없는 성공은 모래 위에 성 쌓기라는 말이 있다.
기도는 완벽하신 하나님의 응답이 있기에 결코 실패가 없다. 삶이 답답하고 막힌 것은 기도가 막혔기 때문이다.
기도가 막히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다. 하나님께로 가는 기도의 고속도로는 이미 뚫려있다.
기도는 십자가의 보혈을 타고 언제든 하나님께로 직행할 수 있다.
상황보다 크신 하나님의 응답의 때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는 위대하고 놀라운 선포를
가슴에 이름표처럼 달고 사는 인생은 기도로 통과하지 못할 장애물은 없다.
14. 역설(逆說)의 진리(眞理)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세상적인 상식과 기준으로는 다 이해할 수가 없다.
믿음이란 이론도 아니며 과학도 아니다. 성경은 수많은 역설적인 진리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의 얄팍한 세상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하나님은 상식을 뛰어넘어 행하시는 초월적인 분이시다.
그야말로 전지전능하심이 우주 만물에 충만하시다. 어떤 이는 기독교를 역설적인 종교라고 까지했다.
이해할 수 없는 역설적인 진리가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은 하나님의 가르치심의 신비다.
역설적인 진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빛나게 하며 인생을 인생답게 살게 해 준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서 아래의 말씀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모순처럼 들릴 수도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 죽어야 산다.
주면 풍성해진다. 높아지고자 하면 낮아지라. 약할 때 강하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친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돌려대라.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이 있다.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고난이 유익이다. 좁은 길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이러한 말씀들은 믿음이 아니고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진리가 있다.
기독교는 어찌 보면 배타적이고 모순적이며 역설적인 것 같으나 그 안에 진리가 있다.
그 진리가 창조주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해 준다. 세상 사람들의 수준으로 보면 궤변으로 들리수도 있다.
하지만 역설의 진리는 인생을 바꾸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 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역설의 진리가 좋다.
15. 오직 임마누엘
거룩한 꿈을 꾸라. 하나님을 향한 비전을 가슴에 품고 살라. 하나님은 꿈을 꾸시는 분이 아니요 꿈을 주시는 분이시다.
세상의 썩어질 시시껄렁한 것에 목매지 말고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꿈을 꾸라.
꿈은 하나님의 마음에 나의 생각을 일치시키는 거룩한 만남이다. 하늘을 향하여 꿈을 꾸면 하늘을 날아오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자만이 하늘의 세계를 보게 될 것이다. 먼저 하나님 앞에 떳떳한 자가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할 수가 있다.
세상이 뭐라고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존귀한 자녀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일지라도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전능자가 내 아버지시기 때문이다. 내 갈길 몰라도 괜찮다
주님이 내 앞에 길이요 빛이시기 때문이다. 인생에 먹구름이 몰려와도 그 구름은 반드시 걷힌다.
비바람이 몰려와도 맑은 날이 더 많기에 우리는 소망가운데 산다. 슬픔에 안개도 한순간이다.
거친 입을 삼가고 하나님이 주신 소망의 말을 하며 사는자로 살라.
우리의 소망은 주께서 함께 하신다는 오직 임마누엘이다.
16. 나는 하나님의 존귀(尊貴)한 자
나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다. 그 아들의 생명과 맞바꾼 하나님이 사랑하는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다.
이것을 잊으면 배은망덕한 자가 된다. 믿음은 다름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빠져 사는
것이다. 때로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어느 때는 나 홀로 떨어진 듯한 생각에 빠지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한순간도 나를 떠나신 적이 없으시다. 세상이 나를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나를 잊거나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답은 명확하다. "세상 끝날까지 너와 함께 하리라" 우리는 이 놀라운 전능자의 그 한마디 말씀에 무릎을 꿇는다.
사람이 하나님이 아닌 세상에 빠져 살면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게 된다.
마치 도박 중독자처럼 헤어나지를 못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그곳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안다.
그들에게 저 넓은 바다가 있다는 것을 설명해 줘도 이해하지를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세계는 하나님을 깊이 경험한자
만이 알 수 있고 누릴 수가 있다. 한 번 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인데 나를 세상 아무 데나 끌고 다니면 안 된다.
우리는 성도다. 거룩하게 살아야 할 존귀한 신분이다. 우리는 늘 미래를 걱정하며 살지만 우리의 노후는 진정한 미래가
아니다. 우리는 장차 가서 살아갈 영원한 나라가 있다. 거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다. 주께서 나를 부르신 이유는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나를 사랑하실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부르심에 소망이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할 이유다.
17. 믿는 자의 최고의 무기
믿음이란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심은 하나님께서 기도를 통하여 우리와 교제하기를 강력히 원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은 저절로 깨달아지는 것이 아니다. 구하는 자가 알게 되고 얻게 된다.
우리에게 겟세마네라는 기도의 동산이 있어야 한다. 그곳이 골방이 되었던 삶의 현장이 되었던 상관이 없다.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던 주님처럼 온 힘을 다하여 기도해야 한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으며 그분의 뜻을 분별할 수가 없다. 그저 중얼거리는 기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로 끝이 나면 안 된다.
죽기 살기로 기도하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아름답고 황홀한 교제이며 인생의 힘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무기는 기도다. 내 힘으로 잘 믿을 수 있 는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죽더라도 기도하는 인생이 승리한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 할 수가 있어야 한다.
죽는 순간에도, 감옥에서도, 병들어 누어서도 기도 할 수가 있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영권을 얻고 능력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
기도를 포기하는 것은 신앙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믿는 자는 반드시 기도해야 한다.
응답이 없다고 절망할 필요가 없다. 기도하며 끝까지 견디면 반드시 승리의 날을 보게 된다.
삶에 있어서 예수님이 빠진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죽음에 문턱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그날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믿는 사람은 절대로 지옥에 갈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하여 감격하게 될 것이다.
기도가 우리를 살린다. 기도 외에 우리에게 대안은 없다.
18. 회개할 수 있을 때가 기회다.
누구나 죄인이 되기를 원치 않지만 욕심이 지나치면 죄를 짓게 된다.
반복된 죄를 짓는 것은 마귀에게 사로잡혀서 죄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습관이 자신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욕심이 지나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이루려 하는 것이 죄성을 가진 사람들의 속성이다.
죄를 짓는 것도 중독이다. 죄를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 습관처럼 죄를 짓는다.
죄에 포로가 되면 끊을 수가 없어서 결국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불쌍한 인생이 된다.
사람은 죄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결국은 죄 때문에 망한다. 기회는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늘 말하지만 기회는 지나가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회개할 수 있을 때가 기회다.
일상에서 죄를 지은 순간마다 먼지를 떨어내듯 즉시, 그리고 반드시 털어내야 한다. 회개를 거르는 것은 자신 머리
위에 숯불을 올려놓고 자기의 무덤을 파는 것과 같다. 인생의 막장은 죄를 지었을 때가 아니라 회개가 없을 때다.
회개하고 싶어도 회개가 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인생이다. 회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은혜요 기회다.
하나님을 떠난 삶은 죄의 짐을 지고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신앙생활이란 신의 성품을 닮고 그의 거룩한 삶을 닮아 죄로부터 성화되어 가는 여정이다.
19. 말씀을 아는 것이 힘이다.
말씀이 힘이다. 그리스도인에게 말씀보다 더 큰 힘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는가?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있다. 하나님을 알되 깊이 알아야 한다. 알지 못하면 믿을 수도 전할 수도 없다.
신앙인의 모든 힘은 말씀에서 나온다. 그리스도 이에게 말씀을 빼면 죽은 시체나 다름이 없다.
무조건 덮어놓고 믿으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말씀에 무지는 곧 하나님에 대한 무지다.
진리의 말씀에 눈을 뜨지 못한 사람은 신앙이 늘 겉돌게 되어있다. 말씀을 배우고 알아야 하는 이유는 사단을 이기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다. 말씀을 모르면 신앙의 암흑기가 찾아온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 오히려 말씀을 잘 배우려
하지 않는 것은 영적인 교만함 때문이다. 신앙의 전성기는 말씀을 가까이할 때에 찾아온다.
말씀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성경을 많이 안다고 자만하지 말자. 어느 목회자의 말처럼 성경을 배우면
배울수록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이 정답이다. 말씀에 달인이나 통달한 사람은 세상에 없다.
성도는 한마디 말씀의 은혜로 사는 것이다. 성경은 많이 알기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읽는 것이다. 말씀을 소홀히 하는 사람치고 믿음 좋은 사람은 없다. 말씀을 멀리하면 신앙도 죽는다.
하나님을 알려는 목마름으로 말씀을 가까이하면 성령께서 도우시고 깨닫게 해 주신다.
교회는 활동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말씀 위에 기초가 서 있는 영성가들이 필요하다.
20. 무엇이 되려고 하지 마라.
세상에 인정받으며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누군가에게 인정받게 되면 삶이 달라진다.
인정받고 산다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중심이 바뀌지 않으면 결단해도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높은 자리를 탐하지 말며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마라. 화를 자초할 뿐이다. 무엇이 되려고 하지 마라.
인생은 무엇이 되려고 사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되려고 하면 욕심의 사슬이 나를 얽매이게 하여 발목을 잡을 것이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선생이 되지 말며 항상 낮은 자리에서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신다. 남과 비교하지도 말며 옳지 않은 것이나 능력 밖의 일은 남이 한다고 흉내 내지도 말라.
불행을 자초할 뿐이다. 완벽하려고 하지도 말라. 인생이 피곤하고 남들이 싫어하는 경계의 대상이 된다.
욕심은 한이 없다. 더 가지려고 큰 것을 탐내지 말라. 영원한 내 것은 없다.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는 것은 잠깐이다.
무엇을 하여도 먼저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게 신실하면 모두가 인정하는 사람이 된다.
무엇에 직면하던 하나님이 주신 것을 피하지 마라. 그것이 사명이며 내가 가야 할 길이다. 하나님은 나의 능력을 아신다.
주신 것에 족한 줄로 알고 감사하며 살면 인생은 더없이 행복하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능력 있는 자라고 알아주지 않으신다.
오직 주께서 충성된 종이라 불러 주시기를 기대하며 신실한 종으로 살라.
하나님은 부족해도 연약해도 신실한 자를 사용하신다.
21. 그대의 열심 속에 하나님이 들어 있는가?
내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이루려 하지 말라. 하나님이 허락하신데 까지만 하면 된다. 성도는 종말론적 삶을
살아야 한다. 끝을 생각하며 사는 것이 인생의 지혜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기 전에 자신의 영혼에 집중하라.
세상에 말세가 오기 전에 나 자신의 말세적 삶을 고민해야 할 때다. 나의 영혼은 생각하지 않으면서 세상 걱정할 때가
아니다. 언제 내 인생의 종말이 올지 모른다. 세상에서 잘 나간다고 우쭐대며 살면 안 된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하면서 날 뛰며 살지 마라. 우리는 메뚜기가 아니다. 하루만 살 것처럼 세상을 함부로 살지 마라.
우리는 하루살이가 아니다. 더 가지려는 욕심이 화를 부른다. 수도사들은 날마다 더 버릴 것이 없는가를 생각하며
살았다고 한다. 내 속에 세상 욕심으로 인한 우상을 버려야 한다. 영적인 비만을 버리는 것, 즉 내 속에 나를 비우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세상을 단순하게 살 수 있어야 삶이 가볍고 행복하다. 단순성이란, 가질 수 있지만 필요 이상의
것을 위하여 살지 않는 것이다. 세상은 가져야 행복하다고 유혹을 하지만 행복은 소유에 넉넉함에 있지 않다.
수도자처럼 살 수는 없어도 수도자적 삶을 살아야 한다. 방랑자의 인생은 방랑으로 끝이 난다.
방향을 놓치면 방황하게 되는 것이 인생이다.
나의 삶은 무엇을 위한 열심인가? 기억하고 또 기억하며 살자. 그 열심 속에 하나님이 들어 있는가?
22. 모든 평가는 하나님이 하신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마라.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 생애의 모든 평가는 하나님이 하신다.
모든 미움 시기 질투 분쟁과 원망이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잘못된 욕망에서 나온다.
신앙생활은 나만이 잘 되려는 욕심으로 하면 안 된다. 누가 크냐 하는 경쟁심이 인생을 피곤하게 만든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 다녀도 육에 속한 사람들이다. 영에 속한 사람들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다.
성령이 진리를 알게 하고 십자가를 알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신다.
건강한 신앙은 영적으로 날마다 자라서 마침내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만든다.
세상은 늘 불안하고 흔들리는 곳이다. 세상에서 우리가 잡을 것은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어차피 다 놓고 가야 할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와서 우리가 반드시 소유할 것은 하나님이요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뿐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꾸는 꿈은 망상일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세상의 사람들은 영적인 것과 무관하게 목적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진실로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어떤 역경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살게 되어있다.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자기 공로주의에 빠져 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의 삶은 늘 경쟁적이어서 인생살이가 늘 힘들고 버겁다.
사람이 알아주지 않으니 지치고 절망하며 시험에 드는 것이다.
주님은 십자가의 무거운 짐을 지시면서도 나를 알아주라 말씀하지 않으셨다.
십자가는 기꺼이, 자원하는 심령으로 순종하는 것이다.
나만의 신앙이나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의 신앙은 오히려 교회를 망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세상은 이러한 그리스도인을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비토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그리스도인은 나를 내어 주어 한 알의 밀알로 썩어지는 희생적 삶을 사는 자들이다.
마지막날에 모든 평가는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다.
그때에 우리가 들어야 할 말은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말일 것이다.
23. 행한 대로 갚아 주실이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무덤에 들어간다. 하지만 요즘은 무덤도 없다. 모두가 화장을 하여 재가 되어 나오는
시대가 되었다. 육신은 그야말로 죽으면 한 줌의 재가 된다. 그렇게 큰소리쳐도 누구나 그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지나간 인생은 후회해도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것이다. 육신은 흙이니 흙에서 나온 것을 먹고살다가
필경은 흙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주께로부터 왔기에 그분께로 돌아갈 것이다.
세상에서 잘 살아보겠다고 부귀영화를 꿈꾸며 살지만 결국은 잠깐이요 우리가 가지고 갈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사랑하고 아끼던 육신마저도 미련 없이 버리고 가야 한다.
하물며 내가 평생 모아논 재물인들 내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있으랴!
허상을 잡으려는 것이요 바람을 잡으려 하는 것이 인생사다.
인간의 생명 또한 유한하여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요 그의 영광은 들의 풀처럼 시들어질 것들이다.
인생에 남는 것은 영원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뿐이다. 나의 시작이 하나님이요 마침이 또한 하나님이시다.
썩어질 세상의 것을 아무리 많이 쌓아 놓은들 내 것이 되지 못한다.
흩어 나누어주고 뿌려놓은 것만이 하나님이 기억하시며 인정하신다. 인생을 허무하다 말하지 마라.
하나님 앞에서 산 인생은 결코 헛되지 않다. 이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실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영원한 것으로 보상해 줄 실이가 계신 그곳에서 우리는 영원무궁토록 살게 될 것이다.
24. 과연 오늘 내게 말씀과 기도가 살아 있는가?
성도는 무엇으로 세상을 이기는가? 성도는 결코 칼을 들지 않는다.
칼을 드는 자는 칼로 망한다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댈 수 있어야 성도다. 말이 쉽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괴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가라 하신다.
성도의 무기는 오직 말씀과 기도 외에는 없다. 불의와 맞서는 방법도 세상을 사는 원리도 오직 말씀과 기도다.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하고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이를 감당케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우리는 좌절하지 않고 그 길을 간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려 가게 되어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 사로잡혀 살게 되어있다. 세상이 미쳤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다.
세상은 불의와 악이 판을 치고 지금은 그것이 대세인 것처럼 보이나 결국은 말씀과 기도가 이긴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일하심과 그분이 믿는 자의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우리가 세상에서 비굴하게 진리를 외면한 채 사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을 굴절된 시각으로 보면 답이 없다. 오직 말씀이 기준이 되고 기도가 능력이 되어야 한다.
주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능력이 나오지 않음을 가르쳐 주셨다. 주께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면
그것이 오늘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한다. 기도가 답이다. 말씀이 우리의 길이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 내게 말씀과 기도가 살아 있는가이다.
25.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주안에서 살게 되면 죄를 멀리하게 되고 죄에 대하여 자유한자가 된다.
하나님 앞에 떳떳하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 내세울 수 없는 것은 죄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완벽하시다.
인간의 궤사에 속지 않으신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거짓을 아시며 모든 죄악을 아신다.
죄는 하나님 앞에 내놓을 수 없어 감추고 숨기려는 것들이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
나의 깊은 속에 생각하는 것 까지도 꿰뚫어 보고 계신다. 하나님 앞에서 감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옥 밑바닥에 숨길지라도 그것을 찾아내시는 분이시다. 천국은 정직한자가 가는 곳이며 모든 더러운 죄를 회개하고
예수의 피로 씻어 깨끗한 자가 가는 곳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는 자유의지를 주신 주님 앞에서 자신의 몫이다.
천국과 지옥은 자석과 같아서 자신의 믿음과 행위가 이끄는 대로 끌려가게 되어 있다.
사람이 죄를 짓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늘 죄가 문제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의 살아 계심과 전능하심을 믿는 것이다.
그분이 나를 알고 계심을 믿고 나는 그분 앞에서 사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하나님을 패싱하고 스스로 살겠다는 불신앙의 발상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 대낮처럼 밝게 드나지 않을 것이 없다.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사는 자들은 장차 심판대 앞에서 모든 것이 드러날 때에 괴성을 지르며 경악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알되 힘써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어정쩡하게 믿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되면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고 스스로 죄와 담을 쌓게 되어 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하셨다.
참된 진리를 알면 죄에서 자유하고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뉘신 지를 알게 된다.
26. 인생은 믿음으로 결판(決判)난다.
이 땅에 믿음을 더하면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 믿음이 없는 곳이 지옥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영적인 감각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열심히 믿는 사람도 시험에 들게 마련이다.
기도를 많이 하면 시험에 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예수님도 40일 금식기도 하신 후에 마귀가 와서 시험을 하였다. 가만히 있어도 영적인 기류는 흘러서 내게 영향을 준다.
내가 잘 믿는 것 같아도 그것은 나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 주께서 은혜 가운데 돕지 않으시면 자신의 작은 믿음
하나도 감당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는 홀로 있는 자가 아니다.
한 순간도 나를 떠나지도 않으시고 보호하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오늘 내가 여기 있는 것이다. 성도는 믿음을 무기로
삼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성도에게 믿음을 빼면 더 이상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 된다.
세상과 믿음을 사이에 두고 머뭇거리는 것은 불순종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은 결코 하나님 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성도의 삶은 태도가 분명해야 한다.
기회가 주어지면 충성도 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고 하는 것은 사탄의 기만 전술에 속고 있는 것이다.
기회를 잃으면 믿음도 잃고 모든 것을 다 잃는다. 신앙은 상황과 기회를 따라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곳이 비록 홍해일지라도 주저함 없이 주만 바라보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인생에 요단강이 가로막혀 있어도 신앙의 길은 결코 머뭇거리면 안 된다.
내 앞에 감당할 수 없는 십자가 놓여 있을지라도 그것을 지고 갈 수 있어야 믿음이다.
인생의 결론은 반드시 믿음으로 결판난다는 사실이다. 결국은 믿음이 이긴다.
그것이 확고한 사람은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는다.
27. 소원이 아니라 목적을 가지라
사람이 소원만 가지고 살면 채우려는 욕심에 늘 허덕이게 마련이다. 소원이 아니라 목적을 가지고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람의 욕심은 한이 없다.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욕심이다.
지나친 욕심은 불필요한 소원을 낳게 되고 그것이 불행의 씨앗이 된다.
누구나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살 수가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꿈을 꾸며 살아가지만 꿈대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쩌다 그 꿈을 이루었다 해도 잠시뿐이요
영원한 것이 아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꼭꼭 숨겨져 있다.
여기에 하나님의 나라에 비밀이 있다. 보는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온통 보이지 않는 것들에 둘러 싸여 있다. 믿음의 눈이 열린 자만이 볼 수 있고 마침내 그것을
누리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손에 쥐고 있어야 만족을 누리고 평안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쥐고 있으면 더 큰 것을
쥐려는 욕심에 행복은 점점 더 멀어진다. 역설적이지만 버리면 버릴수록, 비우면 비울수록 행복은 다가온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욕심으로부터 오는 소원을 다스릴 수 있어야 행복하다. 모자라다 생각하면 더욱 갈증에
시달리는 것이 인간이다. 비워야 한다. 비우고 하나님을 향한 큰 목표를 가져야 한다.
비워야 채워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하지 않던가? 천국이 그들의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청결한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목적을 가지고 사는 자가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27.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야고보서 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어떤 환경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분만이 인생의 해답이시며 우리가 믿고 의지할 분이시다.
인생 끝날에 결국 남는 것은 하나님 밖에 없다. 혈육도 사랑하는 이도 내가 믿고 의지하던 모든 것도 언젠가는 모두
내 곁을 떠나가게 될 것이다. 인생에 완성이란 없다.
주께로부터 와서 주께로 돌아갈 나그네 인생길, 주님과 함께 가는 것이다.
세상이 힘들다고 한숨짓고 절망하며 살지 말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슬픔도 기쁨도 주 안에서 답을 찾으라. 세상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걸고 온전히 맡기라.
세상에서 답을 찾지 마라. 세상에는 답이 없고 헛되고 헛된 것들 뿐이다. 인생의 모든 것은 주의 섭리 안에 있다.
언젠가는 나의 육신도 던져버리고 주 앞에 가야 하는 날이 올 것이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라도 전능자 앞에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무릎 꿇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세상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루고야 말 것이다.
내 능력, 내 재주를 부려봐도 인간은 그 한계를 벗어날 수가 없다.
모든 것을 주인 되신 주님이 거둬가시는 날에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요 지나온 모든 세월이 주의 은혜로 살아왔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이다.
단언컨대 나의 달려온 지난 세월만 돌이켜 봐도 평생을 나를 지키시고 함께 하신 이는 오직 주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미련일랑 두지 말라. 썩어지고 없어질 것들이다.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인생만이 소망이 있다.
영원하신 영생의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구원자요 해답이시다.
28. 모든 삶은 기록으로 남는다.
인간의 모든 삶은 빠짐없이 기록되어 하나님의 책에 고스란히 남는다. 지울 수도 없고 변개할 수도 없다.
추하면 추한 모습 그대로, 선하면 선한 모습 그대로 지워지지 않고 남는다.
믿음으로 살아온 우리의 삶도 생명의 책에 기록되어 영원히 남아 영광을 얻게 될 것이다.
인생은 숨길수도 감출 수도 없는 한 권의 책이다. 하나님만이 이 책의 독자가 되신다.
우리는 날마다 나의 삶을 기록하는 서기관들이다. 어떻게 써야 할지는 본인이 결정한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 기록된 모든 것은 온 천하에 공개될 것이다. 감추인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다.
세상을 살되 잘 살아야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더러운 것은 반드시 심판받게 되고 깨끗하게 산 인생만이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아 누리게
될 것이다. 세상을 분주히 바쁘게 살아가지만 인생은 결국 믿음으로 산 것만이 하나님 앞에 고스란히 남고 세상의
모든 것은 배설물처럼 버려질 것이다.
성도로 산다는 것! 예수님의 피로서 씻음 받고 거룩한 삶을 한 권의 책으로 남기는 것이다.
후회 없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만은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죄가 나를 떠나지 않는다.
세상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 방심하면 넘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내가 사는 대로 하나님 앞에 기록된다는 사실을 절대 잊으면 안 된다.
하나님 앞에서 산 인생만이 결코 후회의 자리에 앉지 않을 것이다.
29. 신앙생활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자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내 능력으로는 하나님을 깊이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 누구를 미워하고 사랑한다는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인간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주님도 모든 사역 가운데 성령의 도우심을 의탁하셨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도 내가 하려 하니 어렵고 힘이 든다.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면 순종도 섬김도 기도도 쉬워진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 하셨다.
신앙생활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내 능력을 과신하여 내 힘으로 하려고 하기 때문이 문제를 돌파하기가 힘이 든 것이다.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다.
오직 하나님께 집중하고 모든 관심을 하나님께 두고 사는 것이 온전한 신앙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문제에 매달려 문제에 몰두하다 보면 하나님을 온전히 볼 수가 없다.
삶의 중심에도 기도의 중심에도 하나님을 두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목적이 되고 행하고자 하는 이유가 되게 하는 것이 신앙의 기본이다.
마귀는 늘 하나님을 축소하고 중심을 다른 곳에 두게 하려고 우리의 마음을 뒤흔든다.
신앙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높여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나의 목적을 이루는 하인 취급을 하는 사람들의 삶은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지 않는다.
성도는 믿음 따라 사는 자다.
믿음 따라 살지 않는 것이 죄이며 하나님 없이도 살겠다고 하는 것이 죄다.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관심을 두고 살지 않는 것이 교회 안에 불신자다.
내 안에 나를 키우면 키울수록 믿음은 한없이 작아진다.
무신론자가 누구인가?
내가 주인 되고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며 사는 자가 아닌가?
30. 하나님은 내게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 인간은 죽었다 깨어나도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가 없다.
그 크고 높고 위대하심을 사람이 가히 측량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를 돕는 도우미가 아니시다.
그분은 우주만물의 창조자이시며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며 주인이시다.
인간이 어찌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을 알 수 있으랴! 하나님의 일하심은 신묘막측하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하나님을 논한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았다면 지금처럼 세상을 멋대로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혀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거짓되고 모순된 것은 없다.
믿으라 하시나 온전히 믿지 못하고 사는 우리가 문제다.
모든 근심과 걱정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사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찾아온다.
두려움도 세상을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기 때문에 임하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의 눈을 통하여서만 하나님을 볼 수가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창조물인 우리를 사랑하고 보호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은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이 나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날마다 나를 생각하시며 거짓말 같은 진짜 사랑을 십자가에서 행동으로 증명해 보이셨다.
나를 위해서라면 그 아들을 백번 천 번이라도 보내셨을 그 하나님을 우리가 어찌 사랑하지 않으리오.
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시고 주신 하나님이 무엇인들 주시지 않겠는가?
주의 놀라운 꿈을 나를 통해 이루시길 원하시는 하나님이 오늘도 나와 함께 하시며 사명을 주신다.
나의 작은 신음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심은 나를 향한 사랑 때문이다.
주를 사랑한다면 날마다 만나고 싶고, 보고 싶고, 그 품에 안기고 싶은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닌가?
31. 진리(眞理)가 통(通)하지 않는 시대(時代)
어처구니없게도 오늘날 세태는 죄를 죄로 여기려 하지 않는다.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죄를 짓고도 오히려 당당하다. 죄가 범람하여 홍수처럼 넘쳐나지만 사람들은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다. 오히려 진리를 말하고 정의를 말하면 면박을 당하고 말씀대로 살면 바보취급을 받는다.
죄악과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정의처럼 판을 친다. 마치 롯의 집을 찾아와 당당하게 천사들을 내놓으라 요구했던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처럼 이 시대가 그렇다. 오늘날 사람들은 선과 악을 구분하려 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거스르고 대적하는 것이 마치 선(善)이라도 행하는 것처럼 오히려 큰 소리를 친다.
이 시대는 인간 타락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다. 진실로 때가 악하다.
비정상을 정상처럼 여기고 더러움을 더러움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결코 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뻔뻔하고 가증함이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고 있다.
과연 이런 사회 풍조 속에서 신앙을 지킨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신앙에 대하서 말을 하면 덜 떨어진 사람 취급을 하는 이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이 왕따를 당하고 믿는 자를 이유도 없이 미워하고 패싱 시키는 시대다. 세상의 문화에 둘러 쌓여서도
신앙의 지조와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그 옛날 다니엘의 그 용맹함과 그 신앙이 과연 우리에게 있는가?
세상이 변하고 죄의 풍랑이 쉬지 않고 몰아쳐도 그리스도인이 붙잡아야 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옳다 하여도 그리스도인은 진리 앞에서 단호히 아니요 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은 썩을 대로 썩었다. 하지만 진리는 결코 변함도 굴절도 하지 않으며 썩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강력한 것은 없다. 말씀의 부흥이 나를 살린다는 사실을 결코 잊으면 안 된다.
악은 오래가거나 형통하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면 아니다.
진리 앞에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없다면 그는 결코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다.
대장부처럼 강하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한다.
영적으로 잠들면 죽는다. 깨어야 산다.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있다.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의 때를 기억하지 못하면 재앙이다.
32. 신앙(信仰)의 성숙(成熟)은 행동(行動)으로 말한다.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일이다. 아무리 열심히 섬길지라도 사랑 없는 섬김은 감동을 줄 수가 없다.
진실로 사랑한다면 불속에라도 뛰어들게 되어 있다. 말로만 하는 것은 섬김도 사랑도 아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행동이
따른다. 우리가 강인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 위해서다.
믿음은 살아있는 나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하며 살지만 삶이 없는 믿음은 거짓 신앙이다.
복음은 나를 처서 복종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그로부터 능력이 나온다.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마땅한가를 생각하지 않고 살면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는 지극히 작은 것 하나도 베풀며 살기에 부족한 존재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움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다.
하나님을 향하여 눈뜬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가 있다.
삶의 예배가 행동드리는 산 제사다. 모든 성도는 산 제물이다. 성도는 예배로 시작하여 예배로 끝을 내야 한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사랑을 잊은 채 사랑의 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신앙은 결코 누가 옳고 크냐 하는 것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의 문제다.
진정으로 사랑하며 사는 자만이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가 있다.
신앙의 성숙은 사랑에서 나와 그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33. 신앙은 세상과 다름을 보여 주는 것
신앙은 세상 사람들과 믿는 자의 다름을 보여 주는 일이다. 세상은 점점 자극적이고 폭력적이며 자기중심적으로
흐르고 있다. 걷잡을 수 없이 이기주의가 만연한 세상이다. 하지만 믿는다는 것은 그와 반대로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다.
진리를 따라 진짜로 살 것이냐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 것인가의 싸움이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서 구별할 수가 없다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의심해야 한다.
믿음은 용기다. 많은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욕심이 앞서면 말씀을 거스르게 된다. 인간의 타락은 마음의 타락에서 온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삶은 절대로 변화하지 않는다.
비록 내세울 것이 하나 없어도 하나님 밖에는 붙들 것이 없는 것처럼 살아갈 때 온전한 신앙인이 된다.
신앙은 자기만족이 아니라 이 땅에 자신을 보내신 이를 위하여 사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며 사는 삶이다. 교회 안에서만 좋은 신앙은 결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가 없다.
세상에 나가서도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세상적으로 보면 신앙인은 소수로 살아가야 하는 외롭고 좁은 길을 가는 것이다.
주를 위하여 많은 박해와 고난도 함께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진리를 위하여 소수로 살아가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정체성이 분명하고 선명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세상에 그리스도인임을 입증해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세상 사람과 다름을 증명하는 일은 오직 삶으로 보여주는 길 밖에 없다.
삶이 동반되지 않으면 절대로 복음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는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기도만 하고 있으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가지고 살라는 말씀이다.
가지가 주께 붙어 있으면 반드시 그 열매를 보게 되어 있다.
34. 간절(懇切)함이 사라진 기도(祈禱)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간절함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기도에 간절함이 없으니 응답이 없다.
기도의 자리에 있어도 조는 것인지 기도하는 것인지 분별이 되지 않는 이들이 많다.
기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성도라면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기도다. 기도는 결단이다.
기도에 간절함이 없다는 말은 기도에 승부를 걸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기도 밖에 선택할 것이 없다는 심정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사람은 배가 부르고 따뜻하며 세상적으로 성공하면 기도하지 않는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기도하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기도에 소극적이며 기도를 해도 간절함이 없다.
오직 하나님께만 매달리는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는 기도가 필요하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살겠다는 교만함이다. 기도는 순간에 배우는 것이 아니다.
기나긴 인내를 통하여 날마다 기도의 지경을 넓혀가야 한다.
기도는 하면 할수록 그 기도가 자라서 영적인 거대한 숲을 이룬다.
기도하는 사람들 중에 약점은 기도하다가 포기한다는 것이다. 포기하면 응답도 사라진다.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결과다. 믿음의 기도가 응답을 불러온다.
결코 기도를 포기하지 마라. 기도를 삶에 최우선으로 놓고 살아야 한다.
포기하지 않는 기도가 하늘문을 열게 한다. 기도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인생도 우습게 된다.
기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기도로 우리 인생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위기의 기도는 하나님을 만날 절호의 기회다. 기도가 살아 있는 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
35. 흉내만 내고 살아도
믿음 좋은 사람 흉내만 내고 살아도 믿음의 사람이 될 수가 있다.
경건한 사람 흉내만 내고 살아도 경건하게 살 수가 있다. 기도 열심히 하는 사람 따라서 흉내만 내도 기도하는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를 본받아 살게 되면 나도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살 수가 있다. 내가 아브라함이라 생각하고
아브라함처럼 살면 믿음의 조상이 되고 , 다윗처럼 살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다.
성경에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을 나의 모델로 삼고 살아라.
오직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처럼 나도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가 된다.
반면에 악한 자와 함께하면 악을 행하게 되고 거짓말하는 자와 사귀면 거짓 인생을 살게 된다.
우리는 오직 예수 닮은 자가 되어 작은 예수처럼 살아야 한다.
그가 사랑하셨은즉 나도 사랑하고 그가 나를 위하여 죽으셨은즉
나도 주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가 되기까지 오직 믿음으로 자라 가야 한다.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나로 하여금 읽고 교훈을 얻으라 하시는 것이다.
주를 사랑하던 자들처럼 주를 사랑하고 이웃에게 베풀고 살던 자들처럼
베풀며 살면 세상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다.
바울처럼 전도하고 베드로처럼 끝까지 주를 좇는 자가 되자.
예수님처럼 욕심을 내어 버리고 주와 세상을 위하여 자신을 불살라 줄 수 있기까지
우리는 늘 배우고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을 가까이하는 자는 주를 닮게 되고 세상을 가까이하는 자는 세상에 물들게 되어 있다.
믿음 좋은 사람들 흉내만 내고 살아도 내 인생은 달라진다.
36. 생각도 골라서 하라.
생각도 골라서 하라. 그것이 마침내 나를 다스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기 질투는 분노를 일으키고 분노는 살인도 저지르게 한다. 가인은 시기로 인하여 동생 아벨을 죽였다.
생각은 이처럼 무섭다. 예수께서도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살인죄와 같다 하셨다. 모든 죄는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마음속에 무엇을 품고 사느냐가 중요하다. 성경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다 선언한다.
산상수훈 팔복가운데도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 하셨다. 마음이 청결한자는 복이 있나니
저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라 하셨으니 이는 마음의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다.
마음의 생각이 선과 악을 가르는 잣대가 된다. 우리는 생각으로 범죄 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행동이든 생각이든 죄는 하나님의 심판을 결코 피할 수가 없다.
모든 욕심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는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고 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나를 비우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나를 비우면 더 이상 죄가 나를 어찌할 수 없다.
마음에 악한 생각은 독사의 독보다 더 치명적이다. 영혼과 육신을 사망의 골짜기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스리고 시기 질투 미움을 내속에서 버리는 훈련이 신앙생활이다.
나를 비우고 그리스도로 채우는 자가 예수 믿는 자다. 생각난다고 아무 생각이나 하면 안 된다.
그것이 말이 되고 행동이 되어 나를 결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도 골라서 해야 한다.
37. 처음도 끝도 믿음이 되게 하라.
성도는 모든 것을 믿음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결코 사람에게 보이려고 일하지 말아야 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없다.
열정을 다하여도 믿음 없이 하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일이다.
성경은 순종과 불순종 사이에 복과 저주를 명하신다. 이는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경험한 바요 깨달은 바다.
믿음이란 한마디로 말씀에 순종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믿음의 공동체 속에서 누구나 순종하며 사는 것 같아도 실제 상황은 그렇지를 못하다.
순종은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자가 자원하여 하는 일이다.
믿음은 하나님께 집중하고 순종하게 만들며 헌신하는 자가 되게 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게 한다.
믿음은 내 생각을 접고 하나님의 뜻에 무릎 꿇는 것이다.
믿는 자는 언제나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날마다 주를 가까이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기 위해서다.
순종하지 않는 것은 처음부터 그 사람 속에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세계를 볼 수가 있다.
인간에게 가장 큰 비극은 죄와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는 것이다.
믿음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믿음으로 순종하면 기적을 낳고 기적은 날마다의 일상이 된다.
순종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
자신만의 열심과 노력만으로 무엇을 이루려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자칫 그것이 자신의 의가 되고 마침내 교만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도는 처음도 믿음이요 끝도 믿음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