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사람 - 롬8:5-11,13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우리는 육의 사람이 아니고 영의 사람이다. 육신을 좇아 살지 않고 영을 좇아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과 은혜를 받고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 이상 육신을 좇아서 살지 말고, 영의 사람이 되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사는 삶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영으로 자기의 육을 쳐서 복종시키면서, 육의 사람이 아닌 영의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쳤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는지, 우리가 어떻게 의롭다하심을 받았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벌은 한 번 쏘면 그 다음에는 쏠 수 없다.
죄의 침은 사망, 곧 죽음이다. 그러나 죄는 무서운 침을 이미 쏘아버렸다. 죄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침을 쏘았다. 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만들었다. 그러나 죄는 사망의 침을 이미 쏘았기 때문에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사망의 침으로 쏠 수가 없다.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을 받았다. 우리에게는 율법의 모든 요구가 이루어졌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으면 어떠한 삶을 살아야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바울은 이것을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다. 한 마디로 더 이상 육신을 좇아서 살지 말고, 영을 좇아서 살라는 것이다.
첫째로, 우리는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 육신의 삶을 살면 잘될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곧 사망이다. 우리가 영을 좇아서 영의 일을 생각할 때, 그 속에는 생명이 있고 평안이 있다. 5절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우리의 과거의 모습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기 전에는 육신을 좇아서 살았다. 육신의 일들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영을 좇아서 사는 사람들이다. 영의 일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할 사람들이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육신의 일을 생각하면 잘될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다. 6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다. 그러나 영의 생각 속에 생명이 있고 평안이 있다.
우리가 영을 좇아서 영의 일을 생각하면서 살아갈 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신다. 우리의 발걸음은
평탄할 것이다. 우리의 삶은 형통할 것이다.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람은 육의 일에 치중하지 말고 영의 일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 나의 영적 지수 (신 34:10~12)를 한 번 채크해 보도록 하자. “잘 되는 사람은 잘 되는 이유가 있고,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는 이유가 있다”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고 원인이 있다. 하나님이 쓰시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적으로 부족한 자, 비천한 자를 들어 귀히 쓰시기도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아무나 쓰시지 않으신다. 사울과 다윗을 비교해서 보더라도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있고 버리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이 다윗을 쓰셨다면 분명 무슨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런 사람이다. 광야에서 연단을 받은 후에 스셨다. ⓵. 포기지수 : 히11:24-26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⓶ 온유지수 : 민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 하더라”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온유했다.
⓷ 인내지수: 출 15~17장을 보면 무려 일곱 구절에서 모세를 향한 원망이 나타나고 있다. 마라에서는 쓴 물 때문에, 광야에서는 고기와 떡의 욕망 때문에, 르비딤에서는 부족한 물 때문에 모세를 원망하였다. 그러나 모세는 끝까지 인내했다. ④ 친밀지수: 신34:10절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하나님과 친밀해야 한다.
둘째로, 왜 우리가 육신의 일을 생각해서는 안 됩니까? 7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의사가 없다. 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과는 정상반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이 육신의 생각에 이끌리게 되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법에서 멀어질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8절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7∼8절의 말씀을 거꾸로 읽으면 될 것이다.
"영의 생각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나니 이는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즐겨 굴복하기 때문이니라. 그 결과 영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 엄청난 희생을 통해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질투하시기까지 사랑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으면서도 계속해서 육신의 생각에 얽매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버리고 마시는 것이다. 영의 사람으로 영의 일을 생각하도록 바꾸어 놓으시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이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결코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육신의 사람처럼 육신의 생각에 골똘할 때, 우리를 쳐서라도 영의 사람으로 바꾸어버리고 마시는 것입니다.
육의 생각을 영의 생각으로 바꾸어야 한다. 영의 생각만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 내 세 부류의 신자* 계 3: 1∼6 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지상 여러 교회의 모습이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모습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 이 교회들은 칭찬만 받은 두 교회, 즉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 칭찬과 책망을 함께 받은 세 교회로 에베소교회, 두아디라교회, 버가모교회가 있고, 책망만 받은 또 다른 두 교회로 나눌 수 있다. 라오디게아교회와 사데교회이다. 이 교회 안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⓵, 죽은 사람이다.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1절)’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영적인 죽음의 상태(엡 2:1)를 말한다. 외형적인 모습과 형식은 갖추고 있었지만 영적인 사망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을 수 있다. 예수님은 종교적으로 바리새인이며 사회적으로는 지도자이고,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도 거듭나지 못한 니고데모에게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고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3:1∼5)고 말씀하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으로 거듭난다.
②, 죽어가는 사람이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2절)’는 말씀이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행위가 온전치 못한 사람, 즉 영혼이 점점 시들어 가고 있는 상태이다. 이들은 말씀의 입맛을 잃어버린 사람들로서 심령이 메말라 마음이 답답하고 불평과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신경질적이다. 기도와 사랑과 봉사도 메말라 간다. 주님은 이들을 일깨우신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회개하라는 것이다.
③ 살아있는 성도이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다(4절)’는 말씀이다. 흰옷 입고 주님과 함께 다니는 건강한 교인이다. 주님이 보실 때 합당한 사람들이다. 여기서 흰옷은 그리스도께서 입혀주신(롬 13:14) ‘구원의 옷(사 61:10)’이며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 곧 성도들의 옳은 행실의 옷(계19:8)’이다.
살아 있는 몇 사람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순수한 신앙과 복음의 열정을 지켰다. 이들은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확실히 기록될 것이며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와 그의 천사들 앞에서 그들을 향하여 “내가 분명히 안다”고 시인하실 것이다. (5절) 여러분의 신앙 상태는 어떻습니까. 건강한 신앙으로 흰옷을 입고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죽어가고 있습니까. 주님에 대한 첫사랑과 믿음을 회복하시기 위해 무엇을 하십니까?
* 말세 성도의 세 가지 스타일 (마24:32-51)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유형의 세 가지 형태
⓵ 망각형: 주님 오실 날에 대한 개념을 갖지 않고 세속에 취하여 사는 사람이다. (마24:48-50)
⓶ 도피형: 변화산에서 초막을 짓고자 했던 제자들과 같은 사람들이다. (마17:4, 마24:36) ⓷ 준비형 : 주님 재림에 대한 임박한 마음으로 항상 깨어 믿음 준비와 맡겨진 사명에 충성하는 스타일이다. (마24:44-47)
재림신앙은 우리에게 재림에 대한 대비와 아울러 성령 충만을 이루게 하는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온다.
셋째로, 우리는 몸의 행실을 죽이면서 살아야 한다.
롬 8:13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누가 그리스도의 사람입니까?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 자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아무리 윤리적으로 완벽하게 살고 도덕적으로 착하게 산다 할지라도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 비록 부족하고 연약할지라도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거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를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얼마나 완벽한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바리새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애썼던 사람이었다. 유대인의 관원이었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고 명망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또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했습니다. 랍비였습니다. 백성들에게 삶을 가르쳤다. 종교를 가르쳤다. 도덕과 윤리를 가르쳤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향해서 거듭나라고 말씀하셨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왜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그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만일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들린 여자나 일곱 귀신이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그 말씀을 하셨더라면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니고데모를 향해서 거듭나라고 말씀하셨다. 왜 그렇겠습니까? 니고데모는 아직도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영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육에 속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니고데모처럼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완벽한 사람이 못될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습니까? 그렇지 않다.
10절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두 가지가 서로 예리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몸"은 "영"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죄"는 "의"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죽은 것"은 "산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이 두 가지 가운데서 무엇을 택해야 마땅하겠습니까? 몸이 아니라 영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죄가 아니라 의를 택해야 할 것입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산 것을 택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사람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 곧 부패한 육신의 행실을 좇아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다. 의를 인하여 산 것, 곧 영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영의 일을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의 부패한 육신도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홀연히 변화가 될 것이다. ( 11절 말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우리의 부패한 육신도 변화가 될 것이다.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으로 바뀌어질 것이다. 육의 몸은 신령한 몸으로 바뀌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우리는 육을 쳐서 복종시키며 영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육신에 속한 모든 일들을 더럽고 냄새나는 배설물처럼 여겨버렸다.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살았다.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부패한 육신 때문에 영과 육의 갈등 속에 살아갈 때가 많이 있다. 그럴 때는 육의 사람처럼 육신의 일에 치중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사람답게 우리의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이 되어야 하겠다.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다. 그러나 영은 의로 인하여 산 것이다.
우리의 삶은 잠시 잠깐이다. 죄로 인하여 죽은 몸의 행실에 따라서 살려고 하지 말다. 날마다 우리의 몸을 쳐서 복종시키며 영을 좇아서 영의 일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그것이 곧 생명이요, 평안이다.
네 번째로 비상(飛上)하는 신앙생활(信仰生活)을 하자 (사 40:27-31)
그리스도인의 사람은 위를 향해서 날아오르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독수리가 하늘을 향해서 날아오르듯
비상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는 현실에서 탈피하여 비상하기가 어렵다. 상황만 바라보면 좌절과 절망 가운데서 헤어 나오기가 어렵다. 우리 믿음이 독수리처럼 비상해야 하는데, 우리를 세상에 묶어두려는 세상과 죄와 육신과 사탄의 방해가 너무나 강하다. 우리 믿음이 어떻게 하늘 높이 비상할 수 있을까요?
⓵ 현실에 집착하지 마시기 바란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다. 27절을 보면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지적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멀리 떠나시고 버리신 것 같다.’ 그들은 현실만 바라보고 탄식했다.
모세도 호렙산 가시덤불 불꽃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시작하자마자 침체에 빠져버린다.
강퍅한 바로왕도 그렇고, 자기 백성들의 불신도 그렇지만, 더 문제는 자기의 무능함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말을 들으리이까”(출6:30)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자신에 너무 집착한 원인이다. 심리학자 맥스웰 말프는 사람의 95%는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환경의 악함과 자신의 부족이 비상치 못하는 원인이 되지 못한다. 독일의 란게이이히바움이라는 사람이 천재 78명을 조사해보았더니 그중 83%가 육체적, 정신적, 가족관계에서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 잔다크, 미켈란젤로, 루터, 파스칼, 뉴튼, 루소, 괴테, 하이네, 바그너, 비스마르크, 릴케 등 모두
약점이 있었다. 시인 바이런은 기형아였고, 줄리어스 시저는 간질병 환자였고, 베토벤은 청각 장애자였고, 나폴레옹(155cm)은 키가 작았다. 토스카니니는 눈이 안 좋았고, 모차르트는 폐병환자, 루스벨트는 소아마비 환자였다.
긍정적인 사람은 어려운 상황을 기회로 알고 비상한다. 보이는 것을 문제 삼지 마시기 바란다. 사람들은 일이 잘되면 신이 나서 용기백배하다가 하는 일이 잘되지 않으면 힘을 잃어버립니다. 환경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우리 믿음도 현실에 매이면 하늘로 비상할 수 없다. 현실에 집착하지 말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시기 바란다.
⓶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확신해야 한다.
28-29절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알 때 믿음이 생긴다. 하나님을 알되 나와 관련하여 아시기 바란다. 그냥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 그냥 아버지가 아니라 나의 아버지, 그냥 능력자가 아니라 나의 능력자, 그냥 인도자가 아니라 나의 인도자, 이렇게 나와 관련시키면서 성경을 읽으시기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을 확신하는 믿음이 생겨날 것이다. 무디는 성경공부를 통해서 믿음이 자라났다고 간증했다.
최 용우씨의 글을 소개한다. “흐리멍텅하지 말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미지근하지 말고, 유야무야 하지 말고, 어리버리하지 말고, 해찰하지 말고, 마귀에게 속지 말고, 뭉기적거리지 말고, 근심걱정염려 하지 말고,
여기저기 한 눈 팔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고 제대로, 야물딱지게 신앙생활을 하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야물딱지게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란다. 그러면 하늘 높이 비상할 수 있을 것이다.
⓷ 하나님을 앙망(갈망)하시기 바란다. '앙망' '카바'(히) ‘간절히 바라보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다, 함께 묶다.’
30-31절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 ”
자동차가 기름이 없으면 달리지 못한 것처럼 우리 믿음도 성령의 동력이 없으면 기름 떨어진 차와 같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란다.
시42:1의 다윗의 고백처럼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우리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시기 바란다. 세상의 중력과 죄악의 항력이 아무리 크다 해도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은 이길 수 없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앙망하라. 하나님을 갈망하면 은혜도, 은사도 선물도 좋은 것으로 함께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람은 영의 사람이 되어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 말고,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사람, 비상하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하나님을 앙망하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시기 바란다.
하나님을 갈망하므로 성령충만하여 날마다 독수리처럼 힘차게 하늘 높이 비상하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란다.